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98
98화
타협안? (2)
그의 얼굴이 쩍 갈라져 버렸다.
와야 할 사람이 아니고 엄한 놈이 와?
“제가 고글코리아의 대표입니다만?”
“의미 없는 얘기 계속하실 겁니까.”
“의미 없는 얘기? 그건 무슨 말이요.”
“국회가 부르면 국감에 대신 가는 사람, 문제 생길 때마다 사과 성명 내는 사람 말고. 왜 제임스 리 지사장 안 왔느냔 말입니다.”
껍데기만 사장인 게 무슨 대표라고.
고글이 욕먹을 때만 등장해 실세들 대신 비난을 듣는 사람 아닌가?
정체불명의 대화로 이자가 얼마나 발언권이 없는지도 알고 있었다.
“지금 날 모욕하는 거요?”
아픈 곳을 찌르니 바로 반응이 왔다.
“그 얘긴 제가 물어야죠. 고글은 왜 자꾸 공정위를 모욕합니까.”
“뭐요?”
“건설적인 논의를 하자기에 최소한 지사장이 올 줄 알았습니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고글의 역할론 얘기가 많아요. 그럼 서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고 일 마무리 지어야 할 거
아니요.”
김현석 대표는 그제야 깨달았다.
명색이 대표가 왔는데 왜 팀장급을 내보내나 했더니 일부러 의전을 낮춘 거였다.
자신의 지위는 공정위 팀장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하러 오셨으면 당연히 타협안도 함께 말씀하셔야지, 왜 자꾸 사람 떠봅니까. 혹시 우리가 먼저 타협안 꺼내길 기다립니까?”
더 이상의 신경전은 의미가 없었다.
김 대표는 무너진 얼굴을 추스르며 한 서류를 꺼냈다.
“……수수료 인하하겠습니다. 기존 30% 부과 방침을 15%로 낮추죠. 이 정도면 충분히 상생할 수 있는 조건이라 봅니다만.”
“조건보단 기간이 더 궁금하군요. 이건 언제까지 유효한 겁니까.”
“무슨 말입니까?”
“지금은 급하니 양보하는 척하다 나중에 다시 목표치로 인상할 거 아닙니까.”
“함부로 수수료 올리지 않을 겁니다. 그건 걱정 마십쇼.”
또다시 아픈 곳을 꼬집자 그가 발끈했다.
그 소리를 믿으라는 건가? 정체불명의 대화로 다 들어 본 얘긴데.
“그럼 저희 쪽 서류도 한번 보시겠어요?”
준철의 자료를 확인한 그는 시시각각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제 말이 맞을 것 같거든요.”
“…….”
“고글은 반발이 심하면 유료화 시기 연장하고, 수수료 좀 낮춰 주고. 그러다 결국 다 목표치대로 인상하지 않았습니까.”
“이, 이번엔 다릅니다.”
“저희도 이번엔 다릅니다. 그간 고글의 꼼수를 인정한 건 순기능을 인정해서였지, 독과점을 묵인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대체 저희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처음 고글이 발표한 수수료 30%. 그거 깎지 말고 그대로 부과하세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가 눈만 끔뻑였다.
“대신 페이 독점 푸세요.”
“뭐, 뭐요?”
“앱 마켓 조성한 공로를 인정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단, 지금 고글에서 앱 다운받으면 결제할 때마다 수수료 부과하잖아요. 그걸 고글페이 말고 다른 전자결제 시스템도 가능하게끔 독점
푸세요.”
김현석의 목소리가 대번에 높아졌다.
“그게 말이나 될 소립니까?”
“뭐가 말이 안 됩니까.”
“그 페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요. 우리가 앱 시장을 조성한 이유가 뭔데.”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현재 앱 시장은 고글 플레이에서 다운받으면 오직 고글페이로 결제하고.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으면 에풀페이로만 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결제 시스템을 허용하면 앱 마켓을 독점한 이유가 없어진다.
“그 보세요. 결국 독과점 지위 이용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이제 보니 공정위 속셈을 알겠구먼. 애초에 우리랑 협상할 생각도 없었죠? 그러니 일부러 무리한 요구를 해 대는 게 아니요.”
무리한 요구라…….
준철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걸 무리한 요구라 생각하면 이 대화의 합의점은 없습니다.”
“좋소. 마음대로 하쇼.”
그는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이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우리라곤 공정위 사정을 모를 것 같소?”
“무슨 말씀이죠?”
“어차피 법안 통과 안 될 거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소. 우리 뒤에 누가 있는데. 당신들이 과연 미국을 등지면서 이 법안을 통과시킬까? 나중엔 우리도 언플할 겁니다. 내부에서
진정성 있는 절충안을 제시했음에도 공정위가 걷어찼다고. 뒷감당 톡톡히 하셔야 할 게요.”
그가 문을 탕- 닫고 나가자 괜히 부끄러워졌다.
정체불명의 대화로 그를 내부 온건파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대화도 조금 의미가 있을 줄 알았다.
‘월급쟁이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지만 역시 적은 적이고, 아군이 될 수 없다는 건가.
그도 결국 고글맨이라는 걸 지독히 실감했다.
***
김현석 대표와 나눈 얘기는 국장님을 거치고, 위원장님을 또 거쳐 여의도의 한 다선 의원에게 전달되었다.
“고놈들 싹수없는 건 여전하구먼. 이번에도 허수아비를 보냈어?”
연로한 사내는 터럭 웃음을 지었다.
“위원장이 이해 좀 하시게. 원래 거기 지사장 놈 엉덩이가 무거워. 오죽하면 우리 국회에서 불렀는데도 대리 출석을 시키지 않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욕을 많이 먹어도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 아닌가.
국감 대리 출석 사건은 완전히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이건 국회가 아닌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단 뜻이기도 했다.
“신경 쓰지 마십쇼. 저희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위원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그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그쪽에서 수수료 낮추겠다고 한 걸 보면 서로 타협해 볼 만한 것 같네.”
“아닙니다, 의원님. 진정성이 전혀 없습니다.”
“진정성?”
“고글은 늘 이런 식으로 한발 양보하다가 결국엔 목표치 수수료를 다 부과했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다선 의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쯤에서 타협하고 싶은데, 공정위는 진짜 법안을 통과시킬 생각 같다.
“근데 사안이 많이 어렵구먼. 내가 이런 쪽엔 문외한인데, 독점 풀라고 한 얘긴 뭐야?”
“지금 앱 시장은 오픈자가 페이까지 독점하고 있습니다.”
“페이 독점?”
“한마디로 고글에서 앱을 다운받으면, 그 다운받은 앱에서 결제가 이뤄질 때마다 수수료를 떼 가는 방식이죠. 앱스토어에선 에풀에 가는 거고.”
세간의 말대로 수수료가 아니라 세금이다.
한 번 앱을 다운받으면 평생 결제 수수료를 내야 한다.
“그 벽을 허물면 뭐가 달라지는데?”
“결제 시스템만 다원화시키면 여러 경쟁 업체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수수료 경쟁이 이뤄질 겁니다.”
“그럼 그놈들한텐 치명적이겠구먼. 수수료를 깎는 것보다 경쟁자가 아예 없는 게 더 좋을 테니.”
상황 설명이 끝나자 공정위원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의원님. 혹시 여의도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리야 당연히 민심 따라갈 수밖에. 정쟁이 붙을 만한 사안도 아니고 여야 의견에 별 차이는 없네. 다만…….”
“문제는 미국이군요.”
자국 기업 규제하겠다는데 가만있을 놈들이 아니다.
“그것뿐 아니라 유례가 없는 법안이라는 것도 그래. 유럽 같은 데서 먼저 시행했으면 추세라고 둘러대도 그만인데, 이 법안은 우리가 처음이니.”
지금 가장 난감한 건 국회였다.
통과시키자니 미국의 반응이 우려스럽고, 부결시키자니 국민들의 원성이 두렵다.
갈피를 못 잡는 다선 의원을 보며 위원장은 초조하게 침을 삼켰다.
국회는 아마 지금 상황에서 끝내고 싶을 것이다. 고글이 수수료를 낮춰 줬으니 국민들에게 생색도 낼 수 있다.
만약 나중 고글이 수수료를 올려도 지금 국회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때 가서 못 막은 놈들의 잘못이 되는 거니까.
이번에 규제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영원히 끝일 것만 같았다.
“하면 저희가 미국 설득하면 통과시켜 주시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있나?”
“그쪽 연방거래위원장을 만나 보겠습니다.”
“라니에 칸?”
“예. 그 사람도 빅테크 강력 규제론자입니다. 만나서 저희 입장을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다선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런다 해도 결국 미국 사람이야. 자국 기업에 해가 되는 법안인데 이걸 협조하겠어?”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만 한 규제론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나마 강력한 규제론자인 그녀가 있을 때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만약 설득 못 하면 저희도 미련을 접겠습니다.”
다선 의원은 한동안 뜸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한번 해 봐. 대신에 미국에 법안 협조 못 구하면 이쯤 타협함세.”
***
미국행이 결정되자 가장 바빠진 건 시장감시국장이었다.
현재 TF팀을 이끄는 총책임자 아닌가. 한국 IT 스타트업들의 운명이 그의 어깨에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장들 모두 들어오라 그래.”
윗선에서 있었던 얘기를 전달하자 다들 분기탱천했다.
“절호의 기회 같습니다.”
“라니에 칸은 그래도 규제론자 아닙니까.”
어쩌면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자국 기업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데, 마침 그들의 공정위원장이 빅테크 강력 규제론자였으니.
“내가 직접 갈 거야. 수행원 두어 명만 붙여서.”
그런 만큼 국장님의 의지도 남달랐다.
“1팀. 과거 고글이 유료화 단행했던 자료들 있지?”
“그…… 이준철 팀장이 보고한 자료 말씀이십니까?”
“그래. 쓰기 좋아 보이던데 전부 번역해서 보고서로 준비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타트업들 면담 자료는 어디에 있지?”
“그건 저희 2팀에 있습니다. 그것도 이준철 팀장 자료입니다.”
“수수료 단행되면 바로 폐업할 수밖에 없는 기업 위주로 추슬러 봐. 그 면담 자료도 번역한다.”
그녀를 만나면 반드시 설득할 것이다.
혁신의 상징이었던 고글이 이제는 혁신의 장애가 되고 있다고.
당국이 나서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 전가될 것이라고.
과장들이 모두 물러가자 한 사내만 남았다.
“국장님. 수행원은 어떻게…….”
“영어 회화 가능하고, 업무 이해도 높은 사람 없나?”
“영어라면 김성일 과장 대동하시지요. 유학파 출신에 경험도 많습니다.”
“그래, 그럼 김 과장한테 빨리 전해. 출국 날짜가 3일 뒤니까 서둘러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수행원은……?”
나머지 한 사람을 놓고 국장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 이준철 팀장이란 놈한테 말해 봐.”
“예? 이 팀장이요?”
놀랄 노 자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어떻게 팀장급을 데려간단 말인가.
“지금 번역해서 보낼 자료 다 그놈이 올린 보고서 아니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당사자만큼 이해도 높은 놈 없지. 얼른 준비하라 그래. 우리도 시간 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