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7
67화
어민협동조합 (1)
탁 트인 바다 전망.
누군가에겐 휴양지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겐 치열한 생존의 장이다.
“그래서 다 정리했다?”
“예. 이번에 비조합원들 고기들은 대부분 다 유찰됐습니다.”
“왜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이야?”
“몇몇 도매상들은 눈치를 줘도 못 알아먹더군요. 걱정 마십쇼. 그놈들한텐 우리 조합원 고기 안 넘겨 버리면 됩니다.”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줄 잘 서겠지.
조합원장은 담배를 꼬나물었다. 행색은 남루했지만 그는 웬만한 시의원보다 더 파워가 센 인물이었다. 동해에서 잡은 물고기가 전부 다 이곳 어협에서 유통되고 있지 않나.
그는 탁 트인 바다로 담배를 길게 내뿜었다.
“최 반장.”
“예.”
“저 어선들 중에 비조합원 배가 몇 갠 줄 아나.”
“예?”
“고작해야 네댓 척밖에 안 돼. 나머지 배들은 전부 우리 어협조합원 배고.”
“아, 예. 예.”
“근데 저 너덧 개가 끝까지 가입 안 하면 어협은 존재 이유가 없거든.”
“예…… 가격 협상이 안 되죠. 우리끼리 고깃값 올려도 비조합원들이 따로 팔아 버리니.”
칙-!
조합원장은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껐다.
“그걸 알면 좀 더 의욕적으로 일해야지?”
“죄송합니다, 원장님. 근데 저도 최선을…….”
“최선? 자네랑 내가 이 자리 맡았을 때 어협 가입률이 92%였어. 근데 지금은 89%. 3%나 이탈했는데 최선이란 말이 나와?”
최 반장은 바짝 엎드렸다.
“송구스럽습니다.”
“단호할 땐 좀 단호해. 왜 자꾸 비조합원들한테 끌려다녀?”
“다름 아니라 그게 저…….”
“또 그 영감인가? 늙은 호랑이?”
“예. 원광수산 김 사장이 계속해서 어민들 꾀는 것 같습니다.”
조합원장은 혀를 찼다.
원광수산의 김영호, 늙은 호랑이.
한때 이 조합원장 자리에까지 앉은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열렬하게 反어협 전선에서 활동 중이다.
“성질 같아선 장사판 엎어 버리고 싶지만…… 그게 또 워낙 저희 내부 얘기를 많이 알고 있으니.”
“이번에도 그 영감이 초를 쳤다고?”
“네. 시장에서 자리 하나 빼려고 했는데, 그 영감이 구원투수처럼 등장했습니다.”
정말 눈엣가시 같은 놈이다.
어민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영감이 비조합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도 중개인들 압력은 확실히 넣었습니다. 이번 경매에서 완전 유찰됐어요.”
“그건 확실한 거야?”
“예. 2차 경매에서도 당연히 유찰될 겁니다.”
어협의 비밀을 알고 있는 영감. 그래서 함부로 다룰 수도 없는 영감.
최종 목표는 그 영감의 재가입이다. 이런 시한폭탄을 계속 바깥에 두고 감시할 순 없다.
“저기 근데…… 다만 소문은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문?”
“저희 간부들 특혜 얘기가 좀 떠도는 것 같더군요.”
조합원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동해의 유통권을 꽉 쥐고 있는 어협은 남겨 먹을 게 천지였다. 풍년이 잦은 요즘 같은 때엔 어민들의 어획량도 지정해 줬다. 하지만 이 어획량을 결정하는 건 원리원칙이 아닌 간부와의
친밀도.
중개상들한테 접대를 받거나, 정부 보조금을 물 쓰듯 쓴 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그건 의심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못 밝혀.”
“아, 예.”
“소문은 신경 쓰지 말고 자네는 계속해서 그 영감만 주시해. 다시 말하지만 그 영감 하나 굶어 죽이네 마네가 중요한 거 아니야. 그 애물단지는 무조건 다시 조합 안에 가둬 놔야
돼.”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경매가 끝나면 어민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몇 달 동안 수고해 잡은 물고기가 돈이 되어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아…….”
하지만 비조합원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가면 갈수록 횡포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만 해도 행상을 엎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유찰된 것만 봐도 그래요. 도매상인들 전부 다 어협에 붙어먹지 않았습니까.”
“우리 고기 사면 어협에서 고기 안 넘긴다고 협박한 게 분명해요.”
쓰디쓴 소주잔이 계속 넘어갔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도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 어디에 신고라도 해 보죠.”
“어디에 뭘로 신고해?”
“뭐 아무거나 걸면 방법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리 말하자 한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우리도 해결 못 하는 걸 남더러 도와달라고?”
“그렇다고 이렇게 굶어 죽을 순 없잖아요! 우리끼리 머리 맞대면 뭐 대책 나와요?”
“이 자식이 근데 어디서 승질이야?”
“먼저 목소리 높인 게 누군데?!”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의기투합해 열었던 대책 회의는 금세 멱살잡이로 변했다.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사소한 말실수에도 예민해졌다.
“그만들 해, 그만들! 우리끼리 싸우면 어떡해요.”
한 여인이 만류하자 젊은 사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 난 모르겠습니다. 농사도 풍년이면 밭 갈아엎는데, 물고기는 왜 못 해. 어협이 어획량 조절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수다.”
“너 그거 간부들하고 친한 순으로 많이 주는 거 모르냐?”
“한국에서 그 정도 비리 없는 단체가 어디 있어요. 국회의원 비리 터진다고 세금 안 내겠다는 격이지. 대책 없으면 나도 그냥 어협 가입하렵니다.”
사내가 그리 퇴장하자 어민들은 더 동요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
쏴아- 쏴아-!
바닷바람이 부딪힌다.
방파제에 앉은 노인은 먼바다를 훔쳤다. 지겹도록 보아 온 이 바다가 오늘따라 낯선 건 왜일까?
오늘 비조합원 회의는 무기력하게 끝나 버렸다.
아까 전 대책 회의에서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다. 어협에 함부로 가입하면 어떤 대가가 따라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조합원 간부가 정부 보조금을 빼돌리고.
중개상들에게 접대를 받으며.
자신들과의 친밀도에 따라 어획량을 지정해 준다.
이 모습에 질려 어협을 박차고 나온 게 그였다. 하지만 그에겐 현실을 타개할 방법도, 그들을 이길 힘도 없었다.
“제가 한 잔 올려도 되겠습니까?”
“응? 자네는…….”
“왜 혼자 계세요. 날씨도 아직 쌀쌀한데.”
난데없이 등장한 준철은 그에게 겉옷을 걸쳐 주었다.
“아직 서울에 안 갔는가?”
“휴가를 좀 길게 받았습니다.”
“그럼 얌전하게 놀다 가. 밤바다가 얼마나 무서운데.”
“암요. 밤바다가 예쁘다기에 근처 좀 걸었습니다.”
준철은 잔을 올리고 컵을 들었다.
노인은 허탈하게 웃다 그 빈 잔을 채워 주었다.
“자네도 별로 행복하게 살 팔자는 아니구먼.”
“예?”
“원래 동정심 많은 놈치고 자기 행복한 놈 없거든. 늙은이가 된통 당한 게 불쌍해서 온 모양이지.”
“겸사겸사요. 제 고민도 많습니다.”
술잔을 깔끔히 비우자 노인이 잔을 다시 채웠다.
“무슨 고민?”
“이것저것 많죠. 어르신도 고민이 많아 밤바다에 나오셨습니까?”
“나야 뭐 자네들이 본 그대로지.”
“제가 신세 진 것도 있는데 말동무라도 되어 드릴까요.”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럼 젊은이 고민부터 들어 봄세.”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데, 어르신부터 하시죠.”
“말대답 들어 보면 딱히 윗사람 챙기는 성미는 아닌데?”
아이고. 정말 말재간은 당해 낼 수가 없는 노인이구나.
준철은 시선을 피하며 잔을 비웠다.
밤바다가 유난히 아름다운 동해였다. 별도 유난히 많이 보이는 밤이었다. 서울과 확연하게 다른 풍경이었지만 머릿속에 드는 고민은 늘 하나였다.
“과거에 패악질을 많이 부리고 살았는데, 그 죄를 어떻게 씻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흐허허. 겨우 세 잔에 취한 겐가? 서른도 안 되어 뵈는데 무슨 반백살처럼 얘기하고 앉았어.”
“애늙은이 소리 많이 듣는 편입니다.”
“구체적으로 뭔 죄를 지었고, 어떻게 살고 싶은데.”
다사다난했던 전생 얘기를 어디서 풀어야 할까.
“이젠 잘 기억도 잘 안 납니다.”
“기억이 안 나면 괴로울 것도 없잖아.”
“그 비슷한 경험을 하면 자꾸 옛 생각이 나네요. 본의 아니게 자꾸 옛 생각이 나는 직업을 가졌고.”
노인이 슬며시 웃었다.
“공무원이라더니, 경찰인 게로구먼. 학창 시절에 친구 좀 괴롭혔겠고?”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약한 놈들 때리고 괴롭힌 거나, 밥줄 막아 버린 거나 똑같은 거다.
“그럼 그것도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시게. 소싯적 얘기하자면 나도 지독한 놈이었어. 근데 말년에 그런 악몽 꺼내서 뭣하겠나. 지금이라도 반듯하게 살면 되지.”
노인은 짙은 한숨을 보였다.
“나도 자네하고 비슷한 처지야. 소싯적에 한 나쁜 짓 때문에 고통받고 있네.”
“아까 무슨 어협 얘기가 나오던데…….”
“그래, 내가 한때 어협 간부였지. 7년 전만 해도 내가 조합장이었어.”
“아…… 그럼 탈퇴하신 겁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음엔 좋았지. 촌에서 완장 차고 다니니 오만 데서 다 대접을 해 주지 않겠나. 만날 술 얻어먹으러 다니고, 좋은 정보 있으면 돌려 보고.”
“한데 왜……?”
“그 짓도 적당히 해야지. 지금 어협은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야. 나도 딱히 깨끗한 놈은 아닌데, 이건 아니다 싶어 박차고 나왔네. 물론 그땐 이리될 줄 몰랐지만.”
접대라면 그도 많이 받아 봤다.
친한 사람에게 어획량도 많이 줘 봤고. 정부 보조금을 빼돌려 술값으로 쓴 적도 많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거기의 일원이었으면서 이제 와 세상 깨끗한 척을 다 하고 있다니.
“아이구야. 나도 나이를 먹더니 술을 못 이기는구먼.”
노인은 이 얘기를 다 풀어놓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못 들은 걸로 해 주게. 이기적이지만 나도 손가락질받는 게 무서워.”
“물론입니다. 근데 그 문제를 신고는 해 보셨습니까? 사안만 들어 봐선 형사처벌감인데요.”
“하면 뭘 하겠나. 싸우면 조합원들과 모두 척을 지는 거야. 옆집 숟가락 개수도 다 아는 우리끼리 싸워서 뭐 해.”
“근데 중개상인들까지 매수한 건 경우가 다르죠. 이건 비조합원들 아예 죽이려고 담합 조장까지 한 거 아닙니까.”
담합 조장?
노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중개상이 매수됐다는 걸 어떻게 파악했을까?
“자네가 그걸 어찌…….”
“어르신과 그 아주머니 상품이 유찰될 때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이번에 유찰된 어민들은 전부 비조합원 출신 아닙니까?”
“맞긴 맞네만 그건 일반 사람들이 알긴 힘든데. 자네 혹시 진짜 해양수산부에서 일하나?”
“비슷한 계통에서 일하긴 합니다.”
그리 말하더니 준철이 마지막 잔을 비웠다.
“그러지 말고 어르신. 제가 신세 진 거 딱 한 번만 갚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