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ing in the tower alone RAW novel - Chapter (3)
3화. 싹이 나다
3화. 싹이 나다
아삭.
파의 이파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생각보다 쉽게 잘려 나갔다. 식감도 좋았다.
화아.
파를 씹자마자 알싸한 매운맛이 입안 가듯 퍼졌다. 매운맛에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모공이 열리고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우물우물.
세준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파를 계속 씹었다. 하지만 기대한 단맛은 우러나오지 않았다.
‘매운맛이 강해져서 단맛도 강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맛이 매운맛으로 몰빵된 것 같았다.
꿀꺽.
파를 삼키자 매운맛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다행히 속이 쓰리지도 않았다.
‘파는 매운 거 당길 때 먹으면 되겠다.’
아삭.
세준은 매운맛뿐인 파를 계속 먹었다. 일단은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렇게 세준은 땀을 줄줄 흘리며 파를 한 뼘은 먹은 것 같다. 왠지 땀을 흘릴수록 몸이 가뿐해졌다.
뿌드득.뿌드득.
파로 배를 채운 세준이 자신의 자리에 그늘을 만드는 파들을 무참하게 꺾었다. 절대 단맛이 안 나서 화풀이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절대는 아닌 거로 하자. 좀 기대했으니까.’
꺾어버린 파는 일단 볕이 잘 드는 곳에 깔아놨다. 오늘은 파 덕분에 일과를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상관없었다. 일과라고 해봐야…
졸졸졸.
농작물에 잠깐 물 주고
“……”
멍하니 천장의 구멍 쳐다보기였으니까.
그래도 조금 심심함을 달래줄 것이 생겼다.
잠깐 천장을 보며 멍을 때리다 파를 보면 파가 어느새 훌쩍 자라나 있었다.
“파가 원래 이렇게 빨리 자라나?”
기분 탓은 아닌가 해서 스마트폰으로 시간까지 재봤다. 파는 시간당 10cm 정도가 자랐다. 경악스러운 성장 속도. 농사 경험이 없는 세준이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탑에서 키워서 그런가?”
의심할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마트에서 사 온 파다. 종자가 원래 시간당 10cm씩 자라는 파였다면 금파, 파테크라는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근데 얘들은 소식이 없네.”
세준은 파의 양옆에 심은 방울토마토와 고구마가 심어진 자리를 봤다. 땅의 지력이 좋은 거라면 다른 것들도 잘 자랄 테니까.
하지만 땅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파만 자라기 좋은 땅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더 유심히 봤다.
“어?!”
유심히 보니 고구마를 심은 땅은 그대로였지만, 방울토마토를 심은 땅의 흙은 조금 볼록한 것 같았다. 세준이 바닥에 엎드려 볼록하게 솟아오른 땅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오!”
있었다!
(…i…)
흙 사이 녹색빛을 띠는 줄기가 광택이 나는 푸른색 머리를 이고 수줍게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총 52개의 싹이 나 있었다. 세준은 한참 동안 방울토마토 새싹을 바라봤다.
“흐흐흐. 귀여워.”
자신이 씨앗에서부터 키워낸 식물들. 이게 뭐라고 보고만 있어도 뿌듯하고 든든했다.
***
삐비빅.삐비빅.
[5월 15일 오전 6시]세준이 6일 차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는 온종일 방울토마토 새싹만 바라보다 하루를 다 보냈다. 파처럼 급성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읏차!”
세준이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몸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과로로 인한 피로가 풀려서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보자. 우리 새싹이들 많이 컸나?”
세준은 일어나자마자 세수와 식사도 뒤로하고 방울토마토 새싹을 보러 갔다. 자신이 자는 사이 얼마나 성장했을지 너무 궁금했다.
“오!”
(…”…)
새싹들의 끝, 푸른색 머리가 조금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새싹들을 막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파들이 어느새 다시 세준의 키만큼 자라 방울토마토 새싹들에게 가야 할 빛을 막고 있었다.
뿌드득.뿌드득.
세준이 파의 이파리들을 사정없이 꺾어냈다.
“휴우.”
세준은 파를 다 꺾어내고 서둘러 연못으로 달려갔다.
어푸!어푸!
간단히 세수를 끝내고
꼴.꼴.꼴.
생수병과 플라스틱 용기에 물을 채워 방울토마토의 새싹 주변과 파와 고구마밭의 흙을 축여줬다.
“형이 너 미워하는 거 아니다.”
파에게는 특히 물을 많이 줬다.
그렇게 물 주기가 끝냈을 때
꼬르르륵.
배가 무임금 노동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대가를 요구했다.
“아침 먹어야지.”
세준이 방금 꺾은 파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
어제 고구마와 방울토마토 대신 파의 이파리만 먹어본 결과 충분히 허기를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허하거나 기운이 빠지는 일도 없었다. 왠지 탄수화물이 흡수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이 많았다. 하루에 대략 180cm까지 자라나니 오히려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이었다.
‘일단은 잘 말려서 보관해야지.’
지금 상황을 보면 이렇게 잘 자라는 파가 갑자기 자라지 않을 일은 없겠지만, 만약을 대비하기로 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자신만 해도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조난당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남은 방울토마토와 고구마는 미래의 더 많은 식량을 위해 심기로 했다
퍽.퍽.
세준이 흙을 파고 방울토마토와 고구마를 심었다.
그리고
졸졸졸.
“무럭무럭 자라라.”
덕담과 함께 물을 충분히 부어주고 자신의 지정석인 해가 잘 드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생산적인 일을 했더니 가슴에 뿌듯함이 가득 찼다.
“하늘 좋네.”
푸른 하늘은 높고 깨끗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좋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몇 날 며칠 하늘멍만 하고 있었다.
“회사 다닐 때는 며칠간 하늘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호강하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깐이었다.
“근데 뭔가 아쉬워. 여기서 커피만 있었으면…”
샷 추가를 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문명 생활이 너무 그리웠다.
세준이 하늘을 보며 도시 생활을 떠올릴 때
삑.삑.
스마트폰 배터리가 20% 이하로 떨어졌다는 알림이 떴다. 저전력 모드로 설정하고 필요할 때만 화면을 봤지만, 배터리 소모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일단 이걸로 충전하자.”
세준이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눌렀다. 노트북보다는 전력 소모도 적고 일어날 시간과 잘 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이 더 쓸모가 있었다.
뜨등.
노트북 화면이 들어오며 작업을 하고 있던 엑셀창이 떴다. 거래처에 보내는 견적서로 회사에서 다 못 끝내 집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작업이었다.
딸깍.
세준이 쿨하게 엑셀창을 닫았다. 물론 저장 따위는 안 했다. 며칠 동안 매달려 작성한 견적서이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너무 늦었을 것이다.
“나 대신 누군가 하겠지.”
대신 할 사람한테는 조금 미안했지만,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세준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연결하고 폰을 충전했다. 노트북도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저전력 모드를 켰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충전되는 동안 방울토마토 새싹을 바라봤다.
보고 또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한참 방울토마토 새싹을 보고 있을 때
뚝.뚝.뚝.
위에서 물이 떨어졌다.
“뭐야? 비 오나?”
세준은 자신이 말하고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몇몇 층을 제외하고는 탑은 항상 맑은 날씨다.
‘설마 몬스터?!’
자신을 내려다보며 침을 뚝뚝 흘리고 있을 몬스터를 떠올리자 소름이 돋았다. 세준이 다급히 위를 쳐다봤다.
하지만
“응?!”
천장의 구멍에는 작은 흰색 토끼 한 마리가 구멍을 내려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저것도 몬스터야?’
세준이 앞에 보이는 토끼가 포악한 몬스터는 아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삐익!
토끼가 세준과 눈이 마주치자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다.
폴짝.
“어?!”
위험해!
세준은 당황하며 떨어지는 몬스터인지도 모르는 토끼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토끼는 긴 귀로 떨어지는 방향을 조절해 세준의 손을 피하며 양발로 세준의 어깨를 한 번 밟고는 바닥에 무사히 착지했다.
“……”
허공에 손을 뻗고 있으니 굉장히 무안했다.
그때
삐익.
토끼가 이족보행을 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를 가리켰다. 이족보행을 하는 걸 보면 그냥 토끼는 아니었다.
“먹어도 되냐고?”
삑!
토끼가 대답하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눈빛에는 제발 승낙해달라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자.”
뿌드득.
세준이 파의 이파리를 통째로 꺾어 토끼에게 줬다.
삐!
아사삭.아사삭.
토끼는 세준이 건넨 파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뿌드득.뿌드득.
토끼가 파를 먹는 동안 세준은 파의 이파리를 꺾었다. 꺾는 김에 다 꺾기로 했다.
세준은 앞으로 아침 6시에 한 번, 오후 2시에 한 번 파를 잘라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방울토마토 새싹이 해를 볼 수 있다.
아사삭.아사삭.
토끼는 아직도 열심히 파를 먹었다. 그래봤자 이제 손가락 두 마디 길이 정도를 먹었을 뿐이었다.
세준은 그런 토끼를 보다가 다시 방울토마토를 바라봤다.
“어?!”
(…’ ‘…)
어느새 방울토마토 새싹의 끝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좀 있으면 잎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로롱.
옆에서 토끼의 자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부르자 졸린 모양이었다. 쌔근쌔근 자는 게 나름 귀여웠다.
그때
삐?
세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토끼가 화들짝 깼다.
푸드득.
토끼가 고개를 흔들며 잠을 털어냈다
그리고
삐익!
힘찬 울음과 함께 점프했다.
척.
토끼는 한 손에 파를 들고 가볍게 구멍 위로 올라갔다.
삐익.
토끼가 떠나기 전 세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먹기만 하고 도망치냐.’
배은망덕했지만, 세준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잠깐이었지만, 반가웠다.
세준이 손을 흔드는 동안 토끼는 떠났다.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정말 잠깐이었는데도 허전했다.
세준은 허전함을 뒤로 하고 다시 방울토마토 새싹을 바라봤다.
그 사이 새싹들은 힘을 내 이파리를 더 활짝 피워냈다.
“힘내. 얘들아.”
잠시 후
(…Y…)
세준의 기다림을 알기라도 하듯이 방울토마토 새싹들이 하나둘 초록빛 이파리 두 장을 활짝 펴내기 시작했다. 여리지만, 생명력이 충만한 이파리가 꼬물꼬물 피어나는 모습은 나름 경이로웠다.
삐비빅.삐비빅.
[5월 15일 오후 10시]저녁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오늘은 자고 싶지 않았다. 새싹들이 자라는 걸 계속 지켜보다 잠들고 싶었다.
“…!”
찰싹.찰싹.
세준은 뭔가가 자신의 볼을 가볍게 때리는 느낌에 일어났다.
“응? 뭐야?”
눈을 뜨니 어제 도망쳤던 토끼가 손으로 세준의 볼을 때리며 깨우고 있었다.
“으음. 몇 시지?”
세준이 시간을 확인했다.
[5월 16일 오전 5시]원래 일어나던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이었다.
“근데 너 그 복장은 뭐야?”
토끼는 귀가 빠져나올 수 있게 구멍이 난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물조리개를 들고 있었다.
그때
삐이.
토끼 울음 소리가 하나 더 들려왔다.
“응?”
세준이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앞치마를 한 가녀린 토끼 하나가 더 있었다.
그리고
꾸벅.
세준과 눈이 마주친 토끼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조난 7일 차. 조금 일찍 일어났고 토끼 부부가 동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