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비조합원 (1)
“너 황릉에 낚시하러 갔다 온 거 아니냐?”
오 과장은 고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바닷바람 쐬러 갔으면 오징어나 잡아서 올 것이지 사건을 낚아 오면 어떡해?”
기념품도 참 독특한 놈이다. 고기 잡다 사건 낚아 오는 놈은 이놈이 처음일 거다.
“오징어도 몇 마리 잡아 왔습니다. 좀 드릴…….”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으나 오 과장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됐고. 난 이것만 봐서 왜 공정위가 나서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규모는 작지만 민생사건이란 걸 참고해 주십쇼.”
“그래서 더 싫다는 거야.”
민생사건. 힘은 힘대로 들지만 모양은 안 나오는 사건.
대기업들 사건은 최소 수십억대라 실적이라도 챙긴다. 근데 이건 어민들 코 묻은 돈 놓고 싸우는 거다.
“단순히 규모가 작아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런 데 공권력 함부로 개입하면 어떤 꼴 나오는 줄 알아?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부풀려서 당국에 다 일러바쳐.”
“진흙탕 싸움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진흙탕이 아니라 이거 똥물탕이야.”
이쯤 했으면 보고서를 다시 가져가는 미덕을 보여야 하는데.
역시나 그런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옌장.”
오 과장은 혀를 차며 보고서를 들었다.
그 서류 검토가 다 끝났을 땐 더 기가 찼다. 이놈이 낚시터 가서 기획안을 짜 왔나 싶을 만큼 완벽했기에.
“그러니까 담합 조장이라는 거네. 어협이 도매상인들 뒤에서 협박했고.”
“예.”
“꽤 자세하게 나와 있던데, 이거 어디서 제보받았나?”
“비조합원들 증언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그쪽 조합장도 직접 만나 봤고요.”
“뭐라든?”
“안 했답니다.”
“끝이야?”
“예. 자기들은 도매상인들한테 협박한 적 없다 합니다.”
촌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변명이 순박하기 그지없다.
비조합원들 고기만 줄줄이 유찰을 당했는데, 안 했다는 변명이 끝이다.
“하지만 당한 사람들 얘기는 다릅니다. 오래전부터 어협에서 계속 수상한 분위기를 풍겼다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박했는데.”
“비조합원 물고기 사면, 어협에서 고기 안 팔아 버리는 식이요. 이러면 당연히 유통 규모가 큰 어협으로 줄 서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만약 다른 산업 분야에서 일어났으면 독과점에 담합으로 막대한 과징금을 맞았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어민협동조합. 농축수산업은 보호 업종으로 국가에서 가격 협상권을 인정하는 단체다. 한마디로 이걸 담합으로 볼지, 정당한 가격 협상권으로 볼지 애매했다.
“비조합원 차별은 부당하긴 한데…… 단순히 도의적인 잘못 아닌가.”
“도매상들한테 협박했으니 문제죠. 판례 찾아보니 농협도 비슷한 일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럼 증거 좀 가져와 봐. 도매상들한테 협박했다는 근거가 뭐지?”
준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민망한 소리를 꺼낼 수밖에 없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
“뭐?”
“어시장에서 경매가 열렸는데 비조합원들 고기는 완전히 학살을 당했어요. 중개상인들이 조직적으로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본 광경이 증거다? 녹취록이나 뭐 이런 게 발견된 게 아니고?”
“…….”
“나 이런 미친 소리는 처음 들어 봐. 막말로 진짜 상품이 안 좋아서 입찰 안 했다 하면 끝나는데 대체 뭔 깡이냐?!”
오 과장은 후회가 들었다.
그때 위원장님 말에 따랐어야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놈은 차라리 고위직들이 많은 본청에서 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과장님.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수사 허락해 주십쇼. 동해 수산의 유통권을 꽉 쥐고 있는 놈들이 비리 하나 안 저질렀겠습니까. 독과점에, 담합 혐의 분명 있습니다. 제가 꼭
밝혀내겠습니다.”
오 과장도 그 말만큼은 반박할 수 없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건 시장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유통권을 꽉 쥐고 있는 놈들이 비리 하나 없다면 말이 안 되지.
“하아…….”
하지만 그럼에도 함부로 수사 결정을 내려 주기 싫었다.
엄정한 법 집행, 절차, 원리원칙. 다 필요 없는 소리 아닌가? 어민들은 공정위 앞에서 드러누워 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점을 우려하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희 타깃은 어민이 아닌 어협 간부들입니다.”
“비조합원 차별하는 건 암묵적으로 다 동의하는 바야. 어민들이 그걸 다 이해할 것 같아?”
“……최선을 다해 설득해 보겠습니다.”
“만약 수사 허락하면 어떻게 하게.”
“분명히 중개상들도 불만 많을 겁니다. 어협이 유통 꽉 쥐고 바가지도 많이 씌웠는데. 협박받은 사실만 밝혀내면 이 수사 금방 끝날 겁니다.”
오 과장은 준철을 빤히 바라봤다.
“일주일.”
“예?”
“그 이상은 나도 양보 못 해. 지금도 공정위 전 부처에서 인력 보내 달라고 아우성이야. 싫으면 관두든가.”
“아이고- 열흘이면 충분하죠.”
“나 열흘이라 한 적 없다. 일주일.”
“과장님. 딱 열흘만 주십쇼. 그럼 무조건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 과장은 곁눈질을 보냈다. 하지만 준철도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올해의 공정인상만 아니었으면 허락도 안 해 줄 수사였는데, 허공에 열흘을 뿌리게 생겼네.
탁-!
“그 약속 지켜. 너 열흘 넘어가면 무조건 강제 종료야.”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나가 봐.”
***
“아이고…… 이게 웬 날벼락이냐.”
“그러게요. 앞으론 저 양반 어디 함부로 데려가면 안 되겠습니다.”
수사 허락이 떨어지자 반원들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중공업 바다 떠돌아다닌 지가 언젠데 이젠 동해다.
올해의 공정인상은 독이 든 성배 같았다. 저 사고뭉치 팀장 밑에 오래 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팀장님. 이거 다 정리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김 반장은 어민협동조합 자료를 모두 정리해 보고했다.
준철은 서류를 쓱쓱 넘기며 물었다.
“조사하면서 뭐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말씀대로 규모가 제법 크더군요. 동해에서 잡은 물고기들은 전부 어협 통해서 유통됐습니다.”
속된 말로 대한민국 오징어는 전부 어협을 통해 유통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어협에 가입한 어민들이 한 90%. 비조합원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가입자 90%면 거의 독점한 거나 다름없네요?”
“네. 그래서 그런지 유통 업계에 입김이 상당했습니다.”
“그럼 유통 쪽에서도 반발이 있었을 텐데, 뭐 그런 건 없었습니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하죠. 어협에서 고기 안 주면 완전히 장사 접어야 하는데.”
준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나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하다. 협박받았단 진술을 받아 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얘기 들어 보면 대형 마트도 한 수 접을 정도랍니다.”
“확실히 유통을 꽉 쥐고 있는 게 무섭네요.”
“네. 이런 놈들이 비조합원 죽이려고 덤벼들었는데, 당연히 게임이 안 되죠.”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었습니까? 협회 내부의 문제 같은 거.”
“안 그래도 그 부분을 좀 찾아봤습니다만 뒷소문이 많더군요. 어협 간부들이 접대도 많이 받고, 어획량 나눌 때 이권도 많이 챙겨 갔다 합니다.”
문제점은 곧 다음 장에서 드러났다.
어협이 어획량을 정해 주고, 가격을 통제하자 여기저기 불만이 속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특유의 ‘협회’ 고질병이 간부진 비리 비위 문제도 뒤따랐다.
“간부들이랑 친한 어민에겐 어획량을 늘려 주고 그랬나 봐요.”
“이건 뭐 확인된 자료 있습니까?”
“애석하게도 소문만 무성했습니다. 어협이 워낙 유통 쪽 거물이다 보니, 다들 문제 제기하다가 중간에 취하하고 그랬죠. 근데 해마다 뒷말이 나온 걸 봐선 확실히 문제는 있어
보입니다.”
서류가 넘어갈수록 준철은 조바심이 났다.
낚시하며 허탕 쳤던 그 싸한 느낌이 들었다. 입질이 계속 오긴 오는데 이렇다 할 큰 증거가 없지 않은가.
“팀장님. 노파심에 하는 말입니다만…… 이게 수사가 될까요? 저희도 작정하고 찾아봤는데 나온 게 겨우 이겁니다.”
“됩니다. 결국 도매상인들한테 협박했나 안 했나가 관건이니까요. 반장님도 그거 보셨잖아요.”
“……네. 보기야 봤죠.”
신나게 타오르던 경매가 비조합원들 상품만 등장하면 썰렁해지지 않았나.
생선에 문외한인 자신이 봐도 기이한 광경이었다. 뒤에서 누가 협박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지.
“그럼 저도 최대한 뭐 있나 더 알아보겠습니다.”
“이거 복귀 첫날부터 너무 죄송합니다. 괜히 일을 또 만들어서.”
“이 건은 제가 자초한 일 같네요. 팀장님 오징어 낚시 데려가는 게 아닌데.”
“……너무 그러지 마세요. 딱 열흘만 만져 보다 없으면 손 털기로 했습니다.”
“그 열흘 동안 또 얼마나 바다 구경을 다녀야 할지.”
준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말했다.
“나머진 알아서 하겠습니다. 시간 늦었는데 먼저들 퇴근하세요.”
***
반원들이 다 퇴근한 사무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울렸다. 준철은 퇴근도 미루고 서류 검토에 삼매경이었다.
‘어딜 가나 유통은 항상 비리투성인데.’
그것도 독과점 유통이면 무소불위의 권력이지. 한명백화점을 떠올려 봐도 그랬다. 경쟁력 없는 브랜드 입점시키고 임원들이 뒷돈을 얼마나 챙겼는데.
분기마다 감사를 받는 기업이 그 정도면, 어협은 더했을 것이다.
‘조합원들도 비조합원들이 싫었겠지. 차별하는 게 은근히 좋았을 거고.’
준철은 오 과장이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대한 적을 만들지 말아라.
하지만 애초에 그럴 수가 없는 수사다. 어협은 비조합원들이 눈꼴시었을 것이고, 조합원장은 이 민심을 바탕으로 그들을 차별했을 것이다.
‘수사 시작되면 정말 생선으로 한 대 맞겠는데.’
진흙탕이 아니라 똥물탕인 싸움.
하지만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노인은 어협 간부로 조합원장까지 지낸 인물 아닌가. 그런 사람이 비리 때문에 나왔다 할 정도면, 썩은 부위가 상당하다는 거다.
‘아슬아슬하네. 협회 간부의 비리만 골라서 쳐야 하니.’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하지만 곧 기가 차는 한숨이 나왔다.
한마디로 협회 가입자에게 받는 약정서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잡은 물고기를 모두 협회에 의무적으로 납품하라는 약정서였다.
그 약정서 하나로 어민들은 풍년에 어획량 이상의 물고기를 못 잡았고, 초과분을 다른 유통상에게도 팔 수 없었다.
‘시세 유지하려고 물량을 철저히 통제했네.’
늘 이래 왔으니 밥상 물가가 떨어질 리 있나.
오징어가 3년 연속 풍년일 때도 가격은 늘 10%씩 상승해 왔다. 이것이 독점 유통과 담합의 힘이었다.
‘비조합원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가늠이…….’
그렇게 서류에 푹 빠져 있을 때.
“으…….”
준철의 머릿속으로 또다시 불명의 통증이 강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