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5)
r 144 – 144. 실기 시험
●
병실 안으로 침묵이 한참 동안 흘렀다.
내 말을 들은 페이놀이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탓이었다.
“…”
“…”
왜 불안하게 아무 말도 안 하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아뮬렛 안에서 칼리반이 피식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문장 하나가 날아왔다.
[이제는 그냥 숨 쉬듯이 나가네?]딱히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닌데.
그냥 불쌍한 놈 하나 구제해주자는 생각에서 말한거지, 이건 진짜로 꼬시려는 의도로 말한 거 아니다.
[언제는 의도하고 꼬셨었고?]“…”
그런 방향으로 접근하면 나도 할 말이 없지만, 당장 이 녀석은 그렇게 들린다고 해서 내가 딱히 손해 볼 게 없어서 다행이지.
애초에 이 녀석이 그거에 무슨 감정이라도 느꼈으면 생각보다 손쉽게 풀릴 테니까.
“…잘 하시네요, 당신.”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런 말이 페이놀한테서 중얼거리듯이 흘러나왔다.
“순간 진짜로 두근거릴 뻔했잖습니까. 확실히, 저만한 여자들이 당신만 보면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평소처럼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느껴본 것 중 가장 강렬한 자극이었어요, 다우드 캠벨. 역시 당신한테 부탁하길 잘 했습니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닌 모양이지만.
다행히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 System Message > [ 대상 ‘페이놀’에게 가해진 자극이 소폭 계측됩니다. ] [ 해당 과정이 반복되면 대상의 감정이 깨어납니다! ] [ 현재 진행률: 4% ] [ System Message > [ 곧 있을 ‘페이놀’ 관련 이벤트의 내용이 소폭 변경됩니다! ] [ 대상의 호감도가 해당 이벤트에서 개방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당장 이런 창이 떠오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첫 번째 창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로 떠오른 창은…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페이놀 라이펙
[ 호감도 단계 없음 ] [ 관련 이벤트까지 D-4 ]이걸 얘기하는 거겠지.
4일 뒤에 있을 종합 역량 평가의 ‘실기 시험’ 기간에 뭔가가 일어난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그럼 내가 여기서 이 녀석에게 요구해야 할 것도 명확하고.
“…그럼, 한 가지만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원래대로는 탈리온에게 부탁해서 이쪽에 전달이 되어야 했을 내용이지만, 그쪽은 웬지는 모르겠지만 내 옆쪽 병실을 쓰고 있다 들었다.
듣기로는 엘노어에게 한 방 얻어맞아서 반쯤 작살이 났다던가.
뭐, 아무튼.
“실기 시험 때 저랑 같은 조로 참석-”
“-사실 저한테 부탁하는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다우드 캠벨.”
내 말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페이놀이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예?”
“저는 당신이 해달라는 건 전부 다 들어주고 있는데, 당신한테 돌려받는 건 하나도 없다니요.”
“…”
아니.
니가 꼬셔달라고 먼저 부탁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고 있자니, 페이놀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서며 답했다.
“그러니까, 저도 당신은 신경 안 쓰고 제가 해보고 싶은 게 있단 소리죠.”
“그게 무슨-”
그렇게 되묻기도 전에.
페이놀이 내 얼굴을 양손으로 콱 틀어쥐었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면.”
그리고.
뭐라고 말할 틈새도 없이.
“저도,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녀석의 숨결이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당하는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아마 내 머릿속에 있는 고루한 이미지가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꽤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렸다.
그러니까.
‘입맞춤’은, 적어도 서로 간 눈을 감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하는 거라고.
그런 감상은 이내 내 입 안에 들어온 페이놀의 혀가 내 혀를 잡아채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와닿기 시작했지만.
“…!”
식겁해서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페이놀이 양팔로 내 상반신을 단단히 끌어안고 있는 상태라 그러지도 못 한다.
공격하듯이 휘몰아친다. 입맞춤이야 이전에 엘노어와 격렬하게 한 번 하기는 했지만, 이건 그 정도조차 애들 장난으로 보이게 만들만큼 끈적하고 농염하다.
타액이 섞인다. 녀석의 혀가 내 입 안을 구석구석 훑는다.
“…하아-”
한참을 그렇게 있던 녀석이, 이내 달뜬 한숨과 함께 입을 떨어트렸다.
섞인 타액이 실 모양으로 죽 늘어지는 모습이 아찔하기 짝이 없었다.
녀석이 날 놓아주자마자, 숨을 헐떡이면서 뒤로 물러선다.
이미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라 그렇게 효과적인 행동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런 짓이라도 안 하고서는 못 배겼으니까.
“…뭐, 하시는…!”
“당신이 아까 그 말을 했을 때, 명백하게 제 몸 안에 ‘자극’이 있었거든요.”
페이놀이 입술을 핥으며 그렇게 말했다.
“…뭔가가, ‘느껴졌어요’. 아시겠습니까, 다우드 캠벨. 그렇게 온갖 짓을 다 해봤는데도 못 얻었던 감각이, 잠깐이지만 돌아왔어요.”
“…”
“당신 덕분에, 희망을 봤다구요.”
아무래도, 효과가 꽤 좋았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래서 문제 같기는 한데.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말 한마디로 그 정도까지 왔으면, 이런 짓을 하면 더 강렬한 게 올 줄 알았는데.”
어안이 벙벙해진 내 표정을 내려다보며, 녀석이 씩 웃었다.
“그러니, 한 번 더 해볼까요.”
“뭐…!”
뭐라고 반항할 새도 없이, 난폭하게 두 번째 입맞춤이 덮쳐 들어왔다.
아까 전에도 내가 물러서지 못하도록 꽉 잡아놓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침대 위로 올라와서 위에서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모습이다.
양손으로 내 어깨를 짓누른 상태로, 내가 꼼짝도 못 하게 침대에 고정시킨다.
마치, 육식 동물이 사냥감을 제압하듯이.
일반적인 호감의 표시로 가볍게 입맞춤하는 게 아니라, 명백하게 ‘소유욕’을 담은 행위.
이 녀석은, 지금.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
나를 원하고 있다.
“음…”
몇 분이나 그러고 있었을까.
녀석이 천천히 입술을 떨어트리며 입가를 슥슥 닦았다.
“당신, 맛있네요. 정말로 진미에요, 다우드 캠벨. 아무것도 못 느끼던 저조차, 찌릿찌릿한 느낌이 가슴팍에 올라올 정도로.”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분명한 욕구가 녹아있는 눈빛이다.
아무것도 없던 녀석에게, 뭔가가 생겨났다.
“…정말, 당신에게 부탁하기를 잘했어요.”
[ System Message > [ 대상 ‘페이놀’에게 가해진 자극이 크게 계측됩니다. ] [ 해당 과정이 반복되면 대상의 감정이 깨어납니다! ] [ 현재 진행률: 11% ] [ System Message > [ 일부 감정이 깨어납니다! ] [ 대상이 당신에게 ‘소유욕’을 가집니다! ]“…”
그래.
순식간에 이 정도까지 급격하게 수치가 올라간 건 좋은데.
왜 깨어난 감정이, 좀.
위험해 보이냐. 응?
“실기 시험에 같이 참여하자고 하셨습니까.”
“…”
“그거 괜찮네요. 계속 붙어있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서로 계속 밀착해 있는다면-”
녀석이 나를 폭 끌어안았다.
이전과 달리, 명백하게 의사가 깃든 몸짓이었다.
마치, 이런 행위를 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듯이.
“-정말로,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
있잖아.
나, 분명히 이 녀석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간병인으로 골랐던 것 같은데.
왜 스스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안전한 그릇을 육식계로 돌변시킨 느낌이 드냐?
“…간병은요?”
“조금만 더 이러고 있죠. 어차피 급한 일은 다 끝내놨으니까.”
안색이 살짝 창백해진 상태로, 내 몸을 안은 상태로 꼬물거리는 페이놀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칼리반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니 업보다.]“…”
[악으로 깡으로 견뎌.]시끄러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세라스고 엘노어고, 일단 어떻게든 나와 같은 조로 실기 시험에 편성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단 점이다.
문제는…
[ System Message > [ 선택받지 못한 대상들의 감정 변화가 거세게 관측됩니다! ] [ 곧 다가올 메인 퀘스트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거지.
유리아, 엘노어, 그리고 성녀님.
적혀있는 메시지만 보면 뭔가 사고 하나 칠 것처럼 적혀 있어서 좀 불안한데.
‘…큰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사실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는 바램이지만.
그래도 기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
“…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놈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얼굴도 못 보겠다며. 당분간은 가까이 가는 것도 멈춰야겠다며.”
베아트릭스의 질문에 엘노어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네.”
“그럼 대체 질문의 의도가 뭐야.”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쥐며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안 그래도 학생회 서기로 격무에 시달려서 만성 피로가 쌓이는 게 그녀다. 그런데 가끔 이 여자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는 이렇게 편두통이 찾아오곤 하지.
물론, 그렇다 해도.
“…왜 이제 와서 ‘여자로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 같은 걸 물어보는 건데?”
갑자기 이런 해괴한 질문을 던질 때는, 그런 통증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 심해질 때가 있다.
“…”
엘노어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내가 그 남자의 곁에 서 있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과 별개로.”
하지만, 그 눈만큼은.
실의에 빠지기 전에 모습같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보다도 더 자격이 없을 게 분명할 여자들을 그 남자의 곁에 세워둘 수는 없으니까.”
“…”
“그 남자는 인기가 많아. 날파리들이 수도 없이 꼬일 정도로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 확실히 느꼈네. 내가 확실하게 막아주지 않는다면 그런 것들의 꾀임에 쉽게 넘어갈 거라고.”
“…뭔 소리야?”
“일단 내가 그런 매력을 키워서 나만 바라보게 만들면, 적어도 그런 날파리들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을 것 아닌가.”
“…”
“다 그 남자를 지키기 위함이네.”
베아트릭스가 가늘게 뜬 눈으로 엘노어를 노려보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결국 죽어도 그 남자를 남한테 주기는 싫단 거잖아.
그녀가 오늘 몇 번째로 내쉬는 건지 모를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래, 차라리 이런 궤변이라도 늘어놓는 게 났다.
예전에 무슨 정신병이라도 걸린 것마냥 학대에 가까운 단련에 매진하던 것에 비하면, 이렇게 그 남자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다 배격하려는 모습이 백배 천배 봐줄만 하다.
적어도 기운을 차리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니까.
“…하아. 좋아. 애초에 왜 맨날 이런 걸 나한테 와서 물어보는진 모르겠다만.”
“그대가 그 나이 먹도록 남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숫처녀라는 건 큰 결함이 아니네, 베아트릭스. 그대가 남는 시간은 모조리 다 수위 높은 연애 소설을 탐독하는데 쓰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으니-”
“…죽여버리기 전에 닥쳐.”
이게 지금 도와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렇게 퉁명스럽게 답하긴 했지만, 아무튼 베아트릭스가 곧바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여자로서 매력적으로 보일 방법이라…
“…너 애초에 거기에 무슨 어필을 해본 적은 있어?”
“어필…이라니?”
“왜, 그쪽 취향이라거나, 이성에 대한 판타지라거나, 그런 거에 좀 맞춰주려고-”
엘노어의 표정을 본 베아트릭스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 여자한테 무슨 그런 평범한 소녀같은 어프로치를 기대한담.
“…애초에 너라면 그쪽 반응에 매몰되서 여기저기에 끌려다니는 게 이상한 레벨이긴 하지. 원래대로라면 그 남자가 너한테 제발 한 번만 받아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야 하는 격차인데-”
그런 말을 떠올리던 베아트릭스의 머리로, 문득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어.”
그거 괜찮다.
그녀가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있잖아, 엘노어.”
“뭔가.”
“차라리 우리, 그쪽을 ‘꾀어내려’ 하지 말고, 반대로 좀 접근해볼까?”
“…무슨 소린가?”
“우리가 한 번 제대로 휘어 잡아 보자는 거지. 주도권 말이야.”
베아트릭스가 씩 웃었다.
“그 남자, 곧 있을 실기 시험에 참석한다고 했지?”
틀림없이.
수위높은 로맨스 소설을 미친 듯이 탐독한 독자만이 지을 수 있는 음흉한 미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