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84
84화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1)
TK스틸을 통해 입수된 자료는 그대로 전파를 탔다.
장 시작 전에 터진 속보는 증권시장을 초토화로 만들기 충분했다.
제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 아닌가? 그것도 담합 기한이 8년이다. 제조업계엔 악재도 이런 악재가 없었다.
-원자재 리스크
-철강 가격 인상 불가피?
-제조업계 바짝 긴장
주가 공시로 범죄 사실이 공표되자 코스피 전체가 출렁거렸다.
철을 원재료로 쓰는 모든 제조업계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다.
“다음 소식입니다. 국내 고철 담합행위를 조사 중인 공정위가 오늘 아침, 내부자의 증언을 확보했단 소식입니다.”
“담합사 한 곳이 대화 기록을 제출하며 범죄를 시인한 것인데요. 이번 재수사에선 작년에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된 혐의를 재확인했다 알렸습니다.”
“이에 따라 코스피가 하락장으로 시작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철강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을지 제조업계가 모두 긴장하고 있습니다.”
공중파 3사는 물론 케이블까지.
리모컨을 돌리는 족족 해당 소식이 특보로 보도되고 있었다.
“한편 다수의 전문가들은 담합 이익이 시장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철강사들이 재가공해서 판 제품은 글로벌 시세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게 그 이유인데요. 자세한 소식
김한영 기자가 알아보겠습니다.”
준철이 공을 들였던 현장 르포 기사였다.
-그러니까 늘 가격이 이상했다는 말씀인가요?
-(음성변조) 하모예. 우린 그게 당하고 사는지도 몰랐지. 나도 뉴스는 보는데 매일 국제 시세는 올라, 그란데 철강사들이 매입하는 고철 가격만 떨어져.
-그럼 벌이가 얼마나 줄어든 겁니까.
-(음성변조) 후려친 단가가 20% 아입니꺼. 100만 원 벌던 사람이 갑자기 20만 원 덜 벌었겠지예.
-그걸 현장에서 체감하고 계셨습니까?
-(음성변조) 말도 마이소. 고철 수집해 온 할마이들 퇴짜 놓은 게 몇 번인 줄 아십니꺼? 뭐 뉴스 보니까 이것 땜시 철강 가격 오른다 뭐다 말 많더만 택도 없는 소립니더.
고놈들이 우리 피 빨아먹으려고 고철 가격 후려쳤지 어디 소비자 위해서 그랬겠십니꺼?
-원자재 상승 우려가 지나치단 말씀이시군요.
-(음성변조) 당연하지예. 이거 다 고철 수거하는 사람들한테 쓰여야 할 돈이었습니더. 언론에서 자꾸 글케 몰아가면 안 되지예. 자꾸 그라믄 우리도 고철 수집 안 할랍니더.
익명을 통해 나온 현장 르포는 공분을 자아냈다.
철강사들이 누구의 돈을 후려쳤는지 명확해졌으니.
현장 르포 기사는 특히나 고철 수집상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조명했다.
-보시는 대로 일반 리어카에 고철을 가득 담아 봤습니다. 기자들이 하루 동안 직접 거리에서 수집한 양입니다. 이건 과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리어카에 가득 실은 고철이 겨우 4만 8천 원밖에 받지 못했을 때.
-글로벌 시세를 감안하면 최소 6만 원 정도의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양인데, 보시는 바와 같이 가격이 20%나 줄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성은 끊어졌고, 한목소리로 철강사들을 욕했다.
?미친놈들!
?처먹을 돈이 없어서 그 사람들 돈을 강탈하냐?
원자잿값 상승 우려는 단번에 불식되었다.
?그래놓고 소비자 핑계 댔다는 거 아니야. ㅡ.ㅡ 인플레이션 온다고.
?누가 보면 자선사업 단체인 줄 알겠네. 그것도 8년이나 담합해 온 놈들이.
?공정위는 지금까지 이거 왜 못 밝혔냐? 이번엔 제대로 처벌해라!
시장은 항상 빠르다. 이길 것 같은 놈들의 편을 드니까.
주가가 무너지는 건 민심이 이미 패소를 예견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 사태의 주동자인 동남철강은 참담한 얼굴로 뉴스 기사를 읽었다.
“유 부장.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진짜 배신자가 나왔어?”
이 담합을 주도한 동남철강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주가 게시판은 이미 초상집이 됐고, 사내 홈페이지는 이미 마비가 된 지경.
“……아무래도 배신자가 나온 것 같습니다.”
“뭐?”
“TK스틸요. 그놈들이 저희 내부 정보를 다 넘긴 것 같습니다.”
힘이 쫙 풀렸다.
“넘겼다면 얼마나?”
“8년 치 전부 다…….”
눈앞이 껌껌해졌다.
공정위를 압박하려고 언론 플레이를 강행했는데, 그게 되레 외통수가 될 줄이야.
덕분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만천하에 범죄 사실을 알리게 됐다.
바로 이 모든 것을 자초한 사장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장님. 저희도 이제 현실적인 방법을…….”
“정신 나간 소리 마! 8년의 담합이 모두 다 걸렸는데 과징금이 얼만지는 알아?”
“…….”
“김 이사. 태성로펌 좀 불러 봐. 이젠 과징금이라도 깎아 봐야 해.”
***
확실히 뉴스로 언플하길 잘했다.
다시 방문한 동남철강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으니.
오 과장을 필두로 공정위 팀장들은 사옥 VIP실로 향했다. 오늘은 항복 문서를 가져가야 할 중요한 날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성로펌 박철민 변호삽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굉장히 불쾌한 이들이 공정위를 반겼다.
“태성로펌?”
“사정은 다 전해 들었습니다. 현재 담합 조사를 하신다고.”
“그 얘기 다 끝난 지가 언젠데? 오늘 과징금 통보하러 왔소. 담당자 어디 있습니까?”
“저희가 법률 대리니 저희한테 말씀하세요.”
법률 대리라.
오 과장은 기가 차서 비웃음이 나왔다.
“여긴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안 빗나가지? 범죄 사실 다 들통나니까 이젠 과징금 협상을 해 보겠다?”
“자 자- 앉아서 얘기합시다. 우리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도 많아요.”
오 과장은 심드렁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먼저 말씀해 보쇼.”
“공정위에서 확보한 증거 중 상당수가 업계 사정을 모르고 꺼낸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이요.”
“구매팀장들끼리 일하다 가격 교환한 건데, 그게 마치 담합처럼 왜곡됐단 말이죠.”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소립니까? 경쟁사끼리 시세 교환을 왜 해요?”
대답이 한 번 막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
“뭐 원래는 그래선 안 되지만. 작은 착오였죠. 누가 운전할 때 정지선, 과속 다 지키고 운전합니까? 때론 불법 유턴도 한 번씩 하고 그러는 거죠.”
“그러다가 사람을 치셨네? 그럼 책임지셔야지.”
“뭐요?”
“뉴스 안 봤소? 고철을 리어카로 한 트럭이나 실었는데 5만 원도 안 나옵디다. 당신네들 실수 때문에 누군가는 밥줄이 막혔어. 이건 어떻게 책임질 거야?”
“그 문제는…….”
“그리고 8년 동안 담합했으면서 무슨 불법 유턴을 운운해?”
따지고 보면 무면허 음주운전에 가깝다.
고의성이 이렇게 다분한 담합이었는데!
“다 필요 없으니 책임자 나오라고 하쇼.”
“자, 잠시만요. 수사 과정에서 공정위의 위법 사항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뭐?”
“수사 팀장 하나가 지속적으로 유도신문을 했다 말했습니다. 유도신문 이거 위법인 거 아시죠?”
변호사들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수사 과정에서 흠을 찾는 건 변호사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대답해 보세요. 왜 유도신문했습니까. 이준철 팀장이 누구죠?”
“접니다만.”
“아, 본인입니까? 젊은 사람이 그럼 안 되지. 왜 유도신문합니까?”
“무슨 말씀인지.”
“당신이 계속 떠봤다면서요. 마치 다른 사람이 다 자백해서 수사당국은 다 알고 있는 거처럼. 확인되지 않은 얘기까지 거론하면서 떠봤잖아요.”
오 과장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 팀장, 그런 적 있어?”
“아니요. 전혀 그런 적 없습니다.”
변호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없긴 뭘 없어? 사람들 다 모인 자리에서 태화루, 마동탁, 오자룡 같은 얘기 꺼내면서 압박했더구먼. 그 얘긴 어디서 듣고 유도신문했지?”
“첩보였어요. 익명의 관계자가 준.”
“그니까 그 첩보가 어디서 나온…….”
“제가 그거까지 설명해야 합니까?”
준철은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억울할 것이다. 준철이 한 건 유도신문이 맞으니.
정체불명의 대화에서 본 내용을 마치 내부고발인 양 떠들었고, 덕택에 TK스틸이 걸려들었다. 하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만약 지금 거짓말을 한다면 법정에서 책임질…….”
그리 말하고 있을 때 오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들으라는 듯 목소리 높였다.
“과징금 통보하러 왔는데, 웬 날파리 새끼들이야?”
“뭐? 날파리?!”
“할 얘기가 그렇게들 없어? 수사 과정에서 흠결 밝혀내면 우리가 과징금 깎아 줄까 봐? 택도 없는 소리! 담합사들 모두 다 기소할 거야. 이 정도 액수면 내가 책임지고 실형까지
받는다.”
-끼익.
그때였다. VIP실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각 철강사들의 사장들이 기어 나왔다.
지금까지 뒷문에서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숨어 계신가 했더니 거기 있었구먼.”
“결례했습니다. 저희 법률 대리가 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군요.”
“당신네들이 각본을 써 준 게 아니라? 됐고. 우리 오늘 과징금 통보하러 왔소.”
오 과장이 바로 그들에게 서류를 내밀었고, 이들의 얼굴엔 핏기가 싹 달아났다.
과징금 액수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정말 이 액수를 다 부과했을 줄이야.
동남철강 1,500억, 우성철강 800억…… 도합 3천억. 일곱 개의 담합사들은 모조리 다 철퇴를 맞았다.
“이, 이건 너무 과도합니다. 이러다 철강업계 휘청거려요. 제발 저희들 사정도 감안해서…….”
“이 팀장. 수집상인들 만나 보니 어쨌다고?”
오 과장은 듣기 싫다는 듯 말을 끊었다.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위협을 받았다 합니다. 더러는 아예 파산한 수집상도 있고요.”
“철강사들은 이런 처지를 생각해 준 적 있습니까?”
“…….”
“그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봐달라 소리가 당연하게 나오는지?”
“…….”
“그리고 당신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우리가 과징금 깎으려는 놈들 한두 번 상대해 봤겠습니까?”
사장들 머릿속엔 그간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공정위 압박하려고 언플까지 하지 않았나. 이런 마당에 협상하자는 건 정말 턱도 없는 말이다.
“우리랑 법정 싸움까지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쇼. 근데 내가 한 말은 빈말 아닙니다.”
“무슨 말씀인지.”
“법정 싸움 가면 우린 주동자들 다 잡아서 깡그리 다 기소할 거요. 이 정도 액수면 집유? 절대 불가능하지. 끝장을 보고 싶으면 어디 한번 진짜 봐 봅시다.”
오 과장은 기소를 해 버리겠단 협박을 남기고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자리에 남은 사장단은 한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