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4)
r 113 – 113. 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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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시기와 예상했던 장소.
찾던 사람은, 딱 내가 생각하던 위치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전에 한 번 방문한 적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가르다 씨족의 공간. 이전에 리루가 유족들의 물품을 불태워 장례 의식을 치러주었던 곳이다.
“…대족장. 권성. 카사 가르다.”
곰방대를 물고 해안 절벽에 앉아있던 카사의 등 뒤로 묵묵하게 그런 말을 던진다.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 말을 듣자마자 카사가 낄낄거렸다.
“아, 우리 그런 사이긴 했었지?”
“…”
확실히,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조금 웃기긴 하다.
카사와 나는 스승과 제자로서 이렇다 할 교류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냥 이 사람 말대로 리루와 함께 기초 체력 단련만 한 게 전부니까.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니?”
그런 문장에 말없이 카사의 옆에 가서 털썩 걸터앉는다.
“…원래도 이쪽이 좋아하는 장소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 장소가 가르다 씨족의 개인 사유물이 된 것도 그냥 이 사람 개인의 취향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당신이… ‘구경’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상황이면, 이런 곳에 앉아서 구경하고 계실 것 같았습니다.”
여러 차례 보여진 바 있었지만, 카사 가르다의 ‘통찰력’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주먹질이 아니라 이쪽이 본 능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사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니까.
즉.
나 죽이러 오는 악마 두 명 매달고 타임 어택을 진행 중인 내 꼴을 보고 팝콘을 씹을 준비가 만만이란 뜻이다.
“꽁무니에 도화선 여러 개 매달고 있는 게 보통 우스운 게 아니긴 하지.”
카사가 다시 낄낄 거리며 말을 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건 나도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드니?”
“…”
역시는 역시다.
그동안 나와 별로 접촉한 적도 없으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러면 제가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보따리에 챙겨온 것들을 바닥에 쿵,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한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카사.”
일각수의 뿔, 수룡의 비늘, 염마의 심장, 빙호의 발톱.
마경의 지배자들을 사냥하면서 얻어온 재료들을 전부 불의 전당에 있는 AI 세피라한테 집어넣어서 만들어 온 것들이다.
시계를 흘끗 살피면서 말을 이어간다.
“…이제 겨우 30분 정도 남았네요.”
“용케도 시간이 그 정도만 남을 때까지 참고 있었네. 내 권법은 꼭 필요하다고 계속 말했었던 것 같은데.”
“당신을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신뢰는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까지 이 세계가 내 뒤통수를 매콤하게 후려 갈긴 적이 꽤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불리는 칭호에 ‘성聖’을 달고 있는 인간들은 이미 초인이라고 불릴 놈들이고, 권성이라 불리는 카사 또한 그 일원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나한테 그냥 기본적인 체력 단련만 죽어라 시켰다면, 그건 분명히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찾아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고.
“…뭔가 한 번 보여주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
게임 안에서도 그랬지.
시나리오 진행 중, 조건을 맞춰서 개인 퀘스트를 통해 이쪽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 엘리야한테 이상한 체력 단련만 죽어라 시키는 게 일상이다.
대다수의 플레이어는 시간만 잡아먹고 실질적인 보상은 거의 없는 그런 과정에 지쳐서 그냥 퀘스트를 통째로 스킵하게 되지만.
그걸 끝까지 견디는 경우, 보스전 직전이 되어서야 결정적인 한 수를 ‘시연’해줬거든.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기술은 이거겠구나- 하고 말도 안 되는 필살기를 턱 내놓는 이벤트라 그거다.
‘…무슨 원리로 그걸 한 번 보면 바로 따라할 수 있게 되는 진 모르겠는데.’
그걸 본 엘리야가 항상 뭔가를 깨달았다는 분위기의 컷신과 함께 스킬이 턱 날아와서 나도 잘 모른다. 시스템적 허용이지.
하지만 그런 ‘게임스러운’ 법칙은 지금까지 전부 통용되었으니까, 나한테도 똑같은 일이 생기리라 믿을 뿐이다.
그걸 아니까 내가 여태 아무 말 안 한 거지.
“…”
내 말을 들은 카사가 싱긋 웃으며 곰방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많은 걸 알고 있구나, 아이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 느끼긴 했다만. 뭐든지 ‘미리 알고’ 움직이는 느낌이야.”
곰방대에서 연기를 뭉게뭉게 피어올린 카사가 피식 웃었다.
“두 번째로 받는 느낌이구나.”
“두 번째요?”
“이전에도 그런 녀석이 있었지. 뭐든 알고 있는 걸 다시… ‘반복’하는 느낌의 녀석이.”
“…그 녀석 혹시 가면 같은 거 쓰고 있었습니까?”
“아는 사이니?”
아는 사이긴 하다.
딱 한 번 만난 놈이긴 하지만.
“…별로 친하진 않습니다.”
종국에는, 내가 반드시 쳐죽여야 할 놈이라서.
내 말을 들은 카사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카사의 시선이 내가 그녀의 옆에 내려놓은 보따리에 머물렀다.
“-날 그 정도로 믿어줬으면, 보답을 해줘야겠지.”
안쪽에 들어있는 건, 의수 하나와 의족 둘.
이 사람의 잃어버린 팔다리를 대신해 줄 물건들이다.
아마, 저만한 재료들로 만들어 온 물건들이어도.
내 생각이 맞으면 카사의 신체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주 잠깐뿐이다.
“몸은 얼마나 단련했니?”
“…”
그 말에 스스로의 신체를 내려다본다.
이전에 비해 성장하기는 했다.
어깨도 벌어지고, 복근도 만져지고, 전체적으로 몸이 두꺼워졌다.
옛날 생각나네.
다우드 캠벨이 되기 전의 나는, 누가 봐도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건 그냥 몸이 좀 좋아졌다 이상의 의미는 결코 가지지 못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구나.”
그런 말을 꺼낸 카사가, 몸에 끼운 ‘대체’ 신체들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야.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진 나도 알고 있단다.”
카사가 팔을 빙빙 돌리며 씩 웃었다.
“단순히 네 목숨 하나 구하려고 이런 위험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지, 너는.”
“…”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네 손안에 닿는 사람은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게야.”
카사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내뱉었다.
“늘 네가 다치는 아픈 길을 택하는 아이잖니.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보단.”
“…”
“네가 품고 있는… 의도가 보인단다. 너라는 존재 때문에, 다른 이들이 휩쓸릴까 두려워하는 감정이.”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가 있다.
알란 바-토르.
타티아나에 의해 그저 고대신을 소환하기 위해 화신으로 바뀐 인간. ‘제물’로 바쳐진 인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인간이지만.
‘나 때문에’ 죽었다.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내가 타티아나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선각자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살 수도 있었던 인간이, 결과적으로 타티아나에게 희생당했다.
“…”
나라는 존재 때문에 생겨난, 나비 효과.
내가 생존을 위해 하는 행동의 결과로 반드시 생겨나는 불확정 변수들.
카사의 말대로.
언젠가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덮쳐올 수 있겠지.
“전부 다 구할 수는 없겠죠, 물론.”
담담하게 카사의 말을 받는다.
그래, 나도 알아.
빙의 특전에 고인물 다운 지식으로 온갖 미친 짓을 저지르긴 하지만. 그런 나라도 대처할 수 없는 위기가 반드시 생겨난다.
내가 ‘놓치게 되는’ 사람들도 분명히 생길 거고.
다만, 그래도.
“…절대로 그 사람들은 안 됩니다.”
적어도.
나 좋다고,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 여자들만큼은 안 된다.
지금 반쯤 미쳐서 날 찢어발기러 오는 그 두 명도 물론 포함이다.
애초에 그렇게 만든 이유가 그 두 명이 잘못되는 꼴 보기 싫어서니까.
“…”
내 생각이 맞으면.
지금 여기서 두 사람을 폭주시키는 것만이, 닥쳐올 ‘위협’에서 저 둘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흠.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네 목숨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여자들 말이지.”
“예.”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이라면 다 내팽개치고 도망갈 텐데 말이야.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
눈을 감으며 답한다.
“…똑같은 경험을 두 번 하기는 싫거든요.”
세상에는, 한 번 겪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억들이 있다.
뇌리에, 영혼에 새겨져서.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새기는 것들이.
“3초 만에 차이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
무슨 소린지 이해 못 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카사는 그저 쓴웃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가 많은 영혼이로구나.”
대답 없이, 다시 쓴웃음과 함께 머리만 긁적인다.
자랑스러운 기억은 아니긴 하지, 확실히.
“그러니, 아이야. 그런 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있단다.”
그 말에 내 표정도 진지해진다.
기억이 맞으면, 이건 게임 안에서 카사가 기술을 ‘전수’해주기 직전에 나오는 대사다.
이윽고 카사의 몸을 타고, ‘법술’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법술은 부족 연합 안에서도 대단히 희귀한 재능이다. 당장 내 주변에서도 쓸 수 있는 사람은 카사와 리루밖에 없지.
‘…똑바로 쓰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던가.’
법술은 모든 이능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의지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능력이니까.
듣기로는 두루뭉술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확실한 건.
모든 이능 중에, 가장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란 점이다.
괜히 이전에 리루가 한 번 쓰려고 했던 걸 내가 기겁하면서 막은 게 아니지.
“너는 몸만 단련하면 된단다. 내가 보여줄 것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기본 그릇만 만들면 돼. 그 이상은 딱히 나한테 가져갈 것도 없지.”
카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딱 한 번밖에 못 보여준단다.”
이어서.
권성이, 팔을 뒤로 당겼다.
당겨진 팔 아래로 법술이 맺혀진다. 그 팔이 천천히 출수出手한다.
“놓치지 마렴.”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느릿한 손짓이었다.
누군가를 때린다고 볼 수도 없는 여유로운 동작이다. 권성이라고 불리는 자의 공격이라곤 믿기지 않는 속도다.
하지만, 그 동작만으로.
“…씹.”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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