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2
나 역시 그런 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입원한 지 오래되다 보니 부모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찾아오고 학교도 가지 않은 지 오래되어 찾아오는 친구들도 없었다. 입원 초기에는 심심함에 이것저것을 했다. 핸드폰을 보며 SNS 앱을 설치하는 나에게 옆 침대의 사람이 말했다.
“그런 거 어차피 오래 못 해. 하고 나면 기분만 나빠져.”
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병원 안에만 있는 내가 올릴 수 있는 게시물은 언제나 똑같은 것뿐이었다. 대신, 나는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매 순간 보았다.
친구와의 약속에 늦었다며 전철을 찍어 올리는 사람. 드디어 기다리던 가수의 콘서트에 오게 되었다며 공연장의 사진을 올리는 사람. 집에 새로 데려온 고양이가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올리는 사람 등등.
틈만 나면 홀린 듯이 그렇게 남들의 일상을 보았다. 그러다가 한번, 내가 원인 모를 발작으로 급히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나오게 되었다. 의식을 되찾고 병실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을 켠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아무 알림도 없는 핸드폰을 보던 나는 그동안 즐겨 사용하던 SNS 앱을 켰다. 그리고 곧 허탈함을 느꼈다. 내가 죽다 살아나는 동안 밖의 세상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일상을 올리고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올렸다.
나는 그대로 그 SNS 앱을 지워 버렸다. 그제야 나는 옆 침대의 환자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분만 나빠져. 그 말이 맞았다.
그 후로 나는 책만 보았다. 그곳에는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고 그 이야기는 언제나 끝을 맞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끝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나보다 더 먼저 끝을 맞이하는 인물들. 끝을 맞이하는 세상. 부끄럽지만 그런 점이 좋았나 보다. 병동에 머물러야 하는 내가 안쓰럽게 여길 수 있는 그런 삶들이 말이다. 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보다 더 불행하고 불쌍한 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저런 삶에 비하면 나는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사이 내 몸은 점점 더 약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보던 부모님의 얼굴은 더욱 보기 힘들어졌다. 탓할 마음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들의 얼굴에는 병원에 있는 나보다 더욱 짙은 피로감이 보였다.
그래서 나도 부모님이 오지 않는 쪽이 더 마음이 편했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병원비를 내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몸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어차피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던 중, 나는 내 병실이 있는 층의 휴게실에서 책 한 권을 주웠다.
처음에는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는 책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책은 무척이나 깨끗했고 병원의 것임을 알리는 어떤 표시도 붙어 있거나 적혀 있지 않았다. 이대로 테이블 위에 놓고 돌아갈까, 하던 나는 책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다. 그냥 한번 읽어 본 다음 간호사에게 부탁해 주인을 찾아 줘야겠다 싶었다.
침대에 누운 나는 책 표지를 살폈다. 제목은 . 그리고 그 제목 뒤에는 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가운데 권인가?’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1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핸드폰으로 앞 권을 찾아볼까, 하던 나는 곧 귀찮아져서 다시 책을 들었다.
‘그냥 여기서부터 읽어 보자.’
어차피 꼭 읽고 싶었던 책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의 2권을 읽기 시작했다. 앞 권을 읽지 않아도 앞부분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는 제목 그대로 이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였다. 2권은 이리스가 제가 가진 힘이 성력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했다. 동시에 대신전에 있는 이벨리나라는 성녀의 힘이 사라지는 모습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이벨리나가 벌이는 악행들이었다. 제 성력이 사라지는 것에 불안해진 이벨리나는 더욱더 제멋대로인 행동을 했다. 성력을 보여야 하는 기도회에 나가지 않고 달콤한 말만 하는 남자들을 그녀의 처소로 끌어들여 밤을 보냈다.
바른 소리를 하는 신관들을 멀리 내치며 아첨하는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 성녀의 이름 아래 멋대로 신전의 보물과 재산들을 선물했다.
사실 책 제목이 이벨리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앞부분은 이벨리나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이리스는 그런 이벨리나의 악행에 반하여 제힘으로 사람들을 도와 나갔다. 그러면서 이리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친해졌다.
‘어디 보자… 기사단장에, 황태자에, 마법사들의 왕에. 역시 여주인공이구나.’
이벨리나에게 끌려가기 전, 이리스는 이미 남자 주인공들과 친분을 쌓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리스가 위험에 처하자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내용은 이벨리나가 화형당하는 부분까지 와 있었다.
…그것이 가짜 성녀의 마지막이었다.
2권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났다. 큰 위협이 되던 악역을 처리했으니 이어지는 책에서는 이리스의 행복한 이야기가 펼쳐지겠지. 세 남자 주인공과의 아슬아슬한 연애 이야기가 주가 될 것 같았다.
‘굳이 뒷부분을 읽지 않아도 되겠어.’
그래 봤자 책 속의 주인공을 부러워하기나 할 것이다. 나는 커튼을 치고 불을 끈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회진 때 사람들이 오면 책의 주인을 찾아 달라고 해야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비상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달려왔고 그녀는 다시 의료진을 불렀다. 정신 차리라는 큰 소리가 들렸고 내 몸에 몇 번이고 큰 충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정신이 들기는커녕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잠들기 전에 읽었던 책이 보였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죽었다.
그래, 분명히 그렇게 죽었는데.
“하아….”
나는 긴 한숨을 쉬면서 방 안을 바라보았다.
아주 넓은 방이었다.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몇십 걸음을 걸어야 할 정도로.
단지 넓기만 한 방이 아니었다. 벽과 천장에는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들이 가득했다. 거기에 금색과 붉은색의 화려한 장식들이 방의 곳곳을 꾸미고 있었다.
높은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큰 창문마다 화려한 문양의 커튼이 쳐져 있었다. 게다가 한쪽에 있는 침대는 외국의 성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침대뿐만이 아니다. 놓여 있는 장식장. 테이블. 의자. 그리고 도자기 등등.
한마디로 엄청나게 화려한 방이었다.
한참이나 그 방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진 나는 잠시 눈을 깜빡여야 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보고 있던 방의 화려함을 한순간에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물건들이 있었으니까.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조각상. 온갖 보석이 박혀 있는 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비단 등등…. 온갖 사치스러운 것들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이렇게 살았으니 그렇게 죽었지….”
그렇게 중얼거리다 장식장 위에 놓여 있던 조각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순금의 조각상은 거울에 비친 금발에 푸른 눈의 여인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조각상의 받침대에 적힌 글씨를 보았다.
이벨리나.
“이벨리나….”
나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하필 얘가 되어 버린 건데…!”
***
일주일 전, 나는 눈을 떴다. 병원에서 의식이 흐려지던 것이 기억났기에 나는 이곳이 사후 세계라고 생각했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성녀? 누구를 부르고 있는 거지? 당황해서 내가 눈을 뜨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신을 찾으며 무릎을 꿇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뭣들 하는가. 어서 다른 신관들에게 알리게!”
“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뭐라 소리 지르더니 자기들끼리 기도를 하고 난리가 났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보던 의사들과 간호사가 아닌 난생 처음 보는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이나 쓰러지신 탓에 모두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벨리나 성녀님!”
…이벨리나? 성녀?
그렇게 깨어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제 내가 무슨 상황에 처한 것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잠들기 전 읽었던 책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화형당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 악역의 몸으로.
“왜 하필이면 이벨리나야….”
죽어서 책 속에 들어왔는데, 다시 얼마 있지 않아 죽을 운명이라니. 일주일 사이에 나는 최대한 내가 읽었던 것들의 기억을 더듬어 지금이 언제인지를 알았다. 지금은 죽음으로부터 2년 전이다. 이제 1년이 지나면 세상에 이리스의 소식이 퍼질 것이고, 다시 일 년 후에 나는 죽는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
일주일 내내 그 생각만 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절대로 그렇게 죽을 순 없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일을 생각해야 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당연히 하는 생각이겠지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절박한 마음이라 자신할 수 있다.
‘이미 한 번 죽었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을 정도로 죽는 순간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달려오던 의사들의 발소리와 기계들의 소리, 주변에서 어떡하냐며 수군거리던 소리까지. 그러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삐, 하며 낮아지는 기계의 소리가 들리면서 의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다음에 찾아온 것은 소리조차 없는 완벽한 무(無)의 세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두려움과 먹먹함의 순간이었다.
‘게다가….’
나는 자리에서 가볍게 뛰어 보았다. 이리저리 팔과 다리도 움직여 보았다. 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도 생소한 감각이었다.
그동안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조심스레 움직여야 했고 뛰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이벨리나의 몸은 건강함 그 자체였다.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즐겁고 또 소중했다. 병원에서 언제나 바랐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발로, 내가 원하는 곳에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것.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는 그 움직임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나는 다시 거울을 보았다. 밝은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이벨리나가 보였다.
내가 이 몸에 멋대로 들어온 불청객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아마도 언젠가는 내쫓길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쓸 순 없어.’
매 순간 숨을 쉬기 편안한 것조차도 전부 감사한 몸이다. 아무리 2년 후에 죽을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쓸 수는 없다. 이벨리나의 의식이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그녀가 돌아올 때 무사히 몸을 돌려주고 싶었다. 기왕이면 살아 있는 채로 말이다.
‘다행히 책의 내용도 어느 정도 기억에 있고 이벨리나의 기억도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