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2)
r 141 – 141. 간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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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학생회장님?”
탈리온의 입에서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복도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엘노어를 보자마자 흘러나온 말이었다.
요즘 체력단련실에 틀어박혀 도통 나오질 않는단 소문이 도는 사람인데, 운 좋게도 드물게 밖에 나왔을 때 마주친 참이다.
“최근 들어 통 못 뵀는데, 건강하셨습니까? 교환 학생 이후로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그의 성격에 걸맞은 서글서글한 미소와 함께 친화력 높은 인사말이 날아갔다.
“…그래. 오랜만이군.”
그렇게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며, 탈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라 생각하겠지만, 그가 보기에는 조금 달랐다.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뭐가 말인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엘노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표정이 안 좋기라도 한가?”
“아뇨, 겉으로는 별 다를 바 없으십니다만…”
탈리온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을 하실 때 유난히 귓가를 자주 만지신다면, 그건 어딘가 언짢은 일이 있으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
엘노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그런 버릇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군.”
“형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학생회장님한테는 버릇이 여러 개 있다면서-”
엘노어의 표정이 일순 꿈틀했다.
그걸 보고 있던 탈리온이 순간 당황할 정도였다.
말실수라도 했나.
탈리온이 잔뜩 당황하여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있는 엘노어를 바라보았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그쪽 이야기도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다.
예전엔 다우드와 관련된 화제는 뭐가 나와도 본인이 제일 눈을 번쩍거리면서 달려들지 않았던가.
‘…싸우기라도 하셨나?’
탈리온이 보기에도,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서로 간의 사이가 서먹해진 건 사실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 형님이 엘노어가 자기를 통 만나주질 않는다고 불평하던 게 떠올랐으니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엘노어에게서 문득
“그런데, 그대는 뭘 하러 가던 길인가?”
“아, 저는 형님 부탁으로 페이놀이란 사람을 찾으러-”
말을 꺼내놓던 탈리온이 식겁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이 사람, 다우드 곁에 붙어있는 인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전부 다 외울 정도로 중증인 인간이다. 그런데 그쪽 부탁으로 여학생을 찾으러 간단 소릴 들으면-
“…그런가.”
하지만.
엘노어가 꺼내놓은 반응은 생각보다 대단히 미적지근했다.
탈리온조차 당황해서 잠시 그녀를 마주 볼 정도로.
“…”
아니, 자세히 보니까 그런 것도 아니다.
미적지근한 게 아니라, ‘우울함’이 더 심화됐을 뿐이다.
그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라는 기색을 담은 것처럼.
이어지는 말만 봐도 그렇지.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군.”
엘노어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나 같은 인간이 붙어있는 것보단, 다른 여학우들과 같이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
“…예?”
“그 남자 입장에서는, 내가 꽤 한심해 보일 테니까. 어쩌면 이미 싫어하고 있을 수도-”
“…그, 학생회장님. 주제넘은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탈리온으로서도 이런 말을 남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당당하던 인간이 이렇게 자학하는 걸 보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그거 이상으로.
“뭔가?”
“지금처럼 구시면 오히려 형님이 더 힘들어하실 겁니다.”
“…”
“형님께서 회장님을 싫어하거나 한심해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본인한테 그런 말을 듣기라도 하셨습니까? 제가 봤을 땐 아닐 것 같은데요.”
“…”
“무엇 때문에 그렇게 형님을 갑자기 어려워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차라리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후회는 절대 하지 않으실 텐데요.”
물론 다우드 캠벨이란 인간에는 수많은 인간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성이 많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 남자가 반응을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이 사람인 건 틀림없겠지.
그 말을 들은 엘노어가 눈을 끔뻑거리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빈말이라도 고맙네.”
“빈말은 전혀 아닙니다만.”
“그래. 알겠네. 처세술이 제법이군, 아르망드 자작가의 장남.”
“아니, 진짜로요. 전 엘리야를 응원하는데요?”
“…”
“굳이 따지자면 회장님도 좋기는 한데,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친구인 녀석을 조금 더 응원-”
확실히, 적어도 빈말을 절대 안 하는 인간이라는 건 잘 알만한 답변이었다.
●
“…흠.”
엘노어가 한숨을 내쉬며 손목을 탈탈 털었다.
방금 헛소리를 늘어놓는 탈리온의 미간에 일격을 때려 넣어 졸도시킨 참이었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줘서 손속에 사정을 둔 참이지.
-형님께서 회장님을 싫어하거나 한심해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본인한테 그런 말을 듣기라도 하셨습니까? 제가 봤을 땐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런 건,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단련을 하는 건 하는 건데, 굳이 이 정도까지 다우드와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건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순전히 그녀의 개인적인 이유뿐이다.
‘…혹시라도, 마주쳤다가.’
그 남자가 자신을 안 좋게 보고 있다는 걸 확인이라도 한다면.
‘싫어한다’라는 쪽으로 감정의 변화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그걸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엘노어 본인조차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
하지만, 방금 그 남자가 전해준 바로는. 그렇게 그녀가 행동하는 것 때문에 그 남자가 오히려 더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아무렇지도 않게 이전처럼 그 남자와 지내도 되는 것 아닐까.
이전처럼, 그 남자의 따뜻한 미소를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이기적인 욕심이 의식 안에서 스물스물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한다.
‘…추한 여자로군, 정말이지.’
그 남자를 지킬만한 힘을 얻기 전까진 자신과 일정 이상으로 얽히지 않겠다고 맹세한 게 바로 얼마 전이다.
자신 때문에 그 남자가 다치는 꼴을 더 못보겠다고, 얼마 전에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새를 못 참아서 또 그 남자를 보고 싶어서 서성이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 남자가 자신에게 상냥히 대해주는 걸 느끼고 싶어서.
“…”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그래도, 안 된다.
한 번 마음 먹은 건 지켜야 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 남자를 위해서라도.
그래서 차선책으로 내놓은 것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먼발치에서 이 남자를 살펴보는 것.
금연을 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억지로 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어떻게든 이 남자와 말하고 싶지만, 그걸 참기 위해 그냥 멀리서만 바라보는 걸로 참는 거지.
안 그래도, 그 남자를 너무 오랫동안 보지 않아서 금단증상 비슷한 것들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긴 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엘노어가 침대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다우드를 보고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전에 복도에서 쓰러진 걸 황급하게 들쳐업고 의무대로 옮긴 참이었다.
-엘노어가 제일 중요해요.
-좀 한 번이라도 보고 싶네요.
-꼭 보고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제가 요즘 진짜로 힘들어서…
“…”
방금 전에 자신이 들었던 말이 죽 지나가고 있었다.
이 남자, 그 정도로 자신과 만나고 싶어 했던 건가.
의사 말로는 휴식 부족으로 인한 일시적인 기절 상태라고 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또 뭔가를 해결하기 위해 가열차게 뛰어다니고 있었나보다.
그렇게 힘들게 뭔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잠깐이라도 자신을 만나주기를 그렇게나 바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그의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미안하네.”
그녀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는 다우드의 손을 잡고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하네, 다우드.”
정말로, 그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다.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이 감정을 설명할 말은 그것 말고는 달리 없었으니까.
자신은, 이 남자에게 어디까지 피해를 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손을 쓰다듬고 있자니.
“…으음…”
잠꼬대인지, 다우드가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그 세상 모르게 순진한 얼굴이 엘노어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아.”
덜컥,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얼굴에 열이 몰린다.
이 남자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잠들어 있는 게 전부겠지만.
“…”
그녀가.
저도 모르게 다우드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뭐 하는 짓이야, 엘노어.’
그런 생각이 얕아진 이성 사이로 훅 치고 올라왔다.
자신에게는, 이런 짓을 할 자격이 없다.
애초에 이런 짓을 할 자격이 누구에게 부여될 지는 그것대로 의문이지만, 적어도 그녀가 아니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겠지.
최악의 인간이나 할 짓이다.
미안해하면서, 그렇게나 미안해하면서, 순간적인 욕구를 못 이기고 이런 짓이나 하는 건. 경멸받아도 할 말이 없는 밑바닥 인간이나 하는 짓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
하지만.
가슴이.
가슴 안에서 요동치는 이 기운이.
이 남자를, 원하고 있다.
주체하지 못하겠다. 이 남자와 살결이 맞닿은 것만으로, 그동안 꾹 억눌러왔던 욕구가 폭발하는 느낌이다.
보고 싶었으니까.
이 남자를 보고, 만지고, 느끼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하지 못했던가.
그녀가 살짝 거칠어진 숨으로, 곤히 잠들어 있는 다우드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돈다.
“…”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면, 되지 않을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만.
그녀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미안하네.”
그런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퍼졌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네. 난 정말 나쁜 인간일세.”
문장이야 똑같은 사과였지만.
“…정말로, 미안하네.”
담긴 의미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
[야.]“…”
[이미 정신 차린 거 알아. 왜 눈 안 뜨고 있냐? 즐기고 있니, 혹시?]‘닥쳐봐요, 좀.’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있는 상태로 그런 말을 던진다.
아니, 인간아 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눈을 뜨냐.
이거 지금 눈 뜨고 일어나서 ‘사실 지금까지 전부 맨정신으로 참고 있었습니다!’하면 농담 아니고 엘노어가 그대로 내 턱주가리를 돌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진짜로 뭐냐.
왜 이 사람 갑자기 내 온몸을 더듬고 있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이 꼴이라서 나도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래도 뭐.’
이 사람 성향 생각하면 그냥 자고 있는데 풋풋하게 입 맞추고 가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겠나.
설마 무슨 큰일이야 일어나겠-
[오, 손 점점 내려간다.]“…”
뭣이?
[옷 벗기려고 하는 것 같은데. 뭔 입술이야, 입술은. 전에도 이미 한 번 한 것 가지고 만족할 것 같아? 너무 무른 것 아니냐?]“…”
아니, 이제 와서 입술 팔리는 것 정도는 신경도 안 쓰는데.
그 이상으로 가는 건, 좀, 그러니까…!
[이 아가씨도 엄청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단추도 똑바로 못 찾고 우왕좌왕하고 있어.]“…”
[괜찮냐? 이대로 가면 잡아먹히는데?]해설하지 마.
부탁이니까, 나도 지금 이 상황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생각 중이다.
‘뭐라도 해야…!’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상황이 갑작스럽게 해결되긴 했다.
그러니까.
내가 전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다우드 씨, 과로로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다우드 씨, 괘, 괜찮아?!”
그런 목소리와 함께, 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이에 엘노어가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서자, 침대가 통째로 뒤집히며 내 몸이 바닥으로 튕겨 나간다.
“…”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목소리의 주인 중 하나가 유리아다. 맨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건 피했으니까.
하지만.
“아.”
“어.”
루시엔과 유리아가, 멍한 눈으로 병실 안을 쓱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옷가지 전체가 풀어헤쳐진 채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내 모습과.
묘하게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숨을 헐떡이며, 직전까지 나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엘노어를.
“…”
“…”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상태로 침묵이 쭉 이어졌다.
“…그, 트리스탄 공녀.”
그러다가.
이윽고 성녀님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
배가.
배가 아프다.
왜 나는 과로해서 정신을 잃어도 이런 상황으로 흘러가는 건데.
좀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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