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단독보고서 (2)
“이 팀장, 이 팀장!”
이튿날 아침.
공정위 서울사무소가 발칵 뒤집어졌다.
“자기 입법조사처에 보고서 올렸어?”
구현수 팀장이 길길이 날뛰며 준철을 찾아온 것이다.
“예.”
“예? 지금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그게 무슨 태도야?”
“팩스 보내는 일 하라고 하셨잖아요. 스타트업 대표들 면담 자료 보고했습니다.”
“내가 그냥 뒤에서 잡무나 보라 했지 누가 이러랬어! 사람 얼마나 무시하면 내 허락도 없이 단독보고서를 올려?”
놈은 이성을 잃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만도 했다.
TF팀이 조사한 자료는 내부 회의를 거쳐 입법처에 보고되지 않나. 새파랗게 어린놈이 그 보고 체계를 건너뛰었다.
“중요한 자료라서 부득이 직접 올렸습니다.”
“뭐가 중요한 자료야? 고글이 지금까지 수수료 부과한 사례 조사해서 올렸더만. 그것도 네 사견 팍팍 담아서!”
“사견 없었습니다. 고글이 수수료 부과할 땐 늘 같은 수법을 썼습니다. 국회에서도 이건 알고 있어야 할 부분 아닙니까.”
구현수는 서류를 패대기쳤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번에도 같은 수법에 당해선 안 된다는 거죠.”
구현수가 한숨을 쉬었다.
이런 답답한 놈 같으니라고. 누군 고글이 얼마나 영악한지 몰라서 이러나?
“이 친구야, 모르면 뭘 좀 물어보면서 해.”
그러면서도 묘한 승복감이 들었다.
이게 이 어린놈의 약점이다. 일은 제법 하는데 조직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안목은 없다.
“우리 TF팀은 진짜로 규제안 만들려고 모인 거 아니야. 적당히 분위기 조성하고 고글과 합의점 찾으려고 모인 수사팀이야. 근데 고글이 지금까지 수익 모델 어떻게 적용했는지 왜
들쑤셔.”
놈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솔직히 말해. 튀고 싶었지? 내가 업무 왕따시키니까 존재감 보이고 싶었지?”
“그럼 선배는 제 존재감 지우려고 업무에서 왕따시켰습니까?”
“뭐?”
“지금 TF팀이 조사 진행한 거 하나도 국회에 보고 안 됐어요. 이러면 우리가 모인 이유가 뭡니까.”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지휘부가 협상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그건 제가 과장님께 들은 지시하곤 다릅니다. TF팀은 입법에 필요한 내용을 국회에 전달하기 위해 모인 거라 들었습니다.”
“이게 진짜.”
“그리고 제 역할은 TF팀 잡무가 아니라 면담 조사였습니다. 전 제 역할 충분히 다 한 것 같은데요.”
놈이 업무에서 왕따시킨 것보다 저 태도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업계에선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끝까지 눈치 보기라니.
현장 얘기 들어 보고 다각적으로 검토해 규제안이 필요한지 따져봐야 할 것 아닌가? 국회 분위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3년 동안 관련법이 계류되었을 것이다.
“하아- 어이가 없네.”
놈은 이를 비웃듯 실소를 흘렸다.
“누가 보면 이 팀장이 의원인 줄 알겠어? 혹시 자기 때문에 우리 지휘부 완전 비상 걸린 건 알아?”
저건 무슨 말이지?
“표정 보니 뭔 사고 친지도 모르는구먼. 너 때문에 지금 국장급 인사들 비상 회의 들어갔어.”
“그게 왜 저 때문…….”
“네가 보고 체계 무시하고 바로 국회에 보냈잖아. 이래도 더 할 말 있어?”
“그만!”
그렇게 언성이 높아질 때, 한 사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 사람 뭐 하는 짓들이야? 지금 공정위 안팎으로 시끄러운 거 몰라?”
“과, 과장님. 죄송합니다.”
시장감시국 과장으로 이번 면담 조사의 최종 책임자였다.
그는 두 사람을 노려보더니 눈을 흘겼다.
“이준철 팀장?”
“……예.”
“자네가 이번에 국회에 단독보고서 올렸지?”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서로 얘기 안 된 것 같은데 왜 상의 안 하고 단독으로 올렸어?”
“죄송합니다…… 주요 사안이라 생각했습니다.”
준철은 고개를 숙였다.
구 팀장의 질타는 그렇다 쳐도 과장님의 말을 가볍게 들어선 안 된다.
솔직히 찔리는 부분도 있었다. 구 팀장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상의하고 보고 체계를 다 지킬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
“국장님이 보자 하신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자네 보고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 하신다고. 구 팀장. 이 친구랑 함께 올라와.”
과장은 그리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둘만 남게 되자 구현수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네놈 때문에 국장님한테도 찍혔어, 놈의 얼굴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
국장실에 도착하니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실감이 났다.
“국장님. 두 사람 왔습니다.”
국장, 과장, 실장 등 이번 사건의 지휘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던 것이다.
“구현수 팀장?”
국장님의 시선이 닿자 구현수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예, 국장님.”
“자네가 이번에 스타트업 면담을 책임지고 있더군. 이 보고서를 입법처에 올린 것도 자넨가.”
구현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수사 진행 중 착오가 있었습니다. 그건 이준철 팀장이 저와 상의 없이 올렸습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그간 뭐 했어. 면담 조사 꽤 오래 한 것 같은데 왜 보고가 하나도 안 올라와.”
“그게 저…… 갈무리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갈무리?”
“인앱 수수료가 과한 건 사실이나, 고글이 앱 마켓 생태계를 조성한 공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런 부분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구현수는 모범 답안임을 확신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하기만 했다.
“윗선들 눈치 보느라 보고 안 올렸다. 이 소리 아닌가?”
“아, 아닙니다.”
“혹시 자네들 벌써부터 타협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고글에서 적당히 수수료 낮추면 이 수사 끝날 거라는.”
구 팀장은 사색이 됐다.
그게 정답 아니었나? 적당히 공포 분위기만 조성하는 게?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해?”
국장의 눈은 바로 옆에 있는 준철에게 향했다.
“절충안은 없습니다. 고글과 합의해선 안 됩니다.”
굳어 있던 국장님 얼굴에 살짝 흥미가 감돌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글은 자기들이 원하는 수수료 다 받아 낼 겁니다.”
“그래서 과거 사례 다 조사한 거야?”
“예.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앱 마켓은 경쟁자가 출현할 수 없는 구조라 오히려 더 받아 낼 수도 있습니다. 아예 수수료를 못 받게 하거나 인정하거나 둘 중 하나죠.”
당찬 대답에 국장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현 공정위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나?
내부에선 이미 가망 없는 조사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인앱 결제 금지법은 공상 과학 수준의 법안이라고 자조가 나왔다.
그래서 조사 부처가 얼마나 미적거리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 젊은 놈은 위원장님과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이 물러나지 않을 거란 건 어떻게 확신하나?”
“늘 그래 왔으니까요. 고글은 수수료 강행하기 전에 늘 타협하는 척했습니다. 수수료 일정을 미루거나, 낮추는 식으로요. 하지만 늘 결과는 같았습니다.”
장기적으론 항상 목표치를 이뤘다.
그게 바로 고글이 무서운 이유다.
준철이 조사한 자료엔 그 사례들이 전부 다 나와 있었다.
더러는 대학에서 학습권 침해라고 눈물에 호소한 적도 있었고, 더러는 스타트업 대표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패가 없었다. 그들은 항상 목표치를 이룬다.
“이준철 팀장.”
“예.”
“그래서 자네 방안은 뭐야? 보고서 보니 문제점만 나열되어 있던걸.”
“먼저 고글을 소환해 보시죠. 그러면 저희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국장은 가볍게 한숨을 짓다 고개를 저었다.
다 좋은데 역시 젊은 놈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임스 리는 국회 국정감사에도 출석 안 하는 놈인데, 부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경고는 될 테니.”
“뭐야? 설마 위협용으로 부르자는 건가?”
“네.”
“그게 실패하면? 그래도 고글이 인앱 수수료 부과하겠다고 버티면?”
“그럼 미국 설득해야죠. 글로벌 사례가 없다면 저희가 만들어야 합니다.”
지휘부들이 술렁였다.
누구는 나쁜 걸 몰라서 안 하나.
이미 세계는 다 고글을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총대를 메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눈총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리고 이들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약점?”
“네. 현재 앱 시장은 고글과 에풀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앱에서 발생하는 결제 시스템도 독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다른가?”
“페이 시스템 독점을 풀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놈들도 더는 말하지 못할 겁니다.”
정확히 말해 고글이 독점하고 있는 건 앱 마켓이 아니었다.
앱 마켓에서 발생하는 페이 시스템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공짜로 다운받을 수 있지만 결재할 땐 반드시 고글페이를 써야만 했다.
만약 이 페이 시스템을 독점하게 하지 못하면?
“이것만 열어 둔다면 고글의 30% 수수료 인정할 수 있죠.”
당연히 인정할 수 있다. 페이 시스템은 진행할 수 있는 업체가 많으니 이 안에서 수수료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또다시 예상할 수 없는 말이 나오자 지휘부가 술렁였다.
국장은 고심에 잠기더니 한 사내에게 물었다.
“심 과장. 만약 고글한테 페이 시스템만 독점 풀라고 하면, 어떻게 되지?”
“그럼…… 이 친구 말대로 수수료도 인정할 수 있죠. 가격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겼으니.”
“한데 고글이 응하지 않을 겁니다. 앱 마켓을 공짜로 뿌린 이유가 다 그 페이 시스템이니.”
국장님의 눈빛이 변했다.
“그럼 그거 자체로 협상할 수 있다는 거야?”
국장님의 의중을 알아챈 이들은 끄덕였다.
“네. 고글이 페이 시스템 독점을 풀든가, 아님 아예 수수료를 부과하지 말든가 선택지가 생기죠.”
“좋아. 그럼 그쪽 지사장 한번 소환해.”
국장님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건 분명 엄청난 카드가 될 거다.
그렇게 다들 바빠지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 한 사람은 얼빠진 얼굴을 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