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24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크고 날카로운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공기를 잡아 찢는 것 같은 울음소리에는 듣기만 해도 서늘해지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구름이 흔들리나 싶더니 세찬 바람과 함께 구름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헥사?”
갑작스레 나타난 마수를 보며 라트반은 놀란 얼굴로 그것의 이름을 불렀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른 크기도 크기지만 날개도, 다리도 그 수가 늘어났다. 저 마수는 이곳에서 아주 가끔 보고되는 ‘성장’을 한 것이다.
‘젠장.’
검을 잡은 라트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헥사는 마을의 종탑 위에 내려앉았다. 벽돌이 떨어지며 먼지가 피어오르던 종탑은 결국 헥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헥사의 주변에 작은 마수들이 나타나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마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멀리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라트반은 알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마을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카를과 함께 있는 신전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그들이 헥사를 보고 당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전열을 정비해 마을로 달려갈 것이라는 라트반의 기대는 또 한 번 무참히 깨졌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카를이 뭐라 외치며 곧바로 뒤돌아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옆에 있던 신전 기사단 역시 조금 머뭇거리다 그를 뒤따랐다.
“하….”
라트반은 허탈한 신음을 흘렸다. 지금 신전 기사단이 마수로부터 등을 돌렸단 말인가?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그때 돌아서는 기사단에서 몇 명이 멈추더니 몸을 돌려 라트반을 향해 달려왔다. 그 와중에 저를 잡으라는 명령이라도 내렸을까. 하지만 가까이 온 자들은 라트반을 향해 소리쳤다.
“단장님!”
라트반의 눈이 커졌다. 단장의 자리는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다. 그런 자신을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은….
라트반은 곧 모습을 드러낸 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저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고지식한, 신전의 규율이 곧 세상의 모든 법이라 믿었던 기사였다. 라트반은 그가 카를을 놔둔 채 달려와 자신을 단장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카를은 대신관이며 자신은 타락한 기사일 뿐인데.
그런 라트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기사가 소리쳤다.
“저는 신전 기사단입니다. 사람들을 외면하고 마수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단장님을 따르겠습니다!”
함께 달려온 기사들이 그 외침에 동의한다는 거친 기합 소리를 내었다. 라트반은 몸을 돌렸다.
거대한 헥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그의 곁에 있는 기사들은 망설임 없이 헥사를 향해 달려갔다.
***
“하, 으, 으읏! 응!”
아슬란은 제 아래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눈을 감았다. 마치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는 것 같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느긋해 보이는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하반신은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가 크게 허리를 움직이자 흉악스러울 만큼 큰 검붉은 성기가 여린 그녀의 아래를 자비 없이 파고들었다.
“아, 으, 으응! 처, 천천히!”
울먹이며 애원하는 소리는 누구라도 동정심을 갖게 할 만했지만 아슬란은 못 들은 척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아, 아아!”
그가 움직일수록 교성이 높아졌다. 아슬란은 이런 그녀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좋았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채, 오직 자신만을 느끼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리나를 데려온 다음 며칠이 지났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그저 계속해서 그녀와 몸을 섞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인 탓에 이제는 몇 번이나 절정에 다다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혼절하듯 쓰러지면 아슬란은 그때마다 그녀를 돌보며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면 몸을 섞었다. 아주 잠시 숨을 돌릴 때 그녀가 “짐승 같아….”라고 중얼거리던 목소리에 그는 미소 지었다.
맞다, 자신은 짐승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자신과 함께해 줄 짐승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정신없이 아래를 드나들던 그가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닿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꿈틀거리면서 커지는 그의 것에 그녀는 다시 절정의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몸이 본능을 따라 침입자를 조여 왔다. 미칠 것 같은 사정감을 느낀 순간.
“헉…!”
아슬란은 제 모든 인내심을 끌어내어 천국으로부터 제 몸을 빼내었다. 구멍을 빠져나온 성기가 힘차게 정액을 뿌려 대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배와 가슴 그리고 얼굴을 그의 씨물이 뒤덮었다.
거칠던 리나의 숨소리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깍지를 끼었던 손이 스르르 미끄러져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아슬란은 다시 그녀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
천천히 사그라드는 자신의 것을 그녀의 음부 위에 올린 아슬란의 눈에 고민이 스쳤다. 아직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은 그녀를 한 번 더 안을까? 그러다 보면 다시 눈을 뜰 것이다. 원망을 담아 노려보겠지. 하지만 그 눈빛은 또다시 쾌락으로 물들 것이다.
하지만 아슬란은 한숨을 쉬고는 몸을 물렸다. 그러고는 엉망이 된 그녀를 제 품에 안았다. 그의 손이 얼굴에 튄 제 정액을 닦아 내자 그녀가 얕은 신음을 흘렸다.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던 아슬란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 난잡하고 격렬한 정사를 나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 섞이는 숨에 리나가 조금 얼굴을 찌푸리자 아슬란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그의 시선이 아직 그녀의 가슴과 배에 남아 있는 제 흔적으로 향했다. 이대로라면 곧 말라붙을 것이다. 닦아 내기 위해 손을 뻗던 아슬란은 엉망이 된 침대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차며 리나를 안고 일어섰다.
그가 가는 길마다 마치 하인들이 있는 것처럼 저절로 문이 열렸다. 그가 욕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벽하게 씻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욕실이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탕이 준비된 곳이다. 각기 다른 푸른색의 타일이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며 탕의 바닥에 촘촘히 박혀 있고, 천장과 벽에도 흰색과 금색의 섬세한 장식들이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함으로 따지자면 대륙에서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곳.
이쪽 세계에서 보내야 하는 오랜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조금 신경을 써 보았던 것을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아슬란은 그녀를 끌어안은 채 넓은 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딱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자 리나의 입에서 느른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슬란은 따뜻한 물을 손바닥으로 떠 올려 가슴에 남은 제 흔적 위에 부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말라 가던 그것이 물에 씻겨 사라졌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는 그가 물고 빨았던 붉은 꽃들이 드러났다.
그렇게 한참이나 리나를 씻기던 아슬란은 그녀를 끌어안고 앉아 천천히 그녀를 살폈다.
‘좀 더 준비해 둘 걸 그랬나.’
그가 원한 적은 없었지만 마법사들의 섬에 사는 이들은 아슬란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많은 물건들을 공물로 탑에 보냈다. 어차피 인간들이 하는 짓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는데. 그때 받았던 물건들을 리나에게 쓰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아슬란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공간이 일렁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 그 너머에서 수백 개의 장신구들이 쏟아져 내렸다.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 아래로 가라앉는 것들 중, 아슬란은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들어 리나의 목에 걸었다.
핏빛의 붉은 보석이 새하얀 피부 위에서 반짝였다. 그것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보던 아슬란은 또 다른 것을 집었다. 점점 그녀의 몸에 걸쳐진 것들이 많아졌다. 목에, 팔에, 다리에, 허리에.
예전에는 인간들이 왜 이런 것을 만들고 걸치나 싶었는데 이제야 그 기분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그의 손가락이 목에 걸려 있던 큰 보석을 밀어냈다. 그러자 그 밑에 있던 붉은 흔적이 다시 보였다. 아슬란은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이런 보석들을 걸고 있는 그녀도 아름답지만 역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게 가장 아름답다.
입을 맞추고 가슴을 빨아올리자 다시금 그의 아래가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쯧.”
그것을 알아챈 아슬란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아무리 몸을 섞어도 충족되지 않는 이유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절정에 도달해도 그는 리나의 몸 안에 제 정액을 쏟아 내지 않았다.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 그녀는 성력을 잃은 상태다. 만약 이대로 제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녀의 태 안에 자리 잡은 마수가 얼마나 빨리 자라나 그녀의 생명을 위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리나의 몸을 걱정하던 아슬란은 스스로의 행동에 의아함을 품었다.
그녀는 제 암컷이다. 제 새끼를 배기 위한 암컷. 하지만 지금 그는 그녀에게 제 새끼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아슬란은 젖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 암컷이 아니라면 자신은 그녀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톡. 톡. 젖은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 소리만 욕실 안에 조용히 울렸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아슬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암컷이 아니다. 그녀는….
“…내 반려.”
마수에게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그녀는 조용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마수에게 있어 새끼를 낳아 주는 암컷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다.
마수들은 제 새끼를 얻는 것을 무척이나 바란다. 새끼라고는 해도 사실상 자신의 분신에 가까우며 그 수가 많을수록 제힘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력이 강하더라도 암컷은 새끼를 품다 죽는 일이 많았기에 새끼를 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만약 제 새끼를 낳아 주겠다 하는 상대가 있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또한 가져다주었다.
수컷은 제 암컷이 새끼를 배고 낳을 때까지 모든 열과 성을 다해 보살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새끼가 태어나고 나면 관계는 거기서 끝이 났다. 암컷은 소중하나 거래를 하는 관계다. 그러니 거래가 끝나면 상대에게 더 이상 용무란 존재하지 않았다.
‘싫어.’
언젠가 리나가 저와의 거래를 끝내고 더 이상 마주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 순간, 아슬란은 깊은 불쾌감을 느꼈다.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아슬란은 그녀가 제 곁에 머물러 주길 원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해 주기를. 그러면 그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바람을 이루어 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을 때,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을 그는 흩날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그녀다. 그렇다면 그녀의 숨이 다할 때까지, 그녀가 내딛는 마지막 걸음까지 안전할 수 있도록 지키고 싶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거래가 아닌, 그녀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내주고 싶은 이 마음이 무엇인지 아슬란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아슬란은 제가 새끼 따위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라는 것은 새끼가 아닌, 그녀의 마음이다.
아슬란은 젖은 그녀를 안고 일어나 큰 수건으로 감싼 뒤 침실로 걸어갔다. 그는 침대에 앉아 제 품 안의 몸을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 둔 장신구들이 여린 피부에 상처를 낼까 걱정되는 탓에 그의 손길은 깨지기 쉬운 유리잔을 만지는 것보다 더욱 조심스러웠다.
손 가득 쥐어지는 풍만한 가슴을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감싸자 잔뜩 물리고 빨린 가슴 끝이 아팠는지 그녀가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안쓰러우면서도 어쩐지 더욱 괴롭히고 싶은 가학심이 생겨났다. 괴롭히는 그 순간에는 그녀가 오직 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슬란은 리나의 몸을 모두 닦은 뒤, 춥지 않도록 부드러운 천으로 된 옷을 입히고 침대 위에 눕혔다. 솔직히 이제 계약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저 이대로 이곳에서 영원히 그녀와 함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아니, 바라는 것이 하나 더 있긴 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면 저를 향해 웃어 주면 좋겠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며, 자신만을 원한다고 말하면 좋겠다. 그러면 그 어떤 일이든지 그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슬란이 생각한 순간이었다.
“읏….”
한참이나 더 감겨 있을 것 같았던 리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힘겨운 듯한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에 놀란 아슬란이 그녀에게 다가간 순간, 번쩍 그녀가 눈을 떴다.
짙어진 푸른 눈동자가 조용히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는 듯했다. 또한 철저하게 무감정한 시선이기도 했다.
“리나…?”
분명히 그녀인데 마치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는 시선에 아슬란은 놀라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몇 번 눈을 깜빡이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리나, 왜….”
“아슬란.”
그녀는 아슬란을 끌어안은 채, 귓가에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아슬란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데는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목을 끌어안은 손이 굵은 그의 목을 쓸어내렸다.
잘 잡힌 근육이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스치는 자리마다 꿈틀거렸다. 어깨선을 타고 내려오던 손가락은 아슬란이 입은 복잡한 옷 속으로 사라졌다. 세운 손톱의 끝이 그의 등을 조심스럽게 긁어내렸다.
아슬란은 숨이 턱 막혔다. 예상하지 못했던 리나의 행동에 그의 몸에서 순식간에 정염의 불꽃이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언제나 그가 먼저 그녀를 향해 욕정했다. 그가 탐하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그녀가 먼저 그를 원하고 있었다. 꿀꺽. 목울대가 형체 없는 거대한 욕망을 삼키느라 크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