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50
‘…나를 몰라.’
하긴, 알았다면 이렇게 누워 있을 아슬란이 아니다. 그때 아슬란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누워 있던 자리는 벌써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리나를 향해 다가왔다. 몸이 저절로 굳었다. 저를 모르는 아슬란은 그저 난폭한 마수일 뿐이다. 여차하면 성력으로 그를 제압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킁킁.
아슬란이 제 코를 가까이 가져오더니 리나의 냄새를 맡았다.
“……?”
아슬란은 몇 번이고 냄새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리나의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내 냄새가. 너에게.’
“……!”
그의 말에 리나는 몸을 움찔했다.
‘아직도 나에게 아슬란의 냄새가 남아 있었던 건가?’
그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아슬란은 제 흔적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리나가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던 중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들이야!’
약해진 아슬란을 노리고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순간 리나는 몸을 돌렸다. 이런 상태의 아슬란이라면 저들에게….
콰콰쾅!
그 순간 주변에 붉은빛이 퍼져 나가더니 하늘에서 번개와 불덩어리가 나타나 바닥에 내리꽂혔다. 주변에 있던 나무들은 번개를 맞는 순간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나 터져 버렸고 그 위를 끔찍한 열기가 뒤덮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던 마법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숯이 되었다.
“…당할 리가 없지.”
그가 다치는 모습과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작은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가 약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리나는 제 엄청난 착각에 헛웃음을 흘렸다.
‘대답하라.’
리나가 가만히 있자 아슬란이 대답을 재촉했다. 리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당신과 내가 미래에서 만난 사이인데 어쩌다 보니 아이도 있다고? 그리고 당신은 나를 살리려고 반신이 되었다고?
리나는 제가 생각해도 너무나 허무맹랑한 소리임을 알고는 고민에 빠졌다.
‘어서!’
‘
그사이를 참지 못하겠는지 아슬란이 재촉했다. 한 번도 아슬란은 그녀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기에 리나는 깜짝 놀라 그에게 말했다.
“귀 아파요, 아슬란!”
그러자 아슬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내 이름. 어떻게?’
“…….”
‘누구도. 모른다.’
‘
“…….”
실수했다. 날카로워진 아슬란의 시선을 느끼며 리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아슬란이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리나를 물었다. 비명을 지르려 하던 리나는 그가 마치 어미 개가 새끼를 옮기듯 제 뒷덜미의 옷을 물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아슬란이 다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당장 성력으로 그를 후려칠까 고민하던 리나는 일단은 가만히 있어 보기로 했다. 얼마나 날았을까. 섬의 끝자락으로 온 아슬란이 땅에 내려앉았다. 날아오는 길에 본 섬의 가운데에는 깊은 절벽이 있고, 그 사이에는 마수들이 둥지를 튼 상태였다. 아슬란이 내린 곳은 그 절벽 너머였다.
‘여기가 아슬란의 영토인 것 같은데.’
집이나 길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마법사들은 마수들이 사는 절벽을 넘어오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슬란은 물고 있던 리나를 내려놓았다. 그로서는 나름대로 조심한 행동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힘 조절이 안 되었는지 리나는 바닥을 뒹굴었다.
아슬란은 고개를 숙여 그런 리나의 몸을 킁킁거리며 다시 냄새를 맡았다.
‘기분 나쁜 냄새. 다른. 수컷..’
아슬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다. 그런 아슬란의 모습에 리나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것은 이 세계로 떨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아슬란이다. 그렇기에 그의 감정은 순수한 마수의 것 그대로였다.
‘역시 죽인다.’
아슬란의 말은 진심이었다. 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성력을 사용하면 잠깐 동안은 아슬란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좀 더 확실하게 그를 제압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바닥을 기던 리나는 제 옷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목걸이!’
레오나가 준 목걸이를 소중히 보관하기 위해 안쪽의 깊은 주머니에 넣어 뒀었다. 리나는 서둘러 그것을 꺼냈다.
‘마력을 제압하는 아티팩트였지.’
그래서 평소에는 레오나의 마력을 눌러두기 위해서 쓰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누를 수 있냐 물어봤을 때 레온은 이걸로 아직까지 제압하지 못한 자가 없어서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자신도 모르겠다 했었다. 리나는 그것을 강하게 쥐었다. 그 한계를 지금 실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목에 걸어야 하는 건 아니니.’
닿기만 해도 이 아티팩트는 효과를 보인다고 했다.
리나는 몸을 일으켰다. 저렇게 경계하고 있는 아슬란이 순순히 제 손에 닿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리나의 손끝에 빠르게 푸른빛이 모여들었다. 다행히 그녀의 성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슬란은 갑작스러운 리나의 변화에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성력이 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것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리나는 제 성력을 있는 대로 전부 끌어모으면서 외쳤다.
“미안해요, 아슬란!”
리나는 있는 힘껏 제 성력을 아슬란을 향해 휘둘렀다.
퍽!
섬 전체에 뭔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리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아름답네….”
리나는 절벽의 끝에 있는 바위에 앉아 해가 저물어 가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드러누운 다음 영원히 바라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제 뒤에서 벌거벗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아슬란을 보면 그럴 생각이 싹 가시고 만다.
잠시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피했던 리나는 몸을 돌려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아슬란. 혹시 마법으로 옷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크르르.”
그녀의 질문에 아슬란의 이를 드러내었다. 리나는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성력을 끌어모아 그를 후려친 다음 그가 빈틈을 보인 순간 목걸이를 그의 발톱에 걸었다. 레온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순식간에 아슬란의 마력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점점 아슬란의 몸이 줄어든다 싶더니 어느새 그는 그녀가 기억하던 인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머리카락은 산발에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데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는 것이지만.
리나는 재빨리 목걸이를 그의 목에 건 다음 성력을 이용해 그것을 그의 목에 고정시켰다.
‘라트반과 함께 야외 노숙을 하면서 성력을 이리저리 편하게 이용할 방법을 연구했던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어쨌거나 아슬란은 그렇게 제압되었다. 운이 좋았다. 그는 다쳤었고 아티팩트는 생각보다 강했으며 성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리나는 팔짱을 낀 채 저를 노려보는 아슬란의 모습에 심란해졌다. 예전에 그가 좀 헐벗은 복장을 하고 다닌다 생각했는데 지금처럼 완벽한 나신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그가 그동안 정말로 노력해 껴입고 다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자주 상상을 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울지 않을까 했었는데 정작 만나니 그를 개 패듯 두들겨 팬 다음 벌거벗은 몸을 심란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게 될 줄이야.
‘하긴, 내가 만난 아슬란은 아니니….’
아슬란은 맞지만 그녀가 찾던 아슬란은 아니다. 숨길 수 없는 실망이 리나의 얼굴에 떠올랐다.
‘일단 확실한 건 여기가 과거의 대륙이라는 건데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한다?’
일단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했다.
‘모두 난리가 났겠네….’
저를 부르던 라트반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지금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지 생각하니 누가 찌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뒤따라 들어온 건 아니겠지?’
가방이 그리되는 꼴을 보았으니 위험하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들어온다 해서 자신과 같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면 라트반은 좀 더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을 한 다음에야 움직일 것이다.
계속해서 리나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곳에서도 기적들을 찾아서 원래의 시간으로 건너가야 하나? 하지만 원래의 세계에서처럼 레온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찾기 힘들 텐데 혼자서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저쪽에서는 아직도 동굴 안에 있는 기적이 나타나고 있을까? 시간이 저쪽의 세계와 이쪽의 세계가 똑같이 흐르고 있는 것이긴 할까? 이러다 돌아갔는데 설마 아무도 없는 건 아니겠지? 그것보다 레오나에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건 어쩐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머리가 아파 왔다. 게다가 성력을 있는 대로 끌어 쓴 탓에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일단 쉴 곳과 먹을 것이 필요했다. 리나는 근처를 뒤져 봐야겠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갑자기 시야가 빙글 돌았다. 휘청이던 몸이 힘없이 풀밭 위로 쓰러졌다.
‘맙소사.’
아무래도 제 생각보다 성력의 소진이 더욱 심했던 모양이었다. 리나는 스르르 감겨 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벌거벗은 채 서 있던 아슬란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설마 이런 곳에서 저런 아슬란에게 죽게 되는 걸까.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리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이상한 인간이야.’
아슬란은 쓰러진 여자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한숨을 푹푹 쉬며 저를 바라보던 눈은 굳게 감겼고 입은 가는 숨을 쌕쌕 내쉴 뿐이다. 땀을 흘리며 몸을 움츠리는 것을 보니 추위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아슬란은 손을 뻗어 여자를 만져 보았다. 긴 손가락이 여자의 팔에 닿는 순간 그는 제 손에 놀라 황급히 손을 떼었다.
‘인간의 모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