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5
95화
단독보고서 (1)
-툭툭툭.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볼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실루엣이 드러나자 어느 회의실이 보였고, 상석에 앉은 사내가 볼펜을 돌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그가 누군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었다.
제임스 리, 현재 고글코리아 지사장을 맡고 있는 인물 아닌가.
최근 고글의 각종 수수료를 다 통과시키며 이미 언론에선 악명이 자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본사의 의지는 확실해졌어요.”
회의가 시작되자 임원들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졌다.
“지사장님. 한 번만 더 재고를…….”
“이번에도 관철시키지 못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사표 가져와야 할 거요.”
교포 출신이라 민주적인 회의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그만큼 고글의 인앱 수수료 부과 의지가 확고하단 뜻일까?
사표 얘기가 나오자 금세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꼭 내 입에서 험한 말 나와야 알아듣겠어요?”
“…….”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인앱 결제 수수료는 우리가 이미 두 차례나 연기시켜 준 사안 아니요.”
“…….”
“그간 공짜로 사용하던 거 이제 이용료 받겠다는 거라고. 이거 가지고 무슨 국민 눈치, 국회 눈치까지 봐.”
이제는 한마디의 반박도 나오지 않았다.
최근 고글의 모든 유료화는 다 그가 강행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것이다.
“김 대표님. 그 법안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는 눈을 돌려 김현석 대표를 봤다.
고글코리아 대표로 한국계 사람이었지만 실상은 바지사장이었다. 사과할 일이나 국회에 불려 갈 일이 있으면 매만 대신 맞아 주는 대타 선수였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만. 저희가 이번에 수수료를 강행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달라져?”
“인앱 결제 금지법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잖아 있습니다.”
제임스 리는 비웃음을 흘렸다.
“이미 국회에서 3년째나 계류 중이었는데 이제 와?”
“그 신호를 무시해선 안 됩니다. 국회도 사안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단 뜻이죠.”
“그럼 한국 국회가 미국과의 갈등을 불사하면서까지 법안을 통과 시킨다?”
김 대표의 입이 다물어졌다.
자칫하면 무역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자사가 미국계 기업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의견들은?”
지사장이 기분 나쁜 티를 내자 이를 기회로 삼는 이도 있었다.
“지사장님. 본사의 의지가 정 그리 확고하면 그냥 강행하시지요.”
“부사장? 계속해 봐.”
“말씀대로 저희가 무슨 봉사 단체도 아니고. 그간 무료로 제공했던 앱 마켓에 이젠 이용료 받겠단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걸 규제하면 오히려 한국 정부가 시장 질서를 저해하는 겁니다.”
지사장의 얼굴에 차츰 미소가 걸렸다.
듣고 싶은 대답이 비로소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인앱 결제 금지법은 글로벌 사례도 없습니다. 한국 국회가 사례도 없는 규제안을 통과시킬 리 없습니다.”
“나 그렇게 판에 박힌 대답 들으려고 회의 연 거 아니야. 그래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있을 거 같은데.”
“계속 그렇게 조심만 하면 큰일 못 합니다. 지난 클라우드 서비스 유료화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결국 누군가가 결단력을 보여 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수수료 부과는 늘 처음이 어려웠다.
처음 클라우드 서비스를 유료화했을 때도 전국 대학들이 다 들고 일어나지 않았나. 세간에선 고글이 학습권까지 박탈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결국 유료화는 진행되었고, 이젠 고글의 든든한 캐시카우가 되었다.
“우리 김 대표님께선 여전히 생각에 변화가 없습니까?”
“……클라우드 사태와 지금은 다릅니다. 파급력 면에 있어서.”
“파급력?”
“그거야 1천 기가 이상의 데이터만 유료화했으니 민간에 피해가 없었지요. 하지만 인앱 수수료 부과는 전 국민이 체감하게 될 겁니다.”
또다시 마음에 안 드는 대답이 나오자 부사장이 직접 나섰다.
“가만 보면 대표님께서 너무 결단력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뭐?”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오로지 안 될 이유만 찾으시잖아요.”
“기업은 여론 등져서 좋을 게 없어! 현실적인 이유를 지적하는 게 딴지야?”
“우리도 직원들 월급 주려면 수익 모델 계속 적용해야 합니다. 이런 현실은 안 보이십니까?”
“다들 그만-”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자 지사장이 다시 나섰다.
“왜 우리끼리 언성 높이고 그래? 부사장. 열의는 알겠는데 그래도 서로 빈정 상하는 말은 마.”
“……죄송합니다.”
“대표님도 그만하세요. 결단력이 필요한 순간이란 건 사실 아닙니까.”
둘 다 꾸짖었지만 지사장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었는지는 모두가 다 알 수 있었다.
“지사장님. 그럼 늘 쓰던 그 수법 쓰시지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때 부사장 옆에 있던 한 임원이 말했다.
“여론 반응이 심상치 않으면 현 30%의 수수료를 절반 정도로 낮추는 겁니다.”
“15%? 본사에서 원하는 거하곤 너무 다른데.”
“차액은 나중에 기회 봐서 올리면 되지요. 어차피 소비자 물가는 매년 오릅니다. 저희도 적당한 때에 조금씩 올리면 결국 목표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지사장은 흡족하게 웃었다.
냄비 속에 있는 개구리.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보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한 타협안 같은데 대표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지사장은 눈을 돌려 김 대표를 살폈다.
이번 사태가 커지면 또 궂은일을 도맡아 줘야 할 사람 아닌가.
한참 생각하던 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굳이 저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하는 김에 저도 하는 거죠.”
“근데…… 진짜 이래도 될까요?”
“안 될 거 있나요. 면담 조사 도와드리는 건데.”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만남 자리.
신소희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구현수가 허드렛일이나 시키며 업무 왕따를 시키지 않았나. 다른 팀장들 같았으면 오히려 놀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준철은 면담 자리를 자청했고, 직접 자리에까지 나왔다.
“혹시 불편하세요?”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고마움보다 설렘이 더 드는 건 왜일까.
“이게 스타트업 명단이에요.”
신소희는 당황한 얼굴을 감추며 화제를 돌렸다.
“분위기는 아시죠? 완전 초상집인 거.”
“네.”
“아마 저희 상대로 하고 싶은 얘기 많을 거예요. 힘들더라도 다 들어 줘야 돼요.”
없던 수수료가 갑자기 부과된다는데 말이 없을 수가 없지.
그것도 30% 아닌가?
아마 공정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당도했을 땐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이번 사태가 업계에 미칠 영향이…….”
“부정적이겠죠.”
“대표님께선 다른 애로 사항은…….”
“다 말하기도 힘들 것 같네요.”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시큰둥한 대답.
면담에 모인 8인방의 스타트업 대표들의 공통된 표정이었다.
신소희가 장황하게 물어도 단답형 대답만 돌아왔다.
“대표님께선 어떠세요……?”
“다를 게 있겠습니까.”
“매출에 얼마나 타격이 갈까요……?”
“많이 가겠죠. 폐업할 수도 있겠고요.”
“……혹시 저희한테 따로 하고 싶은 말씀 있나요?”
그리 묻자 곳곳에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얘기하면 들어주긴 합니까?”
“현재 입법처와 저희가 실태 조사를 하고 있어요. 필요하다면 법안도 통과될 겁니다.”
“법안? 국회에서 벌써 3년째나 계류된 법안이 이제 와 통과된다고요?”
법안 얘기가 나오자 그들이 울컥하기 시작했다.
“다 필요 없으니까 그만하고 가요! 지금까지 미뤄 놓고서 무슨.”
“…….”
“이거 다 국회에서 쇼하는 거잖아. 국민들 보는 눈은 있겠다, 뭐라도 하는 척은 해야겠다.”
역시나 시큰둥한 게 아니라 아예 체념한 거였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국회에 대한 실망감이겠지.
“고글이 인앱 수수료 부과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2년 안에 폐업할 겁니다. 이 소리 들으려고 왔어요?”
“그래서 미리 다 콘텐츠 비용 올리셨습니까?”
가만히 듣던 준철은 펜을 멈추고 한마디 던졌다.
“뭐?”
“여기 계신 대표님들께선 미리 결제료를 올리셨더군요.”
“아니 그럼 우리더러 진짜 죽으란 거요? 정 답이 없어서 20% 올렸습니다. 고글 수수료는 30%데 우린 올려도 10%가 손해라고.”
“그러니까 그런 얘길 많이 해 주세요. 고글 저대로 놔두면 사이버 인플레이션 올 거다, 이 피해는 결국 소비자가 입는다.”
“뭐?”
“사람은 다 자기랑 관계 없으면 관심도 없잖아요. 이 수수료 단행으로 누가 피해를 입을지 적극적으로 말해 주세요. 그럼 국회에서도 마냥 손 놓을 수 없습니다.”
당당한 대답에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보세요. 암만 그래도 이거 고글 못 막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가 입법조사처에 면담 내용 올리는 담당자거든요. 약속드리죠.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내용은 가감 없이 모두 보고에 올리겠습니다.”
그 말엔 신소희가 놀랐다.
“이 팀장님. 단독보고서 올리면 안 되는…….”
신소희는 말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현 상황에서 단독보고 올리면 안 된다는 얘길 했다간 이들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 같았다.
“OPA 대표님. 귀사께선 이번 충돌이 처음은 아니죠?”
“……예?”
“대학교 홈페이지 관리자 아니십니까. 고글이 클라우드 유료 단행할 때도 사업에 많은 부분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부 조사하고 있어요. 고글의 과거 사건까지도.”
과거라는 얘기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설마 고글의 지난 유료화 과정까지 다 들추겠다는 건가?
“맞아요. 저흰 이번이 2연타예요.”
“앱 수수료 부과하면 어떻게 되죠?”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어요. 앞이 안 보여요.”
그는 결국 울분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도 매출이 100이면 우리가 가져가는 건 10이 안 돼요. 서버구축비다 홍보비다 뭐 떼 가는 돈이 얼만데!”
“맞아요! 솔직히 이건 이중 수수료예요. 앱 마켓에 처음 들어가면 고글한테 광고 줘야 되거든요. 광고 없으면 아예 노출이 안 되니까.”
“근데 수수료를 또 떼 가요? 진짜 죽으라는 소리예요.”
한 번 터진 애로 사항은 그 뒤 끝없이 이어졌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고글이 이젠 혁신의 장애물이 되다니.
“결국엔 콘텐츠 비용이 오르든가, 우리가 죽든가 둘 중 하나예요.”
준철은 가만히 듣다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이버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단 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