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70
70화
비조합원 (2)
“그러니까…… 경매에서 비조합원 고기 사지 말라는 거 아닙니까?”
“뭐 쉽게 말하면 그렇게 되겠네요.”
“최 반장. 아무리 우리가 중개상인들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요.”
“뭐가 너무?”
“어협 내부 일에 우리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아요. 그쪽 일은 그쪽이 알아서 잘하셔야지.”
“맞아요! 이건 좀 너무합니다.”
낯선 사내들과 낯설지 않은 남자가 보였다.
익숙한 얼굴은 시장에서 깽판을 쳐 놓던 최 반장이었다. 그는 일전 봤던 것보다 더 심통 맞은 얼굴로 도매상인들을 노려봤다.
“그래서 협조 안 하겠다는 거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선에서 돕겠다는 거요.”
“아니 우리가 무슨 돈을 상납하래, 고기를 직접 잡아 오래? 비조합원 상품 받으면 우리랑 거래 못 한다, 이게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할 얘기요?”
도매상과 어협의 갑을 관계는 바로 드러났다.
최 반장이 눈살 한 번 찌푸리자 다들 시선 피하기 바빴다.
“누구 들으면 내가 칼 들고 협박한 줄 알겠네. 아, 그럼 사장님들 하고 싶은 대로 하쇼. 비조합원 고기 사면 우리 어협 고기는 안 팔 거야. 양자택일하면 될 거 아니요.”
결국 줄 잘 서란 얘기다.
동해 수산의 90%를 꽉 쥐고 있는 놈들이 거래 끊겠다면, 누가 당해 낼 수 있겠는가.
“솔직히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어. 사장님들 중 몇몇은 우리가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비조합원들이 고기 좀 싸게 팔아 주니까 중간에 재미 본 사장님들 많았잖아요.”
“그건…….”
“속 좁게 책임을 묻겠다는 거 아닙니다. 지난 일 다 묻어 둘 테니 앞으론 좀 정상적으로 거래해 보자 이 말이요.”
어협에 납품된 고기들은 가격을 철저하게 통제받는다. 비조합원은 여기에 구속되지 않으니 얼마든 싸게 팔 수 있었고.
똑같은 상품에 가격만 싸니 도매상들에게도 비조합원 고기는 매력적이었다. 오히려 비조합원 고기를 더 떼다 파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만약 어협에서 아예 고기를 안 넘기면, 결국 줄은 어협에 설 수밖에 없었다.
개인 판매는 수급이 불안정한데, 그건 유통상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였으니.
“혹여나 딴생각 말아요. 내가 사장님들께 전달하는 건 다 위에서 결정이 된 얘기요.”
“…….”
“경매에서 어떤 고기를 누가 낙찰받는지 다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준철의 미간이 좁혀졌다.
역시나 뒤에서 협박을 했구나! 솔직히 이건 정체불명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걸 부인하다니, 그 뻔뻔함에 놀라울 뿐이다.
“조합원장님. 유통상들은 다 통보해 놨습니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정체불명의 대화가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래? 반발은 없고?”
목소리만 들어도 놈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근무시간에 낮술을 자시던 조합원장과 최 반장이었다.
“약간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정면으로 들이받은 놈들은 없었습니다. 이번 경매에서 그놈들 아주 초상집이 될 겁니다.”
조합원장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근데 최 반장. 아직도 그 영감은 요지부동이야?”
“원광수산 말씀이십니까.”
“이 정도 했으면 조합에 가입할 때도 됐는데 영 소식이 없어?”
“죄송합니다. 아무리 구워삶아 봐도 요지부동입니다.”
조합원장은 혀를 찼다.
어협 가입률을 끌어올려 협상력을 높여야 하는데, 계속해서 비조합원들이 훼방을 놓는다. 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원광수산의 김 영감.
성질 같아선 그 영감의 배를 엎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한때 이 조합원장의 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 아닌가. 그가 입을 벙긋하면 어협의 입지도 위험해진다.
“본인도 여기서 해 처먹은 게 많으면서 왜 자꾸 말썽일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그 영감 계속해서 바깥에 두면 위험하다.”
“물론이죠. 이번 경매서부터 작업 들어갈 테니, 곧 그 영감도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리 말하며 조합원장이 서류를 건넸다.
“받아. 이게 이번 고깃값 합의안이다.”
“아, 벌써 나왔군요.”
“딱 10%만 더 올려 받기로 했어.”
“조합원장님. 근데 이번엔 어획량이 많지 않아 20%까지도 더 받을 수…….”
“걱정 마. 나머지는 다 따로 받기로 했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도매상들이 우리한테 따로 챙겨 줄 거야. 이건 어디 가서 말조심해. 함부로 새 나가면 우리 다 죽는다.”
준철은 욕이 나왔다.
단순히 비조합원을 따돌린 것뿐 아니라 빽마진도 챙겼다.
고깃값을 더 쳐서 받을 수 있는데, 일부러 조금만 올린 것이다. 그 나머지 차액은 어협 간부들 떡값으로 챙겼겠지.
‘이건 내가 노조들하고 임금 협상할 때 쓰던 방법인데.’
임금 상승 조금 시켜 주고, 노조 간부들한테 선물을 돌리던 일. 이건 김성균으로 있을 때 많이 행했던 짓이다.
기업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 어협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니.
“그리고 우리 이번 어획량은 장 사장하고 홍 사장 좀 챙겨 줘. 고깃값 10%만 올리자 할 때 바람 많이 잡아 줄 거야.”
“아, 네.”
친분에 따라 어획량이 들쭉날쭉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짧은 대화에서 벌써 비리가 몇 개나 발견된 건지 모른다.
횡령, 배임, 담합. 이 중에 두 가지는 공정위의 권한으로 다 처벌할 수도 없었다. 검찰에 기소까지 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형님. 근데 저 이것도 그럼 이번엔 공평하게 합니까?”
반장이 내민 자료를 내밀자 조합장 얼굴이 심상찮게 변했다.
“정부 보조금인가?”
“예. 이번 어민 보조금은 20억입니다.”
“은행으로 왔네.”
“네. 적금 가입 시 6% 우대금리를 주는데…… 챙겨 받은 게 많으니 이건 좀 공평하게 돌릴까요?”
정부는 어민들에게 다양한 보조금을 지급해 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우대금리인데. 어민으로 등록된 사람이 어협은행에 적금을 들면 우대금리에 비과세 혜택가지 줬다.
“근데 6%짜리 금리 상품이면…… 이거 놓치기 아까운 건수기도 하고.”
조합원장은 긴 고민에 잠겼다. 이미 배부를 만큼 챙겨 받았는데, 돈 욕심엔 끝이 없었다.
정부에서 주는 우대금리. 그야말로 앉아서 돈 버는 거다. 물론 스스로 벌 수는 없다. 친분 있는 어민들에게 미리 귀띔해서 선착순대로 짜르고, 나머지를 일반 어민들에게 뿌리는 구조.
그는 긴 고민에 휩싸이다 마저 말했다.
“이건 좀 더 두고 보자. 어차피 표가 안 나서 좀 해 먹어도 되겠네.”
***
“어협은행요?”
이튿날 아침.
준철의 엉뚱한 지시에 김 반장의 눈이 커졌다. 담합 사건인데 갑자기 은행까지 치자니.
“네. 이거뿐 아니라 당시 경매에 참여했던 중개상인들 전부 연락 돌려 주세요.”
“팀장님. 저희 시한이 열흘입니다. 무엇 때문에 대체 이러시는지.”
마음만 같아선 불명의 대화를 그대로 전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부에서 어민들에게 준 보조금이 있는데, 용처가 좀 이상하네요.”
“정부 보조금……? 그게 뭡니까?”
“어민들 적금 가입 상품에 정부가 우대금리를 줬거든요. 근데 이게 어협 간부 친한 순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그걸 팀장님께서 어찌 아십니까.”
“믿을 만한 소식통에 들은 얘기예요.”
대답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그리 둘러댔다.
김 반장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단순한 담합 사건이 아니다. 정부 보조금까지 빼돌렸다면 횡령·배임까지 의심된다는 것 아닌가.
그는 서류를 내려놓더니 물었다.
“팀장님. 이거 혹시 어디까지 연루되어 있다 보십니까. 어협 본부도 조사할 겁니까?”
어협은 여덟 개의 중간 조직으로 이어져 있다.
만약 준철의 말이 사실이라면 동해 지부만 치고 끝낼 수 없으리라.
“아직 나온 건 없지만 본부 관계자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않을까요.”
“그럼 수사 열흘에 못 끝낼 겁니다. 열 달도 부족할걸요.”
“아직 거기까진 생각 안 해 봤어요. 물론 저도 그렇게 마냥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진짜로 안 믿기는 소리군.
“후우…… 그럼 검찰에 기소도 하실 거죠?”
“그때 봐서요. 일단 반장님 여기 도매상들 있잖습니까. 경매에 참여했던 중개상들. 싹 다 모아 주십쇼. 담합부터 확인하고 추후 결정하겠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일단 정체불명의 대화에서 들은 내용부터 확인해야 한다.
비조합원 고기를 조직적으로 판매 방해했다. 이는 명백한 불공정상행위로 이 혐의에 가담한 중개상들도 자칫하면 공범이 될 수 있다.
이런 역학 관계를 잘 이용하여 자백을 최대한 빨리 받아 내는 게 관건.
“알겠습니다. 근데 도매상들이 협박을 받았다 해도 우리 수사엔 협조 안 해 줄 거예요. 거긴 되도록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 테니까.”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김 반장은 어두운 얼굴로 그 서류를 받았다.
아무리 봐도 이 열흘 만에 끝날 수사가 아니다. 이 젊은 팀장은 명분을 다 찾아내서 기어코 수사 연장을 받아 낼 것 같았다.
***
준철의 오더로 수사는 척척 진행되었다.
종합팀은 정부 보조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그 광경은 준철이 불명의 대화에서 본 그대로였다.
어민들 지원 상품으로 나온 우대금리가 특정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리지 않았나.
“보통 농협과 축협에서는 소득이 적은 순으로 정부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영세 어민들에게 우선 지급하죠. 근데 여긴 선착순으로 받았어요.”
눈에 보이는 결과는 대단히 노골적이었다.
먼저 신청한 놈들에게 우대금리를 주겠다니. 그럼 간부들이 흘린 정보를 먼저 듣는 놈이 제일 유리하다.
“그리고 도매상들도 좀 만나 봤는데요. 아직 쉬쉬하긴 하지만 압력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비조합원 고기 입찰 안 했냐 물으니 다들 엉뚱한 대답으로 둘러대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 자료 모두 어협 본부로 보내 주세요.”
그렇게 준철은 정리된 모든 자료를 어협 본부로 보냈다.
어차피 이런 수사는 아랫놈 털어 봐야 말만 길어진다. 위에 까면 아래는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가.
종로에 있는 어협중앙회로 이 모든 내용을 전달했다.
‘의심되는 사례가 이렇게 있는데, 네들 자체 감사 좀 해 봐야겠어?’라는 의미의 공문 한 통.
사실 이건 핵폭탄이었다.
이미 수산 유통시장을 꽉 쥐고 있는 그들 아닌가. 평소에는 취약 업종이라 정부 보호를 받고 있는데, 이렇게 간부들의 비리 비위까지 발견되면 완전히 명분을 잃는다.
당연히 어협중앙회는 완전 난리가 났다.
즉시 감사팀을 꾸려 동해 지부에 조사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도착했네요.”
김 반장은 그 서류를 전달하며 말했다.
“근데 이거 이제 완전히 끝났습니다. 열흘 안에는 못 끝내겠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한 달 안에는 끝낼 수 있습니다.”
“애초부터 목표는 한 달 아니었습니까? 과장님껜 거짓말하신 거죠?”
“뭐…… 의도는 안 했는데.”
“됐습니다. 중개상인들 다 집합시켰으니 내일 면담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반장님. 역시 반장님밖에 없네요.”
준철은 웃으며 서류를 정리했다.
김 반장의 말대로 이건 열흘에 안 끝날지도 모른다. 본래라면 과장님께 허락받고 수사 연장을 요청하는 게 맞겠지만, 이번엔 그 반대로 했다.
‘용서받는 게 허락받는 것보다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