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벼랑 끝 싸움 (2)
?(공지) 호남에서 고철 물량 8톤 남았대. 이거 ‘잔여’ 물량인데 어떻게 나눠?
?호남이면 우리 태광에서 가졌으면 싶은데.
?송 부장 욕심 너무 크다.
?뭐가 커? 저번에 충청도 물량은 다 영실에서 챙겨 갔잖아? ㅡㅡ
?그거야 800키로고 이건 8톤 아니야!
?나도 나누는 거에 찬성. 잔여분은 우리가 담합 논의 안 했던 물량이야. 시장점유율대로 나눠.
–
?서울 소재에 있는 그린자원이 자꾸 고철값 올리려 한다. 다른 사람들 들은 얘기 있어?
?나도 들었다. 5원 더 올려 달라 그러지? 그 자식들 우리 계속 이간질 시키면서 가격 싸움 붙이려 해.
?이런 건 투톱이 좀 나서서 교통정리해.
?오케이. 그럼 당분간 그린자원에서 파는 고철은 받지 마.
?언제까지? 그래도 그린자원 물량이 제법 되는데.
?딱 두 달만 굶기자. 버르장머리 제대로 고쳐 놓고 나중에 사.
–
?(긴급공지)! 부산공정위에서 영남권 담합 조사 들어갔다. 고철 매입
?수사부처 어디야? 공정위 본청이야?
?그냥 부산위에서 자체 조사 들어간 것 같아.
?아이고- 다행이네. 근데 갑자기 웬 수사? 주변에 뭐 들은 얘기 있어?
?얘기 들어 보니 고물상들이 그냥 한 번에 신고한 것 같다.
?요즘 들어 고물상들 하극상 너무 빈번하다. 유 부장, 우리 이거 버릇 한번 잡아야지 않아?
?한 두어 달 납품받지 말자. 고물상들은 굶겨야 버릇이 잡혀.
?오케이. 일단 부산공정위에서 수사 중이니까 당분간은 몸조심하고. 끝나면 다시 대책 논의해 보지.
***
“됐어!”
오 과장은 쾌재를 질렀다.
말만 무성하던 담합의 실체가 드디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담합사들은 고철 가격을 올리는 수집상들을 블랙리스트로 따로 관리했다. 공정위 수사가 뜨면 서로 수사 소식도 주고받았다.
“이 모든 게 다 기록에 안 남는 메신저로 교환했다는 거지?”
“예.”
용의주도한 놈들.
적발될 경우까지 생각해서 특수 메신저로 의견을 교환하다니. 이랬으니 증거가 나올 리 없다.
“근데 TK스틸은 이 대화록 왜 가지고 있었던 거야?”
“보험용으로 가지고 있었답니다. 가장 규모가 작은 철강사라 매사 다 기록으로 남겼어요.”
다행스럽게도 TK스틸은 이 모든 대화 기록을 캡쳐본으로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까지 증거인멸을 했다면 이번 수사의 실마리는 영영 찾지 못했을 것이다.
“과장님 이 정도면 충분하겠습니다. 바로 줄소환해서 이 증거 다 보여 주죠.”
“대화 내용에 모임 장소, 예약자명까지 나왔습니다. 더 잡아떼지도 못할 겁니다.”
모처럼 회의실엔 활기가 돋았다.
빼도 박도 못할 완벽한 증거 아닌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편파 보도를 한 번에 반전시켜 줄 자료다.
“일단 언론에 저희가 확보한 증거 바로 흘리죠.”
“담합사 중 한 곳이 스스로 자백했으니 이건 게임 끝입니다.”
오늘 아침 뉴스도 작년에 실패한 수사 얘기만 나왔다.
어디 이 자료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보자.
모두가 피의 복수를 말할 때 준철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그것도 좋지만 좀만 더 영악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영악하게?”
“사실 사람들은 철강사들 담합엔 관심 없어요. 이것 때문에 철강 가격 오르고 물가 상승하는 거 아니냐가 걱정인 거지. 저희가 아무리 확실한 증거 퍼트려도 여론은 한 번에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럼 뭐 생각해 둔 거 있어?”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들 인터뷰. 그게 나가면 사람들 반응도 바뀔 겁니다.”
오 과장의 눈매가 커졌다.
“수집상들 말하는 건가?”
“예. 제가 현장 돌아다니면서 느꼈는데 이 모든 담합 피해는 수집상들에게 전가됐습니다.”
수집상들, 소위 말하는 고물상들.
이들은 엄동설한에도 길에서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나이 든 노인으로 형편도 어렵다.
철강사들은 그런 사람들의 등을 처먹었다.
뉴스 보도는 이런 점을 어필해야 한다.
“이 팀장 의견도 나쁘지 않네요. 기사 제목도 딱 나오고.”
“근데 수집상들이 그런 인터뷰를 해 줄까? 수사 끝나면 결국 갑을 관계로 돌아가야 할 텐데.”
오 과장이 고개를 돌렸다.
“이 팀장. 그건 나도 우려하는 바다. 지금도 충분한 거 같은데 굳이 쐐기 골까지 박아야 하나?”
“이건 쐐기 골이 아니라 골든골입니다. 지금 상태로 가면 반 대 반이에요.”
“왜 반 대 반이야? 증거 나온 이상 이미 우리가 역전한 거 같은데.”
“이거보다 더한 증거가 나와도 철강사들은 버틸 겁니다. 8년의 담합 아닙니까. 수천억대 과징금이 떨어질 텐데 할 수 있는 발악을 다 할 겁니다.”
준철은 확신했다.
놈들은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발버둥 칠 것이다.
“그걸 사전에 차단하려면 완벽한 증거뿐 아니라, 완벽한 여론도 필수입니다.”
오 과장은 준철의 말을 한 번에 이해했다.
수천억대 과징금이 부과될 텐데 놈들이 순순히 응하겠나? 날고 기는 변호사들 섭외해서 투쟁을 이어 나가겠지.
어쩌면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쇼. 제가 수집상들 설득해서 피해 사실 인터뷰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여론도 뒤집히고 증거까지 확실하면 놈들도 긴 싸움 못 합니다.”
오 과장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좋아. 마지막으로 그거까지 해 보자.”
***
“그니께 이게 무슨 말입니꺼? 증거를 다 잡았다 이 말입니꺼?”
“예. 담합사들 중 한 곳에서 직접 얻은 증거입니다.”
“그럼 배신자가 나왔다는 겁니까?”
“예. 나왔어요.”
다시 모인 수집상들도 이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준철이 내민 대화 기록을 모두 읽었을 땐 분통이 터져 버렸다.
“이, 이 처죽일 노무 새끼덜! 뭐? 우리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가격 올리면 왜 거래가 뚝 끊기나 했더니! 이거 다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네!”
“그린자원 굶긴다는 얘기는 나도 들어 본 거야! 아니 근데 이게 다 사실이었어?”
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버르장머리를 고친다, 굶긴다, 물량 잠근다. 이 모두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했던 말이다. 전전긍긍했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놈들의 멱살을 쥐어틀고 싶었다.
“선생님. 그럼 이렇게 해서 파악된 담합 이익이 얼마입니까?”
“총 2조 원대로 계산되었습니다.”
“이런 말 뭣하지만…… 그럼 저희가 피해 보상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준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죄송합니다만…… 피해 구제는 못 합니다. 하지만 과징금은 때릴 수 있어요.”
“얼마나요?”
“3천억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팡!
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 그럼 하이소!”
“처먹은 돈이 2조? 솔직히 3천억도 싸요! 더 매길 순 없습니까?”
“……이것도 저희가 최대치로 계산한 돈입니다. 공정위 과징금 규모로는 역대 네 번째 정도니.”
준철은 이들을 진정시키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해서 부탁드리고 싶은데, 사장님들이 좀 나서 주실 수 있습니까.”
“저희가 나서라꼬예?”
“아시다시피 지금 여론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이번 수사 때문에 철강 가격이 오른다, 다른 제조업에 피해가 미칠 거라는 등.”
“내도 뉴스 봤습니더! 근데 거 미친놈들 아입니꺼? 우리 고혈 짜 먹어서 철강 가격 내려간 건데.”
“사리에 안 맞죠. 그리고 고철 가격 싸게 후려쳐서 소비자들한테 싸게 팔지도 않았어요. 자기들이 팔 땐 다 제값 받고 팔았으니.”
기업이 사는 고철 가격은 내려갔지만, 소비자에게 파는 재가공 상품은 시장가격 그대로였다.
담합으로 얻은 이익 모두 기업 주머니로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증언을 해 주십쇼.”
“증언이라 함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어떤 부당함을 당하셨는지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하루 종일 고철을 수집하러 다녔으면서도 제값을 받지 못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국민들에게 이걸 이해시켜야 한다.
철강사들이 누구의 돈을 가로채 왔는지, 그리고 아직까지 저 모양인지.
“뭔 말인지 알겠습니다만 우리한테 피해가 오진 않을지…….”
“걱정 마십쇼. 당연히 모두 익명의 인터뷰를 진행될 겁니다.”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 사건 끝나면 저흰 결국 철강사들 눈치 봐야 하는 입장인데.”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네요.”
현실적인 고민이었기에 준철도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럼 아마 이번 과징금은 1천억도 안 될 겁니다.”
“예? 아니 왜요?”
“철강사들은 절대 저희 과징금에 승복 안 할 거거든요.”
“증거가 이렇게 나왔는데요?”
“이보다 더한 증거 가져와도 놈들은 계속 싸울 겁니다. 법원까지 가서 10원 한 장이라도 깎아 보려 할 겁니다.”
아직 여론이 우호적이니 놈들은 끝까지 싸울 거다.
말장난 잘 치는 변호사들이 나서면 과징금도 줄 것이다.
이건 곧 나중에 언제고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 고만하라 하이소! 마이 처묵었다 아입니꺼?”
모두가 침묵을 지킬 때 영감님이 다시 나섰다.
“어뜩하믄 되겠는교. 그냥 당한 거 고대로 얘기하면 되는 겁니꺼?”
“예.”
“할매들이 힘들게 고철 주워 왔는데, 이놈들이 안 산다고 뻐겨서 다 물리고. 단가 내려가서 돈 덜 주고, 우리랑 그 사람들이랑 싸우고. 그냥 이런 얘기 하라 이 말입니꺼?”
“예. 아주 정확합니다.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노인이 눈을 돌렸다.
“딴 사장들도 잘 생각해 보그라이. 이 돈을 처먹고도 처벌 제대로 안 받으면 이놈들 또 한다 아이가. 그 짓거리 또 당할 끼가?”
“저, 저도 할게요. 제가 고철값 올리려 했을 때 물량 잠그기 당한 사람입니다. 저 증거도 있어요.”
“저도 할게요! 고철 수집해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내가 얼마나 미안했는데.”
“생각해 보면 이 새끼들 사람이 아니야. 어떻게 그 돈을 등 처먹어!”
이들은 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다.
공정위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분노가 느껴졌다.
“선생님도 약속 하나 해 주이소. 그카면 진짜 과징금 다 물릴 수 있지예?”
“저희는 관련자들 기소까지 할 생각입니다. 주동자들은 실형 못 피해요. 만약 놈들이 계속 싸운다면 저희도 끝을 볼 겁니다.”
기소, 구속, 실형.
듣는 것만으로도 한이 풀리는 단어다.
“하모 내부터 하겠습니더. 인터뷰 잡아 주이소.”
“예. 감사합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걸 감히 벼랑 끝 전술로 돌파해?
이런 놈들은 그냥 피똥을 싸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