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36
“왜…?”
“저대로라면… 회복한다…. 그렇다면… 저걸 신이 아니게… 만들어야….”
리나를 위해서임을 안 라트반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슬란의 몸을 잡아끌었다.
녹아내린 몸을 신의 핵 가까이로 끌어다 놓자 아슬란의 마력을 느낀 고대 신은 재빨리 몸을 뻗었다. 순식간에 아슬란의 몸이 금색으로 뒤덮였다. 그 옆에서 라트반은 검을 빼 들고 성력을 모았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그대로 베어야 하니까.
“아슬란! 라트반!”
그때 멀리서 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친 듯이 라트반과 아슬란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지금 저것을 아슬란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몸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머리마저 반쯤 녹아 버린 것 같은 저 마수를? 하지만 내가 소리쳤을 때, 나는 아슬란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분명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다가오지 마십시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라트반이 앞을 막아섰다.
“비켜요! 아슬란! 아슬란!”
나는 그런 라트반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조금도 비켜서지 않은 채 나를 붙잡았다. 나는 라트반에게 원망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아슬란을 저것에게 끌고 간 거예요? 아슬란!”
그를 향해 성력을 쓰려는 순간, 그에게 내 성력은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좌절했다. 성력은 마력을 가진 것을 치유할 수 없으니까. 결계 역시 만들어 보았자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가 원한 일입니다.”
“뭐라고요?”
“그가 저것을 신이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며…!”
라트반이 말하는 순간 뒤에서 눈부신 빛이 터졌다. 나는 팔로 얼굴을 가리며 아슬란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금색의 빛이 땅을 뒤덮었다. 하지만 완전한 금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은 빠르게 퍼지더니 나를 붙잡았다.
“리나 님!”
라트반이 급히 주저앉은 내 손을 타고 올라오는 빛을 베어 내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이 빛은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 빛은….
“…아슬란?”
팔을 부드럽게 쓸어 만지는 것 같은 이 감각은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내가 중얼거리자 내 앞에 빛이 모여들더니 천천히 익숙한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아슬란.”
어느새 내 앞에는 아슬란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듯이 투명했다.
“이, 이게 어떻게….”
“신과 섞인 거야. 핵이 부서진 탓에 다시 강한 힘으로 불완전함을 메우려는 것이 날 먹은 거지.”
덤덤하게 말하는 아슬란이었지만 그 말의 뜻에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런….”
“이건 신이야. 죽일 수 없는 존재지.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 다시 제 힘을 되찾아 그대를 죽이려 들 것이 분명해. 그걸 막으려면 이것이 신이 아니게 만들어야 했는데 기껏 생각해 낸 방법이 이런 것뿐이었어.”
아슬란은 빛으로 이루어진 제 모습이 조금 신기하다는 듯 시선을 내려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이제 이것과 계속해서 함께하겠지. 이것이 그대를 죽이려 드는 모든 순간, 그것을 막을 수 있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성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인간이다. 내가 아무리 이벨리나의 몸을 얻었다 한들 기껏해야 수십 년을 더 살고 사라질 존재였다. 무한히 살아갈 아슬란에게는 찰나에 가까울 그 시간을 위해 그는 자신의 존재를 버렸다.
아슬란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가 신과 함께 잠들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가. 그대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내가 지키고 있음을 잊지 말고.”
“아슬란….”
차오르는 눈물에 시야가 흐려졌다. 아슬란은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더니 고개를 숙였다. 분명 환영에 불과한 그의 모습일 텐데도 그의 입술이 내 눈물을 삼켰다.
“죽는 게 아니니 그런 얼굴 하지 말고. 이제는 반신(半神)이니 아주 가끔… 이 대륙에서 힘이 뒤틀려 불안정한 곳이 있다면 현신하는 것은 가능할 거야. 그러면….”
아슬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내가 대답했다.
“찾으러 갈게요.”
이벨리나의 기억이 알려준 지식 덕분에 그가 말하는 현신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대륙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들. 그곳은 이 세계를 유지하는 힘이 약해져 다른 세계와 섞이는 일이 일어나는 곳들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이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나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아슬란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런 곳뿐임을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당신을 찾으러 갈게요. 그러니 꼭….”
내 말에 아슬란이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있지, 내 반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슬란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붉은색을 띠는 고대 신의 빛이 천천히 땅 아래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것이 끝나 폐허가 된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은 하늘이 햇살을 뿌리고 있었다.
에필로그
돌무더기 가득한 광장에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초췌하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인 곳은 예전에 대신전이라 불렸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 하나 성한 것이 남아 있지 않은 폐허에 불과했다.
천년이 넘게 이곳에 쌓여 오던 아름다운 예술품들은 대신전이 무너지던 날 대부분 그 아래 깔려 사라졌다. 운이 좋게 그런 운명을 피한 것들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 그 원래의 값어치를 잃어버린 채 장물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대신전의 복구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아무도 대신전을 복구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전이 무너지던 날 이곳에 있던 많은 신관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대신전은 신관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대신전은 신의 사랑을 받는 한 사람, 성녀를 위한 곳.
그러나 이제 성녀는 없다.
“끌고 와!”
“태워 죽여!”
중앙 광장이었던 곳에는 장작이 높게 쌓여 있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건물 잔해에서 나온 나무 조각 하나까지 아낌없이 모아 쌓은 화형대는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사람들의 뒤쪽에서 밧줄에 묶인 채 질질 끌려 나오는 형체가 있었다. 그것을 보자 사람들은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제 아래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밧줄을 끌고 오는 이가 외쳤다.
“타락한 대신관이 왔소! 성녀를 마수에게 팔아넘긴 자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일까. 밧줄에 묶인 형체가 몸에 걸고 있는 넝마에는 대신관임을 증명하는 자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가까이 오자 사람들은 제 손에 든 것을 던지며 외쳤다.
“죽여!”
“대신관을 죽여!”
“성녀님을 돌려줘!”
“네놈이 마수를 불러 왔다지!”
퍽! 퍽! 사람들의 고함과 함께 돌멩이들은 조금의 자비도 없이 ‘그것’을 향해 날아갔다.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와 무리의 앞에 선 아이는 ‘그것’을 보자마자 징그러움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밧줄에 묶여 끌려오고 있는 것은 사람이라 부르기 힘든 것이었다. 얼핏 보면 마을의 축제 때, 여기저기서 굽고 있는 짐승의 구이처럼 보였지만 분명 머리와 팔다리는 사람의 것이었다. 하지만 다리의 한쪽은 보이지 않았으며 남은 다리 하나는 작고 짧은 데다가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뒤쪽에 서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구경하려 발끝을 세우다 포기하고는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저게 정말 대신관이래?”
“확실하다니까. 저기 한쪽만 남은 다리를 봐. 뒤틀린 걸 보면 카를 대신관이 틀림없어. 대신전이 무너지기 전에 내가 본 적이 있거든.”
“…그런데 정말 대신관이 마수를 불러 왔대?”
“그렇대. 그것뿐만 아니라 마지막 성녀님을 마수에게 팔아넘겼다더군.”
“나도 들었어. 변경 지역에 나타났던 성녀님을 강제로 대신전으로 끌고 갔대. 그때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던데? 성녀님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셨다더군. 그래서 대신전에서도 울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대. 어쨌거나 그래서 대신관이 신의 노여움을 사 죽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다고 하던데?”
대신전이 무너진 날부터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소문이 돌았다. ‘선행을 베풀고 인망이 두터웠던 대신관이 사실은….’으로 시작되는 소문은 제국군이 와 구호물자를 나눠 주는 곳에서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모든 신전이 무너지면서 대륙 여기저기에서 마수들은 더욱 자주 출몰하게 되었다. 예전이라면 그것들을 상대했을 신전 기사단 역시 해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마수는 거침없이 대륙의 깊숙한 곳에도 모습을 나타내었다. 과거 마수로부터 안전했던 땅에도 피해가 생겨나자 사람들의 불안은 빠르게 몸을 불렸다.
그런 상황에 어느 날 갑자기, 대신전의 폐허에 이것이 나타났다. 혀가 없어 말을 못 하며, 모든 힘줄이 잘려 기어가는 것밖에 못 하는 이것이. 몸에 남아 있는 상처들을 보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상처가 생기면 그것은 금세 아물었다.
예전이라면 신의 기적이라 불리었을 그것은 끔찍한 몰골 탓인지 저주받은 것으로 불렸고 사람들은 곧 그것에게서 예전 카를 대신관의 흔적을 찾았다.
동시에 대신관이 이 모든 재앙을 불러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드디어 사람들의 불안이 먹이를 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