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85
85화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2)
아침 댓바람부터 서초구는 떠들썩했다.
담합사 일곱 곳이 모두 입건 처리됐으며, 한시에 소환됐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대기하던 기자들은 각 철강사들이 입장할 때마다 플래시 세례를 퍼부었다.
-한 말씀만 해 주십쇼. 담합 내용을 모두 인정합니까?
-과징금이 수천억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있던데, 어디까지 사실입니까?
-해당 사안을 법정 싸움까지 갈 겁니까?
출석하는 철강사들 얼굴은 썩어 들어갔다.
기자들이 민감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퍼부어 댔으니.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습니다.”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했고, 서둘러 자리에 벗어나기 바빴다.
하지만 모두가 다 이런 싱거운 대답을 할 순 없었다.
-동남철강은 현재 담합 주동사로 알려졌습니다.
-철강사들의 담합을 주도한 게 사실입니까?
마지막 동남철강이 입장했을 때, 기자들은 더욱 거세게 달려들었다.
세간에선 주동자 기업만 강하게 처벌할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아무리 8년의 담합이었다 한들 철강사 전체를 다 구속할 순 없었으니.
당사자인 동남철강은 초췌한 몰골로 포토 라인에 섰고, 준비한 원고를 들었다.
-먼저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국민께 우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처음으로 나온 담합사들의 사죄 성명이었다.
일대는 백야 현상을 방불케 할 만큼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담합 혐의를 모두 인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선 탄성이 나왔다.
법정 싸움까지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순순히 자백이 나오다니.
이건 공정위와 철강사들이 뒤에서 담판을 지었단 뜻이다.
-먼저 경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일곱 개 철강사들은 8년 동안 고철 가격 폭을 공동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담합은 구매팀장과 실무자들 간 중요 정보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각 구매팀장이 은밀하게 중요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지속하였습니다.
심지어 그의 입에선 구체적인 정황까지 흘러나왔다.
-다만 저희가 담합을 하게 된 배경은…… 악의적으로 가격을 다운시키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철은 수집해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늘 공급이 불안정했습니다. 고철이 적게 수집된
달에는 특정 철강사가 물량을 싹쓸이할 수 있어 내부에서 고충이 많았습니다.
-하여 불안정한 수급을 타개하려 서로 물량을 나누기 시작했던 것이 오늘에 와 이런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 사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일로
피해를 입으신 수집상 및 수거상인들께 진심을 다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카메라들 앞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원고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잘못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정위의 모든 수사에 협조하겠습니다.
그렇게 발표가 끝났을 때,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공정위 수사에 어디까지 협조하겠다는 겁니까?
“당국에서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리면 이의제기 없이 모두 따를 계획입니다.”
-과징금이 수천억대가 될 거란 전망이 있었습니다만? 모두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모두 승복입니다. 이외의 다른 법적 조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다 해 봤는데 안 되겠더군요.
이게 그의 속마음이었다.
-방금 수집상인들에게 사과를 하셨는데, 하면 이들의 피해를 구제해 줄 구체적인 보상안도 있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 저희도 이런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있는지 다각적으로 방법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없다는 얘기 아닙니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점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그가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을 붙잡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향후 기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공정위는 담합 주동자들을 엄벌할 것이라 발표했는데요. 형사처벌은?
“그건 저희도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쪼록 당국의 너른 이해와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건 기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닌 공정위에 하는 말이었다.
모두 반성하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한 번만 봐달라…….
***
“그래서 입건 처리까지 했어?”
“예. 오늘 담합사들 모두 검찰에 소환됐습니다.”
“무슨 얘기가 나왔어?”
“그냥 늘 했던 얘기를 반복한 수준이었죠. 다만 이전과 달리 담합 혐의에 대해 인정은 확실히 했습니다.”
카르텔조사국 국장실.
오 과장은 해당 사안을 모두 카르텔국 국장에게 보고했다.
“작년에 우리 카르텔국에서 실패한 수사도 이번에 다 확인했다지?”
“예. 역시 그 또한 담합이었습니다. 오늘 자백 나왔고요.”
맞은편에 있던 심 과장은 뚱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것이다. 본인이 반대한 수사를 종합국에서 완벽하게 성공해 버렸으니. 게다가 자신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마무리했던 작년 사건까지 다 이번 취조에서 드러났다.
하 국장은 한동안 서류를 유심히 보더니 이내 덮었다.
“어째 종합감시국하고 우리는 늘 불편한 것 같아?”
“아, 아닙니다.”
“들을 얘긴 들었어. 두 사람이 대판 한 번 했다고?”
“수사 방향에 대해 좀 이견이 있었던 겁니다.”
“내가 아는 얘기와는 좀 다른데? 우리 카르텔국이 걸림돌이었다 하더구만.”
하 국장이 뼈 있는 말을 던지자 심 과장 얼굴이 달아올랐다.
오 과장은 재빨리 나섰다.
“아닙니다, 국장님. 카르텔국에서 지난 수사를 잘해 놓아서 저희가 이번 사건 조사하는 데 수월했습니다.”
“그런가?”
“예. 임원들 통화 기록까지 다 확보해 놓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이 완성된 증거에서 자백 하나만 얻어 냈을 뿐입니다. 운도 많이 따랐고요.”
“그리 말해 준다면 고맙네.”
하 국장은 분위기를 살피다 조심히 말을 꺼냈다.
“고생 많이 시켰으니 남은 일은 우리가 하지. 과징금 받아 내는 건 우리가 할 거야. 물론 오해는 마. 실적 가로채거나 밥숟가락 얹겠다는 건 아니니.”
“별말씀을요. 저희도 과징금을 받아 내는 것까진 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카르텔국에서 도와주시면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카르텔국장이 눈을 돌렸다.
“심 과장.”
“예.”
“방금 말 들었지? 우리는 과징금만 받아 내는 거다. 종합국에서 싹 다 마무리해서 넘겨준 수사니까 자넨 돈만 제대로 받아 와.”
“……알겠습니다.”
심 과장은 이제 수치심을 넘어 굴욕감까지 들었다.
“근데 오 과장. 이거 입건 처리까지 했던데 진짜 끝까지 밀고 갈 생각인가?”
“아닙니다. 이놈들이 로펌 데려와서 과징금 깎으려 하기에 저희도 겁 좀 줬습니다.”
“그럼 관련자 형사처벌까진 안 할 거지?”
“네. 언론발표 보니 저희 수사에 협조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도 형사처벌은 안 하는 게 낫지 싶습니다.”
하 국장은 들을수록 속이 쓰렸다.
저런 놈이야말로 밑에 두고 싶은 과장인데.
“그리고 무슨 로펌에서 유도신문했네 마네 했던 부분이 있는데 이건 뭐야?”
“그냥 전형적인 트집 잡기죠. 수사 과정에서 절차상 미흡했던 부분 찾아서 과징금을 협상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알아보니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뒷마무리는 또 얼마나 깔끔한가.
혹시나 생길 절차상 문제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괜히 또 얘기가 길어졌구먼. 알겠어. 이건 이제 우리가 마무리하지.”
“네. 그럼.”
그렇게 오 과장이 자리를 뜨자 두 사람 사이에 찬 공기가 흘렀다.
하 국장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심 과장에게 서류를 건넸다.
“들을 얘긴 들었지? 절차상의 문제도 없고, 담합사들의 자백도 나왔으니까 가서 과징금만 받아 와.”
“……예.”
“이놈들 영악해. 앞에선 시인했는데 막상 또 돈 내려 할 때는 무슨 변명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한 푼도 깎아 주지 마. 3천억 다 받아 오는 게 자네가 꼭 해야 할 일이야.”
하 국장이 강조하며 말하자 심 과장이 슬쩍 운을 뗐다.
“근데 국장님. 이거 고발 부처엔 저희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방금 오 과장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수사 자료가 탄탄해서 자기들이 수사하기 편했다고.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고발 부처는 저희랑 종합국 둘이어야죠.”
밥숟가락 얹고 싶다는 얘길 어쩜 이리 뻔뻔하게 하는지.
“아니, 솔직히 고발 부처는 저희 아닙니까? 엄밀히 말해 종합국은 서포트를 해 준 건데…….”
“왜? 막상 저렇게 밥상 차려진 거 보니, 다 처먹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예?”
“밥숟가락 얹는 건 성에 안 차고 그냥 밥상을 뺏어 오자, 그 소리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씀이 아니라…….”
쾅-!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으니까 지금 내 속이 어떤지 모르지?”
“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종합국에서 마무리한 것도 쪽팔린데 뭐? 기초 수사가 튼튼해서 성공한 거다? 고발 부처는 우리다?”
하 국장은 하나 남은 인내심도 끊어져 버렸다.
“그럼 네들은 왜 못 했어?! 밥 먹고 하는 일이 담합 캐러 다니는 놈들이 왜 종합국만 못 해?”
“국장님. 그 말씀이 아니라.”
“아니긴 뭘 아니야! 내가 그간 잠자코 있었던 건 네들 편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그래도 네들이 작년 수사에서 최선을 다했다 생각해서 아무 소리 없었던 거지! 누가 쪽팔린 거
몰라서 점잔 떤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하 국장은 듣기 싫다는 듯 서류를 내동댕이쳤다.
“그걸 알면 맡긴 일이라도 제대로 처리해. 다시 말하지만 이 돈 한 푼도 못 깎아. 이번 년 안으로 그 돈 다 못 받으면 너 서울에서 일 못 할 줄 알아.”
땅바닥에 떨어진 수사 자료가 모든 걸 말해 준다. 하 국장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걸.
심 과장은 창백해진 얼굴로 서류를 짚고 얼른 자리에서 물러났다.
“멍청한 놈이 질투심만 많아 가지고선.”
하 국장은 혀를 찼다.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이지 면이 안 서는 자리였다. 자신들의 치부를 종합국에서 대신 만회해 준 것 아닌가.
이 사실도 쪽팔린데 망언까지 들으니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내선 전화를 들었다.
“어, 난데. 우리 이번에 종합국에서 자료 넘어올 거야. 철강사 담합. 그거 그냥 이 과장이 맡아. 아니, 별 얘기 묻지 말고. 그냥 이 과장이 심 과장한테 가서 달라고 해.
그리고 그 과징금 반드시 받아 와.”
담당자를 바꾸고 나서야 분이 좀 가셨다.
“쯧. 머저리 같은 놈.”
카르텔국장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서류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