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낚시터에서 생긴 일 (1)
갈매기 지저귐과 뱃고동 소리. 싱싱한 오징어가 팔딱대는 모습엔 저절로 군침이 넘어간다.
탁 트인 바다 전망은 또 어떤가. 과메기 한 점에 소주만 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중공업 선박들 뒤지고 다니다가 여기 오니 감회가 새롭죠? 솔직히 공기부터 다르잖아요. 기름 쩐내 없는 이 천혜의 자연 냄새. 오늘 오후엔 수산시장에서 경매도
열린답니다. 회포 제대로 풀죠.”
진짜로 김 반장의 말이 맞았다.
같은 바다라도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가. 남해에서 철근 나르던 인부들은 세상 피곤에 찌든 모습들이었는데, 동해 어민들은 얼굴 하나하나가 다 신선처럼 보였다.
‘젠장…….’
준철은 자존심 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배달 어플로 없는 식욕을 끌어내던 여느 휴일과 완전 다르다. 비린내 나는 오만 생선이 다 맛있어 보이고, 마시지도 않던 술이 미친 듯
당겼다.
“푸흡- 근데 팀장님은 진짜 낚시가 처음인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저는 왜 한 마리도 못 잡는 겁니까.”
“낚시는 관찰력. 찌를 유심히 보셔야죠. 몇 번 해 보셨다면서요?”
“터에서 붕어나 잉어 몇 번 잡은 적 있긴 한데.”
“터? 하이고- 업장에서만 낚시하셨구나. 낚시터랑 바닷바람 맞으면서 잡는 거랑 이렇게 차원이 다릅니다. 줘 보세요, 제가 한 수 알려 드릴게요.”
골프라면 자신 있는데, 낚시는 영.
김 반장 통발에 도다리, 감성돔, 임연수가 종류별로 쌓여 가는 동안 준철은 한 시간째 허탕이다.
“제일 중요한 건 배에서 제일 멀리 던지는 거예요. 읏차.”
낚시찌가 포물선을 그리며 족히 30m는 날아갔다.
“이렇게 반응 없으며 슬슬 움직여 주시고. 물고기는 살아 있는 고기만 먹으니까.”
꼭 저렇게 엉덩이까지 씰룩여야 할까.
“슬슬 탐색하다가 입질이 오면…… 입질이 오면.”
풍덩.
거짓말처럼 입질이 쑥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 반장은 기회다 싶어 전속력으로 레바를 감았지만.
“이야- 반장님! 일로 좀 와 보십쇼. 빨리 빨리 빨리!”
뒤에 있던 박 조사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낚시는 타이밍의 예술이건만.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 소리에 집중력도 흐트러졌고, 고기도 도망가 버렸다.
“어휴- 박 조사관 저놈은 뭐 도움이 안 돼.”
“나중에 다시 알려 주세요.”
준철은 쿡 웃었고 두 사람은 소음지의 근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뭐 참치라도 잡았냐.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참치 저리 가라 싶은 거 몇 마리 잡았죠. 흐흐.”
“뭐야, 이거 조개들이네?”
박 조사관 통발에는 익숙한 모습의 조개들이 보였다.
“네. 백합, 홍합, 가리비, 키조개. 아주 없는 게 없습니다.”
“너 이걸 어떻게 잡았어.”
“저기에 있는 투망 한 번 던졌죠.”
“투망? 야! 배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어떡해.”
“무슨 함부로에요. 선장님이 자리 비울 때 필요한 거 있으면 다 쓰라고 했는데.”
박 조사관은 실실 웃으며 칼을 들었다.
“가만 계시지 말고 냄비랑 소금 좀 가져와 보세요. 이거 해물탕 끓이면 죽이겠습니다. 이야- 이 가리비 봐라. 서울에서 이 조개찜 한 상 먹으려면 최소 7만 원은 받을 텐데.”
김 반장은 잠시 갈등됐지만 곧 입맛을 다셨다.
“오징어…… 오징어는 없냐?”
“저기 투망 한번 뒤져 보십쇼. 날이 좀 풀려서 그런지 없는 생선이 없습니다.”
“팀장님. 냄비랑 버너 좀 부탁드립니다.”
“네?”
“이건 박 조사관 말이 맞아요. 언제 또 이렇게 싱싱한 조개찜 먹어 보겠습니까.”
이래도 되나 싶은 것도 잠시. 가리비가 입 벌리는 모습에 침샘이 폭발했다.
세 사람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조개찜 세팅에 들어갔다.
갓 잡은 해산물에 고춧가루만 뿌렸을 뿐인데 군침이 싹 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고 김 반장은 소주를 뜯었다.
-통통통통.
하지만 그렇게 만찬을 즐기고 있을 때.
불현듯 먼 곳에서 통통 뱃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선장님 벌써 오셨나.”
하지만 선장이 아니었다.
상대 배에선 웬 노인이 내려 삼인방을 수상한 눈초리로 훑었다.
“최 영감 배 같은데, 자네들은 뉘신가?”
“아, 낚시꾼들입니다. 선장님은 오늘 무슨 경매가 크게 열린다고 잠시 뭍으로 가셨고요.”
“이 영감이 어데 돈귀신이 붙어먹었나. 뱃밥 먹는 놈이 배를 함부로 비우면 어뜩해?”
노인은 일행을 쓱 훑으며 핀잔을 줬다.
“얼른 가서 연락혀. 배에서 선장이 자리 비우면 단속 맞아. 내가 아니라 해경이 왔으면 어쩔 뻔했어.”
“하하. 오늘은 뭐 해경들도 다 경매장 가야 해서 바쁘다는데요.”
“쯧쯧- 손님들한테 못된 것만 가르쳤네.”
“그러지 말고 영감님도 와서 한술 뜨시지요. 마침 고기가 많이 잡혀 버리기 아까웠습니다.”
노인이 코를 킁킁거렸다.
사실 이 배에 온 목적도 칼칼한 해물탕 냄새 때문이었다.
“뭘 그리 맛있게들 먹누?”
“저희가 뭐 고기 이름을 압니까. 이것저것 잡아서 회 치고 탕 끓여 먹죠. 아, 쇠주에 막걸리까지 있는데 한잔하시렵니까?”
“못난 소리 하고는. 배 운전하는 놈이 어떻게 술을 자시는가. 근데 거 매운탕은 어디 솜씨 구경이나 함세.”
새벽부터 바닷바람을 맞은 노인이었다.
칼칼한 매운탕에 공깃밥 한 그릇이 누구보다 절실하던 터였다.
“어이구야. 일행이 더 있었구먼.”
노인은 준철과 박 조사관을 보더니 습관처럼 잔소리를 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술 많이 자시지 말어. 선장 없을 때 사고 나면 최 영감 어업면허 박탈이야.”
“넵.”
“여기 앉으세요, 어르신. 박 조사관 가서 밥 가져와.”
노인은 자리에 앉더니 눈썹을 들었다.
“조사관? 어디 공무원들이신가?”
“네. 서울에서 일합니다.”
“어데서 일하는고? 뭐 해양수산부 같은 빌어먹는 데서 일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하하. 거기보다 욕 더 많이 먹는 곳에서 일합니다. 자- 식사부터 하세요.”
노인은 숟가락을 들어 매운탕을 한입 들었다.
“설 사람들이 솜씨 제법이구먼. 뭐 조미료 넣었나.”
“남자들이 요리를 뭐 압니까. 라면 스프 좀 넣었죠, 뭐.”
“그랴. 배에선 라면만 끓여 먹어도 별미지.”
그러다 노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저, 저건 뭐시어?”
“아, 이거요. 조개찜이에요. 사실 이게 메인인데 어르신도 드시지요.”
“아니 이 사람들아 저 조개 뭐시냐고!”
“예? 가리비요?”
“가리비?!”
노인의 목소리가 커지자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바짝 긴장했다.
“예…… 뭐 문제 있습니까?”
“이눔들아 겨울철에 가리비를 함부로 주어 먹으면 어뜩해! 저거시 복어여 복어!”
“보…… 복어라니요. 제가 물고기는 잘 몰라도 복어 정도는 구별할 줄 압니다.”
노인은 참다못해 숟가락을 던졌다.
“그럼 사람이 복어 먹으면 어케 되는지는 알제?”
“시, 신경독이요.”
“그래, 네들 이 지금 그걸 먹은 거시여.”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복어가 독을 제 몸에서 만드는 줄 아나?! 다 이렇게 가리비 같은 먹잇감들 먹고 독성을 몸에 저장하는 거야. 얘네는 자체 독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먹잇감으로 독을 생산한다고!”
삼인방은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겨울철 생선은 함부로 주워 먹는 게 아니라고.
“어르신 이거 심각한 겁니까?”
“옌장할. 그럼 안 심각혀? 얼른 숟가락 내려놓고 내 배로 타! 선착장에 긴급 보건소 있응게.”
***
“으웩 으웩-!”
위세척만 벌써 세 번째.
“……낚시 베테랑이라면서요. 저것도 모르고 함부로 먹으면 어떡해요.”
“……유구무언입니다, 팀장님. 하여간 저 박 조사관.”
“……너무 그러지 마세요. 먹을 땐 다들 좋았잖아요.”
준철 일행은 부둣가에 위치한 긴급 보건소에서 속을 전부 게워 냈다.
정말로 아슬아슬했다. 노인이 일러 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구토가 올라오고 혈색을 잃기 시작했으니.
선착장에 도착해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떠 보니 위세척을 하고 있었고, 다시 감았다 떠 보니 수액 주사가 꽂혀 있었다.
“선생님 저…… 뭔가 머리가 핑 도는 것 같고, 손에서 땀이 나고…… 주사 같은 거라도 한 방 놔 주시면…….”
“다행히 중독 증상은 없수다.”
“그럼 안전한 겁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게워 내시게.”
초로의 의사는 물약을 또 내밀었다.
이것으로 위세척만 네 번째다.
“어휴- 내 팔자야.”
병상에 쓰러져 누운 두 사람은 박 조사관에게 눈을 흘겼다.
“안전하다더니 이게 뭐야? 해산물 박사라며?”
“…….”
“골로 갈 뻔했네. 복어보다 더 위험한 걸 먹고 앉아 있었으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맛있긴 했잖아요.”
그 맛있는 걸 다시 게워 내는 게 어려웠을 뿐이지.
세 사람이 투덜댈 때 생명의 은인이 도착했다.
“좀 정신이 드는가?”
“아, 어르신.”
“누워 있으시게.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됐구먼.”
“어르신 덕택에 죽다 살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 고마우면 누워 있다 조용히들 가. 이거 해경한테 걸리면 최 영감 면허정지야.”
“아무렴요. 아무 소리 않고 있다가 조용히 가겠습니다.”
“그려. 시장엔 내가 데려다주겠네.”
노인은 끌끌 웃으며 의사에게로 갔다.
초로의 의사는 차트를 작성하다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쩌자고 오늘 바닷가에 나갔어? 오늘 장 열리는 날 아니야?”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뭘.”
“가서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야지. 또 그 어민협동조합 놈들이 훼방을 놓을 텐데.”
“직원들한테 맡기고 왔어. 나도 곧 돌아갈 게야.”
초로의 의사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지 말고 그냥 어협에 재가입해. 한 번 가입했다가 탈퇴하니까 자네를 아주 못살게 구는 거 아니야.”
“그만해. 안 한다니까.”
“아니면 뒤에서 부채질이라도 말든가. 어협 놈들은 비조합원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뒤에서 비조합원들 편들지 말아.”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지. 어협이 조합원 비조합원 차별하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말이여.”
“자네가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할 나이야?”
“암만 그래도 난 재가입 안 해. 그놈 새끼들이 어협을 어떤 식으로 운영했는지 빤히 다 아는데.”
“이 사람아 그 얘긴…….”
“알아. 나도 입밖에 안 꺼낼 거야.”
노인은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저 치들은 내가 시장으로 데려가이. 사람 살려 줘서 고맙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