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ing in the tower alone RAW novel - Side Story (91)
91 – 풍비박산 집들이(3)
2부 91화. 풍비박산 집들이(3)
“당근 굵기는 들쭉날쭉에, 고기 굽기는 왜 이 따위야?!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해?!”
쾅!
백성진이 다른 쉐프들에게 고함을 치며 프라이팬을 바닥에 던졌다.
당근은 고르게 썰려있었고 고기 굽기는 백성진이 지시한 대로였지만, 쉐프들은 아무도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왜?
상대는 미슐랭 3스타 쉐프니까.
언제까지 높은 사람 비위나 맞춰야 하는 거야?!
그래서 백성진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오늘도 높으신 양반들의 식사 준비나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 화를 직원들에게 풀었다.
많은 돈을 준다는 말에 자신이 승낙한 거면서.
“나 돌아올 때까지 제대로 해 놔.”
혼자 씩씩거리던 백성진은 부하 쉐프들에게 말을 하고 주방을 나왔다.
그리고 주방에서 조금 벗어난 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는 백성진.
음식의 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금연하는 쉐프들이 많지만
난 괜찮은데?
백성진은 그러지 않았다. 백성진은 재능이 넘첬고 큰 노력 없이도 쉽게 일류 쉐프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노력은 자신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담배를 절반 정도 태웠을 때
“응? 이게 무슨 냄새지?”
어디서 음식 냄새가 나는데?
백성진은 주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는 음식 냄새를 맡고는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꿀꺽.
군침을 삼키게 하는 음식 향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다리.
백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향기에 이끌렸고
뭐야?! 나를 불러 놓고 다른 음식을 준비시켰다고?!
세준이 준비한 음식들을 발견하고는 분노했다. 이건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미슐랭 3스타 쉐프를 불러놓고 다른 요리사를 또 부르다니?!
“뭐야?! 누가 내 허락도 없이 여기다 음식을 세팅한 거야?!”
그래서 화를 냈다. 자신은 미슐랭 3스타 쉐프고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음식을 이렇게 성의 없이 준비하다니.
수준이 뻔하군.
거기다 대형 냄비에 마구잡이로 담긴 음식을 보니
출장 뷔페에서 나온 건가?
상대는 쉐프도 아닌 것 같았다. 맛있다고 생각했던 냄새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상대는 쉐프가 아니었으니까.
사람이 오는 걸 느끼고 이오나가 은신 마법을 자신과 일행들에게 사용했기에 백성진의 눈에는 세준과 에일린만 보였다.
딱 봐도 에일린은 요리를 할 얼굴이 아니었기에 백성진은 당연히 세준이 요리를 했다고 생각했고.
세준의 요리를 보는 백성진의 눈빛에 무시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히······.”
우리 세준이가 만든 요리를 그딴 눈빛으로 봐?!
부들부들.
그런 백성진을 보며 에일린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힘을 필사적으로 참느라 몸을 떨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다치든 죽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세준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에일린, 진정해. 이 음식을 안 먹으면 저 사람만 손해잖아.”
“히히히. 그건 그렇네. 세준이, 네 말대로 이 맛있는 걸 안 먹으면 자기만 손해지.”
세준의 말에 화가 풀린 에일린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꾸엥!꾸엥!
[아빠 요리를 무시했다요! 꾸엥이가 아빠의 요리 맛을 알려주겠다요!]꾸엥이는 굳이 세준의 요리 맛을 백성진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윽! 몸이 왜 이래?!”
염력으로 백성진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입에 세준의 음식을 친절히 넣어줬다.
끼히힛.낑!낑!
[히힛. 인간아! 입 벌려! 집사 요리 들어간다!]“히힛. 꼭꼭 씹어 드세요.”
까망이와 태초는 옆에서 백성진이 세준의 요리를 먹는 걸 구경했다.
***
뭐······뭐지?
처음에는 억지로 들어오는 음식을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미친! 오징어 감칠맛 뭔데?!
거기다 국물은 왜 이렇게 깔끔해?!
‘다음을 뭘 주려나?’
오징어 물회를 먹고 입안이 개운해졌으니, 다음에는 기름진 저 랍스터 찜을 줘!
꿀꺽.
자신도 모르게 입에 들어올 다음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성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몸은 솔직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완벽했어.
입안에 들어왔던 음식의 기억을 분석해 보는 백성진.
그때
꾸엥!
꾸엥이가 백성진의 입에 석화거미 찜을 넣어줬고 이번에는 신중하게 맛을 분석하며 먹었다.
역시 음식의 식감, 음식의 간 전부 완벽해.
까고 싶어도 깔 게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슬라임 두루치기까지 맛있게 먹은 백성진.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군······.’
그 순간 백성진의 꽉 막혔던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머릿속에 자신이 처음 요리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가 떠올랐다.
17살의 뜨거운 여름.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가 직접 손반죽을 해서 만들어준 칼국수.
집이 가난해 바지락도 들어가지 않은 칼국수였지만, 엄마의 손맛 때문인지 너무 맛있었다. 마법처럼.
그래서 결심했다. 요리사가 돼 자신도 엄마처럼 마법 같은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하지만 자신이 커서 배운 요리는 달랐다. 요리는 마법이 아니었다. 요리는 과학이었다.
재료의 양을 정확히 계량하고 고기는 온도계로 온도를 재며 구웠다. 딱 계산한 맛이 나왔고 그런 계산된 맛을 고르게 내는 사람이 일류 쉐프였다.
그리고 접시 위에 요리와 화려한 데코를 그럴듯한 설명과 함께 겻들이면 모두가 인정을 해줬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먹을 음식이라고.
하지만 지금 자신이 먹은 요리처럼 어렸을 때를 떠올리게 할 수는 없었다. 다시 요리로 마법을 부려보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요리는···그냥 자신의 요리보다 100배는 맛있었다.
“내가 졌다······.”
세준의 요리 5가지를 다 먹은 백성진이 입을 열자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꾸엥이가 아빠의 요리 맛을 요리사 아저씨한테 알려줬다요!]뿌듯한 표정으로 승리의 만세를 하는 꾸엥이.
끼히힛.낑!
[히힛. 꾸엥이 형아! 대단해! 집사야! 꾸엥이 형아가 저 인간에게 집사의 요리 맛을 알려줬어!]까망이는 세준과 에일린 주변을 정신 사납게 뱅글뱅글 돌며 짖었고
“히힛. 그럼 우리가 이긴 거지?!”
“아니. 요리를 먹을 경쟁자가 하나 늘어난 거지.”
“앗! 그렇네! 안 돼!”
세준은 태초를 놀렸다.
그때
“좋은 음식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깨달은 게 많습니다. 그리고 좀 전에는 너무 죄송합니다.”
백성진이 세준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감사와 사과를 전했다.
그리고
“괜찮다면 제가 요리를 그릇에 담아도 될까요?”
세준에게 양해를 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성진은 이 요리를 그릇에 아름답게 담아 사람들이 요리에 담긴 가치를 제대로 알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자신처럼 실수하지 않도록.
“네.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뷔페처럼 사람들에게 알아서 퍼가게 할 생각이었기에 세준은 별생각 않고 허락했다.
다른 쉐프들을 데리러 가는 길.
백성진은 담당자에게 전화해 오늘 받기로 한 돈을 거절했다. 오늘 요리를 하지 않을 생각이니, 돈을 받지 않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잠시 후.
“좋아. 시작해 보자고!”
““네! 쉐프!””
백성진을 따라온 쉐프들이 백성진의 지시를 받으며 음식을 접시에 정성껏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미식의 수호자, 박세준 님!]엇나가던 요리사를 바른길로 인도한 세준을 찬양하며 미식의 별 [딜리셔스]가 지구에서도 빛나기 시작했다.
***
“이제 경철이네 집구경 하자.”
“응!”
세준은 쉐프들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담는 걸 보며 자리를 벗어났다. 자신만 놀고 있으니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정원에서 경철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이렇게 보니까 우리 경철이 대단한데?
뉴스에 자주 나와 세준도 얼굴을 아는 재벌이나 유명인들과 여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경철이가 보였다.
세준은 그런 경철을 조용히 지켜보다 집 구경을 시작했다. 집은 엄청나게 컸는데 집 안 곳곳에 손님을 위한 술과 다과가 푸짐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스르륵.
세준이 다과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다과들이 몽땅 사라졌다.
세준이나 에일린이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꾸헤헤헤.
히힛.
은신을 한 꾸엥이와 태초의 작품이었다.
둘은 간식을 입에 넣고 나머지는 나중에 먹기 위해 간식 주머니에 열심히 쟁여두고 있었다.
그사이
끼히힛.낑!
[히힛. 너! 위대한 까망이 님의 부하가 돼라!]왈!왈!
[충성! 충성!]낑!낑!낑!
[좋아! 기분이다! 이건 위대한 까망이 님 전용 간식인데 하나 줄게!]까망이는 다른 데로 새서 최미나의 애완견복슬이를 부하로 부리며 대장 놀이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에일린은 세준의 농작물이나 요리가 아닌 다른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맛도 맛이지만, 마력의 맛도 중요한 에일린에게 지구 음식은 뭔가 맛이 하나 비어 있다고 해야 하나? 좀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오. 뭐야?! 게임방도 있네?! 플스랑 닌스에······ 와. 게임도 엄청 많아!”
집을 구경하던 세준이 게임 전용으로 꾸며놓은 방을 넋을 잃고 바라보자
“세준아, 이게 갖고 싶어?! 하나 만들어 줄까?! 난 이것보다 100배는 크게 만들어줄 수 있어!”
에일린이 바로 반응했다.
“응? 아냐. 요즘은 게임이 재미없더라고.”
현실이 더 스펙타클하고 재미있으니까.
“그래?”
세준의 말에 에일린은 실망했다. 자신도 세준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걸 선물해 주고 싶었기 때문. 생각보다 세준은 좋아하는 게 별로 없었다.
그렇게 세준과 에일린이 집을 구경하는 사이
저것들은 뭐지?
멀리서 세준과 에일린을 유심히 보고 있는 한 남자. 그는 세준과 에일린이 과자를 훔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루해서 그만 돌아갈까 했더니, 이런 행운이.
남자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눈빛으로 에일린을 바라보며 세준과 에일린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 놈은 망신을 주며 쫓아내고 여자랑은 좋은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뭐지? 이 불쾌함은?
남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에일린은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감히······!”
이 벌레가!
분노한 에일린은 남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남자의 어깨를 검지로 툭 건드렸고.
털썩.
남자가 쓰러졌다. 영원히. 에일린의 터치는 세준도 견디기 어려운 위력을 담고 있었고 지구의 일반인은 당연히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음지에서 핏빛의 학살자라고 불리던 러시아의 헌터가 한국에서 조용히 목숨을 잃었다.
“에일린······?”
세준이 에일린의 눈치를 보며 조심히 불렀다. 지금 에일린의 눈빛은 너무도 차가워 자신이 알던 에일린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솔직히 많이 무서웠다. 자신도 그런 눈빛으로 볼까 봐.
“응? 세준아, 왜?”
다행히 세준의 부름에 에일린의 눈빛은 금세 평소대로 돌아왔다. 아주 반짝반짝하고, 화사하고, 고혹스럽고······
으헤헤헤. 이쁘다.
어느새 에일린의 아름다운 눈빛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세준.
우리 세준이 멋있다.
에일린도 세준의 눈빛에 흠뻑 빠졌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지는 세준과 에일린의 입술.
세준과 에일린은 분위기에 휩쓸려 키스 후의 후폭풍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둘을 대신해 키스를 막아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꾸익-!
불행왕 유렌이 비명을 지르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크크크.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킬킬킬. 맛있어 보이는 것들이 많구나.
-후하하! 전부 다 먹어 치워 주마!
위험한 존재들을 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