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54
어둠이 내려앉은 동굴이었지만 밑에는 금색의 빛이 빠르게 회전하며 사방으로 그 빛을 흩뿌렸다. 계속 조용하던 그 빛무리가 거센 소리를 내며 빠르게 회전했다. 몇 번이나 이런 움직임을 보였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레온은 헐떡이는 레오나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레오나, 괜찮니?”
“응.”
레온의 질문에 아이는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힘들다. 아프다. 잠이 온다. 목이 마르고. 배도 고프고. 당장이라도 이대로 누워서 잠들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아늑했던 황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돼.’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제 손에 있는 것을 강하게 쥐었다.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는 조개껍질이었다.
‘내가 여기 있어야지 엄마가 돌아올 수 있어.’
라트반과 리나가 떠난 다음 레온과 레오나는 하루 차이를 두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황궁을 나오기 전 레오나는 짐을 꾸리면서 무엇을 가져갈까 고민했다. 진짜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했기에 아덴베르 황궁에 올 때처럼 모든 것을 들고 갈 수는 없었다. 제가 멜 수 있는 가방 하나. 그러니 아빠는 정말로 가져가고 싶은 것만을 넣으라고 했다.
엄마가 짐을 꾸렸던 것을 떠올리면서 제 옷을 챙겨 넣던 레오나의 시선이 장식장 안에 있는 유리병을 향했다. 거기에는 아빠를 졸라 갔었던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껍질들이 들어 있었다. 껍질만 남아도 저 혼자서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신기한 것들. 그것이 유독 평소보다 강한 빛을 내며 반짝였다.
‘엄마가 있을 때 반짝일 것이지.’
정작 엄마가 있을 때는 약한 빛만 보였던 것이 왜 이제야 예쁘게 반짝인담. 레오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장식장에서 유리병을 꺼내 가방 밑에 슬쩍 넣었다.
‘며칠만 더 반짝이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에게 자랑한 다음에 절반은 엄마를 주고 나머지 절반은 제가 가져야지. 예쁜 것이니까 엄마도 항상 이것을 갖고 다닐 것이다. 그러면 볼 때마다 제 생각을 하겠지.
너무나 완벽한 제 계획에 감탄하며 레오나는 신나서 짐을 마저 꾸렸다.
하지만 며칠 후, 맞닥뜨린 상황은 레오나의 생각처럼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사라졌다. 레오나는 동굴 앞에 앉아 바닥에 일렁이는 빛을 노려보았다.
며칠 전에 제가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다시 물밀 듯이 밀려왔다. 끝없는 공포와 두려움인데 도망갈 수는 없는. 그리움과 익숙함이 섞인, 아이가 깨닫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너머에 엄마가 있다. 그리고 엄마만큼이나 익숙한 존재가 있고. 레오나는 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로 들어가야 해. 그런데 그냥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어. 이것에게 먹힐 거야.”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지만 레오나는 알 수 있었다. 레오나의 말에 라트반과 레온의 얼굴이 마치 사형 선고를 들은 사람처럼 일그러졌다. 잠시 후 라트반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돌아올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레오나는 한참이나 생각했다. 한 번도 마법을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었다.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레오나에게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모든 것은 아이의 깊숙한 곳에 있는 본능이 알려 주었다. 레오나는 바닥에 엎드려 동굴 아래에 있는 빛을 보았다.
한참이나 빛을 노려보던 레오나는 잠시 후 일어나 제가 메고 왔던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뒤적였다.
“여기다 넣어 뒀는데….”
한참이나 뒤적거린 레오나는 가방의 밑에서 옷에 감긴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조개껍질은 집어넣었을 때보다 더 반짝거렸다.
“라트반 경, 손 내밀어.”
라트반은 레오나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레오나는 그의 손 위에 우르르 조개껍질을 쏟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아이의 목소리답지 않게 레오나의 목소리는 무겁고 진지했다.
“이것을 갖고 들어가. 그러면 나는 그대를 찾을 수 있으며 그대 또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것들을 전부 잃어버리면 그대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어. 그대뿐만이 아니야. 엄마도 돌아오지 못해. 내 말 알아듣겠어?”
“…알겠습니다, 황녀님.”
라트반은 레오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길잡이가 되어 준다는 것인지, 그 말이 정말인지를 따져 물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내가 여기서 기다릴 거야. 당신과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말한 레오나는 다시 회전을 시작하며 빛의 앞에 섰다. 라트반은 그런 레오나의 옆을 지나 그대로 기적의 너머로 뛰어들었다. ‘잘 있어라’, ‘다녀오겠다’ 같은 인사 따위는 없이 그녀의 기사는 그를 찾으러 떠났다.
그것이 3주 전의 일이었다. 3주간 레오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근처에 제국 기사단을 주둔시킨 채 그는 그들에게 아무도 이곳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지키라 명령을 내렸다.
그는 레오나를 끌어안았다. 아이가 약해지려 할 때마다 그는 힘들어하는 레오나를 옆에서 안아 주며 응원했다. 이러는 사이에도 레온은 미친 듯이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레오나를 그만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3주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희망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레오나라도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아이의 앞에서 제가 먼저 포기하라 할 수는 없었다.
‘만약에 리나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레온은 기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그녀를 찾아 이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지금도 당장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레오나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동굴 전체가 흔들리더니 바닥에서 회전을 하고 있던 빛이 폭발하듯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 어?”
세상 전체가 흔들렸다. 그 진동의 진원이 이곳임은 틀림이 없었다. 레온은 휘청이는 레오나를 끌어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까지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레온의 품에서 아래를 바라보던 레오나가 말했다.
“오고 있어….”
엄마가 오고 있다. 라트반도 함께. 그리고 그 옆에 느껴지는 또 다른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빛이 세상을 덮었다. 레온과 레오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찬란한 빛만이 두 사람의 시야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진 순간, 레오나와 레온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
레온의 품 안에서 레오나가 팔을 뻗으며 버둥거렸다. 동굴 안에 리나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라트반이, 반대쪽에는… 아슬란이.
“하, 하하….”
레온의 입에서 웃음이 흘렀다. 이 기적이 보고되었을 때부터 이번에야말로 리나가 정말로 아슬란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맙소사.’
자신의 아내는 기어이 신이 되어 버린 자를 이 세계에 현신시킨 것이다. 차원을 떠돌아다니는 신을 기어코 제 옆으로 데려오다니. 불가능을 가능케 한 그녀의 ‘기적’에 레온은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리나의 옆에 서 있던 아슬란이 입을 열었다.
“이 자식, 미쳤나?”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밉살스러운 목소리에 레온은 손을 뻗었다. 기사들이 놓고 갔던 바구니에 남아 있던 빵을 집은 레온은 그것을 있는 힘껏 아슬란의 얼굴에 던졌다.
퍽!
빠르게 시간을 거쳐 와 현신한 탓에 아직 감각을 다 되찾지 못한 아슬란의 얼굴에 그대로 빵이 부딪혔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과거의 복수를 끝마친 레온이 아슬란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개새끼야.”
진심으로 아슬란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면 리나가 가진 마음의 빚은 사라질 테니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아슬란을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다.
‘레오나도 내 편이고.’
그렇다면 이제부터 다시 한번 싸워 볼 만하다.
속이 후련한 듯한 레온의 웃음소리가 동굴 안에 울렸다.
퍼벙! 펑!
아덴베르 황궁 위에 수많은 불꽃이 어둠 위를 수놓았다. 도시의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발표하지 않은 채 갑작스레 축제를 시작한 황제의 이름을 술잔을 들며 외쳤다. 모두 축복의 말이었다. 제국령의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일주일간 원하는 만큼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
리나는 의자에 반쯤 기대어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품 안에서 레오나가 신이 난 얼굴로 하늘을 향해 손을 저었다.
퍼버버벙!
그러자 조금 전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불꽃이 하늘 위에서 터졌다. 하늘을 밝히는 모든 불꽃은 레오나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엄마, 저거 예쁘지!”
레오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모습이 이리저리 변하는 불꽃이 있었다. 저러면 누군가 레오나의 마법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리나는 손뼉을 쳤다. 예쁘긴 예뻤으니까. 레오나는 슬쩍 제 얼굴을 리나에게 내밀었다. 어서 뽀뽀해 달라는 소리였다.
리나가 가볍게 입을 맞추자 레오나는 신이 난 얼굴로 그녀의 팔을 붙든 채 그녀의 가슴에 제 얼굴을 묻었다. 그때 갑자기 눈이 멀 정도로 강한 빛이 번쩍이더니 폭음이 들려왔다.
퍼버버벙! 퍼버버버벙!
놀라 하늘을 바라보니 불꽃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빛이 어찌나 강한지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탓에 레오나가 만든 불꽃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리나는 한숨을 쉬며 옆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저에게도 해 달라는 듯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아슬란이 있었다.
레오나는 저보다 훨씬 더 큰 불꽃을 만들어 낸 아슬란을 노려보더니 외쳤다.
“가! 저리 가! 너 싫어!”
레오나는 그런 아슬란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발길질이었다. 물론 아슬란은 조금도 그런 레오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제 발길질이 아슬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 레오나는 전략을 바꿨다.
아슬란을 공격하는 대신 리나에게 매달리기로 한 것이다. 더욱 리나의 품을 파고들며 리나의 볼에 쪽쪽 입을 맞춰 대자 리나는 웃으며 레오나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는 아슬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오나의 승리였다.
아슬란의 반대편에서 레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사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아슬란이 돌아온 다음 레오나가 본능적으로 아슬란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니 확실해졌다. 레오나에게 아빠는 자신뿐이다. 그것이 레온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그는 리나의 옆에 앉아 있는 라트반으로 시선을 돌렸다.
‘30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