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1
그렇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가려는 순간 줄의 끝이 무너지며 누군가 땅을 뒹굴었다. 그 탓에 쓰고 있던 후드가 벗겨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벗겨진 후드 아래로 주름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우둘투둘한 것들이 가득 나 있는 피부도. 그 노인은 나를 보고는 엎드려 빌었다.
“성녀님! 제발 저에게 축복의 기도를 내려 주십시오!”
그 노인을 바라보다가 라트반에게 말했다.
“라트반 단장, 저분을 제게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바로 다가갔다가는 주변의 사람들이 더욱 몰려들어 소란이 일어날 것 같았다. 라트반은 내 말에 다른 기사를 부르려 하다 마땅히 부를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더러운 창녀!”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무엇인가가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콰직!
부딪힌 것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이라고는 해도 당장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을 정도의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툭. 머리카락에서 점액질의 액체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고약한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이게 무엇인지는 길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발밑에 박살이 난 달걀 껍질이 뒹굴고 있었으니까. 냄새가 고약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썩은 달걀이었나 보다.
그렇게 멍하니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사이 다시 외침이 들렸다.
“네년이 밤마다 신전에서 남자와 뒹굴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고!”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어쩐지 이번에는 달걀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으려는 찰나 붉은 것이 시야를 덮었다. 그리고 따뜻한 체온이 나를 덮쳤다. 멀리서 퍽! 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잡아라.”
머리 위에서 라트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뱉듯이 짧게 말한 그의 말에는 한껏 누른 분노가 가득했다.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알 수 있었다. 라트반이 그의 예복 망토로 나를 감싸고 끌어안은 것이다. 그의 망토 아래에서 그의 팔에 잡혀 있었기에 밖의 상황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기사들의 고함 소리와 사람들의 짧은 비명 소리. 뒤이어 이어지는 놓으라는 거친 소리가 들렸다.
“네년 사타구니에 밤마다 남자 신관들이 머리를 박는다지!”
달걀을 던졌던 자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 몸이 굳었다. 아니라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매일 밤은 아닐지라도 이벨리나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닥치게 해.”
다시 라트반이 말하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욕을 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멈췄다. 대신 이제는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문이 진짜였던 거야?”
“나도 듣긴 했어. 성녀가 준 성물들을 팔아 치우는 남자들이 그리 많다던데.”
“대신전 안에서는 대단한 비밀도 아니라던데. 대신전의 신관들이 직접 말하고 다닌다니까!”
작은 수군거림은 곧 큰 웅성거림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축복을 바란다던 외침이 거짓말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들 듣긴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신전에서, 그것도 자신들의 눈앞에서 큰 소리로 성녀를 창녀라 욕하며 썩은 달걀을 던지는 자가 나온 순간, 사람들에게 소문은 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남자가 더 외칠 필요는 없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니까.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망토 아래 있는 나에게 라트반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무섭다. 지금 밖을 보면 나를 향해 쏟아질 시선들이 두려웠다. 내가 한 일이 아닐지라도 이벨리나로 살고 있는 한 모두 내가 받아 내야 할 경멸과 혐오의 시선들이다.
“더러운 창녀! 네년이 신전 기사단의 뒤에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 있겠어! 기사님들! 당신들도 알아야 해! 내 친척이 그러는데…!”
이번에는 라트반이 움직인 것일까. 나를 끌어안고 있는 몸이 흔들린 다음 둔탁한 소리가 나고 창녀라 외치던 사람의 목소리가 멎었다.
“모시겠습니다.”
라트반은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그대로 나를 이끄는 순간 그의 팔을 잡았다.
“잠깐.”
그렇게 대답하자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덮고 있는 망토를 걷어 내었다. 그러자 머리카락에서 뚝뚝 썩은 달걀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내가 대신전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조금 전까지 신나게 소리를 치던 사람들은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이 소문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소설의 내용대로 가는 건가.’
소설과는 달리 이벨리나가 예정대로 참석했어도 기도회는 성녀에 대한 더러운 소문을 대륙 전체로 퍼트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경멸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잠시 모두가 존재를 잊은 사람이 있었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가 거세게 떠밀려 넘어진 노인이었다. 내가 노인을 향해 걷기 시작하자 조금 전과는 달리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내 축복을 바라고 있습니까?”
노인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흉측하게 일그러진 피부가 보였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더욱 끔찍한 것들도 자주 보았기에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가장 기쁜 순간에도 신께서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당신이 원하는 순간에 그분은 곁에 계실 것입니다.”
축복의 말은 여러 개가 있다. 이 예식을 위해서 수십 개의 축복의 문구를 외웠건만 쓰이는 것은 이것 하나로 끝날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노인의 머리 위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아닌 라디오 방송이 한 사람의 버팀목이 되었듯이, 이런 가짜 성녀의 축복이라도 이 노인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때 노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
눈이 마주친 순간 알 수 있었다.
‘노인이 아니야!’
나를 보고 있는 푸른 눈은 무서우리만큼 맑았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병으로 인한 무기력함이나 피로함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에는 재미있는 것을 찾은 듯한 즐거움과 호기심이 반짝이고 있었다.
놀라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그가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거칠지는 않았으나 강한 힘이 들어간 손에 나는 일어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는 잡은 내 머리카락을 천천히 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부드럽게 입을 맞춘 후 나를 보며 말했다.
“다시 성녀님을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기도회 첫날, 마지막 의식은 그렇게 끝났다.
처음 이벨리나를 창녀라 외치며 소란을 일으킨 자들은 신전 기사단이 모조리 찾아내 기사단의 감옥에 가두었다. 신관들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며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굳이 들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의 목소리가 덤불 숲 아래에 있는 내 귀에 잘 들려왔다.
“이렇게 일이 터질 줄 알았습니다!”
“이제 그 망측한 소문들이 한 달 내로 대륙 전체에 퍼지겠지요.”
“사람들이 대신전을 향해 무어라 하겠습니까! 망신도 어찌 이런 망신이!”
신관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정말이지 우리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합니까. 이게 모두 다 성녀님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온갖 문제를 저지르다가 쓰러진 다음에 정신을 좀 차리셨나 했더니… 다 틀렸습니다.”
그렇게나 한참을 떠들던 그들은 이벨리나를 더 험담하는 일에도 지쳤는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신전의 창녀라 불린다고 하니… 이젠 나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남은 기도회 준비나 마저 하러 가야겠군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신관들은 곧 자리를 떠났다. 다시 후원은 고요해졌다.
모두가 간 다음에 몸을 일으킨 나는 더 이상 다가오는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벤치에 누웠다. 젖은 머리카락이 벤치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것을 집어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자 진한 꽃향기가 났다. 이제 더 이상 썩은 달걀 냄새는 나지 않을 터인데도 어쩐지 마지막 예식에서 맡았던 그 냄새가 코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피곤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전날부터 깊게 잠들지 못하고 새벽부터 움직였다. 거기에 하루 내내 기도회의 예식은 이어졌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피곤하게 만든 것은 역시 마지막 예식 때의 일이었다.
‘라트반이 무릎을 다시 꿇을 줄은 몰랐는데.’
방으로 돌아온 다음 그는 내 앞에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 책임을 물어 주십시오.”
그 말에 나는 왜 그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는지를 알았다. 오늘 내 경호를 책임지는 사람은 라트반이었다. 그런데 내가 모두의 앞에서 보기 좋게 사람들이 던진 달걀을 맞았으니.
“그대의 책임이 아닙니다, 라트반 경. 경에게 다른 일을 시킨 제 실수입니다.”
만약 내가 라트반에게 노인을 데려와 달라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문제없이 달걀을 막아 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라 말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성녀님께서 다치신 것은 곧 저의 책임입니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누가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경호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묻긴 하겠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내일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임무는 변동 없이 수행해 주세요.”
“하지만…!”
“명령입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그가 단호한 만큼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 책임을 묻든지 묻지 않든지 당장은 뭐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고.
명령이라 말하자 그는 마지못해 물러났다.
“이제 어쩐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려 보았지만 딱히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벨리나의 기억 내에서 어떻게든 가장 가벼운 처벌을 찾아보려 했지만 생각나는 건 하나같이 가혹한 것뿐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라트반의 처벌에 대한 것은 좀 더 천천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 문제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머릿속을 떠도는 의문이 있었다.
‘그 남자는 누구지?’
노인인 척을 하며 축복을 해 달라 말하던 남자.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는 다시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보았다. 그 남자가 입을 맞췄던 부분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다시 뵐 날을 기다리겠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