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어쩌다 공개처형 (2)
노인의 등장에 좌중들이 술렁였다.
옆집 숟가락 개수도 속속들이 아는 게 이들이다. 노인과 어협의 복잡한 관계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뭐야? 당신은! 왜 뜬금없이 나타나서 엄한 소리야.”
“엄한 소리는 자네가 하고 있지. 정부에서 보조금 주면 네들끼리 돌려 먹어, 어획량도 친분대로 노나 가져, 그리고 초과로 잡은 물고기는 따로 납품받고 암시장에 풀어 버리지 않나.”
사람들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준철이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한때나마 그런 어협에 몸담았던 사람 아닌가.
“이 영감탱이가 어디 노망이 났나!”
조합원장도 이를 의식하는지 더욱 날카롭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악다구니를 쓴다고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니, 대체 이게 뭔 얘기래요.”
“조합원장.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반박 좀 해 봐. 영감님이 무슨 말 하는 거야?”
시간이 지나자 의구심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곧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사정 들어 보니 아주 없는 얘긴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나도 정부에서 우대금리 준다기에 적금 든다고 했는데, 구경도 못 해 봤어.”
“어획량은 또 뭔 얘기야. 우리 몰래 뒤로 납품받은 거 있어?”
그 물음에 대답을 대신 한 건 준철이었다.
“모두 사실입니다. 저희 공정위는 현재 여기까지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준철은 어민들에게 서류를 돌렸다.
우대금리 상품이 선착순으로 가입된 정황, 어획량을 어협 멋대로 정해 준 정황, 초과 어획을 뒤로 납품받은 정황. 이 모두 관련 기관과 도매상들을 취조해 나온 결과였다.
“이, 이게 뭐야…….”
“진짜네?”
젠장할. 진짜로 팸플릿이라도 가져올걸.
서류가 어민들의 손때를 타며 두루두루 돌았다. 그 실체를 확인한 어민들은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은행이 우덜한테 그짓말할 리는 없구. 조합원장. 이기 뭔가?”
“지, 진정하십쇼.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잖아요.”
“그짓말은 닝기미! 그럼 속 시원히 해명해 보라 이그야.”
“어획량 마음대로 지정해 준다는 거 아주 옛날부터 떠돈 소문 아니야? 이게 진짜 사실이야?”
“도매상들이 증언도 했네. 네들 뒷납(뒤로 납품)받았냐? 풍년에 다 같이 고기 많이 잡으면 시세 무너진다며! 서로 양보해서 조금만 잡아야 된다며!”
어민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조합원장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원 동지들! 제가 분명 말씀드렸지요. 수사하다 보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걸로 우릴 공격해 올 거라고.”
“그 무슨…….”
“그때 여러분들 뭐라 하셨습니까. 나 굳건히 믿고 흔들리지 않겠다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
“막말로 어협이 있어서 우리 서로 불필요한 경쟁 안 했습니다. 100만 원짜리 고기를 120에 판 게 다 누구 덕이에요. 여러분들이 손해 본 거 있습니까?”
근데 어협이 무너지면 결국 손해가 갈 겁니다!
조합원장이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가격 협상권도 엄밀히 말하면 담합의 일종이니까. 비조합원들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또다시 헛소리가 나오자 준철이 나섰다.
“맞습니다. 그래서 가격 협상권이 좋죠. 근데 그 차액 20만 원이 정말 어민들을 위해서 쓰였는가, 아니라는 겁니다.”
“넌 빠져 이 새끼야!”
“여러분께 손해는 안 갔지만 이득도 안 갔습니다. 왜냐면 그 돈은 모두 어협 간부진에게 돌아갔으니.”
“이, 이놈이.”
“한마디로 돈을 더 벌어다 주는 대신 그 차액은 자기들끼리 나눴다는 겁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공정위의 서류를 본 어민들은 완전히 싸늘한 분위기였다.
조합원장이 쩔쩔매자 노인이 그대로 말을 받았다.
“그 서류는 일획일점의 가감 없이 모두 사실이오. 내가 어협 간부로 지내지 않았습니까. 나 또한 이 일에 공범이라면 공범이요. 그래서 탈퇴하고도 여러분께 떳떳이 말할 수
없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며 마저 말했다.
“하지만 비조합원들의 경매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왕따시키는 것엔 인내심의 한계가 달했습니다. 아닌 말로 우리도 서로 경쟁하고 품질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습니까?”
“…….”
“어협이 유통권 꽉 쥐고 있다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 그 모든 걸 경험한 내가 이렇게 증언하겠습니다.”
조합원장이 또다시 길길이 날뛰었다. 육두문자에 쌍소리까지 남발하며 갖은 발악을 부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전처럼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노인은 어협에 깊이 몸담았던 위인 아닌가.
이런 사태가 언제 펼쳐질지 몰라 그간 노인을 회유해 왔던 것이었는데. 결국 우려하던 그 그림이 터져 버리고야 만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속아 왔단 거야?!”
“이런 미친!”
“그거 다 우릴 위한 일이라며. 비조합원 내비 둬선 안 된다며!”
그 실체를 알게 된 어민들은 이제 대놓고 분노를 표출했다.
“아, 아닙니다. 여러분. 그러지 말고 제 말을 한번…….”
“야이 육시럴놈아! 어디 코 묻은 돈을 손대.”
전세역전.
준철의 멱살을 틀어쥐던 손아귀가 이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성난 어민들은 조합원장과 반장을 구석으로 몰았다. 위협적인 광경에 오히려 공정위 직원들이 어민들을 말렸다.
이 자리에 모인 비조합원들은 그 모습을 순순히 지켜보기만 했다.
굳이 주먹을 보탤 필요는 없다.
사필귀정, 이제야 일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답해 봐! 이게 뭐야?!”
“에잇!”
그렇게 구석에 몰린 조합원장은 뜯어진 옷가지를 챙기며 겨우 자리에서 벗어났다.
***
“전무이사님. 한 번만 도와주십쇼.”
조합원장은 쫓겨난 그 길로 바로 어협 본부로 향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본부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검찰에 기소까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저간의 사정을 모두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이었다.
“이, 이사님. 제가 했던 일은 결국 비조합원을 가입시키려 했던 일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희의 실수가 있었던 건 인정하지만…….”
“나 길게 말하는 거 싫어해.”
“어민들께 잘 설득해 주십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합원장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하지만 본부 이사의 얼굴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설득이라. 그건 자네가 날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예?”
“조합원장. 그간 우리 몰래 용돈 많이 챙겼더구먼? 정부에서 주는 우대금리 상품, 이거 왜 선착순으로 받았어? 영세 어민 우선 가입인 거 몰라?”
“제 불찰이었습니다.”
“어획량도 그래. 민감한 시기엔 꼴뚜기 한 마리만 더 잡아도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데, 이걸 네들 친분대로 할당해?”
“…….”
“그리고 뒷납은 뭐야? 초과 수량을 뒤로 납품받고 시장에다 풀어? 똥이란 똥은 다 싸 놓고 이제 와 우리더러 치워 달라?”
변명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
공정위가 이미 공문을 보냈기에 본부에서도 내막을 다 알고 있었다.
“이것도 네가 해 처먹은 거에 비하면 반도 못 밝혀냈지? 내부감사 돌리니까 공정위가 아직 파악 못 한 내용도 수두룩하더만.”
“전무이사님. 그건 제가 해명을…….”
“그 입 닥쳐!”
뺨을 후려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는 이사였다.
“네들 동해 지부 때문에 전국 어협이 다 조사받게 생겼는데, 해명?”
“…….”
“이 새끼가 아직도 똥 된장을 구분 못 하고 있네.”
조합원장은 아예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면목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충정 하나만은 이해해 주십쇼. 비조합원들 가입시키려다 그런 실수가 나온 겁니다. 제발…….”
놈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놈을 보며 전무이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
“…….”
“일어나!”
조합원장이 일어나자 또다시 날카로운 말이 쏟아졌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내려 주시는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처분? 자네 이거 우리가 가만두면 옥살이까지 해야 돼. 기소는 당연한 거고 실형도 못 피한다고.”
이번 사건으로 비조합원들이 입은 피해는 다 계산할 수도 없다. 횡령에 배임까지 걸렸으니 집행유예는 꿈도 못 꾼다.
“자신 있어?”
“이, 이사님…….”
“썩을 놈의 새끼가 아직도 내 앞에서 거짓말이네. 왜 자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
“아, 아닙니다. 따르겠습니다. 실형 살아야 되면 살겠습니다.”
당연히 진정성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칠 수도 없는 노릇. 어협의 가입률을 끌어올리는 건 사실 본부의 방침이었다. 그 과정에서 비조합원을 차별하는 건 본부도 암묵적으로 용인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마냥 방관할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만약 이놈이 정말 실형을 살게 되면, 취조실에서 어떤 얘기가 쏟아질지 모른다.
“긴말 안 하네. 기회 줄 테니까 옷 벗어.”
“……예?”
“공정위에서 공문을 보냈어. 네들 썩은 물 좀 도려내면 시정명령으로 그치겠다고. 만약 아니면 검찰 수사가 전 어협에 다 미치겠지.”
“…….”
“꼬리 자르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최선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조합원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한동안 쏘아 대더니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조합원장. 잠깐만 죽어 지내자.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지. 어민들 설득은 우리가 나중에 한다.”
“…….”
“너뿐 아니라 네 라인 탔던 반장들까지. 사건 잠잠해지면 너 다시 부른다. 잠깐 휴가 간다고 생각해.”
조합원장은 완전히 망연자실했다.
자기 라인을 탔던 모든 간부들의 은퇴. 이건 사실상 어협 내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하겠단 뜻이다.
그리고 어민계에서 이건 사실상 추방령이나 다름없었다.
고기를 잡더라도 어협에 납품해서 돈을 받는데, 이런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어협에 가입할 수 있겠나.
만약 고기를 계속 잡는다 해도 영원히 비조합원으로 살아야 한다.
자신이 평생 차별해 왔던 놈들의 무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 말 믿어. 나 그렇게 사람 쉽게 안 잊어. 이번 일 잠잠해지면 너 다시 부른다.”
전무이사는 그리 말하며 서류를 건넸다.
해임장이었다.
조합원장은 그 서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물러나면 다시는 여기에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