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47
“진검은 아직 무리십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제 허리춤에 있던 검을 풀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들고 있던 목검을 테이블 위에 내려 두고 그거 건네는 것을 받았다. 척 보기에도 크고 무거워 보이는 검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내가 검을 붙잡는 것을 확인한 그가 손을 떼었다.
“읏!”
그 순간 검을 든 내 몸이 휘청였다. 철의 무게에 한쪽 어깨가 내려앉자 검집 안에 있던 검이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오려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는 순간 라트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두 손으로 들어도 휘청이는 무게의 검을 그는 너무도 가볍게 한 손으로 붙잡더니 곧바로 다시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행히 곧바로 라트반이 다시 검을 잡아 올렸기에 망정이지 만약 내가 저것을 붙잡는다고 어설프게 손을 뻗었다가는 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무거워하실 줄 몰랐습니다.”
라트반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를 악물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얼굴이 그 역시 꽤나 놀랐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무겁군요. 이런 걸 어떻게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거죠?”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새삼 라트반의 체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신전기사단의 예복이 미처 숨기지 못하는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뚝, 꽉 짜인 근육도. 누가 보아도 극도로 수련하며 만들어진 몸이다. 저 정도의 몸이니 이렇게 무거운 검을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겠지.
‘라트반이 아니더라도 신전기사단원들 대부분 저 정도의 검을 갖고 있었는데….’
새삼 내가 검을 배우려 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다시 깨달았다. ‘할 수 있다, 그러니 무조건 가르쳐 달라’ 같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이 정도 무게가 아니면 마수를 상대하기 힘듭니다. 가벼운 검들은 대부분 마수의 비늘이나 두꺼운 가죽을 베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가끔 세검을 써서 찌를 요량으로 공격을 하는 기사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보조의 검으로 사용할 뿐, 주로 사용하는 검은 이 정도의 무게를 가진 대검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야 마수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지요. 또한 공격뿐만이 아니라 넓은 검신은 방어구로서의 역할도 함께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검을 만드는 철의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무게가 있어야 위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좀 더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 위력을 포기하는 대신, 더 빠르게 휘둘러 단시간에 더 많은 상처를 내는 것을 선택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그런 검들은 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어지지요.”
갑자기 라트반은 검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옆으로 다가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것?”
“철에 다른 광물을 섞거나 아주 예외적으로… 마수의 사체를 이용할 때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년 전, 신전기사단이 잡았던 마수 에시오스는 무척이나 단단한 뼈를 가진 마수였습니다. 그때, 그 뼈를 가져와 만든 단검은 대부분의 신전기사들이 하나씩은 지니고 있습니다. 워낙 단단한 탓에 연마가 힘들긴 하지만 에시오스의 뼈로 만들어진 검은 가볍고 날카로우며 날이 거의 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몸집이 작고 지능이 낮은 마수들은 기사들이 그것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동족이라 인식할 때가 있어서 도움이 되는 일도 많지요.”
처음 듣는 이쪽 세계의 지식에 나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신전기사단의 주 임무가 마수를 상대하는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이벨리나의 몸에 들어온 이후로 기사단은 아직 출정을 나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것을 상대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라트반의 말을 듣자 처음으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의 기능도 있다면 검이 무척이나 중요하겠군요. 모두가 소중히 들고 다니겠어요.”
“물론입니다.”
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진지함과 동시에 다정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저 차가운 날붙이가 아닌 전장을 함께한 전우를 바라보는 눈빛이기도 했다.
“꼭 그런 기능이 아니더라도 검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습니다. 생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기 때문이지요. 기사들은 언제나 아침저녁으로 날을 확인하며 스스로 손질하는 것은 물론이며 절대로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도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소중할 줄은 몰랐어요.”
라트반의 말을 듣던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잡아 보라며 쥐여 주기까지 했는데 바닥에 떨어트릴 뻔하다니.
“…….”
“…라트반 경?”
내 말에 라트반이 살짝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맙소사.’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는 듯 바라보는 성녀의 얼굴에 라트반은 조금 전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는 제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보았다. 그가 기사단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받게 되었던 검이다. 명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은 무척이나 예리하고 단단했다. 처음 받은 날 이후로 그와 떨어진 적이 없었던 검. 라트반 역시 다른 기사들처럼 이 검을 목숨처럼 대했다. 그렇기에 그 누구에게도 이것을 쥐어 보라 준 적이 없었는데.
‘…넘겨주었어?’
조금 전 그는 성녀에게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검을 넘겼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목검임을 알고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성녀의 얼굴에 어쩐지 가슴이 철렁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라트반은 필사적으로 제가 그녀에게 검을 넘겨주었을 만한 다른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성녀가 실망하는 것을 보기 싫었다는 이유만으로?’
만약 다른 기사가 누군가에게 그런 이유로 검을 넘겨주었다면 한심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라트반은 조금 전과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겠다는 듯이 서둘러 손에 들려 있던 검을 다시 허리춤에 찼다.
그가 충격으로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사이 성녀는 어느새 그의 곁에서 멀어졌다. 같은 방 안에서, 그저 몇 발자국 떨어졌을 뿐인데도 라트반은 그 거리가 무척이나 먼 것 같다고 느꼈다.
순간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멋대로 이용한 사람을 마음속에서 비교까지 하고 있다니.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레온 황태자를 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미안해요.”
그 말에 황태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내 중얼거림을 듣고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다가 다시 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 보였다. 잠시 후, 겨우 평정을 찾은 얼굴이 된 황태자는 옆에 있던 라트반을 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라트반 경과 선약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약속하지 않고 이렇게 불쑥 찾아온 제가 물러나는 것이 맞겠지요.”
생각보다 쉽게 나온 물러나겠다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황태자는 그다지 좋지 못한 기분일 것이다.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슬란이 자국을 남기고 간 목덜미를 다시 손으로 쓸었다.
아슬란은 문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남자인 것을 알고 일부러 이것을 보란 듯이 남긴 게 분명했다. 황태자를 바라보자 역시나 그의 시선이 내 목덜미를 향해 있었다.
‘경멸하겠지.’
관계를 맺고 난 후에 그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매일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꽃 같은 간단한 선물을 보내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황태자에게 나는 아무런 거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사과하고 그를 멀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황태자와 조금이라도 무엇인가 연결된 끈을 남겨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 언젠가 닥쳐올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끝났네.’
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한 것을 알고서도 황태자가 나에게 계속해서 접근할 것 같진 않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필이면 최악의 방법으로 관계가 끊길 줄이야….’
이제 황태자는 대신전을 떠날 테고 1년 후, 이리스가 나타나면 그녀에게 갈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게 책의 내용대로 다시 흘러가는구나,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태자가 허리를 숙였다.
“대신에 성녀님께서 편하신 날에 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네? 대화?”
그가 경멸의 말 한마디를 던지고 곧바로 방을 나설 거라 생각했던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꼭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난히 약속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는 황태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습게도, 황태자가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이 기뻤다. 레온이 나를, 경멸하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기쁠 수 있다니.
황태자는 그런 나를 보더니 어느새, 평소와 같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럼 성녀님의 편지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빠르게 방을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간 문을 보면서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아닌데….’
황태자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책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가 나와 잔 사실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은 마치 그와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무척이나 싫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라트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
그가 무엇이 괜찮냐고 묻는 건지를 깨닫고 나는 슬쩍 목을 가렸다. 황태자도 황태자였지만 라트반 역시 이상했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무척이나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 중에 혐오와 경멸은 없었다.
‘…차라리 욕을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겠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두 사람의 반응에 나는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
다행히 라트반은 더 물어보지 않았다.
“검술은 배우고 싶다고 바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호신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오늘은 기본적인 것들만 설명해 드릴 생각입니다.”
내 처소 안쪽의 넓은 방으로 간 다음, 그는 자신이 들고 온 길쭉한 것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천으로 감싼 형태를 보자마자 무엇인지 짐작이 되었다. 역시나 천을 풀자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목검이 있었다.
“목검이군요.”
검술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진검을 가져올 거라 기대했었던 탓일까. 내 입에서는 나도 알아차릴 정도로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검은 아직 무리십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제 허리춤에 있던 검을 풀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들고 있던 목검을 테이블 위에 내려 두고 그거 건네는 것을 받았다. 척 보기에도 크고 무거워 보이는 검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내가 검을 붙잡는 것을 확인한 그가 손을 떼었다.
“읏!”
그 순간 검을 든 내 몸이 휘청였다. 철의 무게에 한쪽 어깨가 내려앉자 검집 안에 있던 검이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오려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는 순간 라트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두 손으로 들어도 휘청이는 무게의 검을 그는 너무도 가볍게 한 손으로 붙잡더니 곧바로 다시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행히 곧바로 라트반이 다시 검을 잡아 올렸기에 망정이지 만약 내가 저것을 붙잡는다고 어설프게 손을 뻗었다가는 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무거워하실 줄 몰랐습니다.”
라트반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를 악물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얼굴이 그 역시 꽤나 놀랐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무겁군요. 이런 걸 어떻게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거죠?”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새삼 라트반의 체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신전기사단의 예복이 미처 숨기지 못하는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뚝, 꽉 짜인 근육도. 누가 보아도 극도로 수련하며 만들어진 몸이다. 저 정도의 몸이니 이렇게 무거운 검을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겠지.
‘라트반이 아니더라도 신전기사단원들 대부분 저 정도의 검을 갖고 있었는데….’
새삼 내가 검을 배우려 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다시 깨달았다. ‘할 수 있다, 그러니 무조건 가르쳐 달라’ 같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이 정도 무게가 아니면 마수를 상대하기 힘듭니다. 가벼운 검들은 대부분 마수의 비늘이나 두꺼운 가죽을 베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가끔 세검을 써서 찌를 요량으로 공격을 하는 기사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보조의 검으로 사용할 뿐, 주로 사용하는 검은 이 정도의 무게를 가진 대검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야 마수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지요. 또한 공격뿐만이 아니라 넓은 검신은 방어구로서의 역할도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