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ing in the tower alone RAW novel - Chapter (13)
13화. 계약서를 쓰다.
13화. 계약서를 쓰다.
테오는 탑의 중립 지대 중 하나인 75층 출신이다.
오랫동안 그래니어 마을 최고의 미인 마릴을 사모하고 있던 테오.
“테오, 고백해! 너라면 충분해.”
“그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거야.”
“고백해! 고백해!”
마을 최고 부잣집 아들인 오렌과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테오는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마릴, 나 사실 너를 좋아했어! 나와 사귀어줘!”
하지만
“흥! 분수를 알아야지. 감히 날 넘봐!”
“그래. 테오, 네 주제를 알아야지. 미안하다. 사실 마릴은 나랑 사귀고 있어. 크흐흐흐.”
오렌이 마릴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테오를 비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테오, 저 얼빠진 얼굴 좀 봐.”
“푸하하하. 쟤 이제 그래니어 마을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냐?!”
며칠 전부터 자신을 향해 웃어준 마릴의 미소도,
친구들의, 아니 친구인 척했던 놈의 응원도 모두 순진한 테오를 골탕 먹이기 위한 연극이었다.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며 마을 광장에서 고백하라는 놈들의 부추김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아주 처참하게 차인 테오는 마을에서 더 이상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충격을 받고 며칠간 두문불출하던 테오는 ‘부자가 돼서 복수해주마!’라는 생각으로 야반도주해 유랑 상인이 됐다.
평생 열심히 일해 모아둔 50탑코인으로 유랑 상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과 장비를 사고, 남은 5탑코인으로 상행에서 팔 물건을 매입하려고 할 때
“테오, 이거 정말 좋은 건데 너한테만 팔게.”
테오에게 유랑 상인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 고블린 유랑 상인 스카람이 은밀히 말을 걸어왔다.
“뭔데?”
지금껏 친절하게 조언을 해준 스카람이기에 테오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카람이 꺼낸 물건은 텀블러, 미니 선풍기, 휴대용 손난로였다.
“이건 탑 밖의 물건이야.
“탑 밖의 물건?”
“그래. 이걸 위층으로 가져가면 아주 비싸게 팔 수 있어. 저 위층에 사는 존재들은 이런 물건을 취미로 모으거든.”
“정말?! 내가 살게!”
“이거 씨앗 상점 신입 회원의 위치가 적힌 지도야. 신입 회원이니까 운이 좋으면 가격을 후려칠 수 있을 거야.”
테오는 스카람의 말만 믿고 지도를 따라 탑을 올랐다.
하지만 물건값으로 스카람에게 거의 모든 돈을 줬기에 식량을 충분하게 사지 못했다. 그래서 테오는 쫄쫄 굶어가며 세준이 있는 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
“엥?! 같이 일하자고요?”
“그래. 그리고 네가 가져온 물건들 다 쓰레기야.”
세준은 일단 팩폭으로 테오의 멘탈을 흔들었다.
“네?! 쓰레기라뇨? 그럴 리가 없어요!”
세준의 말에 테오가 흥분했다. 믿었던 스카람에게 전 재산을 들여 산 물건이 쓰레기라고 말하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기에 마법 같은 건 전혀 걸려있지 않아. 이 텀블러는 외부랑 접촉을 차단해 열의 이동을 막는 거고 미니 선풍기랑 휴대용 손난로는 켜놓고 몇 시간만 지나면 배터리가 다 돼서 멈출 거야. 자 봐봐.”
세준이 설명하며 미니 선풍기를 켜 바닥에 세워놨다.
“아니에요! 박세준 님이 어떻게 알아요?! 스카람이 여기 마법이 걸려있다고 했어요!”
“나 탑 밖에서 왔어.”
“네?!”
그 말로 모든 게 설명됐다.
“아마 그 스카람이라는 놈이 널 속인 거 같아.”
“그…그럴 수가. 나한테 그렇게 친절했는데…”
큰 충격을 받은 테오가 혼자 중얼거리며 현실 부정을 하는 동안
삐익!
삐이!
뺘앙!
백토끼들은 농사를 시작하고
첨벙!
퍽!
뺙!
세준과 흑토끼는 피라니아를 잡아 생선구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미니 선풍기는 켠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멈췄다.
“흐엉엉! 스카람 나쁜 고블린 새끼다냥!”
“왜 나는 항상 속는 것이다냥?!”
“이제 어떡하냥!”
테오가 대성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흥분으로 오랫동안 연습해 고친 그래니어의 사투리까지 터져 나왔다.
“테오, 진정해. 생선구이 좀 먹으면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할까?”
“훌쩍…꿀걱. 먹여 놓고 또 돈 내라고 그럴 거잖아요? 훌쩍…저 바보 아니거든요.”
테오가 생선구이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지만, 넘어가지는 않았다. 순진했지만, 같은 수법에 당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세준도 여기서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야. 전에 먹은 것도 무료로 해줄게.”
멘탈을 흔들었으니 이제 다독여 줄 때. 세준은 더 큰 걸 노리고 있었다.
“정말요?!”
“그래.”
“자. 먹으면서 내 얘길 잘 들어봐.”
세준이 테오의 앞발에 생선구이를 들려주며 동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냠냠.
세준의 말을 들으며 정신없이 생선구이를 먹은 테오. 마지막 생선구이를 다 먹었을 때
꾸욱.
“어?!”
어느새 자신의 왼발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쩌억.
계약서에서 발을 떼자 선명하게 찍혀있는 자신의 발바닥 자국.
계약서에는 >종신 유통계약서>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자신의 봇짐에 들어있어야 할 계약서가 왜 앞에 있지?
테오가 서둘러 계약서를 읽어봤다.
>종신 유통계약서>
[계약의 목적 및 내용]1. 본 계약은 갑과 을, 쌍방이 상호협력하고 갑의 농작물 판매를 촉진해 쌍방의 이득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앞으로 을은 평생 갑이 제공하는 농작물을 팔고 그 판매 금액을 가져온다.
[보수]1. 갑은 을에게 매주 생선구이 25마리나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주급으로 준다.
2. 갑은 을이 가져온 판매 금액의 3~5%를 을에게 인센티브로 준다.
[특약]1. 을은 최초 거래로 갑의 농작물을 받아 한 달 안에 총판매 금액이 5탑코인 이하로 발생하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2. 을은 반드시 갑이 말하는 금액 이상으로 농작물을 팔아야 한다.
3. 을은 갑의 허락 없이 추가 거래처를 만들 수 없다.
4. 거래할 때는 반드시 그래니어 사투리를 사용한다.
[갑 : 박세준] [을 : 테오]계약서 아래에는 세준의 지장과 테오의 발바닥이 사이좋게 찍혀 있었다.
특약 1번은 테오에게 도망갈 구멍을 줘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특약 2번과 3번은 대형 호구인 테오가 호구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넣은 것이고 특약 4번은 분명 지구인이라면 테오의 사투리를 더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이게…뭐야?”
“앞으로 잘해보자. 테 대표.”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아니죠. 특약 1번이 있잖아요.”
테오가 세준의 손을 밀어내며 새침하게 말했다.
“알았어. 그래도 일단 거래는 하는 거잖아. 테 대표.”
“흥! 그건 그렇죠.”
테오는 대답하며 넌지시 세준의 손을 바라봤다.
슥슥.
세준이 다시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후
고로롱.고로롱.
테오는 피곤했는지 세준의 쓰다듬을 받으며 까무룩 잠에 빠졌다.
“잘 자라. 테대표.”
세준이 곤히 자는 테오를 불가에 눕혀놓고 일어났다.
‘계획대로야.’
그렇게 세준은 탑코인을 벌 수단을 마련했다.
“으하함. 좋은 냄새다냥. 아니! 좋은 냄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사투리를 정정하며 테오가 눈을 비비며 잠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어?”
세준이 아침으로 생선과 대파를 구우면서 물었다. 옆에는 방금 구워놓은 생선구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침부터 세준과 흑토끼가 열심히 잡은 피라니아였다.
“네. 제가 얼마나 잔 거죠?”
“어제 점심부터 자서 지금 일어난 거야.”
오늘은 조난 129일 차, 테오는 하루를 내리자고 아침에 일어난 것이다.
“근데 그건 뭔가요?”
테오가 코를 실룩거리며 수북이 쌓인 생선구이를 물었다.
“이번 주 주급. 생선구이 식는다. 빨리 담아.”
“네. 감사합니다.”
테오는 ‘왜 동업인데 자신이 주급을 받지?’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서둘러 자신의 봇짐에 생선구이를 담기 시작했다.
봇짐 아이템은 여러 층을 다녀야 하는 유랑 상인의 필수 아이템으로 봇짐에는 보존 마법과 공간확장 마법 그리고 경량화 마법이 걸려있어 많은 물건을 장기간 처음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
“아침 먹자!”
삐익!
뺘악!
세준의 외침에 토끼들이 우다다 달려와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저…박세준 님.”
테오가 세준을 불렀다.
“그냥 세준 님이라고 불러.”
“네. 세준 님, 근데 뭘 파실 생각이신가요?”
“방울토마토.”
“네?”
툭.
“이거.”
세준이 방울토마토 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서 보여줬다.
“이걸요?”
테오가 방울토마토를 탐탁치않게 바라봤다.
“한 번 봐봐.”
세준이 테오에게 방울토마토를 건넸다.
“응? 마력의 방울토마토? 이거 아이템이에요?!”
“어. 괜찮지?”
“얼마에 파실 건데요?”
10분간 마력은 0.1 상승에 지방 10g 분해.
테오는 아이템의 옵션을 봤을 때 탑의 각성자들에게 좋게 받으면 개당 0.01탑코인 정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울토마토 하나에 1만 원. 충분히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개당 0.05탑코인.”
세준은 테오의 예상보다 5배나 높은 금액을 불렀다.
“네?!”
세준의 말에 테오는 ‘이게 팔리겠어?”라는 눈빛으로 앞발에 쥔 방울토마토를 바라봤다.
장담하건대 세준은 자신의 방울토마토가 비싸게 팔릴 것을 확신했다. 이 방울토마토는 각성자들을 위한 물건이 아니다.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각성자들에게 지방 분해와 마력 상승을 가져다주지만, 큰 효과는 아니었다. 그들의 몸은 이미 각성으로 어느 정도 최적화 되어 있어 큰 효과가 없다.
하지만 탑 밖의 비각성자들에게는 부작용 없이 먹자마자 즉시 10g의 지방 분해와 더불어 몸에 활력이 돋는, 거기다 맛도 최상급인 방울토마토는 분명 팔릴 상품이었다.
특히 초반 희소성까지 생각하면 세준은 0.1탑코인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준은 지구의 다이어터들을 믿었다. 그들이라면 호응해줄 것이다.
“알았어요. 일단 계약이니까.”
테오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 거래로 총판매 금액이 5탑코인이 안 나오면 생선구이만 받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몇 개나 가져가요?”
“1000개 정도?”
세준이 동굴 구석에 만든 저장고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방울토마토가 가득 쌓여 있었다.
세준과 토끼들이 테오가 봇짐에 방울토마토 담는 것을 도왔다.
“그럼 다녀올게요.”
테오가 봇짐을 메고 동굴을 떠났다.
***
5일 후, 탑의 38층.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피닉스 길드의 정예 헌터 10명이 38층을 클리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지만, 클리어할 가능성은 아직 요원했다.
그렇게 동굴을 수색하고 있을 때
키이이익!
거미 몬스터들이 다가왔다.
“거미 15마리! 다이아몬드 포메이션!”
리더의 말에 헌터들이 서둘러 진형을 만들었다.
키이익!
진형을 만듦과 동시에 거미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포위당하지 않게 후방 계속 살펴!”
“네!”
지구 최고 길드의 정예 헌터들인 만큼 그들은 빈틈이 없었다.
잠시 후 전투가 끝났다.
“후우. 수고했어. 거미 사체 챙기고 여기서 잠시 쉰다.”
“네.”
헌터들이 그렇게 거미 몬스터의 사체를 챙기고 앉아서 쉬려할 때
“인간, 여기 좋은 물건 보고 가라냥.”
치즈냥 한 마리가 그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