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4)
r 143 – 143. 간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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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전원이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병실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농성을 하는 지옥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의무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인드라 경은 괄괄한 성격의 중년 여사님이다.
학생들의 건강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씨 좋은 분이지.
그 마음이 어느 정도로 굳건한지는 내 병실에서 시끌벅적한 소음이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달려와 한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정을 취해야 하는 놈 병실에서 다들 뭐 하는 거야. 썩 나가!”
트리스탄 공녀에 성녀까지 포함된 무리를 상대로 꺼내기에는 담대하다 평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문장일 것이다.
“…허나, 인드라 경. 지금 저희는 중요한 결정-”
하지만, 엘노어도 거기에 특별히 어깃장을 놓기보다는 일단 정중한 말투로 답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인 교수와 다르게, 특정 시설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인간들은 거의 학장에 버금가는 실적과 권위를 가진 인간들이다. 학원 내부라면 공녀조차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지.
그러니까 이런 말도 튀어나오는 거다.
“이미 충분히 많이 봐줬어, 트리스탄 공녀. 한 마디만 더하면 여기 있는 전원 출입 금지시킨다?”
“…”
“올 거면 내일 다시 와. 면회 시간도 끝났으니까 빨리 해산해!”
그런 으름장에, 다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내 병실 바깥으로 쫒겨났다.
인드라 경은 여신이다.
반박은 받지 않도록 하겠다.
“…살았다.”
그쪽의 지시대로 못마땅한 기색으로 병실 바깥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그런 말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러면 이 기회에 간병인 안 고르고 아예 빨리 퇴원해버리는 건?]“…그건 안 될걸요.”
인드라 경이 그걸 봐줄 리가 없거든.
최소 이틀 정도는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나갔으니까.
트리스탄 공녀조차 그대로 쫒아낼 깡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부탁한다고 해서 그걸 들어줄 리가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다른 쪽이 난리가 날 텐데?]“…”
그건 그렇지.
다른 쪽이 질투심에 비뚤어져서 그대로 타락 수치가 적립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하다.
‘간병’이라는 상황 자체가 장기간 대상과 밀착해서 지내는 거잖아.
그러니, 애초에.
“…그거 빼놓고라도, 간병인을 고르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요.”
[응?]“누가 간병인이 되어도, 저 그대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걸요.”
당장 엘노어가 하려고 한 짓만 봐도 그렇다.
성녀님이 안 왔으면, 그러니까.
그대로 잡아먹혔겠지.
“저, 인장 발전한 이후로 뭔가… 더 위험해진 느낌이거든요?”
타천의 인장의 제한이 풀리면서 거기에 모든 악마들의 기운을 담을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그렇게 하면서 내가 바라지 않은 다른 특성까지 같이 딸려 온 느낌이다.
이상할 정도로, 악마랑 그릇들이 나만 보면 이전에 비해서 자제력을 더 쉽게 잃어버리는 느낌이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그러니까, 예전이야 그냥 날 독점하고 싶어하는 정도로 끝났으면… 이제는 그냥 눈앞에 있기만 해도 뭔가 ‘과격해지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당장 엘노어만 봐도 그렇다.
예전에도 집착하는 느낌이야 좀 심하게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예 ‘죄책감’이니 뭐니 잔뜩 붙어있는데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건 분명히 이상한 상황이다.
그릇들과 붙어있을 때, 뭔가…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훨씬 올라갔던 소리지.
[…그럼 그 유리아라는 아가씨가 그런 짓을 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내 말을 들은 칼리반이 그런 질문을 내놨다.
그런 짓이라니?
[왜, 그 아가씨도 원래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낼 사람은 아니잖아. 맞는 게 기분 좋다느니, 목줄 채워서 산책시켜 달라느니.]“…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럼 너 큰일 났네.]“…동의합니다.”
솔직히 여기서 더 큰일 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지만.
이전에 유리아에게 열린 피학증도 그냥 시작일 수도 있단 소리거든, 그거.
악마들의 온갖 페티쉬가 하나하나 다 열리는 그런 끔찍한 미래도 머지않을 수 있단 소리지.
그런 면에서.
“그런 녀석들한테 저랑 하루 동안 붙어있으라고 한다면, 사고 안 칠 녀석이 있긴 있어요?”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
내 말에 칼리반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수긍하는 기색으로 답했다.
[믿을 놈 하나 없긴 하네.]“…”
슬프게도, 그렇다.
유리아고 엘노어고 세라스고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죠.”
[무슨 선택지?]“그나마 안전한 놈이 하나 있거든요.”
딱 한 놈 있다.
유일하게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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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병실 안으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들 내가 선택한 ‘간병인’에 대단히 못마땅한 기색이지.
“…이렇게 하면 되나?”
엘노어가 싸늘한 목소리로 근처에서 닦아온 환자용 식기를 내밀었다.
이에 페이놀 라이펙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트리스탄 공녀. 그냥 제가 직접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여기, 여기, 여기가 제대로 안 닦여있네요. 이런 비위생적인 식기를 환자에게 줄 수는 없죠.”
“…”
“음, 이 정도면 기존에 요청드렸던 ‘간병인 교체’는 해드릴 수가 없겠는데요. 솜씨가 너무 미숙해서.”
1차로 엘노어가 격파되었다.
애초에 신분을 생각하면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해 볼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당연하지.
“아, 슬슬 청소 시간이네요.”
페이놀이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서자, 유리아와 루시엔이 그쪽을 제지했다.
“그건 이미 저희가 해놨습니다만.”
이쪽은 그나마 루시엔도 종교인 특유의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봤고, 야생 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유리아도 있어서 이런 종류의 행동에 엘노어보다는 익숙한 편이지.
하지만.
“엉망인데요.”
그렇게 말한 페이놀이 근처에 있는 청소 도구를 집어 들고 주변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마법과도 같은 빠르기다. 작업이 끝나자마자 성녀 자매가 해놓은 것에 비해 눈이 부실 정도로 주변이 번쩍이는 건 덤이다.
“이 정도는 해야 청소를 했다고 할 수 있겠죠?”
“…”
“…”
유리아와 루시엔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과연 같은 사람이 해놓은 일이 맞냐고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는 기색이다.
순식간에 세 명을 격파한 페이놀이, 이내 여유로운 기색으로 고개를 슥 돌렸다.
멍한 시선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는 세라스가 있는 쪽이었다.
“그쪽도 간병인 교체를 요청하시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저보다 잘 하는 게 있으셔야 할 텐데요.”
“…간병이란 건 대체 뭘 하면 되지?”
“…”
넌 그냥 나가라.
게임 설정에서도 몇 번 드러나던 건데, 얜 진짜 암살 빼면 다 못하는 바보 멍청이 기질이 좀 있다.
“자, 자, 다들 나가주세요. 아무래도 간병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요.”
“아니, 그래도…!”
“다우드 씨를 제일 잘 보살필 수 있는건 저희…!”
이어서 그렇게 말한 녀석이, 이내 불만을 토해내는 다른 녀석들을 일제히 병실 바깥으로 몰아내었다.
다른 녀석들도 어떻게든 불만을 토해내고 싶지만, 방금 보여진 퍼포먼스 차이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의견을 펼치진 못 하는 모습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뭘 이 정도 가지구요.”
내 치하에, 순식간에 다른 그릇들을 전부 물리친 녀석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 녀석은 이런 거 잘할 수밖에 없지.’
페이놀은 원래 직업이 요양원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약자들을 보살피는 직업을 했던 사람이다.
전문 간호인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은 내 ‘치명적인 매력’ 스킬에 영향을 아예 안 받는 녀석이다.
다른 그릇들처럼 나한테 뭔가 사고를 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봐야지.
그런 배경을 떠올리는 사이, 눈앞으로 시스템창 하나가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페이놀’을 간병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 [ 대상의 상태를 감별 중입니다… ] [ 아직 ‘호감도’가 개방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 [ 대상의 호감도를 개방할 수 있는 이벤트가 곧 발생합니다! ] [ System Message > [ 선택받지 못한 대상들의 감정 변화가 거세게 관측됩니다! ] [ 곧 다가올 메인 퀘스트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런 메시지를 보고 있으니 식은땀이 나오긴 하는데.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그쪽에서 누구를 골라도 내 사지가 분해되는 건 확정이었다. 당장 죽는 것보단 미래로 위기를 토스하는 게 낫지…!
“…그래도 의외긴 하네요.”
조용해진 병실 안에서, 페이놀이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제가 ‘인간’ 시절에 그런 걸 했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데. 대체 어떻게 알고 계신 건가요?”
[…확실히, 웃기지도 않긴 해.]칼리반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악마의 그릇에 이단 심문소 소속이었던 녀석이 예전에는 자원봉사나 하고 다녔다니. 연쇄 살인마가 기부를 하는 것보다 더한 코미디야.]“…”
칼리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쓴웃음을 짓는다.
확실히, 이 녀석이 한 일만 보면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만.
‘…말했잖아요, 칼리반.’
계속 내가 이 사람한테 말했듯이.
‘페이놀은 불쌍한 놈이에요.’
이 녀석은, 말하자면 발카서스와 비슷한 과다.
시나리오 안에서 챕터 최종 보스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런 최후를 맞이하면 안 됐을 놈.
그런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았어야 하는 녀석.
“…그리고 그만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말한 것도 분명히 기억하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녀석이 턱을 괴며 그렇게 말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어요, 다우드 캠벨.”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표정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생기 없는 무표정이었다.
마네킹이나 인형 같은 느낌이지.
“한 달이라는 제한 시간을 드렸던 것, 잊지는 않았겠죠. 그 안에 제가 ‘죽지’ 못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 기억한다.
애초에 내가 과로로 쓰러진 것중엔 그 사실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하니까.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말을 받는다.
“다만, 한 가지는 정정해드리고 싶네요.”
“…예?”
의아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페이놀 라이펙.”
적어도.
그건 그건데.
이 녀석한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확실하게 얘기해야겠다.
“나는 당신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
자꾸 죽는다, 죽는다 하는데.
그거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예?”
녀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물론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진 안다.
“당신 몸 안에 붉은 악마가 있고, 그게 지금 당신을 억지로 되살린 상태고, 조만간 당신을 숙주로 물질계에 튀어나오려고 호시탐탐 벼르는 중이고, 당신이 느끼기에 그 제한 시간이 한달이니까 그 안에 죽여달라고 한 거고. 그렇죠?”
“…”
녀석이 입을 벌린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내가 이렇게 자기 사정을 줄줄이 꿰고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이내 녀석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밀어올렸다.
“…그걸 안다면 이야기가 더욱 쉽지 않습니까. 제가 죽지 않는다면 곧 물질계에 재앙이 닥쳐옵니다.”
이내.
자조적인 목소리가 이어서 흘러나왔지만.
“…말하자면 재앙의 씨앗을 치운다고 하셔도 좋겠군요, 다우드 캠벨.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
“아니요.”
그러니.
이 녀석에게 똑바로 주지시켜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신의 감정을 깨우는 건 깨우는 거지만, 그건 그런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이 녀석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제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겁니다, 페이놀.”
이 녀석에게 해피 엔딩을 선사해주기 위함이다.
“당신에게 거부권은 없구요.”
“…”
내 말을 들은 녀석의 눈동자가, 이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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