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
9화
얼굴 맞대고 (2)
이튿날 아침 마포대교.
공무집행 차량 두 대가 대성중공업으로 향했다.
한강을 넘어 테헤란로로 진입하자 경찰차 세 대가 멀리서 따라붙기 시작했다.
“경찰 에스코트 받아 보는 건 또 처음이네.”
“설마 육탄전까지 펼쳐지진 않겠죠?”
사옥에 가까워지자 반원들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기남 반장은 이를 의식한 듯 퉁명스레 말했다.
“긴장해야 되는 건 저놈들이야. 왜 자기들이 쫄고 그래?”
“책임감 가지고 잘해 보잔 뜻이죠.”
“맞아요. 누가 쫍니까.”
다들 부인했지만 차 안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 밝혀진 사안만 해도 9시 뉴스 헤드라인감 아닌가?
대성중공업이 순순히 조사에 응할 리 없다. 유혈 사태가 펼쳐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근데 오늘 압수수색에 성과가 있을까요?”
“그러게요. 솔직히 산업재해 은폐 사건을 서류로 남겨 놓진 않았을 것 같은데.”
“우리가 기껏 수사해도 다른 하청들이 원청 감싸면 진짜 낙동강 오리 알이에요.”
또 한차례 우려가 나오자 김 반장이 칼같이 잘랐다.
“작업 중지랑 신석준이 구속 신청했다는 말 못 들었어? 이 정도 퍼포먼스 보여 주면 하청들도 완전히 돌아서. 엄한 생각 말고 우린 증거나 제대로 잡을 생각 해.”
그리 말할 때 선두 차량에 있던 준철이 문을 두드렸다.
“다들 준비됐습니까?”
“아, 예. 근데 경찰은 더 이상 안 따라옵니까?”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 저희가 호출하면 그때 들이닥칠 거예요.”
준철은 뒷좌석에 눈짓을 보냈다.
“조사관님들은 압류 박스 들고 먼저 가 주십쇼. 곧 뒤따르겠습니다.”
“아, 예. 근데 타깃이 어딥니까?”
“17층, 협력사업부요. 여기가 하청사 관리하는 부처인데 대외비 자료 다 여기 있을 겁니다. 자세한 얘긴 일단 입성부터 하고 말씀드릴게요.”
반원들이 압류 박스를 들고 우르르 내리자 준철이 김 반장을 따로 불렀다.
“반장님. 그냥 지금 압수수색영장 신청해 주세요.”
“예? 아직 조사 시작도 안 했는데요? 대성에서 협력할 수도 있는데 굳이…….”
“뻔할 뻔 자죠. 저놈들 절대 저희 수사에 협력 안 할 겁니다.
“그럼 그때 가서 신청하시죠. 과장님이 10분 안으로 압수수색장 나오게 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 10분간 파쇄기 부지런히 돌아갈 겁니다. 아니, 영장 가져와도 밑에서 시간 끌고 있을 놈들이에요.”
준철의 의도를 간파한 김 반장은 조심히 물었다.
“감당 가능하시겠어요? 저희 수사에 협조 안 해서 영장 가져가는 거랑, 그냥 영장 치는 거랑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10분 뒤 바로 영장 필요할 거예요.”
“후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장님은 10분 뒤에 경찰이랑 바로 와 주세요.”
그리 말한 후 준철은 대성중공업 사옥 앞에 섰다.
무척 낯선 기분이 든다.
항상 이 사옥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는데, 오늘은 점령해야 하는 입장이라니.
‘옛날 생각 나는구먼.’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준철은 대성중공업 정문을 열어젖혔다.
***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그건 위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여기 17층이 협력사업부 맞습니까?”
“잠깐만요. 저희 연락받은 거 없습니다. 잠시만요!”
공정위 직원들이 들이닥치자 프런트 데스크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러시는데요.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세요.”
“협력사업부 김성민 부장, 신석준 상무 뵈러 왔습니다. 17층에 있습니까?”
“이봐요! 거기! 멈추세요. 뭡니까?”
데스크가 소란스러워지자 곧 우람한 체격의 보안요원들이 등장했다.
“공정위에서 나왔습니다.”
준철은 이들에게 조사 공문을 내밀었지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반응이 돌아왔다.
“우리야 이런 거 볼 줄 모르고요. 못 들어갑니다. 우린 공정위에서 온단 얘기 못 들었어요.”
“자료 압수하러 왔는데, 누가 통보하고 옵니까? 볼 줄 모르면 비키세요. 아니면 담당자 내려오라고 하든가.”
“움직이지 마세요! 저희 경찰 부를 겁니다?”
“부디 그래 주세요. 근데 경찰 오는 시간 동안 파쇄기 돌리는 건 용납 못 합니다.”
준철은 완강히 버티는 보안요원들을 밀쳤고, 곧 공정위와 이들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통상적으론 원래 이러지 않아도 된다.
조사 공문을 보여 주고 담당자 만난 후 차분하게 시작해도 된다.
피조사자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수사에도 협조적이라면.
하지만 상대가 이미 하청사들을 상대로 협박하고, 로비에서 시간 끌기나 하고 있다면 똑같이 야만인이 되어야 한다.
“됐어. 영장 가져와. 우린 한 발자국도 못 들여!”
“사내 기밀 자료가 다 있는데 무슨 어딜 들어오려고!”
그렇게 대치전이 극에 달할 때, 중년 사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황급히 내려왔다.
“실례합니다만. 어인 일로?”
“신석준 상무입니까?”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김성민 협력부장입니까?”
“현재 휴가 중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요.”
“꼭 중요한 사람들은 이럴 때 휴가고 부재중이군요. 비키세요 그럼. 저흰 그 두 사람 말곤 할 얘기 없습니다.”
준철이 무시하고 또 들어가려 하자 그가 부랴부랴 명함을 꺼냈다.
“제가 법무팀 송현식 과장입니다. 저한테 말씀하셔도 됩니다.”
“풍산용접 때문에 왔습니다. 피차 잘 알 테니 담당자 불러 주세요.”
“그거면 다 끝난 얘기로 알고 있습니다만? 당사자 과실로 일어난 사고고 저희가 도의적인 차원에서 치료비까지 지원했지 않습니까?”
준철은 그 뻔뻔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 법무팀에선 그렇게 결론이 났나 보군요?”
“예?”
“저희가 아는 얘기랑 달라서요. 하청 근로자라 산재 처리도 안 시켜 주고, 치료비도 전액 부담이 아니라 1천만 원 툭 던져 주지 않았습니까?”
“아, 아니 이분이 큰일 날 소리를.”
“근데 그게 이번 한 번뿐이 아니던데요. 하청사들이 모두 해당 혐의에 대해 진술했습니다. 대성중공업이 상습적으로 산업재해를 은폐했다더군요.”
준철이 건넨 서류를 읽곤 사내가 눈이 커졌다.
하청사들을 전부 치고 다닌다더니 이걸 파악하고 있었구나.
“우리는 모르는 얘기고 이거 다 처음 보는 내용, 아니 다 억측입니다!”
“그럼 억울함을 풀어 드릴 테니 사업 자료 내놓으세요.”
“무슨 자격으로! 이거 과잉 조사 아닙니까? 영장 있소?”
그리 말할 때, 바깥에서 김기남 반장과 경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준철은 사내를 보며 피식 웃었다.
“감사합니다. 제 예상을 한 치도 안 벗어나 줘서.”
“뭐, 뭐야 저 사람들은.”
“방금 영장 찾으셨잖아요. 압수수색영장입니다.”
김기남 반장은 눈치껏 다가와 그에게 압수수색영장을 내밀었다.
사내를 비롯한 모든 보안요원들은 절망했다.
압수수색장이 발부된 지금. 이젠 경찰에 저항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된다.
“……일단 안내는 해 드리겠습니다. 한데 너무 갑자기 오셔서 자료가 미비할 수 있습니다.”
“염려 마세요. 저희가 이런 일 한두 번 했겠습니까?”
준철은 들으라는 듯 김 반장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반장님, 올라가면 먼저 파쇄기부터 장악해 주세요! 지금부터 저희 허락 없이 자료 함부로 폐기하면 안 됩니다.”
“아, 네.”
“그리고 파쇄된 종이도 전부 압수해 주세요. 진짜 중요한 자료가 비어 있으면 그거 맞춰 봐야 할 겁니다.”
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지자 준철은 법무팀 과장에게 슬쩍 말했다.
“그리고 담당자인 신석준 씨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으로 공정위에 출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출석을 미루거나 또다시 입단속할 기미를 보이면 그땐 구속영장 가져오겠습니다.”
***
“뭐? 공정위에서 들이닥쳐?”
“예…….”
“자료 얼마나 냈어?”
“막무가내로 덮치는 바람에…… 감출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신석준 상무는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위에서 들이닥쳐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이걸 방어해야 할 법무팀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거, 거의 다 내줬습니다.”
“송 과장은 뭐 하는 사람이야? 이런 일 생기면 회사에 불리한 자료 감추라고 있는 게 법무팀 아니야?!”
“죄송합니다, 상무님. 근데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공정위에서 노동부에 작중 명령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신석준은 말을 잃었다.
작업 중지 명령, 행정처벌은 지금 벌어질 수 있는 상황 중 가장 끔찍하다.
“……지금 하청사들 동향은 어때?”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정위에 진술은 했지만 아직 저희를 직접 고발하는 사장은 없었습니다.”
신석준은 하늘이 노래졌다.
밥줄 가지고 협박했는데 그게 통하지 않았다.
지금은 눈치를 보고 있지만 수사 상황이 기울면 미친 듯이 달려들 수도 있다.
“좋아. 그럼 자넨 그 제보 내용 토대로 어떤 하청에서 나온 내부 고발인지 다 파악해.”
“예?”
“개가 주인을 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똑히 보여 줘야 할 거 아니야.”
“아…… 예.”
“대충 제보 내용 들으면 어떤 하청인지 알지? 파악해서 다시 하청들한테 가. 허튼수작 부리면 일감 끊길 거라는 거 확실히 이해시켜.”
이 사건은 한 번 들어주면 밑도 끝도 없이 커진다.
만약 전 하청사들이 이때다 싶어 원청을 고발한다?
산업 사고뿐 아니라 단가 후려치기 등 모든 갑질까지 다 고발할 것이다. 그러니 초장에 그 희망의 싹을 밟아 놔야 한다.
“알겠습니다.”
법무팀장을 돌려보낸 신석준은 옆에 있던 김 부장에게 말했다.
“김 부장. 풍산용접 일, 분명 다 좋게 끝났다 하지 않았어?”
“……죄송합니다. 합의서까지 썼는데 분명.”
“지금은 그 합의서가 우리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공정위에 그 합의서가 넘어갔을까?
그랬다면 산업재해 은폐 의혹은 빼도 박도 못한다.
근데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
공정위가 현장에서 압수수색영장까지 가져올 정도면 분명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 것일 테니까.
긴 한숨을 내쉰 신 상무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덮자.”
“…….”
“만약 지금 이 사태 계속되면 우리 뉴스에까지 날 거야. 그러기 전에 덮자. 풍산용접 그놈 산재 처리시켜 줘. 아니, 그냥 줄 수 있는 돈 다 줘.”
듣고만 있던 김 부장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상무님. 좀만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죠. 그 사건 산재 처리시키는 거야말로 회사가 끝장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