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7
97화
타협안? (1)
-다음 소식입니다. 고글이 인앱 수수료를 강행하자 독과점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회는 이례적으로 입법조사처에 조사를 요구했는데요. 현재 공정위, 중기부 등 각계 부처가 실태
조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공정위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TF팀이 조사한 면담 자료를 언론에 흘리며 불을 지핀 것이다.
-다 죽으란 소리죠!
-저희 같은 스타트업들은 수수료 부과에 직격탄을 맞습니다. 폐업자가 속출할 겁니다.
-솔직히 고글보다 더 원망스러운 건 국회의원들입니다. 관련법이 3년 동안 계류되었는데 그간 국회는 뭘 했습니까?
스타트업 대표들의 인터뷰는 여과 없이 보도를 탔다.
빅테크들은 만반의 준비를 다 끝냈는데, 국회는 대비책을 아무것도 세워 놓지 않았으니 원성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개탄스럽게도 고글의 이런 행태는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클라우드 유료화 때도 각 대학들이 부당하다 주장했죠. 하지만 결국 강행하지 않았습니까? 국회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했더라면 그때 이미 관련법이 통과됐어야 합니다.”
이 행렬엔 법조계 석학들까지 가세했다.
그들은 전조 증상이 충분했는데도 손 놓고 있었던 국회를 줄곧 비난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나친 규제로 앱 시장의 위축 우려가 있다 말합니다만.”
“그건 핑계죠.”
“핑계요?”
“앱 마켓은 전 세계 IT 기업들이 벼르고 있는 시장입니다. 벽이 높다 뿐. 이런 시장이 위축될까요? 그냥 상대가 미국계 기업이라서 규제하기 어려운 겁니다.”
“하면 이번에도 인앱 결제 금지법 통과가 어려운 겁니까?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
“많이 어렵죠. 사실 한국은 선진국들의 법안을 빨리 잘 따라가는 나라지 선제적으로 주도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글로벌 사례가 없으니 규제안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뉴스원에 초대된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코를 훔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회의 역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역량이라 함은……?”
“공정과 상식에 대한 소신이 있는가. 이걸 미국에 설득할 수 있는가.”
“관건은 결국 미국이란 말씀이시군요.”
“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책임을 계속 회피하면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겁니다.”
인터뷰가 방영되자 뉴스원 게시판이 불타올랐다.
?없던 수수료 30%? 이야 이거 날강도 아니냐?
?업체 몇 곳은 이미 유료 결제 인상안 예고했던데.
사이버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인앱 수수료의 악영향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면 배달 수수료도 오르나요?
?고글 플레이로 앱 다운받았으면 당연히 그쪽에도 수수료 부과되는 거.
?그건 아니지 않나? 이번에 문제 된 업종은 엔터테인먼트 쪽이라던데.
?아따 거참 ㅡ.ㅡ 수익 모델 확인됐는데 너 같음 그거 하나 먹고 말겠냐?
?ㅇㅇ 인앱 수수료도 처음엔 게임 업계에만 적용된 거. 이번에 확장 성공하면 당연히 업계 전체로 번짐.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이번 인상은 시작이지 끝이 아님을.
다른 경쟁자가 나타날 수 없는 구조니 이젠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음을.
?국회는 뭐 하냐? 독과점 사업인데 당연히 규제안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니냐?
?ㅋㅋㅋ ㅂㅅ들 무슨 규제가 다 되는 줄 아나. 고글 규제는 미국하고 전쟁하자는 건데, 저게 통과되겠냐?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보나 마나 이러다 말 거. 고글이 이런 식으로 수수료 한두 번 올린 줄 아나.
?헛소리 ㄴㄴ 국회가 입법조사처 동원한 거 보면 이번엔 다르다.
?다르긴 개뿔. 그럼 한국이 미국한테 무역 전쟁하겠다고?
?ㄹㅇ 말이 안 돼. 여기서 징징댈 시간 있으면 빨랑 해외 주식 사라. 이미 고글 주식 산 서학 개미들 많다~
***
“확실해? 이거 진짜 공정위에서 뿌린 거야?”
“네. 거기 아니면 이렇게까지 언론 보도를 터트릴 곳이 없습니다.”
언론 보도가 터진 지 나흘째.
제임스 리 지사장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대학교수들 인터뷰까지 나간 거 보면 작정하고 여론 몰이하는 겁니다.”
“근데 우리한테 아직 연락 한 통이 없다?”
“……예.”
비서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공정위의 속셈을 모르겠다. 뒤에서 언론 플레이하는 걸 빤히 다 아는데 아직까지 연락 한 통 없지 않은가.
긴 정적 끝에 비서가 입을 열었다.
“지사장님. 공정위는 우리가 먼저 얘기 꺼내길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협상안을 가져와라? 안 돼. 협상은 늘 먼저 제의한 쪽이 불리한 법이야.”
“지금 저희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수수료 낮출 테니 언론 보도 그만하라고…….”
쾅-!
“그 얘긴 서로 진 빠질 때까지 싸우다 마지막에 꺼내야 해! 무턱대고 꺼내면 우리 패만 오픈하는 거야.”
호통 소리에 비서의 말문이 막혔다.
지사장은 추호도 그 얘길 먼저 꺼낼 생각이 없었다.
시작가가 15%면 최종가는 더욱 낮아지게 되어 있다. 그건 본사도 자신도 전혀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
“일단은 잠자코 있어. 여론이 달아올라도 국회에선 규제안 절대 통과 못 시킬 테니까.”
‘절대’라는 말을 강조했지만 사실 그조차도 점점 확신이 무너지고 있었다.
최근 여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언론에서 미국을 설득하네 마네 얘기가 떠돌고 있었으니.
아예 실체가 없는 얘기라면 소문으로 떠돌지도 않았을 터. 어쩌면 정말 국회가 움직일지도 모른단 의심이 들었다.
“하면 저희 입장 발표는.”
“계속 버텨, 한마디도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리 일러 두겠습니다.”
혼자 남게 된 지사장은 고심에 잠겼다.
여론은 완전히 기울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한국 놈들 냄비근성은 한두 번 경험해 본 게 아니다.
대학들이 학습권을, 개발자들이 생존권을 들고 일어났을 때도 묵묵히 버텼던 그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 대표 올라오라고 해.”
마음을 정리하고 기다릴 때, 김현석 대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 대표님.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 좀 나눠 봅시다.”
“말씀하세요.”
“언론에서 저렇게 때려 대는데 왜 우리는 아군이 없는 겁니까.”
“무슨 말씀인지.”
“무분별한 규제는 시장 질서를 저해한다. 앱 서비스는 기업들의 희생으로 유지됐던 서비스지 공짜가 아니다. 왜 이런 말을 해 주는 아군이 없느냐는 겁니다.”
음지에서 왜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하는 말이다.
“현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은 찾을 수 없습니다. 한다 해도 역풍만 불 겁니다.”
“그래서 계속 손 놓고 계실 겁니까.”
“……티 나지 않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김 대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곤 물었다.
“하면 저도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뭐든요.”
“본사의 의지는 정말 굳어진 겁니까?”
“말하지 않았어요. 이번에 수수료 부과 못 하면 임원들 줄사표 받을 거라고.”
“그렇다면 다시 설득해 주십쇼. 여론 반응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그리 말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자신이 옷 벗더라도 안 된다는 뜻이다.
지사장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다 끝난 얘기를 계속해서 꺼내는 이유가 뭐지?”
“애초에 불가능한 싸움이니까요. 지금 사태는 클라우드 유료화 때랑 다릅니다. 전 국민을 적으로 돌릴 순 없어요.”
쾅-!
“파급력이 더 크니까 더 성공시켜야 할 거 아니야! 당신 말대로 인앱은 열 배, 아니 스무 배도 더 남는 수수료야. 잠재력은 더 엄청나다고. 근데 이걸 가만둬?”
참으로 한심한 대표 놈이다.
잠깐의 고난만 이겨 내면 수백억의 이익이 확실해지는 일 아닌가.
아무리 욕받이로 앉혀 놓은 대표라지만 이 정도로 무책임할 줄은 몰랐다.
“다 필요 없으니 이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요.”
지사장은 사표를 찢어 버리곤 서류를 건넸다.
이 욕받이를 마지막까지 써먹어야겠다.
“이번 주 안으로 공정위 관계자 좀 만나고 와요. 우리가 앱 마켓 유지하는 비용과 희생도 어필해야지.”
“지사장님. 그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고작 그런 얘기로는 절 만나 주지도 않을 겁니다.”
“처음엔 완강하게 나가다가 슬쩍 그 얘기 꺼내란 말이오! 수수료 절반으로 인하해 줄 테니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
“또 괜히 미련하게 수수료 인하부터 얘기하지 마요. 더 챙겨 받을 수 있으면 우리도 더 챙겨 받을 거니까.”
15%도 가장 낮게 예상하는 인하분이다.
더 받아 낼 수 있으면 받아야지.
“……알겠습니다.”
김 대표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글에서 대표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자리다. 본사 실세들을 방어하는 자리. 수사나 소환받으면 대신 출석해야 하는 자리.
지사장의 지시는 이번 일까지 해결하고 옷 벗으란 의미로 들렸다.
***
준철은 왜 고글이 국회에서 악명이 자자한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글의 김현석 대표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놈들이다.
실세가 누군지 빤히 아는데 바지사장을 보냈다. 여론의 질타가 별 타격 없단 뜻일까?
“TF팀장 이준철이라고 합니다. 한데 어인 일로?”
“다름 아니라 저희 입장을 꼭 설명드리고 싶어서요. 혹시 지휘부를 만나 뵐 수 있습니까?”
“글쎄요. 불필요한 접촉은 알아서 막으라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저한테 말씀하시죠.”
준철이 단칼에 거절하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찌 됐건 자신도 고글의 대표 아닌가. TF팀 말단 같아 보이는 놈을 상대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면 잘 전달해 주십쇼.”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현재 업계가 많이 뒤숭숭합니다.”
“네.”
“타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모르는 건 아니나 저희도 저희의 사정이 있죠. 앱 마켓을 조성하기 위해 그간 저희는 많은 서버 개발비와 인력을 투자해 왔습니다.”
꽤 준비를 많이 해 왔나 보다.
서류가 저리 묵직한 걸 보면.
“그 결과 소비자들은 편리한 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의 편익이 늘었는데 독점 시장이라고 질타하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당국에서 무분별한 규제를 앞세우면 이는 곧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겁니다.”
준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힘주어 강조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당국에서 최대한 시장을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느 한쪽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 주십쇼. 타협할 게 있다면 저희가 그들과 직접 하겠습니다.”
준철은 이 기름진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대충 알아들었다.
협상하고 싶다, 근데 너희들은 힘이 좀 세 보이니 만만한 그놈들하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희도 이 사태가 오래 지속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현 인앱 결제로 인해 업계에 혼란이 막심합니다. 당연히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죠.”
준철은 그 서류를 받아 들고 말을 이었다.
“근데 왜 와야 할 분이 안 오고, 엄한 분이 오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