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비조합원 (3)
공정위 사무소로 소환된 도매상들은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공정위, 어찌 보면 자신들과 정말 연관도 없는 곳 아닌가?
대기업들한텐 저승사자로 통한다는데, 그 때문인지 괜히 손에 진땀이 났다.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담합하셨죠.”
“그게 무슨 말씀인지…….”
“지난 황릉 중앙시장에서 있었던 생선 경매요. 이거 낙찰 상품을 살펴보니 뭔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상이라니요.”
“유찰품들이 전부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뭔지는 잘 아시죠?”
일곱 명은 사색이 됐다. 설마 비조합원 상품에 입찰 안 했다는 걸 파악한 건가.
하지만 당황하기도 잠시.
“……그게 어떻게 담합입니까?”
잠깐 생각해 보니 자기들 잘못이 아닌 것 같다.
자기들이 무슨 물건값을 후려친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이쪽도 어협에서 비싼 수수료 내고 사는 상인들이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정위가 번지수 잘못 찾은 거 아니요?”
“맞아. 우리야말로 어협 피해자예요. 가격 담합이면 그쪽 놈들 소환하셔야지.”
준철은 펜을 내려놨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담합의 정의가 꽤 넓어서.”
“무슨 말씀인지.”
“특정 단체의 요구를 받고 영업 방해에 가담하면 담합으로 볼 수 있거든요. 어협에서 압박을 했든 안 했든 사장님들께선 공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범이란 말에 사내들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 그건 너무 억지 아니요. 따지고 보면 우리도 피해잔데!”
“그래서 저희가 기회를 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기회?”
“어협에서 사장님들께 무슨 협박을 했습니까. 비조합원 고기 사면 어협에서 거래 안 하겠다, 뭐 이런 얘기로 협박했죠.”
다 아는 얘기지만 이들 입에서 직접 들어야 한다.
힘주어 묻자 그들끼리 치열하게 눈치를 주고받았다.
“서로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 전에 먼저…… 대체 왜 이러시는지 설명해 주십쇼.”
“사정이야 잘 알지 않습니까. 이번 경매에서 비조합원 상품들이 완전 학살을 당했어요. 어협이 경매에 참여하지 말라고 압박했습니까?”
그들은 다시 눈치를 살폈고 긴 시간 끝에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뭐 하지 말아라 해라…… 이런 얘긴 직접 없었는데 대강 그런 얘기는 있었습니다.”
“대강 그랬다는 게 무슨 뜻인지.”
“너무 적나라하게 묻지 말아 주십쇼. 저희도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그걸 주도한 사람은 누굽니까. 조합 반장은 아닐 테고, 원장? 아니면 본부협회 간부?”
또다시 질문이 집요해졌고, 7인방의 얼굴이 완전히 싸늘해졌다.
이거 완전 개똥 밟은 격 아닌가. 자신들의 잘못은 아닌데. 협박받고 한 일 때문에 여기까지 소환된 것이다.
하지만 협박받았다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다.
동해 생선을 전부 다 쥐고 있는 게 어협 동해 지부다. 말실수 한 번에 어쩌면 사업체가 박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선생님. 그럼 그냥 그쪽과 해결하시지요. 솔직히 우린 중간에 낀 놈들 아닙니까. 어민들끼리의 문제에 함부로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가담자로 공범이 되어도 좋다는 말씀입니까?”
“고, 공범이라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면 왜 비조합원들 고기에 일부러 입찰 안 하셨어요? 이거 그대로 기소하면 선생님들이 혐의 다 뒤집어쓰는 겁니다.”
“하아…… 제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그때 한 사내가 말했다.
“솔직히 이런 일이야 비일비재한 거 아녜요? 우린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죽는 꼴입니다.”
“죽는 꼴요?”
“동해 유통은 어협이 꽉 쥐고 있어요. 만약 밀고라도 하면? 우리 업장 다 때려치워야 합니다.”
“맞아요! 우리가 무슨 대형 마트 유통부도 아니고. 고작해야 생선 떼서 시장에 납품하는 도매상인데,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1억짜리 상품을 1억 2천에 사 오지 않았나. 차액 2천이 어민들 복리 증진에 쓰였는지, 간부들 뒷주머니로 갔는지는 솔직히 알 바가 아니다.
관여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 부분은 걱정 마십쇼. 저희도 이 일로 사장님 업장에 피해 가는 일 없게끔 수사할 겁니다.”
“어협 건들면 어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데, 가당키나 해요?”
“어민 전체가 아니라 썩은 물고기 몇 마리만 걸러 낼 거거든요.”
준철은 다시 목소리에 힘을 줬다.
“사장님들도 저희 수사에 돕는 게 편할 겁니다. 그간 어협 간부들 눈치 보느라 떡값도 돌리고, 부당한 지시에도 응하지 않았습니까.”
“서, 선물은 그냥 관례상.”
“그 모두 문제 삼자면 배임, 리베이트 혐의로 형사처벌도 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목이 직접 거론되자 이젠 더 이상 반발이 나오지 않았다.
“최종 몸통만 말해 주면 됩니다. 누굽니까? 조합원장입니까? 아님 본부 간부?”
단순히 썩은 고기 걸러 내는 수준이 아니다. 협회 본부까지 거론되는 거 보면 아예 물갈이를 해 버리겠단 얘기다.
하지만.
저 공범이란 말에는 맥을 추릴 수가 없었다.
“대답해 주십쇼.”
“……조, 조합원장입니다.”
“조합원장?”
“네. 최 반장이 와서 으름장을 놓긴 했는데, 전부 위에서 합의된 얘기라 했어요. 우리한테 뒷돈 요구하던 것도 조합원장이니, 이것도 그놈 작품일 겁니다.”
준철은 바로 펜을 들었다.
“어떻게요?”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비조합원 상품 사지 말라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계속 겁을 줬습니다.”
어협에 가입한 90%를 잃느냐. 비조합원 10%를 잃느냐. 이들에게 답은 이미 정해진 문제다.
“솔직히 말해 우리야 비조합원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풍년에 어획량 조절해서 생선값 올라가는데 중개상 누가 좋아해요?”
“우리가 그들과 공범이라는 건 진짜 억울한 말입니다.”
그리 시간이 지나자 이들도 억울한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거의 봇물 터지듯 말이 나왔다.
준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나 쌓여 있던 게 많다. 이렇게 직접적인 진술이 나왔으니 열흘 안으로 끝낼 수도 있다.
준철은 그 모든 얘기를 서류로 정리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게 다 조합원장 지시였다는 거죠? 더 윗선은 없었고.”
***
동해 어협 지구.
경매가 끝난 한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합원장이 전 어민들을 비상소집해 버렸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건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어민들은 초조한 얼굴로 그를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조합원 여러분. 김광식입니다.”
이윽고 나타난 조합원장은 그리 인사했다.
“다름 아니라 오늘 저희들의 건전한 어민협회를 자꾸 침해하는 세력이 있어서 이리 비상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침해?
“조합원장 그게 무슨 말이야?”
성질 급한 노인 하나가 날카롭게 물었다.
조합원장은 준비한 팜플릿을 어민들에게 돌렸다.
“현재 공정위가 저희를 조사하고 있더군요.”
“공정위? 거긴 뭐 대기업들 갑질 조사하고 이런 데 아인가?”
“네. 근데 할 일도 없는지 우릴 담합 협의로 조사하겠답니다.”
“여그 같은 촌구석에서 무신 놈의 담합?!”
“저희 어협이 어민들에게 고기를 납품받고 이를 한 번에 도매상들에게 넘기지 않겠습니까. 공정위는 이게 담합으로 보인답니다.”
“아니 그게 어떻게 담합이여! 농수산물은 나라에서도 가격 협상 인정한 것이잖어!”
불안감을 조성하려 소집한 회의다. 왜곡된 진실을 전달했으니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그게 거짓말일 거라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조합원장은 이 불안감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예. 법으로 보장된 권리죠. 우리뿐 아니라 농협, 축협도 다 똑같이 넘기고 있습니다.”
“근데 그걸 왜?!”
“어획량 조절 때문이랍니다. 배추 농사 풍년이면 밭 갈아엎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랍니다. 그게 공유지와 사유지의 차이랍니다.”
앉아 있던 어민들은 아예 자리를 들고 일어났다.
“아니, 그럼 앞으로 고깃값 떨어진다는 거 아니여!”
“예. 시정명령 떨어지면 재앙이나 다름없죠. 개인적으로 전 공정위 그것들이 유통상들한테 사주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이 미친놈들이! 해서 지금 어디까지 얘기됐는데.”
“이미 조사가 시작되어서 저희 본부에도 조사가 들어갔다 합니다. 곧 저를 포함한 동해 지부 간부가 전부 소환되지 싶습니다.”
사리에 맞지 않는 얘기였으니, 이를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조합원장. 그렇게 얘기를 들으니 모르겠네만. 그게 진짠가? 뭐 다른 얘기가 있는 거 아니야?”
“그게 맞습니다. 우리 어협이 조합원과 비조합을 차별한다나 뭐라나.”
“그건 우리가 자성할 필요도 있지 않나요. 적당히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탕-!
누군가 의구심을 보이자 조합원장이 책상을 내리쳤다.
“이게 어떻게 차별입니까?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게 어떻게 차별이에요.”
“…….”
“이건 괜히 건수 잡아서 고깃값 떨어뜨리려는 겁니다. 당하면 우리 전체에게 피해가 미칠 거예요.”
무언가를 질문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워낙 단호하게 말하니, 아예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게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다 같이 움직여야죠. 공정위에서 다음 주에 저희 지부로 온다 합니다. 그때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께서 다 함께 모여 주십쇼. 우리가 단체 행동하면 저놈들도 함부로 못 합니다.”
어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정위에서 저희 어협 직원들을 음해하려고 헛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헛소문?”
“아직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일이 대응하기도 가치 없을 만큼 허황된 얘기랍니다. 근데 여러분 제가 조합원들 등쳐 먹을 놈으로 보입니까? 제가 어협을 대표해 도매상들한테 가격
높여 받는데.”
“암- 그렇제. 어협 없었으면 우리끼리 경쟁붙어서 고깃값 반으로 떨어졌제.”
“그럼 그때 절 지지해 주십쇼. 어떠한 음해에도 조합원 여러분들이 흔들리지 않아 주셔야 합니다. 저도 힘이 닿는 데까지 죽어라 싸우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합원장은 비릿한 웃음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사람 셋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이 정도 머릿수면 대통령도 무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