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어민협동조합 (2)
“경매 준비하느라 다들 애썼어. 2차야 뭐 떨거지들 나오니까 신경 쓸 필요 없고. 이번 여름에도 이번처럼만 해 주게.”
중앙시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협 사무소.
해가 쨍쨍한 대낮이었지만 여긴 벌써부터 막걸리판이 벌어졌다.
근무시간이기도 했지만 이래도 된다. 조합원장의 말대로 경매가 끝났으니까.
“조합원장님.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허허. 사람하고는. 오늘 저녁에 제대로 달릴 거니까 낮술은 적당히 해.”
“아이고- 추수감사절이나 다름없는데 하루 종일 취해도 무죄죠. 조합원장님의 노고 덕택에 이번에 고깃값도 잘 받아 냈습니다.”
최 반장은 술병을 들며 알랑방귀를 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가격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고깃값을 작년보다 10%나 인상하지 않았나. 동해의 모든 물고기가 다 어협으로 납품되고 있으니, 도매상에겐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고깃값을 더 인상할 수 있었는데, 참.”
“그러게 말입니다. 그 눈엣가시 같은 비조합원들만 없었으면.”
“그놈들이 자꾸 도매상들하고 직거래하니까 시세 방어가 잘 안 돼. 용케 이번 년엔 잘 넘겼어도 이거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는지 원.”
술판의 단골 안주는 비조합원들이었다.
정말 눈엣가시 같은 놈들이다. 독과점은 99%와 100%가 천지 차이 아닌가. 비조합원이 전부 어협에 가입하면 고깃값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받을 수 있는데.
“그래도 저번에 최 반장이 행상 한 번 엎은 게 좀 파급력이 커. 깽판 한 번 쳐 놓으니까 가입 희망자 바짝 늘어났잖아.”
“최 반장. 거 총대 한번 잘 멨다.”
“총대는 무슨. 위에서 까라면 당연히 까는 거지 뭐.”
조합원장은 최 반장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 당연한 것도 막상 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야. 내 잔 받지.”
“아, 조합원장님. 감사합니다.”
쪼르르-.
“다들 감탄만 하지 말고 보고들 배워. 협회가 뭐야? 남들이 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라 욕하는 거 솔선수범하는 게 협회지.”
“아, 예.”
“그게 또 어민들을 위한 일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독점 납품받고 생선값 올리면 그 혜택이 다 누구한테 돌아가겠어. 어민들 아니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음 경매에선 더 분발하겠습니다.”
조합원장을 허허 웃으며 잔을 높이 들었다.
“이번 잔은 우리 최 반장을 위하여.”
“위하여!”
“조합원장님. 오늘 저희가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똑똑.
하지만 그 상기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풀코스에 막 진입하기 직전 바로 과속방지턱이 등장해 버렸다.
“저 조합원장님. 원광수산에서 찾아왔습니다.”
“뭐?”
“김영호 전 조합원장님이 오셨는데…….”
조합원장이 째릿한 눈빛을 보냈다.
“조합원장은 개뿔. 그게 언제 적 감투야?”
“죄, 죄송합니다. 김영호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뭔 일로 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웬 젊은 남자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조합원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비서를 내보냈다.
그는 반쯤 남은 막걸리를 마저 비우며 말했다.
“뽄새를 보아하니, 어협에 재가입하겠다고 온 건 아닐 테고. 뭐야, 최 반장?”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특이한 점은 없었는데.”
“조합원장님. 혹시 그 젊은 남자라는 놈이 변호사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희도 대응을…….”
“쓸데없는 소리 마. 어떤 변호사가 여기 황릉까지 찾아 와. 등기로 소장을 보냈겠지.”
“아…….”
진짜로 눈엣가시 같은 영감. 덕분에 술판의 흥도 팍 깨졌다. 조합원장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물었다.
“오늘은 이쯤 하고 다들 돌아가. 혹시 모르니까 처신 조심해.”
“예, 알겠습니다.”
***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든다.
생긴 것도 비호감인데, 술 냄새까지 풀풀 풍기고 있다.
30분 만에 나타난 놈은 막걸리 냄새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딱히 취기를 감추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낮부터 술을 자셨는가?”
“좋은 날 아닙니까. 경매도 다 끝나서 회포 좀 풀고 있었습죠.”
“아직 2차 경매가 남아서 축포를 터트리기엔 이른데.”
“본게임은 1차 경매에서 다 끝나는데요 뭐.”
“암만 그래도 근무시간에 낮술 자시는 건 경우가 아니지.”
“하하. 영감님. 어디 뭐 제 근태 관리하러 오셨습니까? 아, 무슨 얘길 꺼내시려고 시작부터 이렇게 까칠하세요.”
조합원장은 약 올리듯 웃었다.
노인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꾹 참았다. 저놈의 멱살을 잡아 봤자 손해 보는 건 이쪽이다.
“그래도 올해 겨울엔 오징어가 좀 잡혀서 다행입니다.”
“그려. 예년엔 흉작이었는데 오징어가 어디 숨어 있었나 보구먼”
“원광수산도 어획량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재미 좀 보셨습니까?”
말본새하고는.
안부 인사 건네는 척 염장을 지른다.
“잡기야 잡았지. 팔 데가 없어 문제지만.”
“개인 판매업자가 그래서 힘들죠. 그러지 말고 영감님도 이제 그만 어협으로 다시 오시죠. 그 연배에 고기 잡으랴 유통하랴 하면 제명에 다 못 삽니다.”
“김 조합원장. 서로 사정 다 아니 우리 엄한 소리 그만하자. 이제 그만하시게.”
“무슨 말씀인지.”
“비조합원들이 이번 경매에서 모두 유찰을 당했어. 도매상인들이 우리 고기들은 아예 상품 검사도 안 해. 이거 모두 자네들 작품 아닌가.”
노인이 직설적으로 말을 꺼내자 놈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셨다.
“어르신. 거 위험한 말을 막 하십니다. 어디 뭐 우리가 도매상인들한테 협박이라도 했다는 거요?”
“아니라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났겠나.”
“그거야 비조합원들 상품이 현저히 떨어지니 낙찰 못 받은 거겠지요.”
“조합원장!”
“이제 보니 오늘 분풀이하러 오셨구먼. 왜요, 고기 못 파니까 괜히 어협이 원망스럽습니까? 그거 병이에요, 병.”
노인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이지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다. 조합원들 고기가 불티나게 팔리는 와중에 비조합원들 상품이 유찰당했다.
마치 누가 각본이라도 내려 준 것처럼 정황이 딱딱 맞아떨어지는데, 이게 상품성 탓이라고?
“뭐 들을 얘긴 들었습니다. 시장에서 무단으로 행상 폈다가 우리 조합원들하고 쌈이 붙으셨다고. 근데 영감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죠. 어민들의 권익을 위해 불철주야 뛰는
조합원 간부들 매도 말아요.”
터진 입이라고 막말이 쏟아진다.
증거를 잡기 힘든 문제니 더욱 득의양양한 모양이다.
“하긴 비조합원들 못된 심보는 동해에서 모를 사람이 없지. 어민들끼리 서로 잘살아 보자고 협회 만들면 뭐 해. 자기들은 고기 한 마리라도 더 잡아서 팔아먹을 궁리뿐인데. 풍년에
고기 잘 잡힌다고 서로 잡아들 봐요. 고깃값 똥값 되면 같이 죽는 거요. 영감님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시겠어요?”
“저-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그건 불공정상행위 같은데요.”
조합장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 훽 하고 고개를 돌렸다.
“뉘십니까, 댁은?”
“관광객입니다. 어르신께 신세를 좀 진.”
조합장 얼굴에서 김이 팍 샜다.
웬 젊은 놈 하나 데려와서 변호사인가 싶었더니 고작 관광객?
“근데 얘기만 들어 봐선 뭐가 좀 많이 이상해서요.”
“저기요. 딱 보아하니 어디 서울에서 온 손님 같은데. 대화 들어 보면 낄 자리 안 낄 자리라는 거 몰라요?”
“제가 관련 업계에서 일을 좀 합니다. 공무원이거든요.”
준철이 명함을 건네자, 그가 짐짓 긴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종합감시국…….]“귀한 분이 누추한 곳엔 왜?”
“사실 선생님 말씀만 들으면 명백한 불공정상행위 같거든요. 담합.”
“담합?”
“어획량이 많아지면 당연히 소비자들이 싼값에 구매하게 해야죠. 이걸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건 넓은 의미에서 가격 담합입니다.”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자 놈이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어디 시답잖은 소리를! 그럼 배추 농사 풍년이라고 밭 갈아엎는 농부들은? 그놈들도 다 가격 담합하는 놈들이야?”
“밭은 개인 소유물이니까 사유지, 바다는 공동재산이니까 공유지. 법으로 가자면 이렇게 좀 다릅니다. 아, 물론 어획량 조절한다고 어민들이 모두 담합 가담자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보단…….”
준철이 서류를 돌려 한 부분을 가리켰다.
“비조합원들을 차별하는 게 담합이란 뜻이죠.”
“차별? 우리가 대체 뭘 차별했다는 건데.”
“어르신 말씀대로 이번 경매에 비조합원들이 줄줄이 유찰을 당했어요.”
“방금 말했잖소! 상품성에 문제가 있으니 그랬다고.”
“만약 아니라면요? 만약 어협이 도매상인들에게 겁박을 했다면요?”
길길이 날뛰던 사내가 급격히 조용해졌다.
역시나 켕기는 게 있구나. 하긴 그게 아니라면 이런 각본은 나올 수가 없지.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그 말이 반갑게 들렸다.
보통 저런 말은 죄 자체를 부인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말이니까.
“아직 증거는 없습니다만, 잡히면 처벌이 크다는 거 아시죠. 처벌이 상당할 겁니다.”
“그럼 어디 한번 잡아 보슈.”
“……선생님. 굳이 이 싸움 길게 할 필요 있습니까. 어르신이 원하는 건 어협 간부들 처벌이 아니라 비조합원들의 생존권입니다.”
“역시 그럼 그렇지. 짖는 개새끼치고 무는 개새끼 없다니까. 왜, 막상 잡으려니까 그건 못 하겠소?”
준철은 그를 빤히 노려봤다.
마음먹고 털면 어협 하나 못 털겠냐만 과장님이 이번 수사를 허락해 줄지는 자신 없었다. 피해 규모라 해 봤자 고작 몇백, 몇천이 전부인 민생 사건 아닌가.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조합원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십쇼.”
“영감님. 이 젊은 놈은 어째 영감님보다 더 말귀를 못 알아먹습니다? 난 먼저 일어나겠수. 사람 말도 못 알아먹는 개새끼랑 대화 더 해서 뭐 해.”
“저, 저 고얀 놈이 어딜…….”
그리 말하며 그는 자리에서 진짜 일어나 버렸다.
노인은 조합원장의 모욕적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 이런 치욕을 맛본 젊은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노인은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살폈다.
“미안허이. 괜히 자네 일도 아닌데 욕봤네.”
“아닙니다. 그나저나 어르신께서 꽤 많이 욕보셨겠네요. 저런 사람을 상대해 왔으니.”
“그러게 내 말하지 않았나. 말 안 들어 처먹을 놈이라고.”
노인은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 살길은 우리가 알아보지. 젊은 팀장님도 그만하소.”
준철은 노인의 위로가 별로 들리지 않았다.
‘기획안을 어떻게 올려야 수사가 떨어지지……?’
안타깝다.
공정위는 작은 사건도 큰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