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1)
r 130 – 130. 만나서 반가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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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판테로 잠입하는 루트는 생각보다 대단히 간단했다.
정기 학기 외에도 중간에 합류하는 편입생들의 무리에 합류하는 걸로 끝.
일반적인 교육 기관과 다르게, 황립 아카데미는 그 어마어마한 규모만큼이나 상시로 학생을 받는다. 그걸 이용하는 거다.
물론 그런 특성만큼이나 보안 절차도 확실하게 밟지만, 애초에 마음만 먹는다면 황궁에도 일부분 잠입할 수 있는 위조 신분까지 만들 수 있는 게 그녀다.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쉬운데요.’
엘판테 내부로 진입하는 열차의 객실 안에서, 세라스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이 정도면 굳이 가짜 학생 신분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냥 당일치기로 일만 처리하고 성황국으로 복귀하면 끝이지.
-맹주님. 그래도 위조 신분 정도는 필요하실 겁니다. 제가 하루 안으로 끝내놓죠.
애초에 비즐라가 그렇게 강력히 주장하지만 않았어도, 진즉에 그리했겠지.
세라스의 머리로 어제 나눈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굳이 학생 신분을요? 제 실력을 의심하는 건가요?
-아뇨. 맹주님의 실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일 하루면 끝날 일 가지고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할 필요가 있나요?
그 말을 들은 비즐라가, 한동안 침묵하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혹시 몰라서입니다. 노파심에 챙겨드리는 거라 생각해주십시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 생길거라는 기색이었다.
마치, 그녀도 절대 그 남자를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것처럼.
그래서 학원에 장기 체류할 일이 생길 것이라 확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복귀하면 좀 괴롭힐 거에요, 비즐라.’
적어도 그녀를 못 믿은 대가 정도는 치르게 해줘야겠다. 이미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임무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척 봐도 제국 놈들은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잖은가.
하물며 ‘황궁’이 관련된 것이라면 특히 더욱.
그녀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엘판테로 들어가는 길목에 줄지어 펄럭이는 깃발에 새겨진 황가의 인장을 노려보았다.
쓰레기들.
그녀가 그쪽에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평가였다.
법황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저들 때문에 얼마나 깊이 고통받았던가.
천지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밤.
그날에, 제국의 황가가 그녀에게 저지른 짓은 지금도 뇌리에 똑똑히 남아있다.
‘…얼마 안 남았어, 세라스.’
그녀가 증오로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스스로에게 그리 되뇌였다.
‘이제, 곧이야.’
그 쓰레기들을 박멸하고, 대륙 전체에 평화를 가져다 줄 구원자의 강림이 머지 않았으니까.
참으로 진실된 믿음이다.
썩어빠진 지상 위에 유일하게 평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인간은 법황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낙원이, 지상에 찾아올 거야.’
법황의 ‘계획’은 이제 곧 최종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법황의 명령에 따라 그 방해물부터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렇듯 ‘업무 준비’부터 해야 하고.
“하아-”
눈을 감고, 깊은 한숨과 함께, 단전으로부터 마력을 천천히 회전시킨다. 의식이 가라앉는다.
근본적으로 암살자의 전투법은 후퇴와 후속타조차 생각하지 않는 일격필살의 일격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그런 전투법의 근본은 이렇게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도록 ‘감정’을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작업 대상’에게 일체의 동정심이나 자비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의 정신에 방벽을 세우는 명상.
이 작업까지 거친다면, 안 그래도 치명적인 그녀의 공격에 기계 같은 정밀함과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이 깃든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정차합니다. 정차합니다. 모든 학생들은 좌석에 앉아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그런 말과 함께, 열차가 정류장에 천천히 들어섰다.
천천히 멈춰서는 열차 안에서, 세라스는 품 안에 챙겨둔 암기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엘판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그런 방송과 함께 정류장에 쏟아지는 인파에 섞인다.
대륙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교육 시설답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인원이다.
“…”
하지만, 그 사이로도.
날카롭게 정비한 감각 덕분에, 목표는 순식간에 발견할 수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열차 안에서 내리는 남자.
다우드 캠벨.
사전에 고지받았던 인상착의와 완전히 일치한다.
“…”
심호흡을 내뱉은 세라스가, 이내 발 디딜 틈도 없는 인간들 사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림자 밟기.
이 정도로 수많은 인파 사이로도, 정확한 걸음으로 마치 물살을 가르듯이 순조롭게 걸음을 옮긴다.
인파들 사이에 섞여 눈에 띄지 않도록 이동하는, 암살자라면 기본적으로 익히는 보법이지만 지금 그녀가 펼치는 경지는 거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 정도의 인원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이에서 혼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녀를 제대로 ‘인식’하는 인간조차 없다.
마치, 유령처럼. 그녀 혼자서만 이 공간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본래 암살자라면 절대 고르지 않을 장소를 고른 것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광장 한가운데에 목표가 있어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인간. 그게 바로 그랜드 어쌔신이다.
그러니.
저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마치, 자신을 누군가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기색 아닌가.
“…!”
이어서.
뭔가 느끼기라도 한 것 같은 다우드 캠벨이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라울 정도의 위기 감지 능력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정거리 안이다.
세라스가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칼날을 정비한다. 필요한 건 아주 찰나면 된다.
그리고,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에.
대상의 얼굴이 세라스의 눈에 들어왔다.
“…”
그리고, 그 순간.
칼날이 멈춘다.
그녀가 제대로 의식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세라스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왜?’
이해가 안 간다.
멈출 이유가 없는데.
마치.
정신이 인식하기 이전에,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느낌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 남자를 해하려 들면 안 된다고.
반드시 후회한다고.
그리고, 거기에 이어서.
“…!”
세라스가 눈을 크게 떴다.
의식 아래에서 맹렬하게 치솟는 감각을 느꼈으니까.
다른 감정을 전부 지웠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느껴진다.
고요한 수면 같던 그녀의 의식에,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지듯이 번져나가는 ‘감정’이 있다.
막대한 마력을 쏟아부어 ‘이성’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랜드 어쌔신이.
스스로의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이라면 대륙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인간의 의식이.
일순, 새하얗게 물든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는 ‘고동’이 심장에서 느껴진다.
“…어?”
육성으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어쩔 도리 없는 당황에 저도 모르게 흘린 말이었다.
“…”
그리고, 그것 때문인지.
다우드 캠벨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어, 어…”
그리고, 그 눈을 마주치자마자.
얼굴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인 세라스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온몸이 떨린다. 얼굴에 열이 몰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저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게 전부인데.
지금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도저히 얼굴을 계속 마주치고 있을 수가 없다.
심장에서 들려오는 고동이, 이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
그리고, 미처 튀어나온 돌부리를 확인하지 못한 세라스가 그대로 그쪽을 밟고 넘어지고 말았다.
손에 잡고 있던 단검까지 놓쳐버리며.
아마추어도 안 할 짓이다.
전 세계에 단 두 명밖에 없는 경지에 이른 자가 저지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보적인 실수.
이어서, 단검이 바닥에 부딪혀 내는 쇳소리에 주변의 인간들이 일제히 그녀 쪽을 돌아보았다.
“…무기?”
“뭐야? 개인 무기 반입은 금지 아니었어?”
“손에 쥐고 있다 놓친 모양인데?”
“…그걸 왜 쥐고 있어? 누구 찌르려고 했대? 저기 저 사람?”
“어, 뭐야? 진짜로? 죽이려 했다고?”
그렇게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린 인간들의 이목까지 한 번에 쏠린다.
이런 장소에서 눈에 띄는 건, 암살자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에 가까운 상황이다.
“…”
위기다.
이런 상황이라면 재빠르게 도망가는 방법을 쓰는 게 정석이지만, 그랬다가는 다우드 캠벨에게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추적의 단서’를 남기는 것 역시, 그녀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고.
진퇴양난. 세라스가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온 다우드 캠벨이 손을 내밀며 한 말이었다.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니, 다우드가 아예 몸을 푹 숙여 그녀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신장 차이가 좀 나는 바람에, 마치 그 품에 안기듯 쏙 빨려 들어간다.
“…이- 히익-!”
그 가슴팍에 볼이 닿은 세라스가 평생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목소리로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단단하고, 탄탄했다. 코를 파묻고 그 감촉을 한참이나 느끼고 싶다는 느낌마저 들만큼.
직업상, 단련된 몸 정도야 수도 없이 ‘손맛’을 느끼며 난도질했지만.
이 남자에게는 살짝 부딪히는 것만으로 자신의 온몸이 움찔거린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안절부절하는 그녀의 몸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던 다우드가 무심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던졌다.
“어, 없어요오오…”
쥐구멍에 기어들어 가는 것 같은 목소리다.
목소리를 내놓는 세라스 본인조차 경악할 정도로 통제가 안 된 목소리다.
“부딪혀서 죄송합니다. 소지품까지 떨어지셨네요.”
그렇게 말한 다우드가,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래도 개인 무기 반입은 금지니까, 아카데미 들어가실 때 반납하고 가셔야 할 겁니다.”
“…”
“무가의 자제들 중에는 항상 무기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교칙이니까요.”
세라스가, 일순 이 남자의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을, 그저 자신에게 부딪혀서 ‘개인 물품’을 흘린 것으로 얼버무리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모여있던 군중들이 급격하게 흥미를 잃는 게 느껴진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 썼다며 다들 집중이 흩어지는 분위기다.
“그럼 전 갑니다. 아카데미 안에서 봬요.”
이어서. 다우드가 슬쩍 미소지으며 몸을 돌렸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봅시다.”
세라스가 일순 온 몸을 뻣뻣하게 굳힐 정도로 파괴력이 충만한 미소였다.
“…”
그녀가 달달 떨면서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었다.
방금 그 미소 때문에 심장이 거의 폭주하고 있었다. 전신이 마치 용광로라도 된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열을 뿜고 있었으니까.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감싸줬어.’
왜? 대체 왜?
저 남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세라스가 집중력을 잃고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봤으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그녀가 그를 해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리는 것도 당연하고.
“…”
세라스가, 복잡한 시선으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일단, 확실한 점은.
비즐라의 말을 듣길 잘했다는 점이다.
“…”
그녀가 얼굴이 전부 붉어진 상태로도, 품 안에 있는 학생증을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어쩌면, 이 아카데미에 체류할 기간이 길어질 느낌이었으니.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랬다.
‘…만나서 반가웠다고.’
세라스가,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했었다.
만나서 반가웠다고. 또 보자고.
“…”
틀림없이.
이상할 정도로, 가슴에 확 꽂히는 말이었다.
●
“…씹.”
시야에서 세라스가 사라지자마자 욕지기를 뱉으며 숨을 몰아쉰다.
아니, 쟤가 여기서 갑자기 왜 튀어나와?
지금 타이밍이면 법황한테 철썩 들러붙어서 그쪽 시키는 일이나 얌전히 하고 있을 애다. 애초에 나 하나 잡으려고 투입되기엔 말도 안 될 정도로 고급 인력이다!
‘…안 감싸줬으면, 뭔 일이 일어났을지…!’
식은땀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전에도 말했지만.
쟤는 시나리오 상 확정적으로 ‘자색 악마’의 조각을 품고 있는 그릇이다.
궁지에 몰리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
제발.
내가 제발 내 계획에 변수 좀 안 끼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기도하면서 자는 사람이다.
그럼 한 번쯤은 들어 줄만 하지 않겠냐.
나도 사람이다. 편하게 가는 게 좋다고.
[ System Message > [ ‘스킬: 치명적인 매력’이 발동합니다! ] [ 대상 ‘세라스’의 호감도가 ‘호기심 5단계’로 폭등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대상에게 잠들어 있던 ‘자색 악마’의 조각이 당신의 영향으로 각성하기 시작합니다! ] [ 대상 ‘세라스’ 관련 이벤트가 곧 생성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 좀 그만해라.
나 좀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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