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7)
r 126 – 126. 약속은 지켜야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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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데리고 오면, 이 상태 풀어주겠다며.”
리루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게 된다.
몸이 불덩이 같다. 전신에 마치 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이 엄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정상이라면 이런 짓을 저지를 리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야?!”
남이 보면 허공에다가 고함을 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녀는 지금 대단히 진지한 상황이었다.
그거야.
그녀를 이 상태로 만들어 놓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다우드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들어오자마자.
방금 본인의 몸이 스스로의 의지를 벗어나, 곧바로 들어온 다우드 캠벨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쳐 버렸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런 짓을 할만한 건 지금 이 자리에 단 하나밖에 없다.
[어머, 하지만 당신의 몸을 움직여서 칠 수는 없었는걸요.]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리루의… ‘영체’ 비슷한 뭔가가 쿡쿡거리며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이 남자는 평소에 이렇게나 약해 보여도, 위기 상황만 되면 몰라보게 강해지니까요. 아예 대처도 못 하게 기습적으로 후려칠 수밖에 없답니다.]마치, 다우드 캠벨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투다.
온몸과 정신마저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도, 그 말에 부아가 치미는 느낌만큼은 똑똑하게 올라왔다.
제까짓 게 뭔데.
귀신인지 유령인지도 모를 녀석이, 이 남자에 대해 그녀보다 더 잘 아는 척이란 말인가.
적어도, 자신은 이 남자에게.
“…”
그게, 그러니까.
‘처, 첩으로 받아준다 했었다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살짝 비참하긴 했지만, 아무튼 이 남자가 자신에게 보여준 호감의 최대 상한선이 그쯤인 건 사실이다.
그녀가 살짝 시무룩해지고 있자니, 공중에 떠다니고 있는 영체가 깔깔거리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요. 서방님과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건 이미 정해진 사실이랍니다.]심지어 그렇게 꺼낸 말은 아까보다 한술 더 뜬 문장이었다.
서방님?
그 단어에 리루가 눈을 끔뻑거리고 있자니, 다시 웃음기 섞인 문장이 이어졌다.
[서방님이요, 리루. 저와 당신의.]“…”
리루가 입만 뻐끔거렸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다만, 그런 사실이 이미 확정되었다고는 해도.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면 이런 짓이라도 해야 하거든요.]그녀의 질문을 깔끔하게 무시한 영체가, 바닥에 쓰러진 다우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대자, 그 남자의 가슴에 새겨진 인장이 옷 너머로도 푸른 빛을 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읏-차.]이어서.
다우드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저 인장을 매개로, 이 영체에게 조종받고 있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일으키자마자, 그대로 리루에게 달려든다.
“꺅…!”
몸이 닿는 걸 느끼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그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부족 연합에서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매일 끊임없이 단련에 매진하던 자신이, 이런 얼빠진 비명이라니.
아무리 지금 정상이 아니라지만 틀림없이 수치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끼며 눈을 밀어올려보니.
다우드 캠벨이, 침대 위에 자신을 자빠트린 상태였다.
그의 양 손이 리루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
손이 크고, 따듯하다.
맥박이 전달되는 것 같다.
이거, 어쩌면 기분이 꽤 좋을지도-
‘…나, 나 지금 뭐하는 거야!’
퍼뜩 정신을 차린 리루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자기도, 이 남자도, 아까부터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저 해괴한 영체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것뿐이다.
서로 정신 차리고 똑바로 굴어야 한다!
일단, 이 남자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생각한 리루가 다우드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런 말을 꺼내기 전에, 다우드의 모습을 눈에 담지만 않았어도 그리했을 것이다.
“…”
다우드는.
그저,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것만으로도, 어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눈을 커다랗게 뜬 리루가 입술을 오므리며 자신 위에 올라타 있는 다우드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시선을 마주할 수도 없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호흡이 가빠진다.
입술이 버쩍버쩍 마른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뜨겁던 몸이, 이 남자의 모습을 확실히 인식하자마자 더욱 열이 오른다.
“야, 야… 저, 정신좀 차려 봐…”
가냘픈 목소리다.
자신이 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나마도, 다우드가 이은 행동 때문에 훨씬 더 가냘픈 신음으로 변해버렸지만.
“힉!”
리루가 그런 신음을 내뱉었다.
다우드가 자신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걸 느끼자마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소리였다.
뇌가 과부화되다 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자극이 너무 강하다. 눈앞으로 별이 번쩍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리루?]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다시 가벼운 웃음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요, 서방님과 맞닿아 있는 기분은? 상상하시던 거랑 비슷하신가요?]“…누가, 그런 상상을 한다고-”
[하셨잖아요.]“…”
확신이 너무 담기다 못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였다.
[서방님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이후로는 거의 매일 하셨잖아요. 겉으로는 근엄하고 난폭한 표정 지은 상태로 속으로는 사춘기 소녀같은 망상을 잔뜩 하셨잖아요.]“…”
[참 신기하단 말이에요. 이렇게 겉으로는 여전사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남자 경험 하나 없는 숫처녀라 그런 안쓰러운 상상이나 하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할까요?]“…아, 아니, 누가, 그런 짓을 했다고-”
[어쩔 때는 서방님이랑 같이 손 잡고 꺄르륵 거리면서 데이트하는 상상도 하시고.]“…”
[서방님이 뭘 먹다가 입가에 뭘 묻히기라도 하면 ‘정말, 나 없으면 어쩌려고?’ 하면서 대신 닦아주는 상상도 하고.]“…야, 아, 아니.”
[어쩌다 몸이라도 맞닿으면, 자기 전에 괜히 그쪽 한 번 만지작거리면서 곯아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히죽거리면서 감각을 떠올리시고-]“와, 와악! 와아아아악-!”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그런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의 목덜미를 훑다가 허리를 꽉 끌어안은 다우드 탓도 있었겠지만, 지금 정신에 들어오고 있는 데미지가 너무 강력한 탓이었다.
[정곡이긴 하죠?]그 모습에, 공중에 떠다니는 영체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오히려 저한테 감사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신이 꿈에서나 상상하던 걸 대신 이뤄드리고 있잖아요.]리루가 한참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간신히 대답을 꺼내놓았다.
“…이 녀석은, 절대로 이런 일 안 해.”
평소에 어떤 부분에서는 미치도록 날카롭다가도 더럽게 눈치가 없고, 머리가 잘 굴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부분에서 자빠지는 인간이지만.
얼마 전에, 자신을 푹 끌어안고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동의 없이는, 결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신뢰만큼은 그녀의 마음 속에도 심지가 굳게 박혀 있었다.
[네, 그럼요. 다우드 씨는 이래 보여도 절대로 주변인한테 이런 짓을 할 분이 아니에요. 그러느니 차라리 죽겠죠.]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평탄한 기색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래서.]여전히,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다.
[지금 이 남자가 이런 일을 당신에게 하는 게, 싫으신가요?]“…”
자신의 허벅지에 닿는 다우드의 손을 느끼면서, 리루가 온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말했다.
“…싫어.”
[정말요?]그런 말과 동시에, 다우드가 자신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사랑해.”
“…!”
눈앞으로, 다시 별이 보인다.
머리가 팽팽 돈다.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다.
“…”
그녀가 이를 악물고 숨을 내뱉었다.
방금 그 말 한마디 들었다고, 거의 의식을 잃을 정도의 ‘행복감’이 뇌리를 가득 채운다.
어이가 없다.
자신, 이 정도로 쉬운 여자였던가?
[정말로 싫다면, 그대로 이 남자를 떨어트리면 되잖아요? 한 대 쳐서든 뭐든.]“…”
리루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계속해서 다우드의 눈을 마주치고 있다간, 저 말에 도저히 반박할 자신이 없어서.
“…네가, 내 몸을, 이상하게 만들었잖아.”
[그래도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있잖아요.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거고.]“…”
[제가 당신 머릿속에 산지도 한참이에요, 리루.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것 같아요?]그리고.
‘뭔가’에 의해, 강제로 그녀의 눈이 밀어올려졌다.
이어서,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다우드의 얼굴이 그 시야에 잡혔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애써 피하려고 애썼던, 이 남자의 시선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
순간적으로, 리루가 숨을 멈췄다.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어라?’
이 남자, 이렇게, 그러니까.
멋있었던가?
지금 그녀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특히 더 강렬하게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빠져드는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복당하는 듯한.
“…”
그 사이, 다우드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의 앞섬을 풀어 젖혔다.
목적의식이 대단히 명확한 행동이었지만, 리루는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응.
이 남자에게, 정복당하고 싶다.
아무래도, 상관 없을만큼.
자신도 이 남자를 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트랜스 상태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응. 아, 응? 어?’
이거, 내가 떠올린 생각인가?
대체,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떠올리고 있단 말인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다우드가 거의 풀어헤쳐진 자신의 옷을 잡고 입을 열었다.
“리루.”
“…”
“벗길게요, 리루.”
“…싫어.”
그런 말을 신음처럼 내뱉자, 옆에서 다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와서 고집 부리는 건 조금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한테 좀 솔직해져 보는 게-]“이렇게는, 절대 싫다고-!”
그런 말과 함께.
리루가 전력으로 내지른 주먹이 다우드의 턱에 틀어박혔다.
거의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그 몸이 이내 화려하게 벽에 처박혔다.
[…헤?]여태 여유로운 목소리만 내던 영체가 얼빠진 목소리를 내는 건, 생각보다도 꽤 볼만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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