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7
7화
제보자 (2)
대답 없이 허공만 바라보는 그에게 준철이 다시 물었다.
“사장님.”
“……자질구레한 사고는 많지요. 근데 그걸 어떻게 다 산재 처리하겠습니까. 그래도 저흰 다 회사 사비로 직원들 병원비는 책임집니다.”
“그거야 감당 가능하니 하셨겠죠. 전치 50주짜리 사고 터지면 그때도 책임지셨을 겁니까?”
“그런 건 당연히 산재 처리를…….”
나오는 대답과 달리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원청이 눈치 주면 그 당연한 것도 당연한 게 아니다.
“얼마나 됩니까? 그렇게 원청 눈치 보느라 덮었던 산업 사고 사건이.”
“……제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우리 업장에서 터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리 물으시면 저도 난감합니다.”
“좋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근데 아까 제가 드린 말씀은 아직 유효합니다. 지금까지 산재 사고 덮은 거 있으면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로 파악해 그쪽에 죄를 묻겠습니다. 근데
계속 감추시면 사장님도 공범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산업 사고 은폐.
자의든 타의든 사용자(사업주) 5대 과실 중 하나이며, 최소 형량은 2년이다. 실형이 떨어지면 추후 직원들이 자신에게 손배를 청구할지도 모른다.
관행적으로 넘어갔던 일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하면 핵폭탄이 된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공정위가 검찰에 어떤 고발장을 넘기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게요. 배명수 기사라는 분. 연락 닿으시죠?”
“닿긴 닿습니다만 그건 왜……?”
“이건 선택 사항인데, 저희 쪽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설마 저더러 연락하라는 겁니까?”
“예. 중간에 민원이 취하됐는데, 이거 아무리 봐도 외압 때문이지 좋게 합의돼서 취하된 것 같진 않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랑 멱살 잡다 경찰서까지 간 사람한테 연락을 합니까.”
“연락 닿게 도와주시면 사장님 마음도 한결 나아지실 겁니다. 물론 저희 또한 그에 상응하는 사례 하겠습니다.”
상응하는 보답이란 건, 절대로 하청사에 잘못을 묻지 않겠다는 뜻.
한동안 고민하던 최 사장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최 사장에게 결정적 제보를 얻은 준철은 그 즉시 팀을 두 개로 나누었다.
관련 기관에 고발을 맡은 사무팀과 김기남 반장을 필두로 한 현장팀.
김 반장은 타 하청사들을 돌며 유사 사례를 조사했고, 준철은 이 내용 모두 검찰, 고용노동부에 가감 없이 알렸다.
대성중공업은 파도 파도 미담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고, 현장팀은 다른 부당 행위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사건과 무척 비슷한 사례가 레이더에 하나 잡혔다.
“이거 진짜 확실한 겁니까?”
“예, 확실합니다.”
일주일 만에 만난 김 반장은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일청용접이라고 여기가 원래 대성 용접 담당입니다.”
준철은 서류를 살폈다.
정확히 4년 전에 정리된 하청이다.
“여기랑 거래 끊고 바로 지금 문제 된 풍산용접이 하청 받기 시작한 거죠.”
“근데 이게 산재 때문이라고요?”
“예. 4년 전에 일청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답니다. 그때 작업자 한 명이 배관 내에 쓰러져 있어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일주일이나 의식이 없었다는군요.”
“의식을 못 찾았어요? 그럼 혹시……?”
“다행히 사망에 이르진 않았습니다. 대신 심각한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3개월간 치료를 받았답니다.”
준철이 서류를 넘기자 김 반장이 바로 설명을 이었다.
“의사 소견으론 아르곤가스 누출로 인한 산소 결핍이라 하더군요.”
“그럼 현장에서 환기장치도 안 하고 일했다는 겁니까?”
“사각지대였답니다.”
사각지대.
원청이 할 수 있는 마법의 변명.
역시나 하청 근로자의 산재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려 했던 대성중공업의 노력은 서류에 여실히 드러났다.
“근데 이 내용이 모두 근로복지공단에 신고됐군요?”
“네. 이전 하청사는 이 사고를 바로 산재로 신고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다음 연도에 거래 끊어 버렸더군요. 누가 봐도 보복입니다.”
“이 자식들 이거 선수네요. 그럼 이것도 신고하죠.”
“근데 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김기남 반장은 난색을 표했다.
“이 사람들 모두 대성중공업을 고발하는 데엔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보복성 일감 끊기를 당했는데, 소극적이라고요?”
“중공업 바닥이 워낙 좁잖아요. 큰 사건에 연루되는 걸 다들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한숨이 나온다.
하청사들의 산업재해를 은폐한 혐의는 많고, 이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도 확보되었다.
하지만 그 한 방.
총대를 메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태 해결을 바라지만 전면에 나서는 것을 모두들 꺼리는 것이다.
“그, 최초 제보자. 배명수 씨하곤 아직 연락이 안 닿습니까?”
“최 사장이 연락을 했다곤 하는데, 아직 연락 없습니다.”
“후우…….”
누군가 총대를 메 준다면 충분히 관련자를 구속시킬 수 있는 사건인데, 다들 대성중공업의 눈치 살피기 바쁘다.
밥줄과 생계가 달린 문제니 누굴 비겁하다고 욕할 수도 없다.
그렇게 답답한 회의만 계속될 때, 불현듯 준철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혹시 공정거래위원회 이준철 팀장님이십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최 사장님께 사정을 듣고 연락했습니다.
착잡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
초라한 행색에 한쪽 다리까지 절며 등장한 배명수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연락드렸던 이준철 팀장입니다.”
“저에 대해선 다 아실 테니 긴말 안 하겠습니다. 대관절 절 왜 찾고 계신 겁니까?”
목소리를 들으니 공정위의 수사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대성중공업이 하청 근로자 산업 사고를 은폐했다. 이 내용 제보해 주신 거, 배명수 씨 맞죠?”
“취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왜 취하하셨는지 사정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봐요. 내가 그 얘기까지 구구절절해야 합니까? 어디서 사람을 범죄자 취급이야?!”
“오해 마십쇼.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합의를 할 수 없는 내용인데, 합의가 됐다 하시니 의문이 들어서…….”
쾅!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조사를 그따위로 해?!”
그가 준철에게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옆에 있던 김 반장이 급히 만류했다.
“왜 이러십니까, 선생님. 고정하세요.”
“고정? 조사 시작했다가 갑자기 두 달간 아무 연락도 없고. 그러다 나타나서 뭐? 담당자가 교체될 수도 있어?”
“그건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 대성이 무마해 달라고 해서 떡값이나 받았겠지!”
“그게 아니라…….”
“나도 알건 다 알아! 네놈들 때문에 대성이랑 합의했는데, 이제 와서 웬 쇼야?!”
수사가 중간에서 두 달이나 진전 없었고 갑자기 담당자가 바뀌었단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약자인 그의 입장에선 당연히 대성의 청탁 무마를 의심했고, 이는 곧 합의로 이어졌다.
이 문제에 있어선 준철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자신과의 사고로 이 몸의 진짜 주인이 두 달간 식물인간처럼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들을 건 다 들었다고.”
“무슨 얘길 어떻게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오해하고 계십니다.”
“뭐?”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급작스럽게 사고가 났고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담당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건 저도 그땐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리 말하자 그도 약간은 흠칫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릅니다. 이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저희가 검찰과 노동부에까지 신고를 넣었습니다.”
“…….”
“다른 하청사들의 제보를 확보하는 한편 그간 대성이 산업재해를 얼마나 은폐했는지 전부 다 드러낼 계획입니다.”
그리 말하며 준철은 핸드폰을 가리켰다.
“연락받으신 명운 최 사장님도 저희 부탁으로 연락드린 겁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사건의 진실요. 이 제보 내용 모두 사실입니까?”
그가 고개를 젓는다.
“내가 한 말 중엔 거짓말 하나 없소. 근데 이미 늦었어.”
“늦어요?”
“민원 취하 조건으로 대성 쪽과 나는 이미 합의했고, 병원비도 받았습니다.”
그가 체념한 이유는 이미 대성과 합의했고, 그로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세요. 공정위 쪽에서 자꾸 건드니까 다른 하청사들도 불안해한다 들었습니다. 난 이미 이 업계 떠났고, 더는 분란 일으키기 싫습니다.”
“분란은 대성이 일으켰는데, 왜 선생님이 참아야 합니까.”
“뭐?”
“계속하세요. 굳이 따지고 들자면 선생님께선 민사 배상받으신 겁니다. 산재 은폐는 형사처벌 대상이라 저흰 합의 관계 없이 계속 조사 진행할 겁니다.”
준철이 물러서지 않고 말하자 그가 말을 더듬었다.
“아니…… 내가 병원비 받아 냈다니까 대체 왜?”
“그 병원비는 산재 처리했으면 당연히 받았어야 할 돈입니다. 아니, 애초에 선생님 사비로 나갈 돈도 아니었어요.”
“나도 알 건 아는데, 그만하세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비 얼마나 지원받으셨습니까? 산재 덮고 사비 처리할 정도면 최소 전액 보장받으신 것 맞죠?”
그리 묻자 그가 안색이 굳어졌다.
치료비 3천 중 대성이 1천, 하청사가 1천, 나머지는 자신이 부담하지 않았나?
“현장에서 안전 수칙 안 지킨 몇 가지 사항을 꼬투리 잡아, 계속해서 과실 씌우지 않았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그것도 산재법 위반입니다. 안전 수칙 등을 잘 지켰는지는 근로복지공단에서 파악하지, 절대 원청에서 조사하지 않아요.”
“……대체 무슨 말이 하고픈 겁니까?”
“합의금 돌려주시고 정식으로 공단에 사고 내용 신고해 주세요. 당연히 전액 보상받으실 겁니다.”
“불가능해요. 난 이미 앞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합의서 썼습니다.”
“애초에 위법적인 내용의 계약이라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준철은 검찰에 청구한 고발장을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대성중공업을 산업재해 은폐 혐의로 고발하면, 되레 그 합의서가 증거로 채택될 겁니다.”
“지, 진짜로 형사처벌하겠다는 겁니까? 대성을?”
“예.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협조해 주십쇼. 사본이라도 좋으니 합의서 저희에게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이때 원청 담당자가 누구였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빠짐없이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