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7)
r 146 – 146. 실기 시험 (3)
●
머릿속으로는 아까 전의 광경이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오랜만이라고 했어, 그놈.’
설리번 재상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을 머릿속으로 반추한다.
아니, 내가 그 녀석하고 만날 일이 대체 어디에 있는데.
적어도, 내가 빙의한 이후로는 그 녀석과 면식을 트기는커녕 마주친 적조차 없다.
[어렸을 때라도 한 번 만난 적 있는 것 아니야?]문득, 소울 링커 안에서 그런 말이 날아왔다.
‘예?’
[예전에 만나놓고 까먹은 것 아니야?]‘…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설리반은 메인 시나리오에서도 핵심 중의 핵심 인물이다. 저런 녀석이랑 마주쳤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나.
‘복잡한 감정’을 담은 시선을 받을만한 일이 있었다면, 더더욱.
“…”
생각해보니까 화나네?
‘지금 또 여자 후려놓고 기억도 못 하는 쓰레기라고 놀리신 거 아닙니까?’
[피해망상 있냐?]‘…’
[그런 의도로 말한 건 맞는데.]이 인간이 진짜.
“…”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녀석을 만나고도 내가 기억 못 할 가능성이, 있긴 있다.
‘공백 기간’이 존재하니까.
내가 세이비어 라이징 세계에 들어와 ‘다우드 캠벨’이 된 게, 내 기억이 맞으면, 이 녀석이 일곱 살 시점이다.
그 전까지의 기억은, 글쎄.
‘…사정이 있어서, 여섯 살까지의 기억은 좀 희미하긴 해요.’
[그래. 그러면 그 사이에-]‘하지만 그것도 거의 불가능한데요?’
아버지가 했던 말에 의하면, 난 몸이 말도 안 되게 약해서 그 나이쯤에는 거의 아버지도 내 생존 여부에 대해서는 거의 포기했다고 들었다.
단순히 건강이 안 좋다 수준을 넘어서, ‘몸’만 있는 식물인간 수준이었다고 하던가.
한 번도 눈을 뜬 적도 없고, 말을 한 적도 없고,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고깃덩어리 수준.
아무리 용한 의원을 데리고 와도, 어떤 약을 써도 해결이 되질 않는 문제라고 들었다.
일곱 살 시점에 기적처럼 몸이 회복되어서 그나마 거동이 가능해졌다고 들었지.
그런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고 뭔가를 했을 리가 없지 않나.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 야.]‘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하긴 하셨죠.’
[…엥? 어머님은?]‘…’
내가 대답 없이 한숨만 내쉬자, 칼리반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지만, 나도 그쪽 얘기는 굳이 안 하고 싶어서.
뭐라고 해야 하나.
그쪽은 좀,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 오한이 치솟는다.
거의 공포나 두려움 비슷한 감정이랄까.
[분위기를 보면 뭔가 사별하거나 그런 건 아닌 모양인데. 뭐냐 대체?]‘…모르는 게 당신한테도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관자놀이를 문지른다.
“다우드 학생-?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
시험 진행을 맡은 오필리아 경이 그렇게 말하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쪽을 바라본다.
“괜찮으신가요-?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필리아 경.”
간신히 평탄한 목소리로 대답을 꺼내놓자, 오필리아 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험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도중에 내가 자꾸 대답 없이 생각에 잠기니 걱정해서 말한 모양이다.
“설명을 이어가 주시겠습니까.”
애써 지어낸 웃음과 함께 그렇게 부탁하자, 오필리아 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혹시 모르니 다시 말씀해 드릴게요. 점령전에서 다우드 학생이 맡을 역할은 방어팀이에요- 학생은 2학군이니까, 조원 두 명과 함께 1학군 학생들과 마주치게 될 거에요-”
그렇게 말한 오필리아 경이 시험 장소로 쓰이게 될 아카데미 뒤편의 야산을 가리켰다.
저 꼭대기에 꼽혀있는 깃발을 가져가면 공격측의 승리, 지키면 수비측의 승리다.
‘…이겨야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험에서 패배하면 결국 전부 말짱 도루묵이다.
재상의 변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애초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결국 황제 한번 보기 위해서니까.
당장 페이놀과 관련된 챕터인 4챕터만 하더라도 그쪽과 엮여서 돌아가는 부분이 꽤 있으니까.
“함께 수비를 하실 조원들은 누구랑 하셔도 자유지만-”
그렇게 말한 오필리아 경이 내가 내민 지원서와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정말 이 두 명으로 괜찮으신가요-?”
객관적으로 보면 이상한 인선이라는 건 확실하다.
세라스는 바로 얼마 전에 편입한 신입생에 불과하고, 페이놀도 성적은 발군이라지만 그래봐야 1학군에 불과하다.
보통 이럴 때는 같은 2학군 안에서도 가장 성적이 좋은 인간 세 명으로만 수비조가 편성되는 게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건 확실하다.
애초에.
이쪽은 단순히 학생을 막는 게 문제가 아니다.
“…”
그렇게 생각하며, 야산 근처에 지어진 연단을 바라본다.
급조된 느낌은 없잖아 있지만, 틀림없이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모습이다.
“…괜찮습니다, 오필리아 경.”
그렇게 답하며, 그쪽으로 입장하는 황금색의 여자를 바라본다.
“이 조합이면, 만족할만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안 그러면.
진짜로 큰일이 날 테니까.
●
분명히 오필리아 경한테 말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했었는데.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하다.
둘 다 ‘사고 가능성’이라고 하면 폭탄 큰 거 하나씩을 품고 있는 놈들이라.
‘…일단 이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라스를 곁눈질로 살핀다.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자색 악마는 다행히 잠잠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놈 성격을 생각하면 약속이고 뭐고 세라스 바깥으로 튀어나와서 해괴한 짓을 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세라스 씨?”
“무슨 일이죠, 주ㅇ-”
“…”
방금 주인님이라고 부르려다 말았지?
실제로 그런 말을 꺼내려고 했던 세라스도 식겁하면서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다.
[…애가 완전히 멀쩡해 보이진 않는데?]“…”
동의한다.
불안하게 왜 그러냐.
“무슨 일이죠, 그… 다우드 선배님.”
“…진입로 중 한 곳을 맡아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지도에 펼쳐져 있는 길 중 하나를 가리킨다.
진입로는 총 두 개다. 한쪽은 페이놀이 맡고, 다른 한쪽은 세라스가 맡고, 최종 지점인 깃발이 세워져 있는 쪽은 내가 맡을 예정이지.
“…신성학부 학생에게 단독으로 전투를 시키겠다구요?”
페이놀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런 말을 꺼냈다.
직접 전투 계열도 아닌 신성학부 1학년에게 이런 걸 시키는 건 웃기지도 않은 일이지.
원래 방어전은 세 명이서 뭉쳐서 팀워크를 발휘해 최종 지점에서 틀어막는 전술이 보통이니까.
“예.”
바꿔 말하면.
“세라스 씨면 괜찮을 겁니다.”
내가 이 녀석이 평범한 신성학부 신입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이 녀석에게 티를 내는 셈이기도 하고.
“…”
“…”
세라스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전에 이런저런 이벤트가 있었다지만, 이 녀석 입장에서는 당신 뭘 근거로 그런 걸 확신하냐고 물어볼만한 당위성 정도는 성립할 것이다.
준비해온 변명거리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
[ System Message > [ ‘스킬: 치명적인 매력’이 발동합니다! ] [ 대상 ‘세라스’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왜?
왜 오르냐?
곁눈질로 그쪽의 표정을 살폈지만, 딱히 변한 건 없다. 평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다.
“…뭐, 한번 해 볼게요.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예, 감사합니다.”
순순히 흘러나오는 대답에 나도 평탄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얘 왜 이렇게 순종적이지…?
혹시 모르니까, 좀 확인해볼까.
[ ‘탐색안’을 사용합니다. ] [ 대상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 [ 같은 대상에게는 24시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적용됩니다. ] [ 세라스 에바트리체 ] [ 특징: 그릇 – 자색 악마 ] [ 상태: …혹시 나를 신뢰하나? 나를 믿어서 이런 일을 시키는 건가? 뭔가 특별한 징조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잠깐, 저, 정신 차려, 세라스! 성하도 아니고 이런 남자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두근거리는 건 너무-]“…”
무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했더니.
아니.
너 쉬워도 너무 쉬운 거 아니냐.
아무리 모든 악마 중 가장 나한테 공략당하기 쉬운 특성의 자색 악마라지만, 이건 해도 좀 너무하다.
이 녀석은, 안 그래도 불안한 점이 많은데 말이야.
나한테 있어서는 거의 지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System Log > [ 긴급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셨습니다. ] [ 대상 ‘세라스’의 전용 퀘스트 ‘배반’이 개방됩니다! ] [ Quest Info > [ 배반 ] [ 인물 퀘스트 ] [ 대상의 호감도를 ‘친애’까지 올리세요! ] [ 대상이 현재 충성하는 대상을 배반하고 당신에게 충성을 바칩니다! ] [ 챕터 5, ‘낙원’의 진행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 [ 2차 퀘스트, ‘가족 만들기’와 연결됩니다! ]“…”
법황을 배신한다…는 건 일단 좋은데.
이어진다는 2차 퀘스트라는 게, 좀.
흉흉해 보인다.
엮이는 순간 파멸적인 전개 확정일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이 녀석의 호감도는 가능한 천천히 올리는 편이 좋아 보일 정도로.
‘…아무튼.’
한숨을 내쉬며 페이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당신은 혼자서 나머지 진입로 하나를 맡아도 상관없냐는 의문이 담긴 동작이었지만.
“전 별 문제 없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돌아오는 대답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뭐, 확실히.
이쪽은 붉은 악마의 그릇이라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게임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마법사’ 클래스 중 손에 꼽는 천재 부류다.
학생들 틀어막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겠지.
-!
그렇게 논의를 끝내는 사이, 근처로 날카롭게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좋습니다. 위치로.”
그렇게 말하면서, 각각 위치로 보낸다.
그리고, 나도 위치로 이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 멀리 보이는 연단을 슬쩍 본다.
설리번 재상이 거기에 있다. 근처에 앉은 콘라드 학장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 기색이지.
이전과 달리, 이렇게 내가 멀리서 바라본다고 딱히 바로 반응을 돌려주진 않는다.
이전에 보인 모습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기색이기도 하지.
“…”
한숨을 내쉬며 나도 몸을 일으킨다.
저 녀석이 정확하게 누군지도 모르겠고.
나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이 시험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뭐가 어찌되었건, 이번에도 어떻게든 대처하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왔던 일 아닌가.
●
그렇게 생각한 게 5분 전이다.
뭐가 닥쳐도 대처해주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거 말이야.
“…있잖습니까.”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내가 이렇게 말을 건넬 대상이 있다는 건, 그 시간 만에 시험의 최종 관문인 깃발 앞에 도달한 사람이 있단 거지만.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딱히 세라스와 페이놀의 탓을 할 생각은 안 든다.
대상이 이 사람이어서야.
“하! 만나서 반갑다, 다우드 캠벨! 체스터 가문의 복수를 드디어-”
“아니, 넌 좀 닥치고.”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그렇게 쫑알거리는 녀석에게 사납게 쏘아붙인다.
니가 누군진 관심 없다. 적어도 지금은.
두통이 미친 듯이 심화 되고 있었으니까.
관자놀이를 싸쥐며 다시 신음처럼 내뱉는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시냐고 여쭸습니다, 엘노어. 학생회장이 왜 공격조에 있어요.”
“…엘노어 아니네.”
후드를 깊숙이 눌러쓴 엘노어가 변조하려고 애쓴 게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기사학부에 입학한 정체불명의 신입생이라네. 엘노어라니, 도통 누구를 얘기하는지 모르겠군.”
“…”
“참가 자격에는 아무런, 문, 문제가, 없네. 흠.”
“…”
아니.
진짜로.
이 사람 여기서 뭐해?
그런 생각을 하며 엘노어 쪽을 노려보고 있자니, 엘노어가 헛기침을 연신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스스로도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가 부끄럽긴 한 가 보다.
“당신과 정정당당한 결투를 하러 왔다.”
“…결투요?”
“그래.”
“…”
두통이 훨씬 심화된다.
“패자는 승자의 요구를 무조건 하나 들어줘야만 한다.”
“…”
“내 요구는, 그러니까…”
그런 말을 꺼낸 엘노어가 한참동안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이 말을 꺼내는 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기색이다.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점점 더 불안해질 정도로.
아니.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 그대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다.”
“…”
“황혼에서 새벽까지. 단 둘이서.”
“…”
야.
진짜.
제발.
[…하는 짓거리는 귀여운데.]칼리반이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요구하는 건 즉사감이네?]“…”
동감이다.
●