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8)
r 137 – 137. 사고
●
[그런데, 네가 위험한 짓을 하는 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긴 한데.]그런 목소리가 아뮬렛 안쪽에서 날아왔다.
[스스로 좀 경각심을 가져보는 건 어때?]“예?”
[악마의 그릇 두 명을 동시에 붙여놨는데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건 너무 희망적인 관측 아니냐?]칼리반의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그냥 단순히 시험 볼 때 좀 붙어있자는 소리인데 크게 문제 될 것 없지 않습니까.”
[상대방이 악마의 그릇이잖아. 너 전에 그쪽이랑 장난질하다가 무슨 꼴 당했는지 기억 안 나?]“…”
뭐, 반으로 쪼개지긴 했지.
사실 나도 이 사람 걱정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긴 한다.
다른 건 아니고, 이것 때문에.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페이놀 라이펙
[ 호감도 단계 없음 ] [ 관련 이벤트까지 D-5 ]5일 뒤라면, 실기 시험 당일이다.
그때 이 녀석이랑 관련해서 뭔가 터진다는 건데…
“…심각한 수준까지는 안 갈거라 생각해요.”
[너 항상 그렇게 생각하다가 뒤통수 얻어맞-]“아뇨. 대상이 페이놀이면 절대 그런 일 없어요.”
칼리반의 의심에 딱 잘라서 그렇게 답변한다.
[뭘 그렇게 확신하는데? 그쪽이 폭주하면 가장 위험하다며?]“…갠 좀 특이하거든요.”
사실 악마의 폭주는 그릇의 ‘정신 상태’에 대단히 많이 의존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녀석은 원칙적으로 따지면 폭주 조건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면 뭐 하러 그렇게 그쪽 부탁을 들어주려고 동분서주하는데?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 아니야?]“그렇다고 그쪽 말을 안 들어주면 안쪽에 있는 놈이 알아서 활동을 시작할 테니까요.”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조각 세 개가 다 모였다는 건, 이미 녀석의 몸 안에 ‘온전한’ 악마가 들어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보통의 그릇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가진다.
아마 붉은 악마의 성향을 생각하면, 지금도 페이놀을 매개로 물질계에 강림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게 분명하다.
‘…증오의 악마.’
녀석의 이명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 이명대로, 붉은 악마는 살아있는 지성체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가 기반인 놈이다.
덕분에 온갖 복합적인 요소가 섞인 다른 악마들에 비해 심플하게 나쁜 놈이지. 폭주하면, 주변에 있는 건 전부 불태워 죽이려고 한다.
문제는 붉은 악마는 회색 악마와 더불어 게임 시나리오 안에서 ‘강제로’ 폭주가 일어나는 유이한 악마란 점이다.
그걸 성검을 든 엘리야가 제압하는 게 4챕터의 중심 내용이고.
그러니.
페이놀이 나한테 한 달이라는 시간을 고지 한 건, 글쎄.
그렇게 ‘예정되어있는’ 폭주까지의 통첩 기간이다.
이 시간 안에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큰일이 날것이다, 라고 말하는 거지.
“…”
참 기구한 놈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강제로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니.
악마의 그릇이라는 거, 본인이 선택해서 그리된 것도 아닐 텐데.
[…]“어째 좀 불만스러운 기색이십니다.”
[정확해.]칼리반이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너, 뭔가 그 녀석 불쌍하다는 기색 아니냐?]“…”
[적야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그 여자.]하긴.
자길 죽인 사람을 내가 편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페이놀은 칼리반의 말대로 수만 명이 휩쓸린 대재앙을 일으킨 인간이다.
하지만.
“…부정하진 않을게요.”
[뭐?]“페이놀은 불쌍한 놈이에요. 나쁜 건 놈의 몸 안에 ‘깃든 녀석’이지, 페이놀 본인이 아닙니다.”
페이놀은, 장담하는데.
오히려 이 게임 안에 있는 모든 그릇 중 가장 불쌍한 녀석이다.
한 번 죽었다가 되살아난 것도, 절대로 본인 의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악마가 강제로 되살린 거지.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만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안 오긴 하지만, 놈의 ‘배경’을 알고 있는 나로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
볼을 긁적이며 말을 잇는다.
“당신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도와주고 싶기는 해요. 불쌍해서.”
[…]내 말에 칼리반이 한참을 침묵했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너도.]“미안합니다.”
[됐어. 나중에 납득만 똑바로 시켜.]불만스럽게 그런 말을 흘리는 칼리반의 목소리에, 나도 피식 웃는다.
이 사람, 진짜 그릇이 크긴 하다.
아무리 나랑 지낸 기간이 좀 됐다지만, 이런 말을 듣고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니.
‘그래서…’
아마 이 ‘이벤트’는, 내가 페이놀의 호감도를 깨울 본격적인 시발점이 될 확률이 높다.
내 경험상, 이렇게 관련 이벤트라고 떠오를 정도면 어떻게든 대상의 호감도와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녀석의 설정에 대해서는 A부터 Z까지 다 알고 있다.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면 목적에 맞게 행동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걸림돌이라면.’
이 녀석이지.
▼ 세라스 에바트리체
[ 호기심 5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이 녀석 몸 안에 깃든 자색 악마는,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특이한 녀석이다.
붉은 악마처럼 아주 대놓고 위험하진 않지만, 그 성향상 나한테는 아주 극독이라고 해야하나.
[그러고 보니, 복종의 악마니 뭐니 했었지?]칼리반이 이상하다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아, 그거요?”
분노의 악마, 집착의 악마, 증오의 악마, 뭐 그런 흉흉한 이명을 달고 있는 놈들이 대부분인데 혼자 ‘복종’이라는 말을 달고 있으니 좀 이상해 보이겠지.
하지만.
“그 말 그대로입니다.”
[뭐?]“심복 최적화라고 해야 하나… 누구든 자기가 섬길만한 상대를 찾는 악마거든요.”
말만 들으면 해롭기는커녕 도움만 될 것 같은 놈이지만.
세라스가 세이비어 라이징 플레이어들에게 ‘지뢰 1순위’로 꼽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건 좋은데.
“…사고 치는 데 최적화된 놈입니다.”
그 충성의 방향이, 조금.
끔찍하다.
[뭐?]게임 안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놈은 자신이 충성하는 대상을 향해 ‘자발적’으로 이런저런 일을 저지르고 다닐거다.
그게 근데, 받는 입장에선 거의 자폭 스위치 누르는 수준이라 문제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예를 들어볼까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잇는다.
“저, 지금 악마들 대상으로 어장 관리하는 거 안 들키려고 열심히 줄타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그놈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다른 악마들한테 가서 ‘주제도 모르고 주인님을 독점하려 하지 말고 하렘에 동참해라!’ 하면서 들쑤시고 다닐 놈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릇이란 그릇은 전부 다 만나고 다니면서 그렇게 하겠죠.”
칼리반이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이해했다. 잘못 건드리는 순간 죽겠군.]“그렇죠?”
이 사람도 한방에 납득할 위험성이라니.
참으로 무시무시하다, 자색 악마.
[그러면 왜 굳이 지금 그 녀석을 지금 만나러 가는 건데. 최대한 피해 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칼리반이 이어서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했다.
탈리온을 시켜서 페이놀을 부르러 간 사이, 나는 세라스가 강의를 듣고 있는 건물로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 System Log > [ 대상 ‘세라스’가 당신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 [ 당신과의 접촉 빈도를 대폭 늘립니다! ]일단 이런 게 떠오른 이상 아예 피해 다니는 건 처음부터 글렀으니까.
접촉하게 되는 건 반 확정이고, 그럼 내 체질 때문에 깊게 엮일 수밖에 없단 소린데.
그럼 거기에 맞는 해결책을 짜야 한다.
“다른 악마들도 마찬가지지만, 방치 해두면 오히려 일이 훨씬 안 좋게 터지니까요.”
[복종의 악마라며?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면 되는 것 아니야?]“일을 아예 안 시키면 그대로 폭주해요. 섬길 이유가 없다면서.”
[…귀찮네, 진짜.]“…”
악마를 그렇게 가볍게 말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단어 자체는 동의한다.
“…그러니 적당하게 거리 유지하는 게 제일 좋아요, 아무튼.”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친구인 듯 친구 아닌 듯, 그렇게 적절하게 거리 두기가 핵심이지.
내 체질상 나한테 ‘복종’하러 달라붙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녀석한테 내 민감한 정보들이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생명이다.
아예 떨어트려 놓으면 또 폭주하고, 너무 가까이 붙여놓으면 날 위한 일이라면서 제멋대로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닐 테니까.
이번에 같이 팀을 짜서 시험을 보는 것도 그런 거리감을 이 녀석에게 똑바로 주입 시키기 위함이지.
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아무튼 우발적으로 접촉이 발생하는 것보단 내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굴리는 게 편하니까.
“…좋아.”
세라스가 강의를 듣고 있는 교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다.
일단 베이스는 그럭저럭 친밀하지만, 선은 명확하게 긋는 비즈니스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교실 바깥으로 느닷없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누가 빨리 가서 사람 불러와!”
“…”
음.
초장부터 뭔가 대단히 잘못된 느낌이 드는군.
황급하게 강의실의 문을 젖히고 들어가니.
그쪽에 있는 광경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진다.
강의실 정중앙에 서서 피묻은 단검을 들고있는 세라스.
그 앞쪽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남자 한 명.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정황상 세라스가 이 남자를 찌른 게 분명한 상태다.
그리고 눈앞으로 떠오르는 시스템 창.
[ System Message > [ 대상 ‘세라스’의 정신 상태가 대단히 불안정합니다! ] [ 관련 이벤트가 긴급 생성됩니다! ]!긴급 퀘스트!
[ 대상 ‘세라스’가 곤경에 처했습니다! ] [ 대상을 구제할 시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대상을 구제할 시 전용 퀘스트 ‘배반’이 시작됩니다! ] [ 구제에 실패 시, ‘자색 악마’가 폭주합니다! ]“…”
그래.
역시 나다.
쉽게 갈 리가 없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