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40
나는 묵묵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라트반은 한참 후, 알겠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
“하루가 너무 길었어….”
가볍게 옷만 전해 주고 돌아오려고 했었는데 일이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그 탓에 내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시델이 쓰러지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무섭긴 했지만 다행히 라트반과의 관계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엉망인 것이 아님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럼… 라트반과도 어느 정도 친해졌고 황태자하고도 적대적인 상황은 아니고….’
소설의 이벨리나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노력했음에도 다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라트반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 미래가 그렇게 절망적인 것 같지만은 않았다.
‘일단은 좀 자고 나서 생각하자.’
상처가 남지는 않았지만 시델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놀라고 운 탓에 정신적으로는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그 덕분일까. 침대에 눕자마자 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뜬 것은 덜컹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뭐지…?’
처음에는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람 때문에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끼익,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렸다. 지금 누군가 창문을 열고 내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내 방은 5층이다. 밖에는 이곳으로 타고 올라올 수 있는 나무 같은 것도 없다. 소리가 환청이 아님을 알아차린 순간, 한순간에 잠이 싹 달아났다. 나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성력을 끌어낼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손끝에 푸른빛이 생겨나는 것을 본 순간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가 들린 창을 향해 외쳤다.
“누구…!”
나는 말을 차마 다 끝맺지 못했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창을 넘어 들어오는 달빛 아래에서 남자의 붉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건만 나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핏빛의 붉은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몸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내며 그저 몸을 떠는 것뿐이었다.
번뜩이는 저 눈동자는 절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서 있는 것은 한 명의 남자인데 나는 거대한 맹수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한 걸음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흘러내린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맙소사.’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슬란….”
이 세계의 다른 남자 주인공 중 한 명이자 마법사들의 왕인 아슬란. 그가 분명했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왜, 왜 여기에….”
아직 이벨리나의 성력이 이리스에게 옮겨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아직 마법사들의 섬에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치자 그의 눈이 빛났다.
“……!”
다음 순간, 그는 내 앞에 서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그도 몸을 숙였다. 그리고 말했다.
“왜 왔냐니. 내가 보낸 편지를 받았을 터인데?”
편지라는 말에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때 서재에서 내가 읽자마자 타서 사라졌던 그 편지. 그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슬란을 떠올렸었는데 정말로 그가 보낸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도 함께 생각이 났다.
‘분명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물릴 수는 없으며 곧 찾아가겠다고 했었지.’
문제라면 그 거래가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허리를 숙인 채 관찰이라도 하듯이 주저앉은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물었다.
“저기… 거래는….”
그가 나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내 무릎에 닿았다. 곧 그는 천천히 손을 올려 무릎 위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래, 거래.”
아슬란의 눈이 위험한 빛으로 번뜩였다.
“성녀 네가 내 암컷이 되겠다는 거래였지.”
암컷.
그 말에 목덜미로 소름이 돋았다. 짧은 단어 하나가 거대하고 단단한 밧줄이 되어 온몸을 묶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아니,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나를 응시하며 자신이 이곳에 왜 왔는지 보여 줬다. 나를 바라보는 붉은 눈에는 광포한 욕정이 담겨 있었다.
암컷. 그의 욕정을 받아 내야 하는 그의 암컷.
그 타는 듯한 시선에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색이 짙은 피부였다. 볕에 그을린 라트반과는 다른 느낌의 이국적인 피부색은 대신전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이었으며 옷 역시 대신전의 것과는 다른 처음 보는 형태의 것이었다.
그의 머리색과 똑같은 진한 붉은색의 옷은 가슴을 여미지 않은 형태였기에 그가 움직일 때마다 꽉 짜여진 단단한 근육이 가림 없이 드러났다. 그런 몸 위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나른하며 동시에 위험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거대하면서도 민첩한 짐승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더….’
위험하다.
그 말이 목 안에서 맴돌았다.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벗어나야 해. 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더 멀리. 그의 손에서 벗어나야 해. 저 짐승이 너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
그런 내 생각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슬란의 입매가 비웃듯이 올라갔다.
“안 돼.”
무엇이 안 된다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의 몸이 움직였다.
내 다리를 붙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내 다리를 벌렸다. 그는 처음부터 그곳이 제 자리였던 것처럼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와 자리 잡았다.
이제 그의 시선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뜨겁고 진득한 시선은 내 아래에 쏟아지고 있다. 다리 사이가 조여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거칠고 사나운 날것 그대로의 욕망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가 몸을 숙였다. 그의 입술이 내 목에 닿았다.
“읏….”
힘겹게 토해 낸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자 아슬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맛을 음미하는 듯, 그의 혀가 느릿하게 목을 쓸어 올렸다.
“자, 잠깐만… 하읏!”
목에 닿는 혀의 느낌에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다리를 잡았던 그의 손이 내 배를 감쌌다.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큰 손바닥이 꾹 내 배를 눌러 왔다. 납작한 배 위를 천천히 쓸어내리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걸리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의 움직임에 다시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단순히 취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제 것을 밀어 넣고 흔들고 싸지르는 것에서 끝나는 욕망이 아니었다. 그는 더한 것을 원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행위의 끝에 생겨나는 것. 그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이벨리나가 외치던 말이 생각났다.
“너는 이제, 짐승의 새끼를 배어야 할 거야.”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벨리나는 아슬란이 찾아와 무엇을 요구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거래를 한 거지?’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도대체 이벨리나가 어떻게 아슬란과 만난 것인지 그리고 아슬란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 그 거래의 대가로 무엇을 약속했는지.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수많은 의문에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아슬란뿐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삭제 그에게 물어보어야 하는 것일까, 생각하는 사이 목을 핥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갔다. 옷과 쇄골 사이를 파고들 듯 그가 얼굴을 묻다 짜증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투둑.
마치 짐승의 투레질과 비슷한 그의 움직임에 입고 있던 옷이 힘없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드러난 내 가슴에 얼굴을 내렸다.
“아…!”
그의 손이 드러난 흰 가슴을 거세게 쥐어 주물렀다. 아릿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퍼졌다. 말릴 사이도 없이 한껏 벌어진 그의 입술이 가득 쥔 흰 가슴을 힘주어 베어 물었다. 츱, 하는 젖은 소리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다.
“아악!”
아픔을 참지 못하고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에 물었던 곳을 뜨거운 혀가 꾹 눌러 왔다. 그리고 달래는 듯이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흐. 흐윽!”
가슴께에서 젖은 살결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곳에서 무언가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강하게 내 가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짐승에게 젖을 물리면 이런 느낌일까. 거칠게 빨려지는 느낌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날카롭게 세운 그의 이가 유두의 끝을 잘근잘근 물었다.
“으, 으, 읏!”
그럴 때마다 내 몸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그가 물어뜯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무서워.’
짓눌린 공기에 소리는커녕 숨을 쉬기조차 어렵다.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는 그의 몸은 단단하고 무거웠다. 반항하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목 끝까지 차오른 나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가 있는 공간에서는 모든 것을 그가 지배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내뱉는 숨까지도.
그는 내 허리를 끌어안고 더욱 깊이 혀를 움직였다. 그의 입 안에서 유두가 짓이겨지며 눌렸다.
“아, 아파….”
그렇게 중얼거렸건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더욱 행위에 집중했다. 부드러운 살이 그의 입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일그러졌다. 그러는 사이 딱딱해진 가슴이 더욱 예민하게 그의 혀를 느꼈다. 이제 따끔함 대신에 다른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 저 깊은 곳에서 오싹한 쾌감이 밀려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