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35
대신관이 있는 방을 나온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울며 잘되었다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성력을 거두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 내일쯤이면 대신관은 숨을 거둘 것이다.
‘성녀의 성력으로도 죽어 가는 자를 붙들어 놓는 것은 이 정도가 한계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내 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저번처럼 이벨리나의 몸은 여전히 공포에 질린 사람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벨리나와 카를은 사이가 좋았어.’
대신관은 무려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절’이라고까지 말했다. 그 후로도 대신관은 간간히 카를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몸이 불편하고, 무척이나 조용하고 차분하며, 어려서 신전에 들어온 이벨리나를 무척이나 아꼈던 신관. 그리고 이벨리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험한 곳으로 보냈다.
고개를 들자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신관은 좀 전에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신의 곁으로 보낼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신관들은 짧게 성호를 그리고 기도를 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오늘 처음 만났고 오늘 이별하는 자를 위해 짧은 성호를 그었다.
***
다시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중앙 신전이었다. 기도회를 했던 곳이기에 낯이 익은 곳이기도 했다. 그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자 돌로 지어진 건물 특유의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안쪽으로 드시지요.”
그들을 따라가자 곧 문부터 거대하고 화려한 곳에 도착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중앙 신전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방이며, 상급 신관 이상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 길게 이어진 테이블이 보였고 그 앞에 서 있는 신관들이 있었다.
내가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그들은 모두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모두 예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날에 입는 예복을 말이다. 금실로 수놓은 섬세한 자수가 모두의 옷 위에서 반짝이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전 안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 주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서 있는 신관들에게 말했다.
“모두 앉도록 하세요.”
카펫 뒤로 의자가 밀리는 소리들이 들리며 서 있던 모든 이가 착석했다. 그러자 저 멀리 방의 구석구석에 서 있는 중급 신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중급 신관이 절대로 낮은 위치인 것은 아니다.
대신전은 한 명의 성녀와 한 명의 대신관, 서른여섯 명의 상급 신관, 백십 명의 중급 신관, 천오백 명의 하급 신관 그리고 나머지 수를 세기 힘든 평신관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 안에 상주하는 사람들은 어림잡아도 4만 명 이상. 그중에서 백십 명이니 대신전 어디를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위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니었다.
중급 신관들은 의자도 받지 못한 채,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착석한 자들은 대신전에 있는 상급 신관들이었다. 게다가 평소 상급 신관의 일부는 대신전을 떠나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면서 돌아다닌다. 그렇기에 모든 상급 신관이 모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보기 힘든 것이었다.
기도회 때에도 다 모이긴 했지만 그때는 각각 맡은 바 위치에 나누어져 있었기에 이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앉아 있는 상급 신관들을 보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하지.’
이렇게 모든 상급 신관이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새로운 대신관을 뽑기 위해서였다.
대신관은 종신제이기에 한번 임명이 되면 보통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는다. 물론 나이가 많은 자가 대신관에 오르면 다음 대신관을 뽑기까지 그 기간이 짧아지기도 한다.
나는 다시 앉아 있는 상급 신관들을 살폈다. 몇 명이 흘끔거리며 내 시선의 끝을 살폈다. 그곳에는 주인이 없는 의자가 있었다.
‘카루스의 자리군.’
어쩐지 그곳을 바라보는 상급 신관들의 얼굴이 웃음을 참는 것 같더라니.
카루스는 아직 대신전의 지하 감옥에 있다. 상급 신관이 작정하고 성녀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 알려져 봤자 좋은 일이 없기에 그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외부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알려지겠지만 아마 한참 후가 될 것이고, 카루스라는 상급 신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을 때일 것이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상급 신관들은 카루스가 사라진 것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름대로 강력한 대신관 후보였으니.’
카루스는 이벨리나에게 열심히 엎드려 긴 덕분에 그녀의 부름을 꽤나 자주 받는 신관이었다. 그와 이벨리나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다른 상급 신관들의 불안은 커졌다. 그만큼 자신들이 대신관이 될 기회가 멀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카루스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즐겁겠는가.
‘어차피 다 카루스와 비슷한 사람들이야.’
이벨리나는 대부분의 상급 신관들을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자들로 채웠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상급 신관들의 많은 수가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전부 다 엉망이면 아무래도 일이 곤란했던 모양인지 다행히 몇 명 정도는 멀쩡한 상급 신관을 앉히기는 했다.
그들은 그저 침통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덕분에 구분하기가 편하네.’
데일런 대신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침통해하는 자들과 어서 빨리 그 자리가 비기를 바라는 사람들. 필사적으로 표정을 숨긴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를 읽어 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상급 신관의 자리에 남길 사람들과 갈아 치울 사람들을 기억하고는 말했다.
“오늘 이렇게 모든 상급 신관을 소집한 이유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조금 전 데일런 대신관을 만나고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제 곧 우리와 함께할 시간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있습니다. 곧 신의 부름을 받고 떠나겠지요.”
“오, 이런….”
“신이시여. 부디 그녀에게 평안을.”
표정에서 읽히는 감정과 달리 그들은 능숙하게 애도의 말을 뱉었다. 그런 모습을 더 보는 것도 어쩐지 기분이 나빠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대신관의 자리가 오래 비어 있었기에 그동안 신전의 많은 일이 쉽사리 처리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빠르게 대신관의 임명을 진행하고 싶군요. 일단 얼마 전 조건에 합당한 사람들의 명단을 받았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상급 신관들의 얼굴에는 아직 여유가 보였다. 상급 신관들은 무조건 대신관의 후보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일단… 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와 함께 나눌까 합니다. 물론 여기 계신 분들에 대한 대화는 특별히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분들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거짓말이다. 이벨리나의 기억을 다 본다 해도 어떤 사람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데일런 대신관의 소식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 자들 외에는 알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제가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은… 대신전 외부에 있는 분들입니다. 아무래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제야 상급 신관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에이든 신관은 좋지 못한 소문이 많습니다. 가는 신전마다 언제나 많은 불평이 섞인 편지가 오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것이 대부분 신전의 규율을 엄격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생긴 문제가 아닙니까. 그러니 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용히 상급 신관들의 열띤 토론을 구경하고 있다.
명단이 돌아가고 위에서부터 이름을 읽자마자 상급 신관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열심히 열을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화의 패턴은 비슷했다. 이러이러해서 명단에 올랐다고 말하면 누군가가 그에 대한 결격 사유를 말하고 다른 또 누군가가 그것이 검증된 사실인가에 대해서 반박하고.
‘앞으로 한 40명은 있는데….’
한동안은 계속 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지쳐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겨우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럼 다음은 카를 신관입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나왔다. 자세를 바로 하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는데.
“…….”
“…….”
대신관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행동에 내가 물었다.
“카를 신관에 대해 하실 말씀들은 없나요?”
“카를 신관이라면야….”
“저희보다 성녀님께서 더욱 잘 알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상급 신관들의 얼굴에는 거북함이 가득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들에게 탐탁지 않은 사람이라면 먼지만 한 단점이라도 찾아서 이래서 부적합하고 저래서 부적합하다 하는 소리를 할 텐데. 카를 신관을 분명 꺼려 하면서도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뒤쪽에서 대신관을 위해 진심으로 추모의 기도를 올렸던 상급 신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번 기도회 때 내가 임시로 대신관의 대리에 지명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솔직히… 카를 신관님이라면 지금까지 명단에 있었던 분 중 가장 적합한 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분께서 대신전을 떠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던가요? 대신전에 머무를 때도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분이고 지금은….”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마수들의 땅이나 다름없는 대륙 끝의 신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돌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도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사실 그분께 편지를 받았습니다만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당분간이라도 대신전으로 일단 돌아오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처음 듣는데. 일단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 편지에 그분께서 무척이나 성녀님을 그리워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대신전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그 말에 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또다. 또 이벨리나의 몸이 반응하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먹을 쥐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해요.”
이쯤 되면 꼭 대신관의 임명에 관한 일이 아니더라도 그 카를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이벨리나가 그의 기억을 다 지워 버린 것인지 알고 싶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은 이벨리나를 공격할 무기가 될 수 있어,’
그러니 최대한 빨리 대신전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벨리나가 다시 나를 부르기 전에.
대신전의 곳곳에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흰색의 깃발이 걸렸다.
그 깃발이 걸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추모의 기도를 올렸다.
데일런 대신관의 죽음은 빠르게 알려졌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죽음이었기에 소란은 없었다. 모두가 추모 예복으로 갈아입은 대신전 안은 얼핏 보아서는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추모 예복은 신의 부름에 모두가 차별 없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대신전 내 직급과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입었다. 게다가 얼굴을 덮을 수 있는 후드까지 달린 예복이었다.
평소라면 대신전 내의 예복으로 상대의 지위를 파악하여 고개를 숙이면 되겠지만,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었고 모두 똑같은 옷을 입자, 상대가 어떤 지위의 사람인지를 몰라 여기저기에서 작은 소란들이 있었다. 그 소란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은 반가이 여기기도 했다.
라디스 상급 신관은 이를 반가이 여기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깊게 후드를 눌러쓴 채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화려한 상급 신관복을 입고 있어야 했기에 그녀가 이렇게 대신전의 으슥한 곳을 걷고 있었다면 누군가 곧바로 알아차렸으리라.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덕분입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라디스는 오늘 낮에 보았던 데일런 대신관의 평온한 얼굴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곧 그녀는 구석진 건물에 도착했다.
대신전 외곽에는 이처럼 특별한 용도를 찾지 못한 채, 창고처럼 방치된 건물이 있었다. 평소라면 잠겨 있었을 곳이 오늘은 손잡이를 돌리자 곧바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