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9)
r 108 – 108. 족장 회의
●
하탄 우-줄이 애써 두통을 가라앉혔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냥 한 번 죽어서 부활에 들어간 게 아니라. 소멸 자체가 확인됐다. 존재 자체가 감지가 안 돼.”
모두가 침묵했다.
사람이 너무 황당한 일을 들었을 때 익히 나오는, 사고 프로세스가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침묵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된 질문이었지만, 이번에도 기어코 참지 못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밀림 지대의 일각수가, 완벽하게 죽었다고?]“그래. 확실하게.”
[다른 마경의 지배자들도 전부 소멸에 준하는 피해가 확인되었다고.]“어.”
[그리고 그건 전부-]“한 놈과, 그 놈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하나의 사냥조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나랑 결투하자는 뜻으로 받는다.”
그가 분노를 간신히 참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놓자, 근처에 있는 다른 족장들에게 침묵이 주욱 깔렸다.
족장 전부가 모이는 긴급 소집은 사실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전무후무한 일이군.]족장 중 한 명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냈다.
부족 연합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마경의 지배자들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기는커녕 한 번이라도 그쪽을 죽이는데 성공한 이들은 극히 드물다.
어디 한쪽의 지배자만 사냥에 성공해도 당대에는 최고의 사냥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인데.
4개의 마경에 속한 지배자, 전부를?
[…부족 연합의 전통에 따라, 그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포상이 내려져야 할 것이네.]“대사냥꾼 칭호라면 당연히 줘야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네, 하탄. 자네도 알지 않나.]말을 꺼낸 족장이 한숨과 함께 문장을 이었다.
[…연합 특성상, 역사에 기록된 적이 없는 수준의 ‘대업’을 세운 이에겐 그걸론 모자라네.]신상필벌. 부족의 전통이다.
그만한 대단한 일을 이룩한 이라면 이전에도 있던 칭호만 하나 던져주는 건 안 될 일이다.
설사 그게 외부인이라 할 지라도.
무겁게 이어진 목소리에, 모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
“…”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아마 머릿속으로는 다들 똑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건 당장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하지 못 할 짓이다.
심지어는, 부족 연합을 총괄하고 있는 대족장 본인조차도.
그럼 그만한 위업을 세운 이에게는, 대체 무엇이 주어질 거란 말인가.
[그게 그렇게 대순가?]하지만, 그런 위업을 이룬 사람이라도,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내려깎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오기 마련이다.
“바롤.”
하탄이 그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롤 게-르도. 모든 부족 중에서 가장 문제아인 푸른 멧돼지 부족의 족장.
얼마 전에 리루 가르다와 다우드 캠벨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혼쭐이 난 크룬 게-르도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뭐, 아무튼. 지금 굴러가는 이야기가 굴러가는 걸 보니까, 너희들 모두 그놈한테 뭔가 어마어마한거 하나라도 던져주려는 모양인데. 그러려면 전 족장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니었어?]“…설마 네가 반대하겠다는 소리인가?”
[아까도 말했잖아. 그게 그렇게 대수야?]이렇게 이어지는 말만 들어도 그런 사실이 더욱 확고해지는 느낌이고.
‘…제 아버지한테 일러바쳤군, 그놈.’
이런 말도 안 되는 강짜를 부리는 것만 봐도 사적인 감정으로 우기는 것이 분명하다.
그 얼간이, 다음에 만나면 아주 반으로 접어놔주마.
[대족장은 뭘 하고 있지?]그런 말이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왔다.
우타드 한-차이.
지금은 제국의 아카데미인 엘판테에 유학을 가 있는 루카 한-차이의 아버지.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우리한테 투표가 넘어올 것도 없이, 대족장이 직접 그 놈을 표창했어야 정상인데.]논리적인 말이다.
이 정도로 규격 외의 괴물이 튀어나오는 경우라면, 이렇게 족장들이 모이기도 전에 대족장이 직접 나서서 그쪽을 처리해야 정상인 일인데.
“알란은 계속해서 아무 반응도 없어. 용광로에 방문만 했지, 어디에도 얼굴을 안 드러낸다. 봤다는 사람도 없고.”
[…그거 곤란하군.]하지만, 지금 투쟁의 용광로에 도착한 알란은 하탄의 말대로 그 어떤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마치, 이미 죽기라도 한 사람처럼.
[일단 당사자를 불러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지.] [족장 회의에 외부인을 들이자고, 우타드?] [별 수 없지 않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지금은 틀림없이 그게 가장 논리적인 해결책이었다.
[…] […]결국, 다른 족장들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Demon Alert!!!!!!!!!!!
[ ‘악마 관련’ 긴급 이벤트 발생! ] [ 최중요 이벤트입니다! ] [ 제한 시간 안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사망합니다! ] [ 대상 ‘리루’와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 [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해 대비책을 강구하십시오! ]“…”
음.
그래.
언제 떠오르나 했다.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아마 지금쯤 페이놀의 공간 이동 술식의 영향으로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내가 그쪽에 한 짓은 누가 봐도 쓰레기 짓인데. 그 몸 안에 깃든 게 ‘분노의 악마’라면야, 폭주 근처까지 안 가는 게 이상하다.
아마 아무리 오래 걸려도 몇 시간 안에는 내가 있는 쪽까지 찾아오지 않을까.
“…”
물론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은 눈앞에 있는 일부터.
“다우드 캠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교직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시계를 살핀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5분 안에 마경의 지배자들을 때려잡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족장 회의’가 소집되는 게 꽤 오래 걸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든 높으신 분들 불러 모으는 게 제일 힘들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방 안으로 입장하자, 족장들 전원의 홀로그램이 나를 쭉 쳐다보고 있다.
기술 수준 높은 동네 아니랄까 봐, 긴급하게 모일 일이 있으면 이런 식의 방식도 가능하다 그거지.
기묘한 침묵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누군가 내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거구의 전사.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인상이다.
“저를 아십니까?”
[루카가 너와 리루 가르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지.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아, 그쪽인가.
그 녀석, 차기 족장 후계의 권리로 리루에게 뭔가를 준다 어쩐다 했으니까. 아버지한테 얘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 이쪽에 불려왔는진 알고 있나?]침착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는 우타드의 얼굴을 마주본다.
“저한테 줄 포상에 대해서 의논하기 위해 부르신 것 아닙니까? 연합에서는 사냥꾼을 특히 우대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연합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단다.]우타드가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가 이룬 일은, 우리 연합의 역사를 뒤져봐도 전례가 없는 일이란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런 이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돌아가는 게 이치야.] [아까도 말했지만, 난 반대야. 대사냥꾼 칭호까지는 줘도 그 이상은 줄 생각 없어.] [바롤. 너무 심술을 부리지는 말게.] [하. 난 그저 족장으로서 정당한 권리를-]저들끼리 그런 말을 주고받는 족장들의 홀로그램을 말없이 바라본다.
‘…아니, 뭐.’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데요.”
그 보상, 분명히 받아내긴 할 거다.
부족 연합에는 훗날을 위해 반드시 리루를… ‘앉혀 놔야’ 할 자리가 있으니까. 거기에 쓰일 기회로서.
내가 이전에 리루를 갱생해야 하느니 어쩌니 하는 것도 다 그걸 위해서였고.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필요했던 상황 자체는 이렇게 족장들 ‘전원’이 모이는 게 전부다.
이놈들한테 긴급하게 허락받아야 하는 게 있으니까.
[…] […]내 말에 바롤과 우타드, 그리고 다른 족장들까지도 전원이 의아하단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대사냥꾼 칭호는 일단 여기 전원이 만장일치로 제게 주신다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
[그건 그렇지. 이 정도 업적을 이뤘는데 그것도 못 가져가서야 말이 안 되니까.]그렇게 대답하는 우타드의 모습에, 잠시 입을 다문다.
사실, 가장 앞서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부족 연합은 몇 차례 언급했지만 대단히 폐쇄적인 집단이다. 이렇게 수뇌들끼리 모이는 곳이라면 나처럼 이쪽에 연고도 없는 외부인을 들이는 건 결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굳이 먼저 나한테 말을 걸어준 것도 그렇고, 아마 이 사람이 나를 좀 챙겨줘서 가능한 일이겠지.
내가 지금부터 저지를 짓에 입을 ‘피해’가 정당화되는 사람이 아니란 거다.
나중에 양해를 좀 구해야겠지.
“…그럼 한 가지, 정당한 권리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사냥꾼은 ‘마수’를 상대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족장들까지 그 의견을 구하는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를 말하는 칭호다.
나야 뭐 그냥 악마들한테 무임 승차해서 따낸 거니까 그런 어마어마한 수식어까진 필요 없고, 그저 다른 족장들까지 내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 수 있는 권한 하나면 충분하지만.
“…지금 부족 연합, 그리고 이 투쟁의 용광로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 그런 게 생기려다가 엘노어가 거하게 터트려주는 바람에 없어졌지.
하지만, 지금은.
그 반작용인지, 그런 위협이 수 배로 불어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여 대사냥꾼의 칭호를 받은 자로서 진언하는 건데.”
그리고, 그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용광로 ‘전부’를, 잠깐만 저한테 넘겨주시죠.”
이 ‘아카데미’ 전부가.
내 장기 말이 되어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