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2)
r 111 – 111. 이독제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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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크리사낙스는 대단한 친화력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현재 상태의 그레이하운처에게 어떻게든 말을 붙이는 것에 성공한 것만 보더라도 그런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아, 저기. 유리아 씨.”
엘리야가 이마로 식은땀을 한 방울 흘러내려 보내며 입을 열었다.
“기, 기분을 좀 푸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서, 선생님도 유리아 씨한테 마냥 화가 난 상태면 이렇게 뭔가 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으셨을테니까…”
“…”
유리아가 말없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웃기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새하얗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유리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적으로 까만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그런 감상이 끼어들 여지는 어디에도 없겠지.
아마, 지금 엘리야가 그 몸 근처에서 ‘피어오르는’ 뭔가를 계속해서 보지만 않았어도 그녀 역시 동의했을 것이다.
“…저, 분명히 다우드 씨가 해달라는 것, 잘 한 것 맞죠?”
지금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유리아의 몸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하얀색 기운부터가 그렇다.
엘리야의 시선이 유리아가 잡고 있는 검부터 시작해서 그 전신을 쭉 한 번 훑었다.
어.
하얗다.
틀림없이.
저 몸 안쪽에 있는 ‘하얀색 유리아’의 형체가 그런 기색을 무시무시하게 뿜어내고 있다.
‘…보여, 보여, 보인다고…!’
엘리야가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고정시키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최근 들어, 이상할 정도로 주변에 있는 것들이 ‘민감하게’ 의식되는 경우가 많다.
트리샤의 말로는 이상할 정도로 ‘똑똑해졌다’라나 뭐라나.
엘리야 본인으로서는 똑똑해졌니 뭐니 하는 건 딱히 잘 체감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와닿는 건 있었다.
‘끔찍한 것’들은 아주 잘 보인다.
트리스탄 공녀 몸 안에 있는 ‘뭔가’도 그렇고, 지금 유리아의 몸 안에 있는 ‘뭔가’도 그렇고.
이전에는 희끄무레하게 보여서 윤곽만 간신히 인식할 수 있던 것들이, 요즘 들어서는 아주 똑똑히 보인다!
“그, 그럼요. 선생님도 만족할거에요.”
사실 아니긴 하지.
다우드는 분명히 지금 유리아가 깔고 앉아있는 일각수를 ‘적당히 제압’하라고만 했지, 이렇게 아예 부활도 못 할 정도로 쳐 죽여 놓으라고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을 어떻게 순순히 꺼내놓는단 말인가.
아무튼, 다우드는 그녀에게 ‘부탁한다’고 말하며 유리아에게 붙여놓았다. 그 사람 성향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녀가 이런 상태라도 달랠 수 있을 거라 ‘계산하고’ 그런 짓을 했을 확률이 높겠지.
그러면, 그녀로서도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
왜 그쪽 기대에 부응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시끄럽다고 고성을 내지를 것이다.
아, 몰라. 아무튼 그래야 한다.
그래야지, 음.
뭘 ‘요구’하기에도 편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나중에 꼭 배로 돌려받을 거야…!’
뭘 돌려받겠다는 건진 그녀로서도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맨입으로 부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단둘이서 어디 놀러 가는 것 정도는 확답을 받아야-
“엘리야 씨.”
“…예?”
“지금,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
엘리야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유리아가 죽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몸 안쪽에 있는 하얀 유리아의 형체는 거의 안광을 내뿜으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마치, 그녀가 다우드에 대해서 한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이전에도 다우드 관련된 화제면 민감하게 반응하긴 했지만, 저 하얀색 형체가 명확하게 보인 뒤로는 거의 귀신에 가까운 수준이다.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옷…!”
무서워서 목이 메일 정도지만, 엘리야가 간신히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려고 하지만 있는 힘껏 그걸 안으로 집어넣는다.
일단 화제를 돌리자.
이야기.
이야기를 하는 거다.
세상 문제 대부분은 소통의 단절에서 일어난다. 지금 이 사태도 충분히 이야기로 풀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보다! 그건 계속 차고 다니시네요!”
엘리야가 유리아의 목에 여전히 채워져 있는 목줄을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
억지스럽다고 봐도 좋을 화제 전환이었지만, 다행히 그럭저럭 유효했던 모양이다. 유리아의 기운이 누그러지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운 것만 봐도 그러했다.
마치 대단히 소중한 보물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유리아가 목줄과 그 옆에 묶여있는 손수건을 어루만졌다.
“…예.”
마치, 이걸 만지고 있을 때만큼은 방금 전까지 그녀를 잡아먹고 있는 그 우울함과 음습함이 싹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만질 때마다, 다우드 씨가 느껴져요.”
“…”
“마치 근처에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엄청, 안심된다고 해야 하나. 이 물건 관련해서는 좋은 기억밖에 없어요.”
엘리야가 다우드가 저 목줄로 뭔가를 했었는지 잠시 기억을 반추했다.
그러니까.
주로 유리아가 숨이 막혀서 켁켁거릴 때까지 저걸 이용해 그녀를 애완동물처럼 잡아끌고, 물건처럼 집어 던지고, 철퇴마냥 붕붕 휘두르고-
“…”
그게 좋은 기억이라고.
음.
“…유리아 씨는 진짜로 선생님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꺼낼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아니,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로 그쪽을 좋아해야 그게 가능한 건데…?
틀림없이, 질문 자체야 그런 생각을 담아 가볍게 던진 물음이었을 것이다.
“예.”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좋, 아해요.”
평소의 유리아가 늘상 내던 쭈뼛거리고, 자신감 없는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틀림없이, 그걸 전부 다 덮어버릴만큼 ‘간절함’이 녹아든 목소리였다.
엘리야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유리아를 돌아보았다.
가라앉은 눈동자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을 전부 파악하기는 힘들었음에도.
“좋아해요.”
그 울음기마저 섞인 목소리에.
“다우드 씨를,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해요. 제 무엇이든 내어드릴 수 있어요.”
마치 듣고 있는 엘리야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애절함이 담겨있다는 것만큼은.
그녀에게 있어, 지금 말하는 이 문장이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것만큼은.
“같이, 있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꺼내든 질문에도 이런 식의 답변이 돌아올 정도면.
이 여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다우드 캠벨이란 인간은, 어쩌면 ‘살아가는 의미’ 자체를 의미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는.
‘…트리스탄 공녀 때도 그렇고.’
그 사람,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재주라도 있단 말인가.
이건, 단순히 사랑이 아니라 ‘종속’되었다고 해도 좋을 수준의 집착도다. 농담이 아니라 그 남자가 이쪽에 무슨 짓을 해도 다 좋다고 받아줄 것이라 느껴질 정도로.
유일하게 트리스탄 공녀나 이쪽이나 못 참는 건, 스스로가 ‘버림받는 것’이나,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더 우선시하는 것이려나.
“…”
어, 잠깐만.
방금, 자신이 뭔가 엄청나게 중요한 맥락을 짚지 않았던가?
엘리야가 얼굴을 찌푸리며 방금 자신이 떠올렸던 생각을 되짚어갔다.
다우드 캠벨은 이렇게 뭔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들에게 특히나 사랑받는 인간이고, 이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못 견디는 것은 자신이 그 남자를 독점하지 못 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얼마 전에 트리샤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람, 뭔가 억지로 자기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의 호감도를 남에게 밝히는 걸 숨기고 있다.
“…”
음.
흐으으음.
냄새가 난다.
그 남자, 뭔가 목숨을 걸고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냄새가.
머리가 무시무시한 기색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이거 잘하면.’
아마.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 건 자신뿐이다.
원래대로는 이런 무시무시한 여자들을 주변에 줄줄이 늘어놓고 있는 다우드 캠벨 곁에 그녀가 비비고 들어갈 틈바구니 따윈 전혀 없었겠지만.
그녀만이, 그 남자의 ‘행동 원리’와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가장 ‘안심하고 찾아올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준다면?
자신만이 선생님 옆에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라. 어라. 어라라…?’
어쩌면.
이거.
승산, 있는 것 아니야?
엘노어고 유리아고, 그녀가 뒤늦게 출발한 치타처럼 지금 와서라도 전부 제낄 수 있는…!
“…그러니까, 이것만큼은.”
그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으니, 유리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런 문장을 던져왔다.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어요. 다우드 씨와 저만의 추억을 담보하는-”
유리아가 그런 말을 이어가는 사이.
철컥, 하고 그녀의 목줄이 풀렸다. 자연스럽게 그 옆에 묶여있던 손수건도 스르륵, 하고 떨어졌다.
“…”
“…”
침묵이 짙게 깔렸다.
엘리야가 멍한 표정으로 풀린 목줄과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내 마치 기름칠 되지 않은 기계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 고개가 끼기긱-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엔, 그 목줄을 푼 장본인이 서 있었다.
“…다우드 씨?”
유리아가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놓자, 엘리야로서도 익숙한 가면을 쓰고 있는 다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다우드 씨다.”
“…그건, 왜, 왜…?”
완전히 빛이 죽어가는 눈동자로, 유리아가 그런 말을 떠듬떠듬 간신히 꺼내놓았다.
“아, 이거?”
정작, 그런 말을 들은 다우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말을 받고 있었지만.
“당분간은 압수하려고.”
“…왜, 그, 어, 째서요…?”
유리아가 마치 목이 졸린 것 같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놓자, 다우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하지만.
이번에도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이 흘러나왔다.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좀 어울릴 것 같아서.”
“…”
“당분간은 루시엔 씨한테 채워보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떻냐?”
“…”
정정하자.
이 새끼는 목숨을 내놓고 줄타기 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냥 자살하고 싶어서 환장한 거지!
엘리야가 경악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유리아가 완전히 표정이 지워진 얼굴로 검을 뽑아들었다.
이어서.
—-!!!!!!!
흰색 섬광이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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