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어쩌다 공개처형 (1)
두 번째 방문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공정위는 물러가라!] [어민 때려잡는 강압 수사 중단하라!]어협 사무실에 도착하자 살벌한 플래카드들이 반원들을 맞이했다. 문구도 문구지만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이 플래카드의 메신저였다.
-동해 지부 어민협회 일동
‘이미 손을 쓴 건가?’
“……팀장님. 이미 손을 쓴 거 같은데요.”
“그러게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일단 후퇴하고 어협 간부들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수사할까요?”
“맞아요. 똥개도 집 앞에선 50점 먹고 들어가는데, 지금 분위기는 너무 불리합니다.”
애초에 상식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수사 아닌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괜찮습니다. 겨우 똥개 한 마리 잡는데 집이면 어떻고, 바깥이면 어때요.”
참으로 배포도 크지. 혐의를 다 파악해서 이제 드러내는 일만 남았다. 근데 이렇게 어민들을 단결시켜 버리다니.
당연히 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됐을 리 없다.
아마 뒤에서 엄청나게 선동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렸을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합원장님.”
그렇게 도착한 어협 사무실은 더욱 가관이었다.
네댓 명 되는 간부들이 전부 머리를 삭발한 채 빨간 띠를 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손 치우쇼. 우리가 넉살 좋게 악수할 사이는 아니잖아?”
“뭐, 그럼.”
“오면서 우리 어민들의 플래카드는 보셨겠지?”
“네. 이것저것 많이들 준비하셨더군요.”
“그게 지금 어민들의 민심입니다.”
조합원장은 작심한 듯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공정위의 강압 수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어민들의 탄원서였다.
“강압 수사 중단하고 썩 물러들 가! 무슨 공정위가 영세 어민들 생선값까지 참견하고 있어.”
펄럭- 펄럭-.
그러거나 말거나. 준철은 잡지 읽듯 탄원서를 술술 넘겨 봤다.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사람들을 다 규합했나 했더니, 없는 말을 많이 지어내셨네요.”
“없는 말?”
“우리가 여기 온 건 어민들 생선값 때문에 온 거 아니잖아요. 어협이 비조합원들 못살게 굴어서 온 거지.”
“당신 말조심해. 그거 책임질 수 있는 말이야?”
말은 당당하게 했지만 놈의 얼굴은 썩어 들어갔다. 공정위가 내막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단 걸 느꼈기 때문이다.
“왜 없겠습니까. 도매상들한테 진술 다 나왔는데.”
“……뭐?”
“비조합원 물건 사면, 조합에서 고기 안 넘겨 버린다 했죠? 덕분에 이번 경매에서 완전히 학살을 당했고.”
“내 참 난 또 뭐라고. 우리 물건 사든가 그쪽 물건 사든가 양자택일하라 했소. 선택권을 줬는데 이게 담합이야?”
“네. 담합입니다. 유통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단체가 그런 협박을 했으면, 반독점법 위반이죠.”
무식한 건지, 뻔뻔한 건지.
놈은 방금 독과점, 우월적 시장 지위를 이용한 갑질, 담합 혐의를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옌장할- 반독점이고 자시고 하나도 못 알아먹겠네. 그래서 우리 어민들 전체를 다 깜빵에 처넣겠단 거야?”
“수사 대상은 본인이지, 어민 전체가 아녜요.”
“나를 건드는 것 자체가 전체 어민을 건드는 거야! 내가 누구를 대표해서 그 짓거리를 했는데!”
콰콰쾅-!
그때였다.
어협 사무실 밑층에서 시끌벅적한 소란이 들려왔다.
-아, 비켜! 우리가 못 올 데 왔어?
-그놈 새끼 당장 나오라 그래!
영문을 몰라 눈치를 살필 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부서졌다. 수십 명의 중, 노년 사내들이 현장을 덮친 것이다.
“이놈들이야? 이것들이 그 공정윈지 검찰이지 하는 놈들이지!”
그들은 난입하자마자 준철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야이 놈들아 어디서 코 묻은 돈을! 가서 대기업들이나 처잡을 것이지 왜 엄한 어민들 건드려?”
“우리가 유통상들한테 돈 좀 더 받는 게 그렇게 고까워? 생존 때문에 어획량 조절하는 게 그렇게 죽을죄야?”
투망을 던지던 손이라 그런지 다들 악력이 억세다.
물론 젊은 놈이 노인 하나 뿌리치지 못할까마는 함부로 제압할 수 없었다. 살짝 밀어도 으억- 하고 나자빠질 노인들 아닌가. 공정위가 사람 쳤다는 소문이 터질 것이다.
“놓으세요! 일단 놓으세요. 이거 놓고 말씀하세요!”
그렇게 반원들과 어민들의 대치가 이어졌다.
준철은 시달리는 와중에도 조합원장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슬슬 비웃으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들이 등장한 타이밍이나 저 웃음이나. 상당히 계산된 각본임에 틀림없었다.
‘하아…….’
각오하고 덤빈 일이지만 막상 상황에 닥치니 자괴감이 든다.
굴지의 대기업들을 다 상대해 봤지만 이런 굴욕은 처음이다. 과장님이 민생 사건 맡지 말라고 뜯어말릴 땐 다 이유가 있는 거였구나.
“그만들 하시죠. 자꾸 이러면 경찰 불러서 오겠습니다.”
“뭐? 경찰?! 새파랗게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 못 하는 말이 없어!”
“나이 많으면 젊은 놈 멱살 함부로 잡아도 되는 겁니까.”
“이…… 이놈이.”
그 틈을 타 준철은 멱살을 뿌리쳐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저희는 대화하러 왔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말로 물어봐 주세요.”
역시 수사는 기세가 반이다.
당당한 목소리 때문인지 그들도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 필요 없으니 여기 온 목적부터 말해! 네들 생선값 깎으려고 정부에서 온 놈들이지.”
“요새 들어 어민 보조금이 팍팍 줄어든다 했더니만 네들 또 우리 못살게 굴려고 찾아온 거잖아.”
“또 어떤 트집을 잡아 대려고.”
야비한 놈.
어민들한텐 그렇게 말해 놓은 건가.
“전혀 아닙니다. 오늘 제가 온 건 비조합원들 차별 행위 때문에 온 겁니다. 어협의 가격 협상권을 건드리는 게 아니에요.”
그리 말하자 조합원장이 나섰다.
“여러분 저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우리 어민협회는 풍년마다 자체적으로 어획량 조절하고, 납품도 줄입니다. 이건 가격 담합이 아니라 어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감산하는
겁니다.”
그가 목소리를 더욱 돋웠다.
“근데 이 공공의 약속을 무시하고 어획 남발하는 비조합원들! 이 사람들한테 페널티 주는 게 그렇게 죽을죄입니까?”
“죽을죄라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경매를 방해하진 말아야죠.”
“대체 누가 방해했다고? 비조합원 고기 사면 어협에선 고기를 아예 안 넘기겠다고 한 게 전부야.”
“그게 협박입니다.”
“그럼 도매상들은 그쪽 고기만 다루시든가. 누가 죽이겠대? 폭력을 휘둘렀어? 아, 상품 안 팔겠다고 하는 게 어떻게 죄냐고.”
같은 말을 얼마나 더 해 줘야 할까. 유통시장을 꽉 쥐고 있는 네들이 그러면 독과점이라고.
준철은 그냥 포기했다. 이해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려 하는 거다.
“여러분! 그리고 그게 시작이지 끝이겠습니까. 우리가 비조합원 내비 두면 결국 우리끼리 가격 싸움해야 돼요! 지금 우리가 납품을 한번에 받고 넘겨서 그나마 고깃값 높게 받는데,
우리끼리 가격 경쟁 붙으면 결국 다 죽는 거잖아요.”
“저희는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비조합원 권리 운운한 거 자체가 건드린 거야! 여러분, 이래도 이게 정당한 수사입니까.”
조합원장이 또 바람잡이에 들어갔다.
준철도 더 이상은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해관계가 같다고 생각하니 사람들 모두 저 의견에 동조한다.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준철은 서류 하나를 꺼냈다.
“지금까지 어민협동조합이 투명하게 운영됐는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젠장. 이렇게 사람들 많이 모일 줄 알았다면 팸플릿을 따로 준비할걸.
조합원장은 그 서류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
“어협이 친분 있는 사람에게 어획량 많이 내려줬죠? 그리고 어획량 초과 상품은 어협 간부들이 뒤로 납품받고 암시장에 유통시켰잖아요.”
“이, 이게 무슨…….”
“혐의는 이거 말고 또 있습니다. 보니까 정부 보조금도 많이 해 먹으셨더라고요.”
전혀 다른 주제가 등장하자 사람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실 분은 아실 겁니다. 이거 가입하는 어민들에겐 정부가 비과세 혜택에 우대금리까지 주는 거.”
“어협은행? 저놈 저 그거 말하는 건가, 보금자리 적금?”
“예. 보금자리 적금요. 이게 사실상 정부 보조금이나 다름없는데, 어협은 좀 이상하게 기금 운용을 해 왔단 말이죠.”
준철은 어렵게 얻은 기회에 열변을 토했다.
“보통은 수입이 적은 순으로 가입자를 받아요. 기금 운용의 목적이 영세 어민 지원이니까. 근데 어협은 이 적금을 선착순으로 가입받았습니다.”
“무, 뭐시여?”
“나, 나도 완판됐다고 적금 못 들었는디.”
“네. 그게 이상한 겁니다. 이런 상품이 선착순으로 돌면 당연히 정보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입해 버리죠.”
비슷한 업종인 농협과 축협은 당연히 수입순이었다.
“이렇게 불투명하게 운영하면 당연히 그에 대한 비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사실을 어협 본부에 의뢰했습니다.”
“뭐…… 뭐랍니까?”
“동해 지부만 선착순으로 받고 다른 지부에선 취약계층 우선 가입으로 받았다더군요.”
사람들의 눈이 흔들렸다.
평소엔 관심도 없었던 분야였다. 우대금리 6%라 해 봤자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그게 간부들 뒷주머니로 갔다면 용서 못 할 일이다. 게다가 매년 문제가 되는 어획량도 도마에 오르지
않았나.
“그, 그럼 그 어획량 얘기는 뭡니까?”
“진짜 우리 어협 간부가 뒤로 납품받았다는 거요?”
준철이 크게 끄덕였다.
“네. 거기에 대한 증거는 이미 저희가 도매상들에게서 입수했습니다.”
“하…….”
“현재 비조합원 중엔 이런 불투명한 구조에 불만을 품고 나가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한데 어협은 자정의 노력 없이 무조건 배척만 합니다. 경매에서 따돌리는 건 굶어 죽으라는
뜻이지요.”
이젠 사람들의 눈이 아예 조합원장에게 쏠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적나라한 증거들 앞에 그의 변명도 궁색해졌다. 사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유통망을 쥔 자신들이 얼마나 큰 횡포를 부려 왔는지.
조합원장은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말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나는 하늘 한 점 부끄럼 없이 그런 적 없습…….”
“없기는 뭘 없어?!”
또다시 거짓말이 시작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합원장 그만하시게. 내가 어협에서 얼마나 굴러먹었는데, 그거 하나 모를까. 내가 나간 이유도 그거고, 자네들이 나를 어떻게든 재가입시키려던 것도 그거 아니야. 그게 평생
입막음이 될 줄 알았어!”
원광수산의 김영호 사장이 어협 사무실로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