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3)
r 102 – 102.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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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야 할 일부터 정리한다.
남은 시간은 겨우 20시간 남짓. 그 안에, 엘노어의 폭주에 비견되는 보스전을 견뎌내기 위한 수단들을.
“…”
명제만 딱 놓고 봤을 땐 미치도록 막막하긴 하다.
그거 어떻게 하냐?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지.’
당면한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이전에 발카서스와 대적할 때도 느낀 거다.
당황하거나, 공포에 질리는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된지.
내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온 경험에 의하면 틀림없이 그렇다.
[…글쎄.]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소울 링커 안에서 칼리반이 피식 웃으며 그런 말을 던져왔다.
[단순히 그런 것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예?”
[너 강심장이라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네 상태는 확실하게 이상하단 말이야.]그런 말이 이어졌다.
[아무리 심줄이 굵은 놈이라고 해도 자기 목숨에 위협을 느끼면 나오는 최소한도의 생존 본능 정도는 있어.]특히 준비하려던 거에 절반도 똑바로 못 갖춘 상태에서 외통수를 얻어맞은 놈이라면 더욱이, 뭔가 ‘반응’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말한 칼리반이 잠시 침묵했다.
[당장 이전에 내 옆방에 잠들어 있는 소년왕과 마주할 때만 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잖아.]“…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칼리반은 기본적으로 내 옆에서 필요할 때만 협력하고 나머진 놀리거나 구경하는 수준의 방관자에 그치지만, 가끔 나한테 진짜로 진지해질 때가 있다.
주로 내 목숨이 진짜로 위험해 보이거나.
‘악마’ 관련된 뭔가에 내가 휩쓸릴 때에 그렇지.
[너, 뭔가 변한 것 아니냐고.]냉기가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그거 때문에 말이야.]칼리반의 말에 내 가슴팍에 새겨진 타천의 인장을 내려다본다.
아마 시스템 창을 뜯어보면, 분명히 이런 말이 떠올랐었지.
[ System Log > [ ‘타천의 인장’의 1단계 제한이 해제됩니다. ] [ 당신의 속성이 ‘인간’에서 ‘·̶̛͈̪͚̹̺͖͉̪̇̎̃̏̃̎̚͡ͅ ̷̥͉̞͎̯̥̫̳̻͆͊̉̀̾͘͞·̴̵̢̢̥̱̝̘̟͎̯̥̟͖̞͊͐͌̿̎̋̔̈́̃̕̚͘͜͟͝͞͞·̶̛͈̪͚̹̺͖͉̪̇̎̃̏̃̎̚͡ͅ ̷̥͉̞͎̯̥̫̳̻͆͊̉̀̾͘͞·̴̵̢̢̥̱̝̘̟͎̯̥̟͖̞͊͐͌̿̎̋̔̈́̃̕̚͘͜͟͝͞͞’로 점진적으로 변경됩니다. ] [ ‘악마’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수록 속성 변경이 가속됩니다. ]확실히.
최근 들어서 악마들이랑 엄청 밀접한 관계를 맺기는 했지.
칼리반의 말대로, 뭔가 변하기 시작할 시점은 분명히 됐다는 거다.
“…”
반쯤 혐오감까지 섞인 목소리에 잠시 침묵한다.
당장 본인이 폭주한 붉은 악마의 그릇을 처리하기 위해 투입되었다가 동료들과 함께 죽은 인간이다.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다.
[악마랑 얽힌 것들은 전부 다 끝이 안 좋아. 너만큼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칼리반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엮이면, 높은 확률로 엘리야까지 거기에 휘말리니까.]“저하고 엘리야가 그 정도로 각별한 관계는 아닙니다, 칼리반.”
[당장은 그렇지.]“…”
[오빠된 입장에선 옆에서 보기만 해도 알겠는데. 걔도 이미 네 마수에 잡힌 이상 자력으로 탈출하기는 글렀어. 네가 대놓고 밀어내지 않으면 끝까지 정신 못 차릴 텐데…]칼리반이 잠시 침묵하다, 이내 피식 웃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의미로는 아닌데요.”
[연애 감정이 있건, 없건. 너 엘리야 끝까지 옆에 붙여둘 생각이잖아. 네가 감추고 있는 깊숙한 기억같이 심층적인 건 몰라도, 네가 떠올리는 의사나 감정 정도는 나도 공유가 된다고.]“…”
[솔직히 너한테 몇 명이 들러붙건 상관은 안 해. 그 정도 가치는 있는 놈 같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나중이든 어쨌든 꼭 엘리야를 정실로-]“바쁘니까 헛소리는 나중에 합시다.”
본인 동생한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차피 지금부터 당신이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요.”
내가 페이놀이라는 인간을 꺼리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장 4챕터 최종 보스라는 것도 그렇고, 악마의 그릇 중 하나라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칼리반과 나한테 나중에 폭탄으로 돌아올 모든 요소를 다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람의 경우는 더더욱.
“칼리반. 약속 하나만 해주세요.”
[뭔데.]“절대, 절대로. 허튼 짓 하지 마세요. 아셨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네가 나한테 그런 일을 시키다니 별일이네.]그렇게 말하는 칼리반이 말을 들으며, 서둘러 걸어온 페이놀의 숙소 앞쪽에 멈춰선다.
[ System Log > [! 경고 !] [ 중요 대상입니다. 미리 접촉할 경우 시나리오에 변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 [ 대상과 접촉할 경우 ‘보스: 소년왕’의 클리어 특전으로 받은 ‘이단심문소 – 특별 상호 작용’이 곧바로 해금됩니다! ] [ 대상에게는 ‘스킬: 치명적인 매력’의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
이전에도 한 번 봤던 메시지지만, 막상 이 놈을 직접 만나려니 조금 중압감이 오긴 한다.
이전에 ‘시나리오 변동’어쩌고 하는 메시지가 떠올랐을 때 어떤 일이 생겼는지 떠올린다면 더더욱.
세계관 ‘흐름’의 중심축이 엘리야가 아니라 나한테로 옮겨온 것도 그때쯤이고, 엘노어가 나한테 푹 빠져서 쫒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으면.
이 녀석과 마주치는 것 자체가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당장 유리아가 엮여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 방 안에는, 유리아와 이 녀석이 ‘뭔가’를 하고 있다.
그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에서 페이놀은… 성격이 대단히 기괴하게 비틀린 놈이었다.
자신이 인정한 상대를 제외하고는 아예 같은 인간으로도 취급 안 하는 진성 정신병자.
놈이 유리아를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서는.
어쩌면, 전투 상황까지 번질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어올리자.
안쪽에서 유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싫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건-”
“어머. 저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어서, 마치 비웃는 것처럼 낮게 깔린 페이놀의 목소리까지.
“이 정도도 똑바로 못 하면, 그 남자한테 버림받을걸요?”
그런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깨닫는다.
이 녀석, 지금 나를 구실로 유리아한테 뭔가를 ‘강제로’ 시키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과격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자, 그 안쪽에는.
“…이, 이런 옷은, 처음 입어보는데요…”
“그럼 더욱 입어보셔야죠! 다우드 캠벨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해서는 일단 본인부터 가꿔야 한답니다!”
“…”
“자고로 옷이란 여성에게 있어서 날개! 그런 허름한 물건이나 매일 입고 다니니 매력을 느낄 턱이 있나요!”
위아래로 속옷 한 벌만 댕그러니 입고, 양손에 하늘하늘한 여성복을 하나씩 쥐고. 눈물 맺힌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리아가 있었다.
둘 다 대단히 노출도가 높은 옷이다. 몸을 가리는 곳보다 내놓는 곳이 더 많은 모습이다.
눈을 번쩍거리는 페이놀의 옆으로는,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
뭐냐 이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 명을 둘러보고 있자니.
마침내 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걸 깨달은 유리아와 페이놀의 고개가 동시에 이쪽으로 돌아왔다.
“…”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에, 유리아가 멍한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얇은 브래지어 하나. 땡땡이 무늬가 들어간 흰색 팬티 하나.
그것 외에는.
그게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의 전부다.
전체적으로 얇고 하늘하늘거리지만 유려한 곡선이 분명한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나신이다.
그리고 그 초점 잃은 시선이 천천히 내쪽으로 올라온다.
이어서.
내가 얼빠진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자각한다.
“…”
“…”
유리아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전신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보고 있으니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유리아의 눈에 물기가 차오른다. 그 입이 열린다. 공기를 잔뜩 들이쉰다.
[역시 다우드야.]“…”
[그냥 문만 열고 들어가도 이딴 상황이 튀어나오네. 너 진짜 어디 삼류 작품 주인공이라도 되냐?]칼리반의 헛웃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창이 하나 떠올랐다.
[ ‘칭호: 난봉꾼’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아, 그렇군.
이래서 미리 장착해놓으라고 한 거였나.
변명할 때 도움이라도 되라고.
“…잠깐. 여기엔 사정이-”
뭐라고 변명을 꺼내놓으려던 내 문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유리아의 새된 비명이 주변으로 높이높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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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하나.
유리아도 꽤 스펙이 올라간 게 분명하다. 이전에 칼질 몇 번으로 수룡을 걸레짝으로 만들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검집을 씌워둔 상태로 단절자를 휘둘렀음에도 나를 거의 곤죽으로 만들어 놨으니까.
[ System Log > [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전투를 속행했습니다! ] [ ‘특성: 철인’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오죽 개작살이 났으면 이 특성 숙련도가 올라가겠나.
“…”
그래도, 일단 살았다.
당장 내일이 보스전인데 그걸 제대로 준비하기도 전에 아군한테 목이 날아가는 꼴사나운 죽음은 피했단 소리지.
“…흠.”
대신 반쯤 다진 고기가 되어있는 내 꼴을 본 페이놀이 턱을 쓰다듬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살아있긴 한가요, 당신?”
“…어떻게든.”
유리아가 울고불고 하면서 날뛰는 바람에 완전히 개작살이 난 객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뒤에는 ‘다우드 씨 바보-!’ 어쩌고 하면서 쏜살같이 어디로 뛰쳐나가 버렸던가.
몸을 추스르며 테이블 앞에 털썩 걸터앉으니, 페이놀이 아주 자연스러운 몸놀림으로 차를 한 잔 내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우드 캠벨.”
페이놀이 활짝 웃으며 이쪽으로 악수를 청했다.
“…”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마주 잡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울 링커 안에서, 칼리반이 경악하는 느낌이 똑똑히 전달되어 온다.
신체를 마주할 정도면, 그 기운을 못 느낄 리가 없으니까.
[…아니, 아니. 웃기지 마. 지랄하지 말라고.]그래.
말했잖아.
[이 놈은, 내가, 분명히…!]죽였지.
페이놀은, 칼리반의 말대로 한 번 죽었던 존재다.
칼리반과 가디언들이 전부 목숨을 쏟아부어 한 차례 그리했지.
그리고, 이 사람이 기억하는 겉모습과는 다르겠지만. 이건 그것과 똑같은 존재다.
엘리야의 가족을 전부 휩쓸리게 만든, ‘적야 사태’를 만들어낸 주범.
“그래서.”
페이놀 ‘데스위시’ 라이펙.
4챕터의 최종 보스.
‘붉은 악마’의 조각을 ‘전부’ 보유한, 시나리오 최초의 ‘완성된’ 그릇.
즉.
“저는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셨는지?”
단순히 악마의 조각을 품고 그릇을 넘어.
‘완성된 악마’를 품고 있는 ‘화신’으로 승화한 유일의 존재가.
나를 향해 살풋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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