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6)
r 145 – 145. 실기 시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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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판테 기사 학부의 콘라드 학장은 전 황실 근위대 소속의 기사이며, 대륙 3대 아카데미에서 학부 하나를 통째로 담당 중인 저명한 인사다.
그가 무릎을 꿇고 예의를 차릴 인물은 전 대륙 단위로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소리다.
“엘판테는 변한 게 하나도 없군요, 콘라드 경? 제가 재학생일 시절과 똑같은 것 같은데요.”
콘라드 나이의 반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면 거의 그의 딸뻘이나 될까 싶은 인간이지.
하지만, 콘라드는 그런 말을 꺼내는 여성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단순히 이쪽을 ‘수행’하는 간단한 일에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감히 머리를 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미리 말씀하고 방문하셨다면 조금 더 추억을 즐기실 만한 준비를 해뒀을 텐데. 아쉬운 일입니다, 각하.”
“미리 대비할 수 있게 온다고 말이라도 하라는 면박을 듣는 건 또 오랜만이네요, 콘라드 경.”
“그런 것이 아니라-”
“농담이에요, 농담.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딱딱한 목소리로 흘러나온 그런 대답에, 눈앞에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성이 생긋 웃었다.
서늘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도자기처럼 새하얀 피부. ‘제국 제일의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농축된 금색 눈동자. 그리고 온몸에 배어있는 우아한 자태.
지금 옮기는 발걸음 하나하나마저 온갖 예법과 예도로 갈고 닦은 티가 철철 흘러넘친다.
“오늘은 그저 견학차 방문한 것뿐이에요. 너무 눈치를 살피면 오히려 제가 불편한데요?”
온화한 목소리로 그런 말이 흘러나왔지만, 콘라드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퍽이나 그렇겠다.
고작 그런 이유로 행차하기에는,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은 말도 안 되는 거물이다.
“강철의 여인과 대면하고 있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긴장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운 별명이네요.”
경외심 섞인 존칭은 그런 부류다.
그에 반해, 이 인간의 손속에 치를 떠는 이들은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만.
‘철혈 재상.’
내지는.
‘마녀’라고 부르는 이들조차 존재한다.
그런 별명을 떠올린 콘라드가 속으로 가열찬 한숨을 내쉬었다.
설리번 악시온 페트로누스.
일인지하 만인지상. 제국의 국무를 총괄하는 재상.
강철의 여인. 상승 무패의 정치가.
“그래도, 아예 용건 하나 없이 방문한 건 아니긴 하죠.”
설리번이 그렇게 말하며 복도 옆으로 탁 트여있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엘판테의 각 학기 말미마다 있는 종합 역량평가의 마지막 날이다. 가장 큰 점수가 몰려있는 ‘실기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기도 하다.
“검증차 온 것이니까요. 폐하가 최근에 꼭 만나고 싶은 인간이 있다며 생떼를 부리고 계셔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 불경죄로 목이 매달려도 할 말이 없는 문장이었지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설리반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콘라드조차도 표정은 찡그릴지언정 대놓고 그 부분을 지적하진 못하고 있었다.
설리번 재상은, 그런 말을 꺼내도 되는 인간이다.
아무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변방 남작가의 가주로 시작해, 1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제국의 2인자로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
지금 이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과 비교해도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나이로, 제국 정점에 오른 인간이다.
혹자는, 옥좌에 황제보다 가까운 인간이라고 평할 정도로.
황제는 그저 그런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지만, 그 옥좌에서 뿜어내는 ‘권위’의 대부분은 지금 이 인간의 손에서 생겨나는 것이니까.
제국은 물론이고 전 대륙적으로 그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이단 심문소’가 이미 이 인간의 수족처럼 움직이고 있는 점이 그런 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어떤 면에서는, 제국의 진정한 지배자라고 볼 수 있는 인간이다.
아예 명분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진작에 지금 옥좌에 앉아있는 황녀를 끌어내릴 수도 있는 인간이라는 평가까지 공공연하게 돌아다닐 정도니까.
그러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정치가들 사이에서도 의문점으로 남아있다나.
“캠벨 남작가의 장자-”
그런 말을 꺼내놓은 설리번이 잠시 침묵했다.
“실례. 캠벨 자작가죠? 얼마 전에 골딕 자작의 영지를 몰수했다고 들었으니까.”
“…각하께서도 가끔은 실수를 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오래전부터 남작으로 부르는 게 완전히 입에 붙어버려서.”
“…?”
이상한 이야기다.
이 사람이 어느 수준의 위치에 올라와 있는 지 생각한다면, 그런 가문은 거의 개미 수준의 존재감과 중요도를 가질 텐데.
그게 입에 붙을 정도로 자주 화제에 오르 내릴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그 남자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그렇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겠다. 틀림없이, 그 남자는 이쪽에 입학한 이후로 항상 뜨거운 감자였으니까.
하지만,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그쪽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대체 무슨 이유로?
“아무튼.”
콘라드의 눈가로 의아하다는 기색이 깃드는 사이, 재상은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캠벨 자작가의 장자에게는-”
그런 말이, 평탄하게 이어졌다.
“-조금 특별한 기대를 걸고 있답니다.”
그 속뜻을 따져보면.
제국의 정점이 학생 한 명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전혀 평탄하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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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어수선한데요?”
실기 시험 당일.
그런 말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곳에는 삼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살벌한 경비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물론 엘판테는 특성상 온갖 고위 관료들과 대귀족들의 자제가 입학해 있는 곳이니, 항상 경계가 삼엄하긴 했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이 분위기는 보통이 아니다.
성녀님이 방문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건, 거의.
“…황가의 일원이라도 왔답니까?”
그런 질문에, 옆에서 나와 나란히 걷고 있던 페이놀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재상 각하가 엘판테에 방문하시는 날이랍니다.”
“…재상 각하가요?”
그 말을 들으며 눈살을 찌푸린다.
제국의 재상. 설리번 악시온 페트로누스.
6챕터, ‘신을 먹는 자’의 메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간.
기드온의 사망에도, 그로 인한 엘노어가 회색 악마에게 잠식당해 최종 보스로 발돋움하는 이벤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간이다.
황제가 직접 아카데미에 방문한다고 들은 적은 있어도, 그쪽이 여기에 온다는 소린 전해 듣지조차 못했다.
“뭐, 저도 이단 심문소에서 알려줘서 안 사실이니까요. 아카데미의 인사 중 그 사실을 미리 전해 받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게 확실합니다.”
“…예?”
그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방문했다면, 내가 그 소식을 못 듣는 것도 이해는 간다.
재상이라는 인간이 제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생각한다면, 이런 방문은 최소 몇 달 단위로 이뤄져야 하는 대단위의 행사다.
“본래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이곳을 방문하시기로 예정되어 있었다지만, 폐하를 배알 하는 자의 자격은 본인이 직접 검증하셔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들었습니다.”
“…”
“당신의 일이에요, 다우드 캠벨.”
페이놀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두통이 지끈거리며 올라온다.
‘…또 뭔가 꼬인 모양이네.’
분명히, 예전에 아탈란테가 그쪽이 나한테 관심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아줬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느닷없이 황제의 방문까지 튕겨내면서 본인이 이 학원에 방문한다니.
심지어, 그 용건이 온전하게 ‘나’에게만 쏠려있다면야.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상하네, 진짜.’
솔직히 말해서.
지금 타이밍에 황제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까진 그러려니 한다.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싶거든.
솔직히 그 정도 되는 권력자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다만.
비록 기밀 취급이라지만, 난 당장 부족 연합에 가서 대족장 승계와 관련된 문제에도 관련자로서 얽혔었다. 그 정도면 황제가 직접 와서 치하를 하든 협상을 하든 ‘접촉’을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에 앞서 재상까지 튀어나오는 건.
“…”
뭔가 있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굴러가고 있는 뭔가가.
‘…골치 아프네.’
메인 시나리오에서 이탈한 이벤트가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건 이제 슬슬 내성이 생겨서 괜찮은데.
그냥 이 이상으로 뭔가 더 복잡해지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이-
[ System Message > [ 대상 ‘엘노어’와 관련된 이벤트가 생성됩니다! ]-이뤄질 리가 없지.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 친애 4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2H ]야, 좀.
최소한 하루는 줘라. 이제는 그냥 시간 단위로 뭘 자꾸 떨어트리네.
“…”
시간을 생각하면, 아마 실기 시험 도중에 엘노어가 무슨 짓을 한다는 소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같이 대비해야 한단 소리지.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
“…아뇨, 뭐. 그럴 일이 좀 있어서.”
“고민거리가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셔도 대부분 해결은 가능한데요?”
“예?”
“이래 뵈도 이단 심문관 대리 정도의 권위는 가지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문제는 그냥 다 뭉개버릴 수 있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거를 이전에 얻기는 했었지.
이 녀석과 처음 만났을 때 떠올랐던 창을 복기한다.
[ System Log > [ 대상 ‘페이놀’과 접촉했습니다. ] [ ‘이단 심문소’와의 상호 작용이 해제됩니다! ] [ ‘이단 심문관’ 재량에 해당하는 모든 권리를 협조 요청받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이단 심문소의 권리로 협조 요청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대단히 큰 권리다. 이 녀석이 자신있게 나한테 말할 만 하지.
‘…근데, 그거 이상하네.’
이거 받을 땐 너무 바빠서 경황이 없는 바람에 똑바로 판단하지 못했는데.
내 기억이 맞으면, 설정상 이단 심문소는 제국의 재상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집단이다.
그렇다는 말은, 재상이 나한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 없는데…
‘대체 왜?’
이유를 모르겠다.
그 녀석, 트리스탄 공작가와 빈말로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놈은 아니라서.
딱 봐도 거기랑 자주 교류하는 나에게 우호적인 감상을 가질 리가 없을 텐데.
“…그나저나, 각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군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페이놀이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저기 복도에 계시네요.”
그 말과 함께 페이놀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떨어진 건물의 복도를 걷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지 간신히 식별이 가능한 거리다.
하나는 콘라드 학장, 나머지 하나는…
“…저게 재상 각하라구요?”
“예? 이상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있다. 당연히.
아주 끔찍하게 이상하다.
그런 느낌이 절로 올라온다.
아니, 생긴 건 내가 기억하는 재상의 생김새와 닮은 부분이 꽤 있다. 게임 안의 캐릭터와 같은 인간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는 정도지.
하지만.
‘…어린데?’
설정 상, 재상은 지금 시점이면 못해도 40대는 넘겼을 중년 여성이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젊다.
젊어도 너무 젋다.
젊다기보다 거의 어린 수준이다.
마치 시나리오 안의 다른 인간들과 비교했을 때, 혼자서만 나이를 먹지 않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생각하며 그쪽을 쳐다보고 있자니.
느닷없이.
재상의 고개가, 이쪽으로 확 꺾였다.
마치, 이 거리에서도 내가 ‘쳐다보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처럼.
“…!”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그냥 우연히 그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정확한 움직임이다. 그 시선 또한, 명백하게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대체.’
재상은 어디까지나 게임 안에서는 그냥 문관이자 계략가로서의 모습만 부각되던 인간이다.
이런 초인적인 감각을 가진 인간이나 할 법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그런 능력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재상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의사를 전달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나와 단 둘만 공유하고 싶은 정보란 것처럼.
“…오랜만이에요, 다우드 캠벨.”
그리고, 그 입술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빨려들어 갈 만큼 기묘한 빛을 황금빛 눈동자가, 그런 말과 함께 긴 시간 동안 나에게 박혀 있었다.
마치.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감상이 담긴 모습이었다.
이전에.
몇 번이고 만났던 사람을 보는 것처럼.
심지어는, ‘그리워했다’라는 감상마저 느껴질 정도로.
어쩐지, 아련한.
“…각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콘라드 경. 갈까요?”
재상을 수행하던 콘라드 학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재상이 마침내 나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이어서 총총걸음으로 멀어지는 재상을 보고 있자니.
등골을 타고, 불길한 기운이 쭉 올라왔다.
“…”
뭔가 이상하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오랫동안 생사의 갈림길을 건너오며 단련된 직감이 고한다.
마치, 지금 이 시험에서.
‘저 녀석’ 때문에, 뭐 하나가 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
“…페이놀.”
“예?”
“혹시, 이 시험. 재상 각하가 직접 참관하십니까?”
“그럴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번 시험.
분명히, 쉽게 굴러가지는 않을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긴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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