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인앱(In App) (2)
“어머, 이 팀장님?”
축 처진 발걸음으로 구 팀장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기분 좋은 목소리가 준철을 반겼다.
신소희 팀장이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해 온 것이다.
“여긴 웬일이세요? 설마 고글 조사?”
“……네. 저희도 이번 조사에 합류하게 됐네요. 신 팀장님은?”
“아이고. 저희 시장감시국은 인력 총동원이에요. 맡은 사건도 다 이관시키고 전부 합류시켰어요.”
과연 세기의 수사다운 규모다.
입법조사처, 중기부, 시장감시국, 종합감시국. 끌어다 모을 수 있는 인력은 다 끌어모은 것 같다.
인앱 수수료로 피해를 입게 될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
신소희는 눈치를 살피다 조심히 물었다.
“이 팀장님. 혹시 사수가?”
“구현수 팀장님……이네요.”
“에휴-.”
“신 팀장님은요?”
“마찬가지죠. 아마 기업들 면담하는 건 다 그 사람이 담당할 거예요.”
준철의 눈이 커졌다.
“구 팀장님도 팀장급인데, 이번 조사를 다 담당하나요?”
“네. 그 사람 내년에 과장 달잖아요. 그것도 본청 과장. 저희 시장감시국에선 이미 다 과장급으로 대우하고 있어요.”
개차반 같은 성격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놈이 시장감시국에선 인정받고 있다는 놈이라는 걸.
“혹시 구 팀장님 업무 스타일은…….”
“너무 걱정 말아요. 생색을 많이 내서 그렇지 일 처리는 깔끔한 편이니까.”
“그건 걱정 안 되는데 저랑 악연이 있어서요.”
“에이- 설마 이런 초비상상황에서 자기 사심 부리겠어요?”
그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신소희는 준철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조심히 귀엣말을 했다.
“설마 그래도 좀만 참아 봐요. 이번 조사는 오래 안 갈 것 같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판이 이렇게나 큰데 오래 안 간다고요?”
“응. 이게 다 고글 압박하려고 모인 거란 소문이 있거든요. 솔직히 수수료 30%는 너무했지. 아마 그쪽에서 적당히 수수료 낮춰 주면 합의될 겁니다.”
박 조사관의 투정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고글 겁주기 위해 모였다는 말.
하긴 상대가 미국 기업인데 어떻게 함부로 건드리겠는가.
인앱 결제 금지법은 전 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초강도 규제안이다. 적당한 수수료에서 합의될 거란 게 내부자들의 중론이었다.
“그러니까 좀만 참으세요. 저 재수탱이가 심통 부리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요.”
“애초에 싸울 생각도 없었습니다.”
“거짓말. 아까까지만 해도 눈에 살기가 그득했는데?”
“전 저 사람한테 사심 없어요.”
“흠- 분임 토론 때 당한 거 열 배로 갚아 주자고 했던 게 누구였더라? 칸 위원장 교수 논문까지 찾으라고 한 게 누구였더라?”
쾅-!
“공정위 전체가 다 비상인데 그렇게 희희낙락거릴 시간 있어?”
그때, 이 달콤한 분위기를 또다시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연애질은 연수받을 때 다 끝냈어야지. 두 사람 너무 경우 없는 거 아니야?”
갑작스러운 구현수의 등장에 신소희가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업무 전달 사항이 있어서 잠시 얘기 나눴어요.”
“업무 전달? 신 팀장은 아주 일이 즐거운 사람인가 봐. 상대하기 버거운 기업이라 그렇게 웃으면서 전달할 얘기는 없는 것 같은데.”
“…….”
“내가 하라는 조사는 다 했어?”
“여기 있습니다.”
구현수는 서류를 대충 읽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새 또 늘었네? 이게 다 이번에 수수료 강행하면 파산할 수도 있는 기업들인가?”
“예. 현재 스타트업들은 82곳으로…….”
“그 얘긴 됐어. 어차피 파악 들어가면 계속 늘어날 텐데 지금 들어서 뭐 해. 이 사람들이랑 면담 일정 언제 잡을 거야?”
“최대한 빨리 일정 잡겠…….”
“그럼 나가 봐. 다 만나 보려면 궁둥이 붙일 시간도 없겠네.”
놈은 날파리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님이 남이 되면 더 무섭다더니. 신소희를 향한 애정이 이젠 증오로 변한 것 같다.
그녀가 퇴장하자 구현수는 기분 나쁜 눈초리로 준철을 훑어봤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이 팀장한테 실망이야. 자긴 일하려고 합류한 게 아니라 사심 채우려고 왔어?”
“그런 게 아닙니다만, 죄송합니다.”
참자. 얼마 안 볼 놈이다.
“하여간 변명은 장황하지. 쯧-”
“…….”
“이런 수사 해 본 적 있어?”
“독과점 수사는 한 번 해 본 적 있습니다. 어협에서 비조합원 차별 사건을…….”
“누가 지금 자기 커리어 궁금하대? 시골에서 골목대장 하는 놈들 말고. 다국적기업이나 빅테크 기업들 상대해 본 적 있느냐고.”
당연히 없었다.
놈은 머뭇거리는 준철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더욱 노골적으로 자존심을 뭉갰다.
“아이고- 내 팔자야. 안 그래도 상대하기 버거운 기업인데, 하필이면 경험도 없는 팀장이 부사수로 와 버렸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래, 많이 최선을 다해야겠다. 미약하겠지만.”
구현수는 심드렁한 얼굴로 한 서류 무덤을 가리켰다.
“저거 다 복사해서 각 팀에 배부해. 이 자룐 입법처에 팩스로 보내고.”
“예.”
“나가 봐.”
“예?”
“왜 자꾸 사람 두 번 말하게 만들어? 나가 보라고.”
준철은 너무 어이가 없어 표정 관리도 되지 않았다.
“그게 끝입니까? 서류 복사하고 팩스 보내는 게.”
“누가 끝이래? 자리 가서 대기해. 협력 부처 많은데 앉아서 전화는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제가 과장님께 듣기론 스타트업들 만나서 면담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쾅-!
“하여간 주제도 모르고 의욕만 넘치지.”
“…….”
“기업 면담이 무슨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끝인 줄 알아? 꿈 깨. 경험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놈한테 뭘 맡겨? 그냥 얌전히 앉아서 우리들 잡무나 처리해.”
이로써 확실해졌다.
놈은 이번 사건에서 사심을 뺄 생각이 없다는 걸.
“왜? 혹시 뭐 궂은일은 하기 싫다, 이런 건가?”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구 팀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의외의 반응이 나오자 구 팀장이 흠칫 놀랐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맡기신 일은 실수 없이 잘 처리하겠습니다.”
“……말귀는 제법 알아듣네. 내 지침 없이 함부로 움직이지 마. 나가 봐.”
구현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는 준철을 떨떠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앞에선 고개를 숙이지만 뒤에선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놈이다.
***
“정말 그게 답니까? 서류 복사하고, 팩스 보내고, 자리나 지키고 있으라고요?”
“네. 많이 좀 배려를 해 주셨어요.”
“이건 배려가 아니라 무시 같은데요. 그냥 대놓고 허드렛일시키겠다는 거 아닙니까.”
반원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원성이 쏟아졌다.
배려와 무시가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안다.
종합국 자체가 은근히 무시받는 부처이긴 하지만 이런 대접은 또 처음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조사팀의 컨트롤 타워죠. 실태 조사팀이 올린 보고서를 다 저희가 다룰 겁니다. 입법처에 보내는 것도 저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역할이에요.”
준철도 마음 상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업무 배제건 배려건 시간이 여유로워진 건 사실이다. 윗선의 지시가 없으니 사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
“반장님. 먼저 저 자료 복사해서 각 팀에 배부해 주세요.”
“하아…… 네.”
“그리고 박 조사관님. 고글이 시장 지위 남용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무슨 클라우드 서비스도 유료화시킨 적 있다던데 그건 무슨 내용입니까?”
박 조사관은 떨떠름한 얼굴로 자료 하나를 꺼냈다.
“G-mail 유료화요. 메일에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갑자기 유료화한 겁니다.”
“그때 국내 대학들 반발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네. 연구 데이터 같은 중요 자료들이 다 클라우드에 있었는데, 그걸 다 유료화시켜 버렸으니까요. 몇몇 대학은 아예 자체 내부망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준철은 박 조사관이 내민 서류를 꼼꼼하게 읽었다.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기습 유료화였다.
“밀당을 좀 많이 했나 보네요?”
“네. 처음엔 유료화한다고 했다가 반발이 심하니 몇 달 유보하고, 그러다 또 잠잠해지면 다시 운 떼고 했죠.”
가장 중요한 건 이 사건의 결과였다.
“근데 결국 하긴 했습니다. 이제 고글 클라우드 서비스는 유료예요.”
“같은 사례가 몇 개나 더 있습니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고글 쇼핑도 처음엔 수수료를 안 받다가 최근에 받기 시작했고요. 또 고글 포토도 처음엔 무료 배포하다가 유료화했습니다.”
“고글 포토는 뭡니까?”
“영상 편집 서비스요. 일종의 포토샵 같은 건데 그것도 유료화했어요.”
“그건 별문제 없었습니까?”
“네. 이건 뭐 고글이 시장을 다 독점한 게 아니라서요. 과금 수준도 업계 평균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준철은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무소불위의 고글도 상냥할 때가 있었다.
바로 시장을 다 독점하지 못했을 때.
“반장님. 그럼 이 자료 중점적으로 복사해서 입법처에 보내 주세요.”
“예? 팀장님 이건 인앱 결제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인데요.”
“수익 모델 적용 방식이 다 똑같잖아요. 아낌없이 퍼 주다 나중에 견적서 들이미는 거.”
김 반장은 작게 한숨을 지었다.
“팀장님. 뭔가 좀 오해가 있으신데…… 이거 진짜 규제안 통과시키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최종 목표는 수수료 인하예요.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건 입법처에서 잘 고려하겠죠. 저흰 그냥 걸리는 부분 다 보고로 올립시다.”
준철의 고집을 이미 다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별말은 나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반원들이 물러가자 준철은 폭탄처럼 쌓여 있는 조사서를 읽어 내려갔다.
사실 지금까지 파악한 자료는 암담한 내용뿐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지 않는가?
고글이 유료화를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유료화 시기를 연기하고 수수료를 조금 낮춰 주는 정도의 퍼포먼스는 있었지만, 결국 목표치를 달성해 왔다.
경쟁자가 등장할 수 없는 산업 구조니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암울한 전망은 이미 시장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일부 스타트업 기업들은 이미 체념하고 콘텐츠 비용을 올렸다. 국회가 고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일찌감치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흠…….’
반도체 선두 주자, IT 강국이란 말도 빅테크들의 위엄 앞에선 유명무실한 말이었다.
고글이 정말 인앱 결제를 강제하면 사이버 인플레이션이 올 것 같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으…….”
그렇게 하염없이 서류를 넘길 때.
“으악!”
또다시 정체불명의 통증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