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인앱(In App) (1)
준철의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에 웃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위원장실에 모인 본청 국장들은 모두 최 위원장 눈치만 살폈다.
라니에 칸까지 초빙한 지난 의 결과를 들어야 할 자리였기 때문이다.
“미안하게 됐네. 그 얘긴 한마디도 못 꺼내 봤어.”
하지만 암담한 대답이 나왔다.
그녀를 초대한 이유가 ‘그 얘기’ 때문이었는데 한마디도 못 꺼내 봤다니.
“자네들 볼 면목이 없구먼.”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그 얘기 꺼내는 것도 속 보이는 거죠.”
“그래도 빅테크 기업들 규제에 대한 의지는 확인했네. 자국 기업이라고 무작정 보호해 줄 위인은 아니야.”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는 한국의 팀장들을 보러 온 게 아니었다.
지난 은 점점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빅테크들에 대한 대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실 한국에선 꽤 민감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었는데, 이 때문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칸 위원장을 초대해 주었다.
그런데 한마디도 꺼내 보지 못했다.
“후우…….”
그러는 사이 결국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다.
“심 처장. 입법조사처에서 왔다고?”
“예.”
“고글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엔 고글이 물러설 것 같지 않습니다. 인앱(In App) 결제 시행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국장들 얼굴은 사색이 됐다.
인앱 결제는 앱에서 발생한 수익의 30%를 가져가는 고글의 수익 모델이다. 고글은 현재 게임 앱에만 적용되는 이 수익 모델을 전체 앱에 적용하려 했는데, 반발이 거세 한 차례
연기한 적 있다.
그래서 적당히 안 하는 거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기어코 시행하는구나.
“국회 분위기는 어때?”
“앱 시장은 고글의 독과점이니 규제하자는 쪽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 말고. 체감하는 진짜 분위기가 있을 거 아니야.”
“사실 인앱 결제 금지법을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아무래도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최 위원장은 쓴 침을 삼켰다.
인앱 결제 금지법. 벌써 국회에서 3년째 계류하고 있는 법안 아닌가.
현재 앱 마켓은 고글과 에풀이 90%를 독점하고 있는 시장인데, 이놈들은 결제 시스템까지 독점해 버렸다.
소비자가 고글 플레이에서 앱을 다운받는 건 공짜지만, 그렇게 다운받은 앱에서 유료 결제를 하면 30%의 수수료를 떼 가는 것이다.
만일 한국 기업이 이런 편법을 썼다면 당장 철퇴를 내렸겠지만 국회도 고글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만약 이 사건이 미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이어지면 코스피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위원장님. 아무리 상대가 고글이라 해도 이건 선 넘은 거 아닙니까.”
암담한 얘기가 계속되자 국장 한 명이 나섰다.
“앱 마켓은 결국 유통시장이죠. 근데 어떤 시장에서 유통이 30%나 떼 갑니까? 그간 게임 업계에서 수수료 떼 가는 것도 말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이걸 전체 앱에 확대하겠다는 건 명백한 시장 지위 남용입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고글은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수료를 낮추라 몇 번 종용해 봤지만 놈들은 되레 이 수익 모델을 전체 시장에 적용해 버렸다.
“일각에선 사이버 택스(Tax)란 말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고글이 결제 수수료 강행하면 모든 콘텐츠 이용료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작용은 훤히 다 보였다.
사이버 세금이 아니라 사이버 인플레이션이 올 거다. 느닷없이 30%의 수수료를 내게 생겼는데, 당연히 모든 콘텐츠의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규제가 꼭 능사는 아니야. 고글이 앱 시장을 만든 순기능도 고려해야지.”
그리 둘러댔지만 위원장 생각도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건 명백한 시장 지위 남용이다. 하지만 상대가 미국계 기업이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뿐.
사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미운 건 고글도, 미국도 아닌 바로 국회 놈들이었다.
이런 민감한 법안 통과시키라고 금배지 달아 줬건만 정작 필요할 땐 꽁무니를 뺀다.
“그래도 입법처에서 사람 나온 거 보면 국회도 의지는 있다는 뜻이야. 우린 우리 일만 하면 돼.”
그리 말하며 심 처장에게 눈을 돌렸다.
“입법처에서 구체적으로 뭘 원하나?”
“실태 조사요. 스타트업 기업들 위주로 수수료의 파장이 얼마나 될지 조사해 달랍니다.”
“그건 중기부랑 합작해야겠네?”
“예. 이미 그쪽에도 얘기 다 해 놨답니다.”
“또?”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서로 타협안을 찾아 달라 당부를…….”
“못 해 그건. 수수료 인정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야. 여기에 적당한 타협은 없어.”
금뱃지들의 또 시답잖은 소리가 나왔다.
뭐 어쩌라는 건가. 고글이 수수료를 낮춰 주면 적당히 타협하란 뜻인가?
이번 사태로 이미 독과점의 벽을 확인했다. 앞으로 경쟁자가 나올 수 없단 것도 충분히 확인했다. 고글이 선심 쓰는 척 수수료를 낮춰 줘도 결국엔 원하는 목표치를 달성할 거다.
“우린 편견 없이 숫자로 제시하면 돼. 수수료 시스템을 전체 시장에 적용하면 어떤 파장을 미칠지.”
위원장님의 의지를 확인한 국장들은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실태 조사는 서울 사무소에 시키자. 시장감시국에 맡기는 게 낫겠지?”
“예. 근데 시장감시국 인력만으론 무리가 있을 겁니다.”
“사람 더 필요하면 우리 본청에서 인력 좀 충원해 주고. 그리고 거기 종합국도 있잖아.”
“알겠습니다.”
“다른 사례가 없는지도 모두 조사해. 고글이 시장 지위를 남용한 사례가 이번 한 번은 아닐 거야. 모두 빠짐없이 조사하도록.”
임무를 전해 받은 국장들이 흩어지자 위원장은 큰 한숨이 나왔다.
“라니에 칸…… 라니에 칸.”
왜 그녀에게 그 얘길 꺼내지 못했을까.
빅테크들의 야욕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규제는 결코 자국 기업 보호도 아니고, 시장 질서에 대한 도전도 아니다.
우리의 진심을 알아 달라.
“후우…….”
속보이더라도 그냥 질렀어야 하는 말이다.
공직 생활 하는 내내 이처럼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
“중기부가 왔다고요? 국회 입법사무관도 왔고요?”
경주에서 돌아온 준철은 어이가 없었다.
지옥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니 회사가 전쟁터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네. 어제 TF 모임 참석해 봤는데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 봐요. 팀장님도 얼른 짐 챙기세요.”
“……어디로 가는데요.”
“시장감시국이요. 저희 당분간 실태 조사 나가야 한답니다.”
상대가 고글이라고 한다.
놈들이 앱 마켓에 갑자기 30%의 수수료를 부과해 버렸고 그 때문에 전 기관이 TF팀을 꾸렸다고 한다.
“아니…… 조사 대상이 얼마나 많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한답니까.”
“스타트업 기업만 130곳이랍니다.”
“배, 백삼십이요?”
“네. 여긴 수수료 부과되면 바로 파산해 버릴 수 있는 취약 업종들이랍니다. 중견기업 대기업까지 확장하면 아마 수백 곳은 되겠죠.”
새삼 고글의 위엄이 실감났다.
수수료 발표 한 번으로 대한민국 전 IT 업계를 패닉에 빠트려 버리지 않나.
“근데 입법처에선 사람이 왜 온 겁니까?”
“국회에서 지금 금지법 시행하느냐 마느냐 논의 중에 있다네요.”
입법조사처는 사회적 파장이 큰 법안을 결정할 때 직접 현장 조사하는 부처다.
국회 직속 기구라 그 파워가 검찰 이상이다.
그런 사람들이 직접 납시었다는 건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뜻.
“인앱 결제 금지법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텐데…….”
“네. 그래서 여러 가지 재고 따지고 있나 봐요.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 큰 건 하나 터질 것 같은 분위깁니다.”
대략 국회의원들 심정이 어떨지 예상이 되었다.
게임 업계에만 부과되던 수수료가 전체 업종에 퍼지니 각계에서 민원이 폭주했을 것이다.
아마 국회에서도 입법은 하고 싶을 것이다. 앱 마켓은 독점 시장이 아니라 독재 시장이나 다름없으니 규제 명분도 충분하다.
하지만 절대로 규제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국적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우리 갈아 넣어서 뭐 하겠다고.”
장황한 설명이 이어질 때 박 조사관이 슬쩍 끼어들었다.
“솔직히 그런 일 하라고 금배지 달아 준 거 아닙니까. 미국 설득하는 건 그 양반들이 알아서 해야지.”
“너는 또 뭐가 그렇게 꼬여 있어. 그래도 좋은 일 해 보겠다는데.”
“이게 무슨 좋은 일이에요. 딱 봐도 쇼하는 거 티 나는데.”
“쇼?”
“고글 압박하려고 괜히 분위기 조성하는 거잖아요. 설마 이런다고 금지법이 통과되겠습니까. 고글에서 수수료 낮춰 주면 적당히 합의하겠지.”
“거참 좋은 일 해 보자는데 왜 자꾸 초를 쳐?”
“그 양반들이 진짜 좋은 일 했으면 이런 논의 나오지도 않았어요. 금지법이 국회에서 몇 년이나 계류했었는데. 전 20% 봅니다. 고글에서 그 정도로 수수료 낮춰 주면 결국 합의할
거예요.”
김 반장도 그 말엔 대꾸할 수 없었다.
하긴 금지법이 발의된 지가 몇 년짼데. 진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진즉 통과됐겠지.
이렇게 밀린 방학 숙제 처리하듯 졸속으로 진행되진 않았을 거다.
“이 팀장.”
그리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오 과장 목소리가 들렸다.
“자넨 일복이 타고났나 봐. 어째 돌아오자마자 또 폭탄이 터져 버렸네.”
오 과장은 못내 미안한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우수분임에까지 선정됐다고.”
“……예. 과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그리 말해 주면 고맙지. 얘기는 다 들었나?”
“예. 실태 조사에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응. 시장감시국으로 갈 거야. 이게 이 팀장이 맡은 스타트업 명단들이야.”
준철은 착잡한 심정으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30%의 수수료를 부과하면 파산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라 했던가?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조사하면 되는 겁니까?”
“재무제표 위주로. 각 기업 자금 사정이 어떤지 수수료 부과되면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알아봐. 아마 다들 신생 기업들이라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거야.”
단순히 한풀이 듣는 걸로 끝나진 않을 거다.
오 과장은 준철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런 조사는 처음이겠지만 너무 긴장 말라고. 시장감시국 전문 요원이 다 지시해 줄 테니.”
“예. 알겠습니다.”
“어, 마침 자네 사수 왔구먼.”
그리 말할 때, 불현듯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니, 무척 불쾌한 실루엣이 보였다.
“서로 초면…… 아, 아닌가? 구 팀장도 이번에 경주 연수 갔다 왔지?”
“아, 예…….”
“뭐야? 서로들 모르는 거야? 가둬 놓고 공부만 시켰다더니 안면도 못 텄나 보구먼. 인사들 해. 이 팀장, 이쪽은 자네랑 실태 조사 맡을 시장감시국 구현수 팀장. 자네 사수야.”
사수라니.
저 미친놈이 이번 사건의 사수라니!
준철이 고개를 들지 못할 때 불쾌한 손등이 불쑥 나타났다.
“아이고…… 내가 사수네요. 잘 부탁합니다. 이준철 팀장님.”
놈은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