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25
그의 등을 긁어내리던 손은 어느새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하나씩 천천히 그의 옷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강대한 마수를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드는 것은 강력한 마법도 아니고, 날카로운 검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동안 그의 몸을 감쌌던 천들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러다 리나의 손이 이미 솟아오른 아래에 닿는 순간 아슬란은 숨을 삼켰다.
“흣!”
그러자 웃는 듯,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몸이 잘게 떨렸다. 조금 전 보았던 그녀의 눈빛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아슬란은 다시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을 원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슬란이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려 할 때, 그녀는 손을 움직여 그의 하의를 끌어 내리더니 빳빳하게 머리를 세우며 튕겨 나온 그의 성기로 제 얼굴을 내렸다.
“읏!”
뇌가 타들어 간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아슬란은 세상이 녹아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감각과 생각이 경계 없이 섞여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에게 쏟아지는 연약한 폭력을 받아들이는 것뿐.
우뚝 솟은 선단의 끝에 부드러운 붉은 입술이 비벼진다. 그러다 작은 손이 검붉은 기둥을 붙잡았다. 손은 느릿하게 그 기둥을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하… 흣….”
그녀를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갑자기 왜 이러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한 조각의 이성이 그에게 말했지만 이미 아슬란의 몸은 완벽하게 침략자에게 굴복한 후였다. 악문 잇새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는 그녀의 머리가 움직일수록 거칠어졌다. 그의 것이 그녀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흘러내리는 타액에 번들거렸다. 그러다 그녀가 그의 것을 깊게 물고 빨아들인 순간, 아슬란은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제 씨물을 그대로 토해 냈다.
“리나, 당장 뱉…!”
여전히 그의 것을 물고 고개를 숙인 그녀를 황급히 잡아 일으키려는 순간 그녀는 제 입 안에 넘쳐 흐르는 그의 것을 삼켜 버렸다.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충족되는 정복욕이 아슬란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희고 풍만한 가슴으로 그의 얼굴을 살짝 누른 채 조르듯 말했다.
“아슬란, 날 안아요.”
그가 볼 수 없는 그녀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벨리나는 리나의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날 원하는 만큼.”
***
퍽!
라트반의 검에 마수 하나가 그대로 절반으로 쪼개졌다. 너무도 깔끔하게 썰려 버린 탓에 마수는 잠시 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갸웃거리다 떨어진 제 반쪽을 발견했다. 그것이 그 마수가 세상에서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아악!”
얼굴에 쏟아진 마수의 피를 닦아 낼 틈도 없이 뒤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라트반이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막 입을 크게 벌리고 갓난아이를 씹으려 하는 마수가 있었다. 라트반은 망설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집어던졌다. 두꺼운 가죽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마수의 팔이 아이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던 아기의 엄마가 미친 듯이 기어가 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제 손이 잘린 것보다 입에 들어갈 먹이를 잃어버린 것에 더욱 분노한 마수가 남은 한 팔을 어미와 아이에게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가까이 가기도 전에 라트반의 거친 발길질에 채여 허공을 날았다.
어미는 아이를 안고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갔다. 라트반은 그녀가 가는 쪽에 마수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어 마수의 목을 베었다.
“단장님!”
마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찾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장 쪽은!”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라트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날개를 퍼덕이며 마을 위를 날고 있는 헥사가 라트반을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를 쓰고 있군.’
저 마수는 이대로 그를 상대할 경우 크게 다치거나 밀릴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라트반이 제 검을 성력으로 휘감자 헥사는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작은 마수들을 불러내었다.
헥사는 제 휘하의 약한 마수들을 이용해 신전 기사단의 힘을 빼놓은 다음 그들을 덮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트반은 다가온 기사에게 물었다.
“이리스 양은?”
“데반과 함께 마을 회관에 있습니다!”
그 말에 라트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이 지켜 내고 있는 곳이 마을 회관이었다. 도망갈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마을을 빠져나갔지만 가족을 잃어버린 자들이나 다친 자들은 쉽사리 마을을 나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수들이 굶주린 독수리가 쥐를 채듯 낚아 갈 것이 분명하기에 기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마을 회관 안으로 보냈다.
“주변을 지켜. 소모전이 되기 전에 헥사를 친다.”
“네, 단장님!”
서늘하게 가라앉는 라트반의 눈에 기사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커져 버린 헥사를 보고도 라트반은 두려움 따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아슬란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헥사에게 ‘그래서 내가 저 검은 개새끼를 싫어해.’라고 중얼거릴지도 몰랐다.
라트반은 검을 고쳐 쥐었다. 그의 체력이 떨어지기 전, 헥사를 잡아야 했다.
‘그렇다면….’
실패 없이 한 번에, 헥사를 잡아야 했다. 그가 쥐고 있는 검에 푸른 성력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괜찮은 걸까?’
신음 소리를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밖을 바라보았다. 깨어진 유리창 너머로 마수, 그리고 그것들과 맞서 싸우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산속에서 있을 때는 그저 덩치가 큰,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검을 들고 마수를 상대하는 것을 보니 이리스는 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하긴… 내가 살던 곳에서는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사람들이었지.’
기사가 되겠노라 검을 들고 설치던 촌장의 아들이 생각났다. 검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이리스였지만 촌장의 아들은 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기사가 될 수 없을 것을 알았다. 이리스는 멍하니 창문에 붙어 밖을 보았다. 왜 자신이 기사들을, 라트반을 따라가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섭지 않아.’
저들과 함께 있으면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슬란도 그랬다. 처음에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잠든 그의 옆에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점점 그가 깨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이리스는 제 그림자를 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이 먼 땅으로 왔을 때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두려움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며 더욱 선명해졌다. 홀로 산을 돌아다닐 때마다, 촌장의 아들이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점점 덩치를 불리던 두려움에 언제나 이리스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 줬던 게 누구지? 아, 부모님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병에 걸렸던 어머니는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이리스의 손을 붙잡고 울었었다.
“이리스, 네게… 네게는….”
어머니는 끝내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리스가 떠오르는 슬픈 기억과 함께 제 손을 보고 있을 때, 회관의 문이 열렸다.
“모두 비켜요! 기사님이 다쳤어!”
그 말에 이리스는 놀라 달려갔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숲에서 그녀가 건넨 나무 열매를 받아 들고 고맙다 인사한 젊은 기사였다. 그의 가슴에 날카로운 것이 깊이 할퀴고 간 큰 상처가 보였다.
“기사님!”
놀란 이리스가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손을 댄 순간이었다.
팟!
거센 바람과 함께 이리스의 손에 푸른색의 성력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그 빛은 그대로 기사의 몸을 감쌌다. 기사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상처가 낫고 있어….”
“성력이야!”
사람들의 목소리에 이리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찌 통제해야 할지 모르는 힘이 다시 제멋대로 나타나 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이리스는 주춤주춤 문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탁!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이리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놀란 이리스가 뒤를 돌아보자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희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이리스의 눈에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보였다. 화려한 금실로 수 놓인 새하얀 신관의 옷.
척 보기에도 한쪽 다리가 심하게 휘어진 남자는 웃으며 이리스를 향해 말했다.
“여기에 계셨군요, 성녀님. 당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라트반을 쫓아 찾아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하필 이때 마수가 나타날 줄이야. 평온했던 마을에 마수가 나타나자 카를의 주변에 있던 신전 기사들이 그를 향해 외쳤다.
“대신관님! 출동 허가를 내려 주십시오!”
그 말에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신전 기사단이 마을을 지키러 가 버리면 그는 누가 지킨단 말인가? 카를 역시 변방의 신전에서 마수를 보며 지냈었다. 그렇기에 이곳으로 날아드는 마수가 중급 정도라는 것과 저것들은 어느 정도 배를 채우면 다시 제 세계로 돌아가 버릴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쓸모없는 마을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중요한 기사단의 인력을 낭비할 수는 없다. 게다가 당장 잡아야 할 라트반이 앞에 있지 않은가.
“아직 안 됩니다. 기다리십시오.”
보아하니 라트반 역시 고민에 빠진 모양이었다. 이대로 산으로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그가 평생을 믿고 따른 신의 가르침대로 약자를 돕기 위해 마을로 달려갈 것인가.
어느 쪽이나 상관없긴 했다. 마을로 달려가면 그 뒤를 따라가 라트반이 마수를 상대하기를 기다린 후, 힘이 빠진 그를 잡으면 되니까. 산으로 도망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 아직까지 기사단 내에 남아 있는 라트반에 대한 믿음을 깨트리기에 더없이 좋을 장면이 될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도주하는 전 기사단장이라니.
라트반이 어느 쪽을 선택할까 궁금해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더 큰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카를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건….”
이곳에 나타났던 마수 헥사였다. 문제라면 그것이 카를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흉측스럽다는 것이다. 헥사가 앉으려 하던 마을의 종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카를은 정신을 차렸다.
저것은 함부로 덤벼들 마수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라트반이 없는 데다가 그를 따르던 최정예의 기사들마저 빠져나간 신전 기사단이다. 결국 수는 많지만 쭉정이나 다름없는 기사단이라는 소리다. 레온 황태자의 제국 3기사단은 그들을 막을 뿐이지 공격을 하지는 않았기에 그간 허술함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마수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단장이 없는 기사단이 헥사의 공격을 얼마나 버텨 낼까. 그러는 사이 헥사가 다시 날아올랐다. 마수의 눈이 신전 기사단을 향했다. 기사단이 저를 공격할지 아닐지 가늠해 보는 눈빛에 카를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전군, 퇴각!”
그 말에 옆에 있던 기사들의 눈이 커졌다. 마수를 두고 싸우기도 전에 신전 기사단이 퇴각을 하다니. 신전 기사단이 마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부상당한 동료를 살리기 위할 때뿐이다. 그런데 퇴각? 기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의 명예가 바닥에 널린 돌멩이보다 더욱 하잘것없는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주춤거리며 망설이는 기사들을 본 카를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 머리를 돌렸다. 만약 헥사가 마을이 아닌 자신들을 목표로 삼으면 이곳에서 전멸이다. 카를은 제가 입고 있는 대신관의 예복을 소중히 그러쥐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다. 그는 대신전 그리고 새로운 성녀와 함께 숨이 다하는 날까지 영광 속에서 살고 싶었다.
한참을 달리다 카를은 뒤를 돌아보았다.
‘젠장!’
퇴각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불복한 채, 마을을 향해 달리는 기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라트반에게 달려간 뒤, 그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카를은 모두를 멈춰 세운 뒤 상황을 살폈다.
‘라트반이 도망가지 않고 헥사와 싸운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