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07
“……!”
신음조차 내지 못한 성녀가 놓으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따를 수 없는 명령이었다.
“라, 라트반… 너무… 기, 깊어….”
“리나.”
애원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는 허리를 움직였다. 밝은 금발이 크게 출렁이며 그녀가 고개를 젖혔다. 이제 겨우 시작된 자극임에도 그것은 너무나 거대하고 강렬했다.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다시 라트반의 허리가 크게 움직였다. 그는 제 위에서 활처럼 휘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러니 당신 역시 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라트반은 그 사실을 그녀의 깊은 곳에 새기고 싶었다. 육체가 아닌, 더 깊은 곳에 있을 그녀의 영혼에.
그의 몸이 더욱 깊이 그녀의 안을 향했다. 그동안 참아 왔던 모든 욕망을 터트리며.
***
서서히 하늘 끝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샛별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밤새 울어 대던 새들의 울음소리도 잦아드는, 모두가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드는 시간, 이벨리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제 허리를 감고 있는 팔을 바라보았다. 잠들기 전의 격렬한 행위에 라트반이 단단히 제 손에 감아 두었던 붕대가 조금 풀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눌러놓고 있을 뿐인 큰 상처와 퍼진 독의 흔적에 그녀의 시선이 닿았다.
그 손바닥을 보던 이벨리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슬쩍 제 허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내렸다. 평소라면 이런 움직임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눈을 떴을 그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라트반이 정말로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낡은 창틀의 더러운 유리 너머 환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한참이나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 초연해져 버린 것 같은 무심함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한참이나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던 이벨리나의 입이 열렸다.
“…이리스라고.”
흘러 나간 성력이 어딘가에 모여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몸에 들어가 있을 줄이야. 이벨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참 후에 그녀의 입에서 그녀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내가 성녀야.”
이벨리나의 눈에 차가운 불꽃이 반짝였다.
“그건 나여야 해.”
***
아침이 되고 오두막을 벗어난 우리들은 밖에 묶어 놓은 말을 챙기고 다시 산길을 나섰다. 하지만 점점 험해지는 산길에 말을 타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말 역시 계속해서 달린 여독이 쌓인 상태라 피곤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 데려갔다가는 말도 우리도 힘들 뿐이었다.
결국, 산길을 걷다 찾은 마을에 들러 말을 팔았다. 말을 팔러 간 것은 라트반 혼자였다. 그는 여관에 들렀을 때처럼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 숨기듯 놔두더니 혹시라도 제가 늦거나 안쪽이 소란스러워지면 곧바로 몸을 피하라 단단히 일러두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든 작은 주머니를 들고 마을을 나왔다.
“라트반.”
내가 숲에서 나와 그를 부르자 그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별일 없었나요?”
“네, 역시나 아직 이런 곳까지는 대신전의 전령들이 오지 않았더군요. 어제 신전 기사단이 달려간 방향과 급해 보이던 모습으로 보아… 그는 아마 트리온으로 곧바로 향할 것 같습니다.”
“…하긴, 대신전에는 성녀가 필요하겠지요.”
그는 곧바로 이리스를 대신전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벨리나에게 그랬듯이. 우리는 다시 산길을 걸었다. 카를이 서두르는 만큼 우리도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으읏….”
라트반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순간 크게 흔들린 탓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드십니까?”
나는 그에게 업힌 채, 힘없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누가 들어도 괜찮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힘들다 하면 그는 다시 나를 품에 안아 귀한 도자기 옮기듯이 이 산길을 걸어갈 테니까. 마치 영화에서 공주님을 안아 들듯 하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건 정말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알려 주었던 다음 마을에서 머물다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푹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이제 그는 아예 나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누가 봐도 그는 멀쩡했으니까!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기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 아침에 또 했겠지….’
그가 아닌 나를 걱정하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밤에도 그랬지만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는 아무리 가져도 부족하다는 듯이 나를 안고 또 안았다. 그렇게 셀 수 없이 했음에도 그의 것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 사그라들긴커녕 어쩐지 더욱 흉흉해졌던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시 커진 그의 것을 보고 정말로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왜 그렇게 자고 있었던 거지….’
눈을 뜨면 당연히 라트반의 품 안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방의 구석에서 쪼그려 앉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밤사이에 옷을 새로 입기라도 했었는지 허리 쪽의 매듭이 새로 묶여 있었다. 잠결에 묶은 탓인지는 몰라도 항상 내가 묶는 것과 반대 방향에 매듭이 있었다.
잠에서 깬 내가 소리를 내자 라트반 역시 눈을 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떨어져 있는 나를 보더니 곧바로 나를 다시 안아 제 품에 안았다. 한참 후에 다시 기진맥진해진 나를 붙들고 그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당신께서 품을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다니….”
“그거야 라트반도 피곤… 아,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는 또 했었다.
‘진짜 엄청나게 참고 있었던 거였어….’
지금이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예 나를 품에서 놓지 않을 것 같았다. 아쉬워하며 내 옷을 입혀 주는 그를 보면서 나는 잠시 그와 함께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그와 함께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미래였다. 하지만 곧 나는 어젯밤 나를 붙잡던 그의 손을 기억했다.
내가 볼 때마다 미안해하는 것이 싫은지 붕대로 감아 버린 그의 손. 그 아래에 있을 상처와 독의 흔적.
‘이리스에게 가야 해.’
그녀가 가진 성력 전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라트반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만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기, 마을이 보이는군요. 크기를 보아하니 여관 정도는 있을 듯합니다.”
나를 업은 채 쉴 새 없이 걷던 그가 반가운 듯이 말했다.
“오늘은 저기에서….”
라트반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쭉 내밀어 본 순간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 그가 찾은 마을의 입구에 대신전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
“아직도 가짜 성녀와 라트반을 찾지 못했단 말입니까.”
차가운 카를의 목소리에 신전 기사단장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보통 기사단장이 공석이 되면 부기사단장이 자동적으로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사단장이 된 자는 부기사단장이 아니었다. 새로운 기사단장은 누가 보아도 기사단에서는 어린 축에 속할 정도로 앳된 인상이 남아 있는 자였다.
‘쯧.’
카를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라트반이 성녀와 도주하고 나서 곧바로 신전 기사단을 새로 구성했다.
신전 기사들은 기사단장이 전 동료를 살해하고 도주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라트반은 여전히 믿고 따르는 단장이었으며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매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마수와의 전투에서 그에게 목숨을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라트반을 붙잡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신전 기사단을 그만두고 대신전을 나가버린 이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수배령을 내렸으나 크게 떠들 수는 없었다. 그래 봤자 라트반을 따르는 이가 많다고 광고 하는 꼴이 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충성심은 카를에게는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라트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적은 기사들을 추려 내어 새로이 신전 기사단의 부대 하나를 만들었다.
카를은 그들을 하나씩 불러들여 이제부터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도주한 자들이 얼마나 흉악스러우며 끔찍한 짓을 했는지 설명했다. 어린 자들이었기에 설득은 쉬웠다. 넘치는 정의감은 카를이 의도한 방향으로 폭발했다. 하지만 의욕만 넘칠 뿐, 실력은 그에 달하지 못했다.
카를이 실력 있는 기사들이 떠나 버린 상황을 저주하며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카를 대신관님, 대신관님을 뵙고자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곤란하다 이르십시오.”
“하지만 대신전을 떠났던 기사들이….”
“그들이?”
그들이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서 나가보아야 했다. 서둘러 일어서자 그러잖아도 불편한 다리가 욱신거렸다. 새로운 성녀를 만나면 이벨리나 이상으로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다. 이 다리를 위해 제가 가진 성력을 죄다 바치도록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막의 입구에 내려진 천을 걷어 올린 순간, 카를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천막의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밧줄로 묶여 뒹굴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갑자기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누가 이런 꼴을 만들어 이곳에 두었단 말인가. 카를은 바닥에 있는 자들을 살펴보았다. 피와 먼지로 엉망이 되어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신전 기사단의 예복이었다. 황급히 얼굴을 살피자 낯이 익은 자들이 몇몇 있었다. 모두 마지막까지 라트반이 그럴 리 없다며, 그를 수배자로 올리지 말라고 카를에게 항의하던 기사단원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라트반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지자 그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며 무단으로 기사단을 이탈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카를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뒤에 서 있던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신전이 아닌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자들. 그들은 제국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금발의 남자는 카를을 보더니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군, 카를 신관. 아니, 이제는 대신관이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