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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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는 풀숲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조금은 엉성하게 만들어진 통나무집이 보였다. 마법사들의 섬에는 원하는 시약의 재료를 얻기 위해 산 안쪽에 거처를 만들어 놓고 지내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집임이 분명했다. 이리저리 살피던 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있다!’
역시나. 날씨가 좋으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통나무집 앞에는 긴 줄에 널린 옷이 있었다.
“아무도 없다.”
그런 리나의 뒤에서 아슬란이 말했다. 그 말에 리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재빨리 걸려 있는 옷 쪽으로 다가가 그것들을 살폈다.
“다행이야….”
대충 봐도 그녀가 입기에 문제없는 것들이었다. 리나는 재빨리 옷가지를 훔쳐 입었다. 아슬란은 그런 그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지 마요.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도둑질을 하고 있는 건데.”
“입지 마. 더 냄새 좋다. 만지기 좋다.”
“…그래서 입는 거예요.”
아슬란은 며칠 사이에 말이 늘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기어이 모든 옷을 조각내기도 했다. 그 탓에 이렇게 다 벗은 민망한 꼴로 옷을 훔쳐야 했다.
‘마법을 쓰면 되겠지만….’
성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슬란의 마법이라면 옷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의 목걸이를 풀어 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가 그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가끔은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아슬란, 이거 입어요.”
“나도?”
리나는 다른 옷도 집은 다음 아슬란에게 내밀었다. 좀 작아 보이긴 하지만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적어도 아래는 가려야겠어.’
워낙에 흉악스러운 것이 눈앞에서 흔들리다 보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그의 것은 툭하면 욕망대로 움직였으니까. 아슬란은 리나가 건네준 것을 떨떠름한 얼굴로 받더니 끙끙거리며 입었다. 리나는 통나무집으로 다가가 문 앞에 작은 귀걸이를 내려놓았다. 대신전에서 흘러 나간 아티팩트들을 추적하다가 얻은 물건이었다. 어느 정도 마력을 막아 내는 힘이 있는 것이니 옷값으로는 모자라지 않을 것이었다.
옷을 구한 다음에 리나는 다시 아슬란과 함께 그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바다가 보이는 풀밭에 앉자 아슬란 역시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았다. 그녀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잠시 잊고 있던 아슬란의 말버릇이 생각났다.
‘라트반하고 레온을 계속 개새끼라 불러 댔었지.’
그때도 느꼈지만 가장 개 같은 것은 아슬란이었다. 이런 모습뿐만이 아니라 밤에 들러붙는 모습까지 포함해서 전부 다.
리나는 바다와 맞닿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며칠간 아슬란과 뒹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에 주변도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문제라면 아직도 답을 딱히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게 진짜 과거인지도 모르겠고….’
일단 확실한 것은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슬란이 덥석 그녀의 팔을 잡더니 말했다.
“가지 마.”
“……!”
생각이 얼굴에 쓰이기라도 한 것일까. 갑작스러운 아슬란의 말에 리나는 놀라며 몸을 움찔 떨었다. 그때였다.
쿵!
무엇인가가 후려치는 듯한 굉음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쿵! 쿵!
소리는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거인이 망치로 하늘을 두드려 대는 것 같은 소리에 땅이 울리고 숲이 흔들렸다. 아슬란은 재빨리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고 하늘을 보았다. 숲에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오르고 수면에 반짝이던 물고기들은 허둥지둥 깊은 물 속으로 모습을 숨겼다. 짐승들은 물론 마수들까지 갑작스러운 일에 긴장하며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하늘이….”
깨지고 있다. 그것 외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마치 조각이 난 거울처럼 하늘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풍경이 일그러졌다. 맑은 하늘이었는데 한쪽의 조각에는 흰 구름이 가득했고 다른 곳에는 비가 쏟아졌다. 밤의 하늘이 있었고 붉게 물든 석양의 하늘도 있었다. 거기에 기괴한 것이 떠다니는 하늘까지.
그 모습에 리나는 하늘 위쪽에서 다른 세계와 시간들이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적이 아니야….”
기적이라는 것은 이토록 시끄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세계의 약한 부분이 잠시 상처 입었다 다시 낫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은 분명히….
“…누가 강제로 만들어 낸 거야.”
그것을 깨닫자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누가 저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아슬란조차 제가 넘어갈 만큼의 상처를 만들어 내지 못해서 계속 이 세계에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넘어오는 것은 아슬란보다 더 강한 존재였다.
크르르.
짐승의 으르렁거림에 리나는 놀라 옆을 보았다.
“아슬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냄새가 난다.”
“냄새요? 무슨 냄새?”
“너에게 묻어 있던 냄새.”
그렇게 말한 아슬란은 제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로 손을 뻗었다. 투둑. 지금까지 얌전히 걸려 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그의 손길에 힘없이 끊어졌다.
“맙소사.”
그 모습에 리나는 지금까지 그가 목걸이를 충분히 끊어 낼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슬란은 목걸이를 바닥에 팽개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 붉은 마력이 넘실거린 순간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허공에는 거대한 붉은 마수가 떠 있었다.
‘여기에서 기다려라. 죽이고 온다.’
아슬란은 곧바로 하늘에 생긴 거대한 균열을 향해 날아갔다.
쾅! 쾅!
그사이에도 소리는 계속되었고 하늘은 깨져 갔다. 리나는 일단 제 성력을 끌어모아 보호 결계를 친 다음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팔로 가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동안 보았던 기록에는 이런 현상은 적혀 있지 않았었다. 만약 누군가 이 세계로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 리나는 조금 전 아슬란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묻어 있던 냄새가 난다며 그는 하늘을 노려보았다. 아슬란이 언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리나는 알고 있었다. 대신전에 있을 때 아슬란이 언제나 인상을 찌푸리며 보던 것은….
“…라트반?”
분명 그였다.
***
아슬란은 빠르게 하늘로 날아갔다. 그사이 하늘에는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길이 생긴 것이다.
‘어떤 놈이지?’
저조차도 이렇게까지 거대한 상처를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한데, 도대체 건너편에서 넘어오려는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기분 나쁜 냄새가 점점 강해졌다. 리나에게 묻어 있던 수컷의 냄새였다.
‘찾으러 온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되었다. 리나를 끼고 있던 수컷이 제 짝을 찾아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아슬란은 조금 눌러두었던 제 마력을 모조리 개방했다. 어떤 놈이든지 상관없었다.
‘죽여 버려야지.’
그러면 리나는 제 것이다. 아슬란은 이를 갈며 구멍을 노려보았다. 기이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극에 달한 순간, 이 구멍을 만들어 낸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물론 냄새를 맡았을 때 인간의 것이긴 했다. 하지만 이런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것들이 얼마나 약한 생명체인지 수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이 세계에서도 다른 세계에서도 인간이란 약한 존재들이었다.
아슬란은 눈앞에 나타난 인간 남자를 살펴보았다. 다 비슷비슷해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은 꽤 나이가 든 남자였다. 게다가 어디를 어떻게 지나왔는지는 몰라도 몸과 입고 있는 갑옷, 들고 있는 검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넌 누구냐.’
아슬란은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아슬란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군, 아슬란.”
이상한 일이다. 리나도, 이 남자도 저를 무척이나 잘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됐고, 리나는 어디에 있지?”
그 질문에 아슬란은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라트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폭풍과 번개가 몰아쳤다. 바다는 집채만 한 파도가 넘실거렸고 마법사들의 섬 여기저기는 목표를 맞히지 못한 힘에 의해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거대한 힘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었다.
워낙에 먼 곳에서 싸워 대는 통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슬란을 상대하는 자가 라트반임을 짐작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라트반이 강하긴 하다. 대신전이 무너지던 날에는 아슬란과 함께 고대 신에 맞서 싸우기까지 한 그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과거의 좀 더 약한 아슬란을 상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줄이야.
게다가 도대체 어떻게 세계를 넘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리나는 지금 아슬란을 제압하고 있는 자가 제가 알고 있는 라트반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아슬란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라트반이 이긴 싸움이었다. 곧 아슬란의 몸이 섬으로 떨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리나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늘에 떠 있던 라트반이 그녀를 향해 내려왔다.
“라트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