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ing in the tower alone RAW novel - Chapter (4)
4화. 불을 피우다.
4화. 불을 피우다.
세준은 빠르게 둘 사이에 흐르는 핑크빛 분위기를 파악했다.
“설마 너희 부부?”
삐익!
삐익!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하다 하다 이제 토끼 부부 사이에 끼다니…
대학교에서 공강 시간이 맞는 친구가 없어 커플 사이에 껴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정말 뻘쭘했지만 한 학기 동안 밥을 혼자 먹을 수는 없어서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밥을 먹는데 둘 사이에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싸운 것이다. 세준은 그날 밥을 먹다가 체했다.
‘그리고 밥을 혼자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얻었지.’
그 이후 다시는 커플 사이에 껴서 밥은 안 먹겠다고 결심했는데…
삐비비.
세준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남편 토끼가 세준의 손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폈다.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받기 위한 필사적인 몸짓이었다.
‘가정을 지키려고 이렇게 애쓰는데…’
세준의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아직도 과거에 매여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 걔네는 커플이었고 얘네는 부부잖아.’
세준은 부부의 심오한 세계를 몰랐다.
“그래. 여기서 지내. 대신 공짜는 아니야.”
뭘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삐익!
삐익!
세준의 승낙에 부부 토끼가 당연하다는 듯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굴 구석으로 달려가 굴을 파며 자신의 거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굴?”
세준은 토끼가 굴을 파는 것을 보면서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굴을 파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같이! 위에 나갈 구멍이 있어서 저쪽만 생각했어!’
“토끼!”
삐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던 남편 토끼가 세준의 부름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땅굴을 파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어?”
삐이…
토끼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돼?”
슥슥.
토끼가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준이 있는 동굴을 그리고 그 밑을 깊게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쏴아아.
들고 있던 물조리개로 파인 곳에 물을 부었다. 세준의 동굴 밑이 물로 채워졌다.
“아. 밑이 다 물이구나.”
삐익!
토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하던 거 계속해.”
삐익!
토끼가 다시 굴을 파러 갔다.
그때
삐비빅.삐비빅.
알람이 울렸다. 스마트폰의 배터리는 100%. 노트북의 방전되는 속도를 생각했을 때 한 번 정도는 더 완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5월 16일 오전 6시]세준의 일과가 시작됐다.
먼저 방울토마토 새싹을 확인했다.
“얘들아, 수고했어.”
(…T…)
이제는 초록 이파리들이 완전히 활짝 피어났다. 고구마밭은 아직 소식이 없었다.
세준은 연못으로 가 세수를 하고 밭에 물을 줬다.
그리고
뿌드득.뿌드득.
방울토마토 새싹들이 해를 볼 수 있도록 파를 꺾어줬다. 파는 꺾으면 꺾을수록 줄기가 두꺼워지고 갈라지며 더많은 이파리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파 하나당 이파리가 3개 정도였는데 이제는 8개가 올라왔다.
“나중에는 얘네 꺾는 것도 일이겠는데?”
세준이 뜯어낸 이파리를 햇볕에 말렸다. 먼저 햇볕에 있던 이파리들은 이제 거의 수분이 없는 상태로 딱딱하게 굳었다.
아삭.
세준은 방금 꺾은 이파리를 먹으며 아침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8시간 후에 한 번 더 파를 꺾고 물을 주면 하루 작업은 끝이다.
일이 끝난 세준은 자신의 지정석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봤다.
그렇게 얼마나 하늘을 보고 있었을까.
우욱!우욱!
부우!부우!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세준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토끼들이 판 굴에서 나는 소리였다.
소리는 금세 끊어졌다.
“뭐야?”
세준이 다시 하늘을 보며 멍한 상태에 빠지려 할 때
우욱!우욱!
부우!부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숨이 헐떡거리는 소리였다.
‘설마?!’
“이것들이!”
토끼 부부는 거처를 만들자마자 번식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로 번식 활동은 몇 번 더 계속됐다.
몇 시간 후.
오후 2시가 되자 세준이 일어나 오후 작업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때
삐익.
삐이.
토끼 부부가 사이좋게 굴에서 나왔다.
그리고 후다닥 움직이며 세준이 하려는 농사일을 시작했다.
삐비비.
쏴아아.
남편 토끼가 흥얼거리며 물조리개로 농작물에 물을 줬고
뺘뱌뱌.
싹둑.싹둑.
부인 토끼가 남편 토끼의 노래에 화음을 넣으며 가위로 파를 잘랐다.
남편이 노래하고 아내가 따라 부른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딱 그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세준을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뭐냐 저것들…”
알고 보니 남편 토끼가 들고 있는 물조리개와 부인 토끼가 입고 있던 앞치마는 아이템이었다.
물조리개에서는 멈추지 않고 계속 물이 나왔다. 그리고 앞치마는 공간 마법이 걸려있는지 아내 토끼가 가위나 삽 같은 농기구들이 필요할 때마다 앞치마에서 꺼냈다.
좀 부러웠다. 저런 장비들이 있다니. 자신은 손으로 파고 뜯고 물도 퍼다 날랐는데.
토끼들이 일하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은 잘 갔다.
하지만 금세 심심해졌다. 그때 옆에 놓아둔 페트병을 통과한 빛이 굴절되며 강한 빛으로 모이는 게 보였다.
그걸 보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예전에 TV에서 생존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방송이었는데 거기서 페트병에 물을 담아서 불을 피우는 장면이 떠올랐다.
‘불이나 피워볼까?’
잘 말려진 파 이파리에 불을 붙이면 잘 탈 것 같았다.
“좋아.”
세준이 일어나 잘 마른 파 이파리들을 모았다.
그리고
부욱.부욱.
불이 잘 붙을 수 있도록 이파리를 가늘게 찢어 가운데 잘 모아줬다.
그리고 세준이 물이 담긴 페트병을 이용해 돋보기처럼 빛을 한 점에 모아 파 이파리에 쏘이기 시작했다.
삐이?
삐?
세준이 같은 자세로 20분 이상 움지이지 않자 토끼 부부가 다가왔다. 농장 주인이 뭘 하는 건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꾸벅꾸벅
10분 정도 지나자 토끼들은 지루했는지 졸기 시작했다.
그때
모락모락.
잘게 찢은 파 이파리 더미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불씨가 만들어졌다.
‘된다!’
세준이 더욱더 집중해 페트병으로 빛을 불씨에 비췄다. 불씨가 강해지며 연기가 더 굵어졌다.
“후우! 후우!”
세준이 불씨를 품은 잘게 찢은 이파리를 들어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 넣었다.
토끼 부부가 바람을 불어 넣는 소리에 잠에서 깨 세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삐이!
삐익!
연기가 나는 파 이라피를 보면서 경악했다.
그렇게 얼마나 바람을 불어넣었을까.
활활.
불이 일어나며 불길을 토해냈다.
“흐흐흐! 됐다!”
삐익.
삐이.
토끼가 부부가 세준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토끼들의 아이템 중에 불을 피울 수 있는 아이템은 없었다.
불이 생기자 세준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파를 구워 먹는 거였다. 그냥 아무거나 따듯한 거로 배를 채우고 싶었다.
말린 파는 장작으로 쓸 정도로 딱딱해져서 먹기 어려웠고 오늘 뜯어낸 파를 구웠다.
파의 겉이 까맣게 타자 세준이 끝부분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앗! 뜨거! 호오.”
손가락을 호호 불며 다른 이파리 위에 올려 까맣게 탄 파의 껍질을 벗겨냈다.
구워진 파를 위로 들어 올려 껍질을 깐 부분을 입에 넣었다.
우적.
‘…달다!’
엄청난 맛에 세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입안에서 설탕이 날뛰었다. 엄청난 단맛이 폭발했다.
세준이 자신이 먹을 파 몇 개를 불길에 던져놓고 허겁지겁 파를 먹기 시작했다.
삐익?
세준의 반응에 남편 토끼가 용기 있게 파를 불 속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삐익!
삐이!
토끼 부부가 감동한 표정으로 파를 까서 먹었다. 셋 다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열심히 먹었다.
조난 7일 차.
세준은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잠들었다.
***
삐비빅.삐비빅.
[5월 19일 오전 6시]조난 10일 차.
“읏차.”
세준이 오늘도 활기차게 일어났다.
삐익!
삐익!
먼저 일어난 토끼 부부가 세준에게 인사했다.
“그래. 좋은 아침.”
어푸!어푸!
세준은 연못가로 가서 세수를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삐이.
아내 토끼가 구워진 파를 가져왔다.
“고마워.”
세준이 음식을 받으며 말했다.
우적우적.
구운 파를 먹으면서 농작물이 심어진 밭을 봤다. 이미 파는 다 베여 있고 땅도 축축이 적셔져 있었다. 일찍 일어난 토끼들이 이미 일을 끝내 놨다.
거기다 아내 토끼가 식사까지 만들어줬다. 알아서 해주니까 너무 좋다.
하지만
“……”
가뜩이나 할 일이 없던 곳에서 할 일이 더 없어졌다.
“좀 움직여야지.”
오늘은 미뤄뒀던 방울토마토를 옮겨심기를 하기로 했다. 너무 붙어서 자라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기에 슬슬 옮겨심기를 할 때가 됐다.
퍽.퍽.
세준이 손으로 흙을 파고 방울토마토를 옮겨 심을 자리를 만들고
푹.
남편 토끼가 숟가락 크기의 한 삽으로 하나씩 조심스럽게 퍼서 옮겼다. 옮기는 김에 나중에 심은 새싹 6개도 함께 옮겼다.
총 58개의 싹을 한 줄에 10개씩 6줄을 만들었다.
“후우.”
줄을 맞춰 가지런히 잘 심어진 싹을 보니 또 뿌듯함이 밀려왔다. 요즘 별거 아닌 거에 쉽게 뿌듯해지는 세준이었다.
세준은 방울토마토를 옮겨 심는 일이 끝나자 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횃불 만들기.
오늘 자른 이파리를 여러 장 엮어 손잡이를 만들고 끝부분에 마른 이파리를 잘게 찢어 수백 번 감았다.
말린 파 이파리는 꽤 오랫동안 불을 유지해서 횃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불 관리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파 이파리는 오랫동안 탔다.
평소라면 바로 때려치울 정도로 지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몸을 사용해,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만든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투자해 횃불을 하나 만드니 잘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삐비빅.삐비빅.
[5월 20일 오전 6시]조난 11일 차 아침이 밝았다.
“읏차!”
삐익!
삐익!
“그래. 좋은 아침.”
일어나자마자 토끼 부부와 아침 인사를 하고 세수를 하러 연못으로 갔다.
연못은 어제와는 다르게 환해져 있었다. 항상 세수할 때 어두운 것이 불편했던 세준이 가장 먼저 연못에 횃불을 설치했다.
“좋다. 흐흐흐.”
세준이 잘 타는 횃불을 보면서 세수를 하기 위해 연못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때
첨벙!
연못에서 갑자기 물고기 하나가 튀어나와 세준의 얼굴을 물려고 했다.
“억?!”
세준이 서둘러 몸을 뒤로 젖혔다. 물고기의 몸에서 나는 비릿한 물 냄새가 코끝을 스쳐 갔다. 정말 간신히 피했다.
파닥파닥.
땅으로 떨어진 물고기가 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뭐…뭐야?!”
당황했던 세준이 파닥거리는 물고기에게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몸에는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을 띠는 줄무늬가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코가 잘릴 뻔했다.
퍽!
세준이 물고기가 도망치지 못하게 일단 연못 반대쪽으로 차서 밀어냈다.
그리고 연못 안을 살펴봤다.
“오!”
안에는 방금 세준을 공격한 물고기와 같은 종이 몇 마리 더 헤엄치고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세준이 이유를 생각하는 사이
파닥파닥.
물고기가 몸을 움직이며 연못으로 도망가려 애쓰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세준이 서둘러 땅에 떨어진 물고기를 잡았다.
조난 11일 차. 드디어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