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84
분명히 이벨리나인데, 이벨리나가 아닌 것처럼.
그사이 카를의 앞에 똑바로 선 성녀가 모두가 보는 가운데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카를 신관, 그대는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을 나에게 맡겨 주었으면 합니다.”
***
나는 신관들이 오가는 복도와 연결된 첫 번째 문을 열면서 방 앞을 지키는 신관들에게 명령했다.
“오늘 피곤한 일이 많아 푹 쉬고 싶으니 라트반 경의 방문 외에는 모두 물리도록 해 주세요. 되도록 안쪽에 가까이 오는 일도 없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성녀님.”
대답을 들은 나는 첫 번째 문을 닫았다. 신관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안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여러 개의 문을 급하게 벌컥 열며 달리듯이 안으로 들어간 나는 드디어 마지막 문을 연 순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아슬란, 성공했어요!”
내 외침에 침대에 누워 있던 아슬란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 나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약한 떨림이 멈추지 않는 것이 보였다. 두려움이나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무언가를 성공시켰을 때 느낀다는 희열인 것이다.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경험해 본 것은 처음이라 나는 몇 번이고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방을 이리저리 걸었다. 그러다 소파 위에 높인 쿠션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제야 겨우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킬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으로 여기까지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일그러진 카를의 얼굴과 그에게서 물러서는 신관들. 그리고 이곳은 이제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했던 라트반의 목소리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기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아슬란의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사실 이 모든 것은 아슬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벽에 붙었다는 투서는 그가 마법으로 적당히 붙여 둔 것이었으며 카를의 숙소에서 나온 나무와 마물 역시 전부 아슬란의 작품이었다.
“그 마수 어떻게 한 거예요? 정말로 카를이 주인인 것처럼 고개를 숙였어요!”
나무 상자 안에서 마수가 나타났을 때, 내가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어제 아슬란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가둔 나무 상자 역시 보여 주었고. 하지만 그가 나에게 미리 알려 주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무에 남아 있는 마력은 별것 아니라고 했는데 엄청나게 크게 솟구쳤어요. 그런 것치고는 성력에 너무 쉽게… 설마 그것도 전부 당신이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한 건가요?”
마력이 성력에 눌려 사라지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내 성력이 압도적이고 위대하게 보였다. 마치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처럼 말이다.
“당연하지.”
아슬란은 턱을 괴고 그런 걸 왜 굳이 묻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어쨌든 생각만큼… 아니, 생각 이상으로 잘되었어요. 신관들이 다른 숙소로 안내되는 카를에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남은 신관들의 분위기도 좋지 못해요. 아니라고는 하지만 다들 대신전에서 마수와 마력을 본 충격 탓인지 여기저기서 모두 이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당연하게도 이 일은 처음부터 전부 계획된 것이었다.
당한 만큼은 돌려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카를 신관의 방식으로 똑같이 그에게 돌려주었다.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모두가 보도록.
당연히 그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은 신관이라는 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신을 섬기는 신관의 몸으로 가장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마력이었다. 성력은 신으로부터 받은 세상을 안정시키는 힘이며 마력은 그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세계의 끔찍한 존재들을 구성하는 힘이니까.
하지만 가끔 성력의 온화함과는 다른 마력의 거친 강함에 이끌린 신관들이 나타나고는 했다. 대신전의 규율은 그런 신관들을 그 어떤 중죄인보다 엄격하게 처벌했다. 차라리 색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이 낫지, 한 번이라도 이런 마력과 관련한 구설수에 얽히면 사실상 그 신관은 신관으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대신관 후보 자격은 박탈이지.’
라트반은 신전 기사들에게 카를을 정중히 안내하라고 말하면서도 그의 혐의에 대해 확실히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모두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마치 이 일에 대해 이미 확실한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말이다.
게다가 라트반은 카를이 기사들과 함께 자리를 뜨고 나서는 마치 혼잣말인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람을 따르는 마수라니… 도대체 어떻게 길들인 것인지 모르겠군.”
혼잣말이라고는 해도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였다.
하나둘씩 신관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셀 수 없는 수많은 마수와 싸워 온 라트반이다. 그렇기에 대신전의 그 누구보다도 마수에 대해서는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그였다. 그런 그가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길들여진 마수. 게다가 그 마수가 누구에게 복종하는지는 너무도 확실하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왜 그러냐는 듯 그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하아….”
곧바로 한숨이 나왔다. 사실 카를에게 뒤집어씌운 죄는 지금 내가 저지른 죄다.
‘물론 시작이야 이벨리나가 한 것이지만….’
작은 마수 한 마리를 어깨에 얹은 것만으로도 카를의 명성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마수 한 마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장 강대한 마수가 지금 내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심지어 그 마수와 몸까지 섞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만약 나와 아슬란의 관계가 알려지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라트반과 레온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을 눈감아 주고 있는지 다시 실감했기 때문이다. 또 아슬란이 정말로 얌전히 있다는 것도 느꼈고.
쿠션을 끌어안은 채 소름이 돋은 팔을 쓸며 이벨리나를 떠올렸다.
아슬란을 불러들였을 때, 이벨리나는 라트반과 레온이 이런 도움을 줄 것이라 예상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슬란을 끌어들였다. 신의 성소에 악마와 같은 존재를 끌어들인 성녀라니. 다시금 아슬란이 보여 줬던 석판에서 아직 다 적지 못했던 이벨리나의 칸이 생각났다.
단지 카를을 상대하기 위해서 아슬란을 불러들였을 거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카를은 내가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돌아올 수 있을리도 없는 자였다. 물론 이벨리나가 첫 번째로 적었던 것처럼 자국을 없애기 위해서 부른 것을 안다. 하지만 아슬란을 부른 이유가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카를도 그렇고 이벨리나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건 뭐였던 거지?’
물어본다고 해서 의식 속에 잠겨 있을 이벨리나가 대답해 줄 리가 없었다. 그때 아슬란이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지?”
그 말에 나는 생각하느라 구겨진 인상을 황급히 풀며 대답했다.
“고마워서요.”
진심이다. 지금 이 순간 아슬란의 뒤에 후광이 보일 정도로 그가 도와준 것들이 고마웠다. 물론 아슬란뿐만이 아니라 라트반도, 레온도 도와주긴 했지만 이번 일에 아슬란이 가장 수고한 것은 두 사람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아슬란은 내 대답에 조금 얼굴을 찌푸리더니 내가 끌어안은 쿠션을 노려보았다.
“널 도와준 건 그 솜덩어리가 아닐 텐데.”
그의 말에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그에게 보란 듯이 품에 안았던 쿠션을 소파 위로 휙 던진 다음 그의 옆으로 다가가 팔을 끌어안았다. 비단과 비슷한 재질의 그의 옷 아래 느껴지는 그의 팔이 움찔 굳는 것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아슬란.”
“…….”
아슬란은 제 도움의 대가로 고맙다고 말해 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 내내 그에게 수백, 수천 번도 더 말해 줄 수 있었다.
“진심이에요. 살면서 이렇게 뭔가를 성공한 건 처음이에요.”
아직 내 흥분은 다 가라앉지 않았다. 그 쓰임새가 한정된 성력과 달리 마력은 많은 것들이 가능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간단하게 계획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다니.’
투서를 붙이고, 마력을 상자 안에 가두고, 마수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보란 듯이 마력이 성력에 눌려 사라지는 것까지 연출했다.
‘이쯤 되면 만능에 가까운 것 아니야?’
왜 많은 사람들이 배척받는 것을 각오하면서도 마법사의 길을 걷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토록 편한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공격이 가능하니 많은 왕국들이 지탄을 받는다 해도 필사적으로 마법사를 확보하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을까?’
들뜬 기분 탓에 나는 곧바로 아슬란에게 물었다.
“아슬란,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을까요?”
그런 내 질문에 아슬란은 세상 최고의 헛소리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대가 마법을? 어떻게?”
“어떻게라니….”
“그대 안에 있는 성력이 마력을 받아들일 것 같아? 지금 내가 가만히 있으니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대가 손을 대기만 해도 하급 마족들은 그대로 튕겨 나갈 거야.”
거기까지 말한 아슬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더니 입가에 어딘지 심술궂은 웃음을 지으며 그는 무릎 위에 마주 보게 한 자세로 나를 앉히더니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얇은 천 너머로 가슴과 가슴이 닿자 인간에 비해 훨씬 느린 그의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허리를 잡았던 그의 손이 어느새 예복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아슬란. 자, 잠깐만… 으응!”
서늘한 손이 가슴 위를 맴돌다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계속해서 즐기듯 가슴의 끝을 어루만지는 손길 때문이었을까, 아슬란은 어느새 솟아오른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 비볐다.
“으, 응! 그, 그렇게 잡으면…!”
한동안 이런 자극 없이 시간을 보냈던 탓일까.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감각에 빠르게 반응했다. 계속되는 아슬란의 손장난에 숨이 빠르게 거칠어졌다.
허리를 들썩이며 벗어나 볼까 했지만 아슬란은 다른 팔로 단단히 내 허리를 휘감았다. 이제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팔인데도 어쩐지 거대한 짐승의 발에 감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몸을 움직이다 나는 그냥 힘을 풀고 아슬란의 가슴에 기대었다. 어차피 내가 벗어나려 할수록 그가 놓아주지 않을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조금은 짓궂게 가슴을 희롱하던 그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제 것처럼 멋대로 가슴을 주무르며 즐기는 것 같던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하아….”
잠시 숨을 돌리려고 할 때, 아슬란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품을 수 있는 마력은 오직 하나뿐이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아슬란은 살짝 몸을 떼더니 내 예복을 끌어 내렸다. 옷이 힘없이 떨어지고 드러난 피부에 서늘한 공기가 닿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슬란은 그런 내 몸을 쓸어 만지다 손가락을 세웠다. 납작한 내 배 위에 그의 손가락이 크게 원을 덧그렸다.
“이곳에, 오직 내 것만.”
피부 위를 닿을 듯 말 듯 스치고 지나가는 손가락의 느낌에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 숨이 차올랐다. 게다가 내가 품을 수 있는 하나뿐인 마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숨이 거칠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내 다리 사이에 당장이라도 찢고 들어올 듯이 흉흉하게 솟아오른 그의 것이 느껴졌다. 그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 어렴풋이 이런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천 위로 선연하게 닿아 오는 그의 것에 놀란 내 몸이 다시 들썩였다.
“…일부러 이러는 것은 아닐 테고.”
그러자 아슬란이 필사적으로 참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내 움직임이 그에게서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자극만 한 것 같았다. 그는 배 위를 지분거리던 손을 거두고는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잡아당겼다.
천 너머로도 그 위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그의 아래가 꾹 맞닿아 아래를 눌러 왔다. 그 모습에 어쩐지 몸을 섞을 때보다 더 민망해진 내가 고개를 돌려 버리자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옷을 입고 있기에 그의 성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것을 받아들이기 직전처럼 잔뜩 몸에 힘이 들어갔다.
옷이 문질러져 사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방을 울렸다. 아래를 눌러 대는 그의 것이 점점 더 커져 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붉은 눈이 위험한 빛을 띠었다.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옷을 찢고 아침까지 그가 날 놓아주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기에 나는 황급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그래도 마법을 배워 보고 싶어요!”
거의 외침에 가까운 내 목소리에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이 이상을 하고 싶지 않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더니 한참 후에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