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48
채찍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두 마리의 군마가 힘차게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리나와 라트반의 모습이 멀어졌다.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손으로 내젓던 레온은 레오나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러자 레오나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아빠, 우리는 언제 가?”
“곧바로 따라가면 라트반이 눈치챌 거야. 그러니 저녁에 출발하자. 하루 정도는 떨어져서 따라가야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레온의 대답에 레오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비밀 작전이야!’
아이에게는 비밀이라는 단어도 작전이라는 단어도 세상에서 제일 매혹적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개가 함께 있다니. 레오나는 제가 책 속에 나오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은 기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니 어서 가서 꼭 가져가고 싶은 것만 가방에 담으렴.”
“응!”
레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오나는 쏜살같이 제 방으로 달려갔다. 그는 제 곁으로 다가온 기사단장에게 명령했다.
“근위대를 준비시켜. 열 명 정도만. 마법사 한 명과 스크롤은 따로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레온은 몸을 돌려 리나가 떠난 자리를 보았다. 어느새 흙먼지는 사라져 있었다.
‘뭔가 있어.’
리나가 짐을 준비하러 들어갔을 때, 그는 레오나에게 물었다. 위험한 게 무엇이냐고.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느냐고. 하지만 레오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숨기려 한다기보다는 제 스스로도 어떻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게 분명해.’
그 일에 저와 레오나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
황궁을 벗어난 리나와 라트반은 쉬지 않고 말을 몰았다. 하루 종일 달리자 튼튼한 군마라 해도 흰 거품을 물며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쉴 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해는 져 버렸고 근처에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노숙을 선택한 두 사람은 깨끗한 개울가를 찾아 말들에게 물과 먹을 만한 풀을 준 다음 가방에 있던 사과를 꺼내 주었다.
그사이 라트반은 빠르게 모닥불을 피우고 리나가 잘 자리를 마련했다. 베게는 없었다. 그의 다리가 그것을 대신할 터였으니. 말들이 잘 쉬는지를 확인한 리나가 개울에서 간단히 씻은 다음 라트반이 준비한 자리에 누웠다.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잠자리였다.
“라트반.”
하루 종일 달렸으니 지쳐 잠들어야 할 텐데도 한참이나 꼼지락거리던 리나가 그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레오나가 말한 위험이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위험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리나는 주머니 안에 있는 목걸이를 만졌다. 레오나의 마력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억눌러 주는 목걸이였다. 오래전, 황궁에서 마법사들을 제압하는 데 쓴 아티팩트라고 했었는데 어쩌면 이것 역시 아슬란이 갖고 있던 석판처럼 신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걸 줬다는 것은… 마력에 관련된 문제일 텐데….’
리나는 슬쩍 제 손끝에 성력을 모아 다시 목걸이를 만져 보았다.
팅!
그러자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맑은 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이 얼얼했다. 리나가 놀라 몸을 움츠리니 라트반이 한숨을 쉬며 그녀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문질렀다. 얼얼했던 통증이 천천히 그의 손의 온기에 녹아 사라졌다.
“고민은 그만하고 어서 주무십시오. 도착하면 싫어도 알게 되겠지요.”
“으응….”
그의 말에 리나는 모포를 목 끝까지 올리고 눈을 감았다. 곧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미친 듯이 달리기를 나흘. 군마들이 실신하기 직전이 되었을 때, 그제야 높은 산맥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리나와 라트반은 말을 산맥 아래의 마을에 맡겨 두고 그곳에 머물고 있는 정보원을 찾았다. 그는 리나와 라트반에게 레온의 인장이 박힌 편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두 사람을 산맥 안쪽으로 안내했다.
몇 개의 산을 넘어갔을까, 갑자기 바람이 변했다.
‘서늘해.’
산의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었다. 축축하고 서늘한 바람에는 땅의 냄새가 짙게 풍겨 왔다. 지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인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하십시오. 동굴 주변의 이끼가 무척 미끄럽습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기사 몇 명이 보였다.
“그간 혹시 변한 것이 있습니까?”
정보원이 묻자 기사가 동굴 안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특별히 변한 것은 없지만 빛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곧 소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소멸이라는 말에 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도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일단 모시겠습니다.”
기사가 앞장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들어가지 않아 벽에는 그을린 자국이 보였고 여러 가지 가재도구가 쌓여 있었다. 리나가 그것을 바라보자 기사가 재빨리 설명했다.
“원래 근처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동굴이었습니다. 산을 타고 약초를 캐거나 사냥하는 사람들이 자주 쉬었다 가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안쪽은 들어가기도 힘들뿐더러 갑자기 수직으로 꺾이는 동굴인 탓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몇 주 전 비를 피하던 마을 사람이 밤이 되자 안쪽의 수직 동굴에서 이상한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마을로 돌아와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기사의 말대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동굴이 갑자기 좁아지며 걷기 힘들어졌다. 그녀의 뒤에서 라트반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힘겹게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앞서가던 기사가 걸음을 멈췄다. 안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었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말한 기사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램프를 들어 리나에게 안쪽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건….”
길이 끝나는 곳에 큰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내밀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편지에 적혀 있던 수직 동굴이었다. 하지만 편지에 적혀있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리나의 표정을 알아차린 기사가 먼저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나타날 겁니다.”
그의 말대로 리나는 가만히 동굴 속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녀의 심장이 거세게 쿵쿵거렸다.
‘정말로 아슬란일까?’
그의 마지막이 아직도 선명하다. 신과 섞였던 그의 모습이. 어쩌면 불안정한 곳에서는 현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목소리. 그 말에 꼭 찾으러 가겠다 약속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일까.
잠시 후, 어둠만이 가득한 동굴의 아래쪽에서 금색의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빛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다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금색의 빛무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빛의 원이 생겨났다. 그러다 빛이 동굴 안에 가득 찬 순간. 빛의 너머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희미하던 것들이 점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다 그것들이 확실하게 보이는 순간 리나는 빛 너머로 보이는 것이 이 세계가 아님을 알았다. 나무와 비슷한 것들이 보였으나 움직이는 것들은 이 땅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마수. 이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크기와 형태의 짐승들은 빛의 너머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기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나는 기사에게 물었다.
“이 빛은 한 번 나타나면 얼마나 유지되나요?”
“매번 다릅니다. 빠르면 눈 몇 번 깜박이기도 전에 사라져 버릴 때도 있고 주민들의 말을 들으면 하루 넘게 계속 나타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길게 나타났지만 사라지기까지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때, 빛 너머의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서로를 물어뜯던 마수들이 갑자기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도망갔다. 마수들이 사라진 자리에 곧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나타냈다.
“…아슬란?”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의 컬을 가진 거대한 사자의 형상. 그것만을 보면 분명 아슬란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제가 기억하고 있던 아슬란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리나는 곧 답을 찾았다.
“…작아?”
물론 저 집채만 한 덩치를 작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본 아슬란의 본체는 저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그와 비교하면 지금 보이는 모습은 크기가 절반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한참이나 아슬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리나가 기사에게 질문했다.
“혹시 이 너머로 접근을 한 적이 있나요?”
“주변을 지킨 이후로는 더 접근하지 않았습니다만 처음 이곳을 발견했던 주민들이 신기해서 건너편에 뭔가를 집어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주민들이 보았을 때는 들개와 늑대의 중간 정도 되는 짐승이 있길래 돌멩이를 던져 본 모양입니다. 던졌을 때 돌멩이는 건너편으로 갔고 돌멩이에 맞은 짐승이 주민들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빛이 사라지는 바람에 건너편의 것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그 말에 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제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안을 뒤적였다. 곧 그녀의 손에 얇고 긴 줄이 들려 나왔다. 야외에서 천막을 칠 때 쓰는 줄이었다. 그다음 리나는 가방 안에 있는 것들 전부를 다 바닥에 꺼내 놓은 다음 가방끈에 줄을 묶었다. 몇 번이고 단단히 묶인 것을 확인한 리나는 빛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아슬란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다람쥐와 비슷한 작은 동물이 있었다. 리나는 재빨리 가방을 빛 너머로 던졌다.
원래 이곳은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아주 깊은 동굴이었다. 그러니 그다지 길지 못한 이 끈이 팽팽하게 당겨져야 할 텐데, 가방이 빛 너머 풍경의 땅에 떨어진 순간 끈은 더 이상 풀어지지 않았다. 건너편에서는 소리가 났던 것일까. 작은 동물은 리나가 던진 가방을 경계하는 듯하더니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그 순간 빛무리가 다시 거세게 회전을 시작했다. 동시에 건너편의 모습이 흐려지면서 리나가 들고 있는 끈이 폭풍에라도 휘말린 듯 흔들렸다. 그 탓에 놀란 리나가 끈을 끌어당겼지만 던질 때와는 달리 쉽사리 끌려 오지 않았다.
“앗!”
그러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넘어지려는 순간, 보고 있던 라트반이 재빨리 리나를 붙든 다음 손을 쳐 그녀가 끈을 놓게 만들었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끈의 끝이 빠르게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잠시 후, 마치 빛이 뱉어 낸 것처럼 가방이 맞은편에서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
가방을 본 세 사람의 눈이 커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멀쩡한 가방이었는데 몇 초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가방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라트반은 그것을 제 앞으로 끌어와 살폈다.
“마수의 짓은 아니군요.”
처음에는 건너편 세계의 마수에게 당하기라도 한 것인가 하고 봤지만 가방에 이빨이나 발톱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왜….”
좀 더 살펴본 라트반이 가방을 조심스레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대답했다.
“이건 오래되어 삭은 겁니다.”
“무슨 소리예요? 얼마나 지났다고.”
라트반의 말에 리나와 기사는 가방을 보았다. 처음에는 라트반이 뭔가 잘못 안 게 아닌가 싶었지만 두 사람은 곧 말을 잃었다. 정말로 수십 년 어딘가 던져져 있던 것처럼 가방은 낡아 해져 있었다.
“…….”
등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이곳에서는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저쪽에서는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리나는 옆에 서 있던 기사에게 말했다.
“안내 고마워요. 우리는 이것을 좀 더 확인하고 갈 테니 밖에 나가 있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린 기사는 고개를 숙이고 두 사람을 조심스레 피해 왔던 길을 돌아 나갔다. 그가 받은 명령은 이곳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도착하는 사람들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명령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