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76
76화
8년의 담합 (2)
“바쁜데 뭘 찾아왔어? 전화 주면 내가 갔을 텐데.”
“얼마나 먼 거리라고. 커피 한잔 얻어먹을 겸 왔어.”
사흘 뒤.
카르텔조사국 심 과장이 종합국을 방문했다.
“참. 축하가 늦었네. 올해의 공정인상 자네들이 탔지?”
“우리들은 뭘. 우리 국에 있는 팀장이 탔지.”
“그게 그거 아닌가. 하여간 오 과장 일 욕심은 알아줘야 돼. 매사 열심이니 그런 팀장도 키워 낸 거 아니야.”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 카르텔조사국은 이미 세 번이나 탄 거 우리 겨우 한 번 받은 거야.”
서로 덕담을 건네며 웃었지만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본래 어려운 얘기일수록 많은 공치사가 필요한 법이다.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던 심 과장이 찻잔을 내려놨다.
“다름 아니라 종합국에서 준 담합 제보 때문에 그러는데, 철강사들.”
“응.”
“이거 꼭 해야 하나?”
오 과장도 찻잔을 조심히 내려놨다.
“왜, 우리가 넘긴 자료가 너무 부실해?”
“대강 우리 분위기 알잖아? 작년에 이 사건으로 크게 한 번 실패했다는 거. 내부에서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네.”
“자네는?”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야.”
제보를 덮어 달라.
납득할 수 없는 부탁이었지만 그 심정엔 공감이 갔다.
작년에 실패한 수사가 타 부처를 통해 다시 도착했다. 심 과장 입장에선 꼭 감사를 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듣기 불편했다면 미안.”
“아니야. 우리가 실패한 수사를 카르텔국에서 다시 가져왔으면 마찬가지로 불편했을 거야.”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래도 그냥 덮기엔 사이즈가 너무 커. 제보 내용대로라면 담합 이익이 최소 5천억대야. 그냥 덮는 건 서로 좀 찝찝하지 않나?”
심 과장의 입술이 뒤틀렸다.
“그럼 좀 티 안 나게 끝내는 건 어때? 철강사들한테 시정명령 보내자고. 우리가 철강 가격 주시하고 있단 메시지 보내면 좀 나아질 거야.”
“까려면 제대로 까고 덮으려면 제대로 덮자. 과징금 때리고 죄질 나쁜 놈들은 기소도 해야 돼.”
“오 과장.”
“싱겁게 끝낼 거면 안 하느니만 못 해. 눈치 준다고 뭐 얼마나 조심하겠어.”
분위기 잠잠하다 싶으면 또다시 담합해 먹겠지.
맡기 싫은 심정이야 이해한다만 오 과장도 이 부분은 타협할 수 없었다.
담합 이익이 수천억대인데 이걸 어떻게 시정명령으로 끝낸단 말인가.
“한 번만 더 제대로 해 보자. 큰 사건 맡았는데 어떻게 시행착오가 없겠어. 지난 수사의 허점 보완하고 이번에…….”
“오 과장! 사람이 이쯤 말했으면 좀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결국 심 과장의 언성이 커졌다.
“내가 직접 찾아와서 이렇게 부탁까지 하잖아. 이거 맡는다고 종합국 위상이 올라가?”
“누가 지금 공적 쌓으려고 이 소리 하나?”
“내 귀엔 그렇게 들려! 네들은 못했지만 우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아니라니까. 우리도 모든 수 다 동원했는데 안 된다니까.”
내려놓은 찻잔이 거칠게 들썩거렸다.
“그리고 이건 서로 매너가 아니지! 막말로 우리도 종합국에서 실패한 수사 넘겨받을 때 있어. 근데 서로 자존심 생각해서 적당히 끝내잖아.”
“심 과장.”
“나 솔직하게 말하면 무슨 감사받는 기분이야. 나한테 왜 수사 실패했냐고 따져?”
“그게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면 그냥 시정명령으로 끝내! 나중에 더 명확한 증거 나오면 그때 다시 수사할 수 있어.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만약 여기서 선 더 넘으면 나도 가만 안 있어.”
심 과장은 그리 쏘아 대며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오 과장은 그 문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흘렸다.
역시나 기분 나쁜 말은 어떻게 하도 기분 나쁘게 들리는구나.
아무래도 카르텔조사국의 치부를 제대로 건든 모양이다.
***
“카르텔조사국이 한 번 실패한 사건이라고요?”
“네. 그때도 꽤 믿을 만한 제보로 시작했다는군요.”
이해가 안 된다.
별것도 없어 보이는 수사인데 왜 실패했단 말인가?
“혹시 기한이 너무 짧았습니까?”
“아니요. 카르텔조사국 8개 팀이 4개월이나 조사했대요. 근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결정적 증거가 안 나오더랍니다.”
신 팀장의 설명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갔다.
철강사 직원들이 서로 만났다,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 이것만 잡으면 끝나는데, 그 한 끗을 왜 못 찾았을까?
“그럼 진짜 무혐의였던 건가요?”
“뭐 우리가 그럴듯한 제보에 속아 넘어간 걸 수도 있죠. 근데 카르텔국 내부 분위기는 그렇지 않더군요.”
“어땠는데요?”
“자기들이 무능력했다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 이 사건을 진짜 무혐의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수사가 종결된 날.
카르텔조사국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했으니.
너무 쉽게 봤던 게 패착의 원인이었을까? 그건 아니다.
철강사 구매팀장들의 통화, 이메일 기록, 내부 자료를 다 까뒤집었지만 이들이 서로 만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언뜻 쉬워 보여도 실은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장기전으로 가면 됐을 것 같은데. 담합은 한 놈 무너지면 다 무너지잖아요.”
“카르텔국도 최대한 시간 싸움을 해 보려 했습니다. 근데 제보자가 먼저 나가떨어졌다고.”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수사에 진척이 없으니까 슬슬 불안감 느낀 거죠. 제보자랑 수시로 연락하면서 의견 교류했는데, 어느샌가 연락이 끊겼답니다.”
신 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카르텔국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거기가 수사 종결 시점이었다.
익명의 제보 믿고 시작한 수사에, 제보자가 나가떨어지면 끝인 거다.
“그럼 저희가 이런 제보를 받았다는 거 자체가 불편하겠네요.”
“그렇죠. 치부나 다름없는데. 나도 몇 번 물어보니 불편한 티를 팍팍 내요. 살벌해서 저도 더는 못 물어봤습니다.”
신 팀장은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분위기 보니 우리도 못 맡을 것 같네요.”
“그건 왜?”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과장님 별말씀 없잖아요. 아무래도 위에서 얘기가 잘 안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얘기다.
이런 민감한 내용을 통보했으면 즉각적으로 과장들끼리 얘기가 오갔을 터.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는 건 과장들 회의가 결렬됐단 뜻이다.
“아무튼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신 팀장님. 혹시 그 카르텔국 만나면서 받았다는 자료,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지난 수사? 이건 왜……?”
“그냥 어떻게 수사 진행했나 궁금해서요.”
신 팀장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내가 잘은 몰라도 이 팀장님 호기심 많은 사람이란 건 압니다. 근데 이런 사건은 호기심 위험해요.”
“저도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 아닙니다. 그냥 글로벌 시세는 올랐는데, 왜 고철 가격은 떨어졌나. 다른 변수가 있었나. 이거 좀 알아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신 팀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서류를 건넸다.
“이거 본다고 그 대답이 나오진 않을 텐데. 뭐,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감사합니다.”
***
준철은 한동안 서류에 골몰했다.
‘담합이라…….’
국내 철강의 80%를 생산하고 있는 철강 7개 사.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어 왔지만, 전말은 단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사건.
철강사들의 결속력이 좋거나 정말 무혐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스르륵.
하지만 서류를 넘기면 넘길수록 무혐의는 아닐 것 같았다.
제보에 내용은 지금 당장 철강사들에게 줘도 무색할 정도다. 철강사들이 이 시나리오를 보고 따라 하면 앉은자리에서 몇천억의 이익이 생긴다.
이걸 과연 그들이라고 모를까?
-스르륵.
액수도 마음에 걸렸다.
2년 치 담합 이익만 5천억대 아닌가? 완벽한 시나리오에 보상까지 두둑한데, 기업들이 황금 알 낳는 거위를 못 본 체할 리 없다.
그리고.
이 추측에 쐐기를 박아 줄 완벽한 정황도 있었다.
글로벌 철강 시세가 매년 고공 행진하는데, 고철 가격만 떨어지지 않았나.
담합이 의심되는 시점에서 고철 가격은 20원(kg)이나 떨어져 있었다. 올라도 시원찮을 판에 떨어지기까지 한 것이다.
그것도 매입 가격만.
‘이렇게나 대범하게 해 처먹어?
근데 대체 왜 증거를 못 찾았을까?
이 정도로 인위적인 가격을 만들려면 경쟁사끼리 수시로 밥 먹고, 수시로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
이런 메시지가 수백 통은 나와야 할 텐데, 어떻게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이건 좀 너무하잖아?’
회계 자료를 보니 아주 예술 작품이 따로 없었다.
철강사들의 매출은 그대로였는데, 순이익만 폭발적으로 늘어나 있었으니…….
준철에겐 이 회계 자료가 누구보다 익숙했다.
하청들 쥐어짜서 단가 낮추면 순익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바꿔 말해 철강사가 원재료(고철)를 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면 당연히 이런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합리적 의심들을 모두 무력화시키는 지점이 있었으니…….
-카르텔조사국에서 작년에 실패한 수사예요. 우리가 건들면 서로 많이 불편해질 겁니다.
신 팀장이 귀띔해 준 말이 계속해서 걸렸다.
카르텔국도 검찰에 영장 신청해서 통화 기록 다 뒤져 봤는데, 먼지 한 점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흐음…….’
그 사실은 준철에게 참 많은 고민이 들게 했다.
구린내 난다고 세상 모든 문제를 다 쑤시고 다닐 순 없다. 심지어 이런 문제는 조직 내부에서도 민감한 얘기.
‘참자. 호기심 많은 놈치고 오래가는 놈을 못 봤다.’
참아야만 한다.
분위기 봐선 수사가 떨어질 것 같지도 않은데, 이걸 왜 건들겠나.
가만히 있는 벌집 쑤시는 격이다.
‘괜한 생각 말자. 어차피 진행되지도 않을 거.’
‘아니야. 이거 미친 짓이야. 이러면 안 돼.’
그리 다짐하며 또 다짐했지만 자꾸만 손은 서류로 향했다.
그렇게 신 팀장이 준 지난 수사 자료를 다시 열었을 때.
“악!”
또다시 두통이 엄습하며, 그 증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